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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 News | 코리아

베이루트: '더 이상 희망이 없다'

BBC 중동 특파원이 절망적인 심경을 전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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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발로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된 건물

출처EPA

베이루트는 그곳에 머무를 때도 향수를 느끼게 하는 장소다.

많은 이들에겐 화려함과 위험이 공존하는 장소로 각인돼 있기도 하다. 나는 지난 5년간 베이루트에 살았다.

이곳의 과거와 현재 모습을 분리해 생각하긴 어렵다.

어린 시절부터 머릿속에 각인된 장면 중 하나는 내전의 풍경이다.

신부와 신랑을 찍은 사진이었는데 그들이 분계선을 넘어가던 모습이었다.

1975년부터 1990년까지 갈라져 있었던 그 누구의 땅도 아닌 이 땅....

조지스 세메르잔의 사진 속에서 신부는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신랑도 하얀 턱시도를 입었다. 그들을 둘러싼 모든 건 폐허였다.

초현실적 장면이기도 했다. 아름다움과 무너짐이 한 프레임 안에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37년 뒤, 이 신부가 서 있었던 곳에서 멀지 않은 장소에서 또다른 신부가 웨딩 드레스를 입고 서 있다.

눈부신 미소로 근사한 히잡을 쓰고 드레스 자락을 길게 늘어뜨린 채 사진을 찍는 이 신부.

사진사가 시선을 아래로 떨어뜨리는 순간 수킬로미터 밖에서 거대한 폭발음이 들려온다.

신부의 드레스는 충격으로 물결치듯 흔들리고 먼지와 폭발 잔해가 날아오면서 신부는 급히 몸을 숨긴다.

레바논인들은 과거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애를 써 왔다.

지난해 10월 레바논 거리는 혁명을 외치는 시민들로 가득 찼다. 이들은 정부를 끌어내렸다.

내전 이래 내내 권력을 거머쥔 군부의 부정부패와 실정에 지친 시민들은 변화를 원했다. 일부 요구는 현실이 됐지만, 여전히 부족했다.

레바논에선 지난 1월 새 총리가 이끄는 새로운 내각이 출범했다.

하지만 지난 몇 달 사이 정부는 변화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울부짖음에 등을 돌렸다.

의회와 정부 건물 주변엔 콘크리트 장벽이 쌓아 올려졌다. 벽은 사람들을 몰아냈다.

그러는 사이 수천 톤의 폭약 재료는 금방이라도 폭삭 내려앉을 것 같은 창고에 위험하게 방치돼 있었다.

지난 화요일 폭발 사고 이후 나는 레바논으로 돌아왔다. 도시는 산산히 부서진 유리 같았다. 이 인재(人災)로 친구들의 집이 무너졌고, 친구들도 다쳤다.

사고 이튿날인 지난 5일, 참사가 일어난 항구에서 그리 멀지 않은 베이루트 중심가 젬메이즈를 찾았다.

폭격을 직접적으로 맞은 차량 한 대 앞에 멈춰 섰다. 에어백이 터져 있었고, 차 지붕은 엄청난 하중에 눌린 듯 내려앉아 있었다. 좌석은 핏자국으로 얼룩진 상태였다.

근처에서 만난 한 여성은 완전히 붕괴된 자신의 가게를 보여줬다.

"우리에겐 미래를 계획할 새로운 식견도 무엇도 없어요. 그냥 먹고 자고, 아이들에게 교육과 옷가지 정도를 줄 수 있을 뿐이죠. 더이상 꿈이 없어요."

그는 정치인들을 규탄하며 한탄했다.

수많은 주민이 이재민이 됐다

출처Reuters

사고 충격으로 폐허가 된 베이루트 항구

출처Reuters

15년의 내전과 외세의 침탈을 견디고 나면 누군들 그렇지 않을까 싶지만, 레바논인들은 특유의 회복력으로 명성이 높다.

그러나 레바논인들은 다시 일어서는 데 이력이 났다.

이번 사고 이전부터 무너져 가고 있던 고국에서 겨우 살아내고 있었을 뿐이다.

수도 심장부에서 일어난 이 엄청난 양의 '홈메이트 폭탄' 폭발 사고보다 레바논의 붕괴를 더 절실하게 보여주는 게 있을까?

두 신부의 사진들을 다시 들여다 본다.

두 사람 사이엔 수십 년의 세월이 있다. 어두운 혼란과 대조되는, 밝고 하얀 희망도 엿보인다.

레바논은 언제쯤 과거와 분리될 수 있을까? 언제쯤 상황이 나아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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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 News |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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