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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변호사→시민운동가→차기 대권주자.. '최장수 서울시장' 박원순의 삶

'서울로(路) 7017'과 같은 도시재생, 공공자전거인 '따릉이' 등과 같이 생활 밀착형 개념들을 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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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시장이 10일 숨진 채 발견됐다

출처Getty Images

여권의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 중 한 명으로 꼽혔던 박원순 서울시장이 10일 새벽 0시 20분쯤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이 박 시장의 딸로부터 실종 신고를 받고 수색을 펼친 지 약 7시간 만이다.

경찰에 따르면 박 시장은 서울 성북구 삼청각 인근 산속에서 발견됐다. 시신은 종로구 서울대병원으로 옮겨졌고 빈소가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박 시장은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다 시민운동계 대표 인물로 떠올랐다. 이후 서울시장 재·보선을 통해 정치에 입문했고, 여권의 유력한 대권 주자 중 한 명으로 꼽혔다.

극단적 선택으로 끝난 최장수 서울시장의 삶을 돌아봤다.

인권 변호사의 길… 당시 굵직한 사건 변론 맡아

박 시장은 1956년 경남 창녕에서 7남매 중 여섯째로 태어났다. 친형을 따라 서울로 상경한 그는 경기고에 입학했고, 재수 끝에 1975년 서울대 사회계열에 합격했다.

하지만 그는 고(故) 김상진 열사의 추모 시위에 참가했다는 이유로 입학 3개월 만에 투옥됐다. 4개월간 복역하고 제적을 당했다. 나중에 그는 자서전을 통해 이 사건이 "자신의 인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회상했다.

이후 그는 단국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1980년 제22회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대구지방검찰청 검사로 임용됐으나 6개월 만에 사표를 냈다. 그는 "사람 잡아넣는 일이 안 맞았다"고 설명한 바 있다.

2015년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였던 문재인 대통령과 박원순 서울시장이 시대를 밝힌 자랑스러운 변호사 조영래 기념행사에 참석해 대화하고 있다. 셋은 사법연수원 동기다

출처NEWS1

박 시장은 1983년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해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등 변론을 맡으며 인권변호사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특히 그는 전태일 평전을 쓰며 노동운동의 필요성을 알린 조영래 변호사와 함께 당시 굵직한 사건의 변론을 맡아 민주화 운동에 영향을 미쳤다. 박 시장은 조 변호사를 자신의 "삶의 멘토"라고 여러 차례 밝혔다.

박 시장은 또 권인숙씨 성고문 사건, 서울대 우조교 성희롱 사건 등의 변호를 맡으며 '여성 인권변호사'로도 주목받았다. 그는 이 사건으로 받은 '올해의 여성운동상' 상금을 한국여성단체연합에 기부했다.

시민운동가로 변신… 자신을 '소셜 디자이너'라고 불러

1990년 멘토 조 변호사가 별세하자 박 시장은 영국 유학을 떠났다. 귀국한 뒤엔 당시 개념이 다소 모호했던 '시민운동' 분야에 뛰어들었다. 1994년 국내 대표 시민단체인 '참여연대' 설립을 주도했고, 2000년에는 '아름다운 재단'을 설립했다.

'소액주주 권리 찾기 운동', '국회의원 낙선운동', '기부·나눔·참여', '사회적 기업' 등 지금은 매우 익숙한 개념의 시민운동 프로그램들이 당시 박 시장이 이끌던 단체들에서 시작됐다.

시민운동가 시절 그는 자신을 '소셜 디자이너'라고 칭했다. "패션 디자이너, 인테리어 디자이너처럼 우리 사회를 어떻게 하면 조금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수 있을까 이런 걸 늘 고민하는 사람"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2011년 보궐선거에서 승리한 박원순

출처Getty Images

역대 최장수 서울시장… 대선 출마에는 말 아껴

사회를 올바른 방향으로 바꾸는 걸 소명이라고 생각한다는 그는 정치권으로 무대를 옮겼다. 2011년 무상급식 논란으로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이 중도 사퇴하면서 치러진 보궐선거에서 승리한 것. 2014년, 2018년 선거에서도 연거푸 당선되며 서울시 최초의 민선 3선 시장이자 역대 최장수 서울시장 기록을 세웠다.

시민운동에서 아이디어 그리고 치밀함으로 스타가 된 그는 시장 임기 중에도 '서울로(路) 7017'과 같은 도시재생, 공공자전거인 '따릉이' 등과 같이 생활 밀착형 개념들을 도입했다. 이어 '강북 균형발전', '미세먼지 시즌제' 등과 같은 친서민 정책도 이끌었다.

그의 결단력과 즉흥성은 화제가 됐지만 논란을 불러오기도 했다. 2015년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당시에는 중앙정부를 믿지 못하겠다며 서울시가 나서 전격적으로 투명한 정보공개를 단행했다. 2018년에 그는 "여의도를 통으로 개발할 것"이라며 밝혔지만 발표 후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중앙정부와 논의해야 한다"며 제동을 걸기도 했다.

9일 오후 5시 17분쯤 박 시장의 딸은 '4∼5시간 전에 아버지가 유언 같은 말을 남기고 집을 나갔는데 전화기가 꺼져 있다'며 112에 실종신고를 했다

출처NEWS1

2017년 1월 SNS에 대선 출마 뜻을 보였다가 20여 일 만에 철회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그는 지난해 런던에서 진행된 BBC 코리아와의 인터뷰에서 "서울시장을 넘어 대한민국을 맡기에 충분한 개인적 준비를 못 했다는 생각했다"며 또 "당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대세'라고 판단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최근에도 여론조사에서 박 시장은 이낙연 민주당 의원 및 이재명 경기도 지사 등과 함께 차기 대권 경쟁 후보로 떠올랐다. 그는 대선 출마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지난 6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차기 대선과 관련해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자기가 하고 싶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때로는 안 되고 싶어도 하게 되는 운명적인 직책"이라고 했다.

한편 경찰 관계자 등에 따르면 박 시장의 전직 비서 A씨는 박 시장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며 박 시장을 지난 8일 경찰에 고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시장이 숨진 채로 발견되면서 A씨의 고소 사건은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된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으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면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등에 전화하면 24시간 상담을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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