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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식: 독일의 '쉴 권리'..디지털 시대에도 살아남을까?

정해진 업무 시간 후에는 일에 관심을 끄는 '다운 타임'이 매우 중요하게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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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진 업무 시간이 끝난 후에는 일에 관심을 끄는 '다운 타임'은 독일에서 매우 중요하게 여겨진다.

출처Getty Images

독일에서 노동자들은 11시간 동안 방해받지 않고 '쉴 수 있는 권리'를 법으로 보장받고 있다.

하지만 스마트폰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이 권리도 도전받고 있다.

불은 모두 꺼져 있고, 복도는 텅 빈 프라이부르크 고등연구소.

이 곳에선 컴퓨터 화면 한 대만 빛을 쏟아내고 있었다.

미국에서 온 연구원 크리스틴 고드시였다. 그런데 노크 소리가 들리고 연구소장이 들어왔다.

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서 러시아 및 동유럽학 교수로 일하고 있는 크리스틴 고드시(49)는 "연구소장은 무슨 문제가 생긴 것이지 확인하려고 들어온 것"이라며 그 때를 회상했다. 2014년 안식년 당시 일이었다.

고드시가 "아무 문제도 없다"고 하자, 소장은 시계를 들여다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고 한다.

그 때는 오후 5시30분이었다.

고드시는 "마치 그가 나를 꾸짖는 것 같았다"며 이렇게 말했다.

"흡사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어요. '당신은 지금 독일에 있어요. 집에 가야 할 시간입니다."

업무 시간 이후에도 일하는 것은 미국인에겐 지극히 평범해 보인다. 하지만 독일인에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독일에서는 근무시간 이후에는 업무에서 완전히 벗어난다는 의미를 담은 '파이어아벤트(Feierabend)'가 문화 속에 자리잡고 있다.

정해진 업무 시간 후에는 일에 관심을 끄는 '다운 타임'은 독일에서 매우 중요하게 여겨진다.

그래서 2003년 유럽연합(EU)이 업무 사이 의무 휴게시간을 도입했을 때, 독일인들은 법을 통해 업무와 삶의 균형을 신성불가침한 것으로 만들었다.

EU가 정한 기준에 따르면 모든 노동자들은 24시간마다 11시간씩 방해받지 않고 연속해서 쉴 권리를 갖는다.

예외는 있지만, 독일의 근로시간법은 다른 국가들보다 예외 허용 범위가 더 좁다.

쾰른대 노동및상업법연구소의 데이비드 마크워스는 "독일들은 육체적・정신적 회복을 위해 일과 생활의 분리가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EU 차원에서 시행되는 것을 환영하면서도 예외 상황을 매우 엄격하게 다뤄왔습니다."

병원 근무자, 간병인, 농부, 식음료 서비스 종사자, 수송업 및 방송 미디어 종사자들은 휴식시간을 10시간으로 줄일 수 있다.

CEO들과 자영업자들은 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그 밖의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파이어아벤트'는 현재 법적 필수 사항이다.

'현실에 추월당한 법'

하지만 스마트폰이 정교하게 짜여진 독일의 일-삶 균형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의 주머니 속엔 휴대전화가, 가방 안엔 노트북이 들어 있다.

모든 사람들이 사무실 밖에서도,이동 중에도, 집에서도 업무용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해졌다.

디지털 혁명이 독인인들의 신성한 '다운타임'을 잠식했다.

2015년 한스 보클러 재단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상사가 자신에게 항상 연락이 가능한 상태를 원하고 있다고 답한 근로자는 4분의 1이상이었다.

노동자들의 11시간 휴식 법도 이를 막지는 못했다.

현행 규정상, 이메일을 읽거나 동료로부터 전화를 받는 것조차 업무로 간주된다.

이런 일이 생기면 11시간 휴식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 비현실적으로 들릴 수도 있다.

실제로 법률 전문가들은 이 규정이 대다수 무시되고 있다고 말한다.

루츠 아벨 법률회사의 노동법 전문가인 클라우디아 크누트는 "휴식 기간은 가장 광범위하게 위반되는 규정 중 하나"라고 말했다.

그러나 일과 여가 시간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모바일 기기로 업무용 이메일을 확인하는 것은 일상화된 습관이 됐다.

