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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 폭행'은 묻지마 범죄일까, 여성혐오 범죄일까?

"피해자로서의 여성은 당연하다는 이유로 범죄와 형사사법체계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비가시화 되고 있다는 점은 페미니스트 범죄학자들의 오래된 비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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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역 화장실 여성 살해사건 3주기 추모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여성 혐오 범죄를 규탄하고 있다

출처뉴스1

"만약 제가 건장한 남자였다면 과연 이런 사고를 당했을까요?"

지난달 26일 서울역 공항철도 출구 쪽 한 아이스크림 가게 인근에서 일면식 없는 한 남성에게 폭행을 당한 피해 여성 A씨는 피해 폭로 글에서 이렇게 되물었다.

이 사건으로 A씨는 왼쪽 광대뼈가 부서지고 함몰됐으며 왼쪽 눈가도 찢어져 수술을 해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에 대한 공분이 가라앉지 않은 가운데 지난 10일 서울 오금동에서 귀가를 위해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여성 B씨는 한 남성에게 무차별 폭행을 당했고 말리려던 여성 또한 덩달아 폭행당했다.

이처럼 여성을 대상으로 한 폭행 피해가 증가하는 가운데 '여성혐오 범죄'의 정의에 대한 다양한 시각이 제기되고 있다.

서울역 사건 후 일각에서는 언론 등이 '서울역 묻지마 폭행'이라고 표현한 것을 지적하며 SNS에서는 '#서울역여성혐오범죄'라는 해시태그가 쏟아진 반면, 섣부른 '여성혐오 범죄' 규정은 오히려 여성이 혐오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을 키울 수 있다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묻지마 범죄' vs '여성혐오 범죄'

철도특별사법경찰대(철도경찰) 관계자는 "범행 전에도 피의자는 길을 걷다가 남자, 여자 관계없이 다 부딪치고 다녔다"면서 "일단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온라인에서 이 사건은 '#서울역여성혐오범죄'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확산되며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묻지마 범죄'가 아니라 여성을 대상으로 고른 범죄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한 트위터 이용자는 "만약 피해자가 키 180cm의 남자였다면 주먹으로 맞았겠느냐"며 "묻지마 범죄라는 말은 너무 많은 것을 가린다"고 주장했다.

서울역에서 30대 여성을 폭행한 남성이 4일 오전 서울 용산경찰서에서 영장실심심사에 앞서 추가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역 특별사법경찰대로 향하고 있다

출처뉴스1

윤김지영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교수는 "일면식 없는 여성을 대상으로 한 폭행인데도 '묻지마 폭행'이라고 이야기하는 건 문제의식을 흐리게 할 수 있다"며 "'서울역 여성 폭행사건'이라 불러야 더 정확하다"고 연합뉴스에 말했다.

그러면서 "경찰의 무릎에 목이 눌려 사망한 조지 플로이드 사건에서도 흑인 대상 폭력이고 인종차별 폭력이라는 점에 동의해야 그에 따른 사회적 논의가 이뤄질 수 있는 것처럼 여성을 상대로 일어난 범죄도 피해자가 여성이라는 점을 이야기해야만 적절한 대응책이 마련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여성혐오범죄'라고 정의하고 부르는 것에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수정 경기대학교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강남역 사건을 여성혐오범죄라고 부르기 굉장히 두려웠던 게 사실은 언어 어떤 어휘가 주어가 되면 그 어휘가 사람들의 의식을 지배를 한다"고 CBS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에 말했다.

이어 범죄학적 공식 용어가 아닌 여성혐오범죄라는 말이 널리 쓰이게 되면, 오히려 여성이 혐오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을 키울 수 있기에 경계해야 한다고 밝혔다.

'강남역 살인사건'도 '묻지마 살인'

이번 서울역 사건이 일면식도 없던 여성을 표적으로 한 사건이라는 점에서 4년 전 강남역 살인사건을 떠올리는 누리꾼도 있다.

강남역 살인사건은 2016년 5월 17일 강남역의 한 공용화장실에서 30대 남성인 김성민이 일면식도 없는 20대 여성을 살해한 사건이다. 김씨는 화장실에서 남성 6명은 그냥 보내고 여성을 기다려 범행을 저질렀고, 살해 동기로 '평소 여자들이 무시해서 살해했다'고 주장한 사실이 알려졌다.

여성들은 이 사건을 '여성혐오 범죄'라고 명명하며 '여성혐오'(misogyny)'와 '페미사이드(femicide·여성살해)'에 대한 사회의 무관심에 분노했다. 당시 한국 사회에서 새롭게 일어난 페미니즘 붐, '페미니즘 리부트'에 힘을 실어준 사건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하지만 경찰 수사에서 '피해망상 조현병에 의한 묻지마 범죄'로 결론이 났고 가해자는 당시 '심신미약' 상태였던 점이 고려돼 감형을 받아 징역 30년이 확정됐다.

'피해자로서의 여성은 당연하다'

서울대 여성학협동학 박사과정 김민정씨는 2017년 쓴 연구논문 '묻지마 범죄가 묻지 않은 것'에서 "'여성이 손쉽게 피해 대상이 되는 것은 사실'이라는 정도의 문제의식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며 "여성에 대한 폭력 범죄는 물리적 힘의 자연적 표출에 의하 약육강식의 결과로서 인식하고 뿌리깊은 여성폭력 현상을 '문제'로 규정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가해자로서의 여성은 수가 적고 피해자로서의 여성은 당연하다는 이유로 범죄와 형사사법체계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비가시화 되고 있다는 점은 페미니스트 범죄학자들의 오래된 비판이기도 하다"라고 썼다.

'페미사이드'(Femicide·여성 살해) 철폐 시위에서 참가자들이 여성혐오 범죄와 여성폭력을 규탄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출처뉴스1

논문은 강남역 살인사건에서 담론 형성 과정을 살피며, 사건 직후에는 "여성혐오"와 같은 소셜미디어 키워드가 상위권에 있었지만, 경찰 수사 경과 발표 직후 김씨가 앓았다는 "조현병"이 키워드에 울라왔다고 했다.

이어 "정신질환이므로 여성혐오가 아니다, "조현병이므로 '혐오범죄'를 할 수 없다"로 프레임이 바뀌었다고 말하며 "여성혐오와 정신질환 여부가 양립불가능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여성이 느끼는 불안감 커

한편 대검찰청이 매년 발표하는 '범죄분석' 통계에 따르면, 살인·강도·성폭행 등 강력 흉악범죄에서 여성 피해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지난 1995년 29.9%에서 2018년 89.2%으로 급증했다. 국내 흉악범죄 피해자 10명 중 9명은 여성인 꼴이다.

한국에서 사는 여성이 느끼는 불안감도 남성보다 훨씬 크다. 통계청이 지난해 7월 발표한 '2019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을 보면, 범죄 발생에 대해 여성 57%가 '불안하다'고 느껴 남성(44.5%)보다 12.5%p 높게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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