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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 News | 코리아

모든 직원에게 최저 연봉으로 7만 달러를 준 사장

시애틀에 있는 한 신용카드 결제 회사의 사장이 직원 120명 모두에게 최저 급여로 7만 달러를 주기로 했다. 대신 자신의 보수는 100만 달러를 삭감했다. 그로부터 5년, 지금도 최저 급여만 받고 있는 그는 자신의 도박이 결실을 맺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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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 프라이스

출처Gravity

댄 프라이스는 친구 발레리와 함께 시애틀 캐스케이드 산에서 하이킹을 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발레리가 속내를 털어놨다. "집주인이 월세를 200달러나 올렸고, 돈을 마련하기 위해 억척같이 사느라 삶이 너무 고달파."

프라이스는 속이 상했다. 그가 한때 데이트를 했던 발레리는 11년간 군대에 있었다. 이라크에도 두 차례 다녀왔다. 하지만 지금은 생계를 위해 투잡을 뛰며 일주일에 50시간을 일하는 상황이었다.

그는 "발레리는 서비스 마인드를 가지고 있고 명예를 존중하며, 근면 성실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발레리는 1년에 약 4만 달러(약 4700만 원)를 벌고 있었지만, 이 돈으로는 시애틀에서는 일반적인 집을 살 수가 없었다. 프라이스는 세상이 이토록 불평등하다는 것에 화가 났고,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른 한 살 무렵, 프라이스는 이미 백만장자로 떠오른 상태였다. 그가 10대 때 세운 그래비티 페이먼츠는 2000명의 고객을 보유했고 회사 가치는 수백만 달러로 추산됐다. 1년 수입만 해도 110만 달러. 하지만 그는 발레리로 인해 자신의 직원들 역시 고달픈 삶을 산다는 걸 알게 됐다. 그리고 이 상황을 바꾸기로 결심했다.

Short presentational grey line

출처BBC

아이다호 시골 지역의 기독교 가정에서 자란 댄 프라이스는 활발하고 긍정적인 성격이었다. 남을 칭찬할 줄 알고 흠 잡을 데 없이 공손했다. 하지만 지금은 미국 사회의 불평등에 맞서는 저항가다.

"사람들은 굶주림을 겪거나 실직당하거나 누군가에게 이용도 당하고 있습니다. 반면 누군가는 뉴욕의 빌딩 꼭대기에 황금 의자로 꾸민 펜트하우스를 소유하고 있죠."

"우리 문화는 탐욕을 미화하고 있어요. 포브스 리스트는 최악의 사례죠. '빌 게이츠가 제프 베조스를 제치고 최고의 부자가 됐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요?"

댄 프라이스

출처Gravity

1995년 이전에는 미국의 소득 하위 50%가 가진 소득이 가장 부유한 1%보다 많았다. 하지만 그 이후로는 상황이 달라졌다. 상위 1%의 소득이 더 많아졌다. 그 격차는 계속 벌어지고 있다.

1965년 미국의 CEO들과 노동자들의 임금 평균을 비교해보면, CEO가 20배 정도 많았다. 하지만 2015년 기준으로는 CEO의 수입이 300배 정도 더 많다. (영국에서는 FTSE 100대 기업의 사장들이 현재 평균 근로자보다 117배 많은 임금을 받는다.)

발레리와 함께 산속의 신선한 공기를 마시던 중, 프라이스에게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2015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다니엘 칸네만과 앵거스 디턴이 내놓은 논문 '미국인이 행복하려면 얼마 만큼의 돈이 필요한가'였다. 그는 즉시 그래비티의 최저 임금을 대폭 인상하겠다고 발레리에게 약속했다.

이런 저런 계산 끝에 그는 최저임금 연 7만 달러(약 8300만 원)를 계획했다. 이를 위해선 자신의 급여 삭감뿐 아니라, 집 2채를 모기지 대출 받고, 주식과 예금을 포기해야 했다. 계산이 끝나자 직원들을 모아 소식을 전했다.

그는 직원들이 기뻐서 환호성을 지르리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처음의 분위기는 달랐다. 무슨 상황인지 파악을 못 하는 직원들에게 몇 번이나 설명을 되풀이해야 했다.

5년 후 댄은 프린스턴 교수들의 논문에서 깜빡한 게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웃었다. 논문이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필요하다고 추산한 금액은 7만5000달러였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 회사에서 일하는 이들 중 3분의 1의 급여가 하루 아침에 2배로 오른 것은 사실이다.