크누트는 "많은 사람들이 휴식 시간에 지루함을 느껴 업무 관련 이메일을 확인하곤 한다"고 말했다.

"이건 고용주 쪽에서 의도적으로 한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휴식 시간에 생기는 방해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근로자들은 다운타임이 필요해요. 하지만 11시간 연속 휴식은 너무 길어요."

중단 없는 휴식 발상이 '너무 엄격하다'는 부분에 동의하는 근로자도 다수로 보인다.

지난해 독일의 디지털 협회인 비트콤이 조사한 근로자 중 96%는 자신의 삶에 맞게 업무 일정을 정리하고 싶다고 말했다.

비트콤 소속 노동법과 노동의 미래에 대한 전문가 아델 홀담프-웬델은 "현실은 오래전부터 이 법안을 앞지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사람들은 심부름이나 약속, 육아 등을 위해 오후에 휴식하고, 저녁에 업무를 보충하는 선택권을 원한다"고 덧붙였다.

시간대가 다른 지역에 있는 동료나 고객에게 심야에 업무용 전화를 걸고, 다음날 오전 9시에 업무를 시작하려는 이들도 있다.

현행 규정에서는 모두 허용되지 않는다.

독일의 11시간 휴식시간은 원래 공장 노동자들이 교대 시간 사이에 육체적으로 회복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생겼다

출처Getty Images

노동자 보호

그러나 이에 대해 근로자 보호와 관련된 업무를 하는 이들은 우려를 나타냈다.

독일 연방 직업 안전보건연구소(BAUA)는 규정을 완화하면 노동자 학대 가능성이 생긴다고 말했다.

2017년 BAUA의 조사에 따르면 조사 대상 20%는 이미 최소 한 달에 한 번은 11시간 미만의 휴식 시간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소는 이 중 상당수가 불법 초과근무가 의심된다고 설명했다.

BAUA 연구팀의 닐스 백하우스는 "휴식기간 단축은 사람들이 유연성 있게 일해서가 아니라 그렇게 상당 시간 일하고 있기에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휴식 시간이 더 짧아야 한다는 주장은 사람들을 집에서 더 오래 일하게 만들고 싶어할까봐 우려스럽습니다"

게다가, 11시간의 휴식은 노동자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다.

백하우스는 11시간 휴식시간이 공장 노동자들이 교대 시간 사이에 육체적으로 회복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생겼다며 정신적 회복을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는 아무리 지루하더라도 넷플릭스를 보면서 업무용 이메일을 보내지 말라는 의미다.

"사람들은 이메일만 보내는 것은 그리 나쁜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대부분 이메일을 보내면서 업무를 생각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다시 휴식 상태로 돌아오는 게 어려워지죠."

이는 건강에도 안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BAUA 같은 연구에서도 11시간 휴식을 일정하게 누리지 못한 사람들에게서는 불면증, 탈진, 심지어 요통 등의 증상이 더 자주 나타나는 것으로 조사됐다.

법률 전문가인 마크워스는 "현재 직원이 휴식을 방해받아 질병이 생겼다는 것을 입증한다면, 이는 고용주 측의 범죄 행위로 간주된다"고 말했다. 그래서 일부 독일 대기업들은 법의 준수를 위해 과감한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독일 기업 행보

지난 2011년 폭스바겐은 업무용 이메일이 오가는 것을 막기 위해 야간에는 이메일 서버를 끄겠다고 발표했다.

BMW와 보쉬 등 다른 업체들은 퇴근 후 직원들이 서로 연락하는 것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마크워스는 "디지털화, 홈 오피스, 스마트폰의 세상에서 노동자 보호는 필요하다"고 말했다. "문제는 '어떻게 이 변화된 세계 속에서 노동자를 계속 보호해야 하는가'이죠."

언제든 업무를 할 수 있는 것이 전세계 노동자들의 규범이 되어가는 가운데, 디지털 시대에서 자신의 휴식시간을 되찾으려는 독일의 노력은 큰 주목을 받고 있다.

미국으로 돌아와 끔찍한 충격을 받은 고드시 역시 그중 한 명일 것이다.

고드시는 "파이어아벤트 문화는 정말로 건강하다"고 말했다.

"5시에 퇴근하고 주말에 업무용 이메일을 절대 주고받지 않는 게 얼마나 상쾌한 일인가요? 하지만 미국에서 그렇게 하면 비양심적이라 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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