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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 News | 코리아

흑인 인권운동 거물 '존 루이스', 향년 80세로 타계

흑인 인권 운동을 이끈 '6명의 운동가' 중 한 명이자 마지막 생존자였던 존 루이스가 췌장암으로 타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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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루이스는 지난해 12월 자신이 췌장암 4기라고 밝혔다

출처Getty Images

흑인 인권 운동 지도자이자 이후 미국 민주당 하원 의원으로 활동했던 존 루이스가 향년 8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루이스는 마틴 루터 킹과 함께 흑인 인권 운동을 주도해 온 '6명의 인물' 가운데 한 명이었다. 그는 1963년 워싱턴 대행진을 기획하는 데 기여했다.

존 루이스는 1981년 조지아주 애틀랜타 시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1986년 조지아주 하원 의원으로 당선됐고 2006년에는 민주당 하원 원내 수석 부총무를 맡기도 했다.

그는 지난해 12월 자신이 췌장암 4기 진단을 받았다고 발표했다. 그는 "거의 평생 동안 자유와 평등, 기본적 인간의 권리를 위해 싸워 왔지만 지금 마주한 병마와의 싸움은 해본 적이 없다"고 밝혔다.

인권 운동을 이끌던 루이스는 학생 비폭력 조정위원회(SNCC)를 공동 창립했고 1963년부터 1966년까지 의장을 맡았다. 그는 1963년 '워싱턴 대행진'을 기획했고 이곳에서 연설했다. 이 행진의 목적은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시민적 경제적 권리를 옹호하기 위함이었다.

바로 이 행진에서 마틴 루터 킹의 역사적인 연설인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가 나왔다. 루이스는 행진에서 연설했던 인권 운동가들 중 마지막 생존자였다.

1963년 워싱턴 대행진에서 연설하는 존 루이스

출처Getty Images

민주당 낸시 펠로시 하원 의장은 웹 사이트와 SNS를 통해 존 루이스의 타계 소식을 발표했다. 그는 루이스가 "선의와 믿음, 용기를 바탕으로 우리 민족을 변화시킨 인권 운동계의 거물"이었으며 의회 의원으로서는 "미국 국회 의사당 양쪽에서 모두 사랑과 존경을 받아왔다"며 애도했다.

"존 루이스는 그의 생애를 통해 모든 이들에게 자유와 정의를 가져오는 데 헌신했습니다. 57년 전 워싱턴 행진에서 그가 선언했던 것처럼 우리의 마음과 영혼은 자유와 정의가 존재하는 한 그를 기억할 것입니다. 존은 암과 투병하는 마지막 몇 주 동안에도 최근 미국에서 벌어진 인종차별 반대 시위 현장을 찾기 위해 힘을 끌어 모았습니다."

미국의 오래된 인권 단체 중 하나인 전미유색인지위향상협회(NAACP)는 그의 타계 소식을 접하고 "심히 슬프다"는 애도의 트윗을 남겼다.

"평생 지속되어 온 정의와 평등, 자유를 향 존 루이스의 사명은 우리나라와 전 세계에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전미 흑인 지위 향상 협회는 그의 가족들에게 진심으로 애도를 표하며 위안의 기도를 보냅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루이스가 수십 년 동안 자유와 정의를 위해 온몸을 다해 싸워왔을 뿐 아니라, 그를 따르는 세대들에게 영감을 줬다"고 밝혔다.

"우리 중에서 자신의 삶을 그렇게 의미 있고 놀라운 방식으로 살아내는 사람은 흔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존 루이스는 그렇게 했습니다. 그에게 고맙습니다. 우리는 이제 이 나라를 재건하기 위한 행진을 명령 받았습니다."

전 대통령 후보였던 엘리자베스 워렌은 트윗을 통해 루이스를 "미국의 진정한 영웅이자 나라의 도덕적 나침반"이라고 칭하며 애도했다.

함께 인권 운동을 했던 코디 틴델 비비안 역시 루이스와 같은 날 타계했다. 비비안은 남부지역에서 버스 좌석을 분리하는 정책에 항의하는 단체 '프리덤 라이더스'를 조직하는 데 기여했고 이후 남부 기독교 지도회의(SCLC)를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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