Short presentational grey line

출처BBC

이후 그래비티는 달라졌다. 이용자는 2배로 늘었고, 연간 회사가 지급하는 금액은 38억 달러에서 102억으로 증가했다.

하지만 프라이스가 자랑스러워하는 지표는 다른 것이다.

그는 "7만 달러 최저 임금을 시행하기 전에는 팀내에서 한 해 0~2명 정도 출산을 했다"고 말했다.

"이 발표를 한 지 약 4년 반밖에 안 됐는데, 지금은 회사 직원들 사이에서 40명 이상의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댄 프라이스와 어머니

출처Gravity

이와 함께 회사 직원의 10% 이상이 미국에서 가장 임대료가 비싼 곳에서 집을 살 수 있게 됐다. 이전에는 1% 미만만 가능했던 일이다.

프라이스는 "사람들이 많이 벌게 되면 그만큼 낭비할 것이라 우려하는 이들도 있었다"며 "하지만 우리는 정반대의 결과를 목격했다"고 말했다.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자신의 연금에 넣는 금액이 2배 이상으로 늘어나기도 했다. 직원의 70%는 빚을 갚았다고 했다.

그럼에도 프라이스는 맹공격을 받았다. 수백 통의 지지 편지를 받았고 "미국 최고의 보스"라는 수식과 함께 매거진 표지를 장식했지만, 그래비티의 많은 고객들은 그의 생각을 "정치적인 의도가 담긴 발언"이라 생각하고 이를 비판하는 편지를 손수 보내왔다.

당시 시애틀은 최저 시급을 미국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 15달러로 인상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었다. 소상공인들은 "최저 시급이 올라가면 우리는 망한다"며 이를 반대하고 있었다.

프라이스가 어린 시절 매일 같이 듣던 우파 계열 라디오 방송의 러시 림보는 프라이스를 '공산주의자'라고 불렀다.

림보는 "나는 이 회사가 MBA 프로그램에서 어떻게 사회주의가 작동하지 않는지를 연구하는 사례가 되길 바란다"며 "이 회사는 실패할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그래비티의 고위 직원 2명도 항의의 표시로 사표를 냈다. 직원의 급여가 하룻밤 사이에 치솟은 것이 달갑지 않은 그들은 향후 직원들이 게을러지고 회사는 경쟁력을 잃을 것이라 주장했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로지타 발로

출처Gravity

그래비티의 세일즈 디렉터인 로지타 발로는 급여 인상 이후로 젊은 직원들이 더 열심히 일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일을 할 때 돈이 최우선의 과제가 아니라면 당신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것에 더욱 열정을 쏟게 된다"고 말했다.

고위 직원들은 업무 부담이 줄었다. 스트레스를 덜 받으면서 부여된 휴가를 모두 누릴 수 있게 됐다.

프라이스는 그래비티 콜센터에서 일하는 한 직원의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그 직원이 하루 통근에 쓰는 시간이 1시간 30분 이상이었다"고 했다. "그는 출퇴근을 하며 마모되는 타이어 교체 비용도 걱정했죠. 그것 때문에 매일 스트레스를 받았어요."

급여가 7만 달러로 인상되자, 그 직원은 사무실 가까운 곳으로 집을 옮겼다. 지금은 매일 운동을 하고 건강하게 먹으며, 더 많은 돈을 건강한 삶에 쓰고 있다.

프라이스는 "비슷한 부서에서 근무하는 다른 남자분은 50파운드(22kg)를 감량했다"고 말했다. 다른 이들은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됐고, 부모의 빚을 갚을 수 있게 돕고 있다고 했다.

프라이스는 "우리는 누군가를 자유롭게 해준 결과를 매일 목격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래비티가 그 어느 때보다 잘 나가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급여 인상이 사람들의 동기를 더 부여한 것은 아니다. 그는 직원들이 이미 열심히 일하려는 동기를 가지고 있었고 급여 인상은 그들의 능력을 향상해준 것이라고 말했다.

로지타 발로 역시 "우리는 돈을 벌기 위해 회사를 다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하면 일을 더 잘 할 수 있을까?'에 초점을 두고 있어요."

Short presentational grey line

출처BBC

발로는 그래비티 초창기부터 이 회사와 함께 해왔다. 그래서 프라이스가 항상 관대하지는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프라이스 역시 역시 2008년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비용을 절감하려 했었다.

당시 미국 경제의 침체로 인해 그래비티 고객 기반은 약화됐고, 수입은 20% 정도 감소했다. 경제 논리에 따르면, 직원 35명 가운데 12명 정도의 임금을 삭감했어야 했다. 하지만 프라이스는 비용 절감에 초점을 맞췄다. 5개월간의 사투 끝에 회사는 다시 수익을 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크게 겁을 먹은 터라, 프라이스는 본인 급여를 낮게 유지했다.

"그들 앞에 앉자마자 울먹였다"

출처BBC

당시 발로도 재정적인 고달픔을 겪었다. 그래서 퇴근 후 몰래 맥도날드에서 일을 했다. 그러던 중 맥도날드가 그에게 승진을 제안하면서 일이 벌어졌다. 그가 그라비티 책상에 놓고 간 맥도날드 업무 지침서를 우연히 누군가가 발견한 것. 상사들이 발로를 회의 자리로 불렀다.

발로는 "그들 앞에 앉자마자 울먹였다"고 말했다. 자신이 해고되리라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회사를 다니기 위해 얼마가 필요한지를 물었다. 그리고는 급여를 4만 달러로 인상해줬다.

프라이스는 "발로가 매우 인상 깊으면서도 자랑스러웠다"면서도 "나 자신에게 화가 났다"고 했다.

그가 직원들이 겪는 어려움이 어느정도인지를 파악하기까지는 몇 년이 더 걸렸다. 그는 "대부분은 너무 겁을 먹은 나머지 내게 와서 자신들이 부족한 급여로 얼마나 힘든지를 털어놓지 못한다"고 말했다. 2015년 이전에 그는 이미 직원들의 연봉을 20%씩 인상해주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를 더욱 더 나아가게 한 것은 발레리와의 대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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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BBC

프라이스는 그래비티 사례가 미국 산업에 광범위한 변화를 가져오기 바랐다. 하지만 실망스럽게도 그러한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작은 변화는 있었다. 보스턴의 파마로직스는 최저임금을 5만 달러로 올렸다. 애틀랜타의 랜티드닷컴도 최저 임금을 인상했다. 그는 온라인상의 로비를 통해서 아마존의 최저 임금 인상 결정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그가 바란 것은 광범위하고 구조적인 변화였다.

그는 "내가 틀렸다"고 말했다.

"광범위하고 구조적인 변화가 없다는 점에서 저는 분명 실패했어요. 그러나 현실에 대한 제 관점을 바꿔놓았죠. 저는 제가 한 행동과 다른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그런 행동을 통해서 폭증하는 소득불평등을 바꿀 수 있다고 정말로 믿습니다."

이는 프라이스의 삶을 크게 바꿔놓았다. 자신의 급여를 줄이기 전 프라이스는 한 명의 젊은 IT 백만장자일 뿐이었다. 시애틀의 푸젯 사운드가 내려다보이는 아름다운 집에 살았고, 비싼 식당에서 샴페인을 마셨다. 하지만 이후 그는 에어비앤비로 집을 얻어 살고 있다.

한 번은 12년 된 아우디로 출퇴근하는 프라이스를 보고 직원들이 그에게 테슬라를 사주기 위한 모임을 만들었다. 회사가 유튜브에 공개한 영상을 보면, 알리사 오닐이 동료들과 함께 프라이스를 위한 깜짝 선물을 계획했다. 오닐은 "이것이 그가 감내했던 모든 희생에 수반한 좋지 않았던 일에 고마움을 표현하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테슬라를 받은 프라이스와 알리사 오닐

출처YouTube

사무실 앞에 세워진 차를 보고 프라이스는 눈물을 쏟았다.

5년이 지난 지금도 프라이스는 여전히 그래비티의 최저 급여를 받고 있다. 모든 게 순탄치는 않았지만, 개인적으로는 수백만 달러를 벌 때보다 더 많은 것을 성취했다고 말한다.

그는 "매일 시험이 펼쳐진다"고 했다.

"마크 주커버그와 동갑인데요. 가끔 '주커버그만큼 부자가 되고 싶다. 그와 포브스 리스트에서 경쟁하고 싶다. 돈을 많이 벌어서 타임지 표지에 오르고 싶다' 등과 같은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탐욕스러운 마음이 저를 유혹하는 것이죠."

"물론 그런 마음을 물리치는 게 쉽지는 않아요. 하지만 제 삶이 훨씬 더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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