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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 News | 코리아

톰과 제리: 80주년을 맞은 고양이와 쥐의 티격태격

'재스퍼와 징크스'가 '톰과 제리'가 되고, 냉전 속에서 겪은 일들에 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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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ill from 'The Bowling Alley' cat shows Tom lunging at Jerry

출처Alamy

만화 속 고양이는 집에 사는 쥐 한 마리가 짜증스럽다. 그래서 덫 위에 치즈를 놓아 쥐를 끄집어낼 궁리를 한다. 하지만 현명한 쥐가 이 계획에 당할 리 없다. 안전하게 치즈만 쏙 빼내 먹은 뒤, 부를 배를 두드리며 거드름을 피운다.

이 다음 장면을 떠올리기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이 이야기는 거의 매번 고양이의 계획이 역효과로 이어지고, 고양이가 고통 속에서 비명을 지르며 끝이 난다.

이 구성은 친숙하지만, 그 뒤에 있는 이야기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아카데미상 수상과 냉전 당시 '철의 장막' 뒤에서 비밀스럽게 제작된 이야기 등, 이번 주 탄생 80주년을 맞는 '톰과 제리'가 세계에서 가장 잘 알려진 콤비가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Short presentational grey line

출처BBC

이 듀오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태어났다. 이들을 만든 빌 해나와 조 바베라가 일하던 MGM의 애니메이션 부서는 '포키 피그'나 '미키마우스'와 같은 캐릭터들을 히트시킨 다른 스튜디오들을 모방하려 힘겹게 노력하고 있었다.

모방작을 만드느라 하루하루가 권태롭던 그때, 30살도 안 된 두 사람은 스스로 아이디어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바베라는 고양이와 쥐가 만화 속에서 갈등하며 쫓고 쫓기는 단순한 구도를 좋아했다. 이전에 수없이 많이 했던 시도이지만, 이러한 구도가 좋았다.

'고양이 쫓겨나다(Puss gets the Boot)'는 1940년에 처음 개봉했다. 개봉 당시부터 흥행하며,아카데미 단편 애니메이션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의 노력에도, 애니메이터들의 이름은 작품에 표시되지 않았다.

제작자들은 처음에는 그들에게 이 한 작품에만 매달리지 말라고 말했다. 하지만 텍사스에 있는 한 산업계의 영향력 있는 인사로부터 언제쯤 또 "멋진 고양이와 쥐"를 만나게 될 수 있는지 묻는 편지를 받자, 마음이 달라졌다.

이후 '재스퍼와 징크스'로 알려졌던, 이 만화는 '톰과 제리'가 됐다.

톰과 제리는 슬랩스틱 만화 특성상 어른 팬이 많다

출처LMPC via Getty Images

바베라에 따르면, 등장인물들이 말을 하지 않는 것에 대한 실질적인 논의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찰리 채플린이 나오는 무성 영화와 함께 자란 세대로서, 창작자들은 대화가 없어도 재미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스콧 브래들리가 작곡한 음악은 그 액션을 강조했고, 톰의 상표인 인간다운 비명은 한나 자신이 맡았다.

이후 20여 년 동안 해나와 바베라는 100편 이상의 톰과 제리 시리즈 단편 제작을 이끌었다. 각 작품은 만드는 데 몇 주가 걸렸고 제작에 최대 5만 달러가 들었다. 그래서 매년 소수 작품만 만들어졌다.

이러한 톰과 제리는 최고라는 평가를 받으며, 손으로 그린 애니메이션과 상세한 배경들로 7개의 아카데미상과 카메오 상을 수상했다.

산업 전반에 걸쳐 꾸준히 활동해온 만화 역사가 제리 벡은 "만약 어린 시절, 이 만화를 보았을 때나 지금 이 만화를 본다 하더라도, 언제 이 만화가 만들어졌는지 알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애니메이션에는 뭔가가 있습니다. 상록수라 할 수 있죠. 전혀 바래지 않습니다."

"회화 작품을 보는 것과 같아요. 작품 속 인물이 1800년대나 1700년대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죠. 그런데 그게 중요하지 않아요. 오늘날에도 보는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주거든요."

"이 만화들이 그래요. 이 만화가 정말 훌륭한 예술이라는 것을 알 수 있죠. 일회용으로 버려지는 오락물이 아닙니다."

1945년 나온 뮤지컬 영화 '닻을 올리고'에 진 켈리와 등장한 제리

출처Alamy

톰과 제리는 에스더 윌리엄슨과 함께 1953년에 나온 '젖었을 때 위험'에도 출연했다

출처Getty Images

1950년대 중반 프로듀서 프레드 킴비가 은퇴했다. 예산 삭감의 분위기 속에서 해나와 바베라가 MGM 만화부서를 맡게 됐다. 텔레비전의 인기가 커지는 것에 위협을 느낀 스튜디오의 사장들은 옛날 단편을 텔레비전에서 재개봉하는 것이 새 작품 제작하는 것 만큼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1957년 그들이 일하던 부서가 문을 닫자, 해나와 바베라는 자신들의 회사를 세웠다.

그러나 몇 년도 안 돼, MGM은 원작자 없이 톰과 제리를 되살리기로 했다. 1961년 그들은 비용을 절약하려고, 프라하에 있는 스튜디오에 외주를 줬다. 시카고 태생의 애니메이터 진 데이치가 리메이크작 감독을 맡았지만, 원작에 대한 지식이 없는 스텝과 빠듯한 예산에 고전했다.

그의 스튜디오는 뽀빠이를 포함해 다른 만화 에피소드도 비밀리에 만들었다. 크레딧 상에는 체코식 이름이 미국식으로 올라갔다. 보는 사람들이 이 작품을 공산주의와 결부시키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훗날 데이치는 "철의 장막 때문에 이곳 프라하의 스튜디오에 있는 애니메이터들은 톰과 제리 만화를 본 적이 없었다"고 라디오.cz.(radio.cz.)에 말했다.

그는 톰과 제리라는 옛 작품을 처음으로 리메이크하면서, 원작의 팬들로부터 자신이 "사선'에 서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가 참여한 13 작품에는 모두 최악이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데이치는 인터뷰에서 작품이 나쁜 평가를 받았음을 솔직하게 인정했고, 자신이 목숨의 위협도 받은 적이 있다고 밝혔다.

그후 그의 임무는 척 존스에게 돌아갔다. 워너 브라더스에서 루니 툰으로 이름을 알린 감독이다. 그의 휘하에서 톰의 눈썹은 짙어지고 얼굴은 더욱 일그러졌다. 그러다 보니 존스가 만든 그린치의 닥터 수스 캐릭터에 더욱 가까워졌다.

1963부터 1967까지 척 존스가 '톰과 제리' 시리즈를 이끌었다

출처Alamy

72세의 마크 카우슬러는 톰과 제리가 성장한 것에 대한 따뜻한 기억이 있는 이들 중 한 명이다. 그는 아버지와 함께 톰과 제리 단편들을 보러 수차례 세인트루이스에 있는 동네 극장을 드나들었다. 그리고는 등장인물들에게 영감을 받아 자신만의 만화를 만들기 시작했고, 이후 폭넓은 애니메이션 경력을 쌓았다.

그는 "이 만화의 많은 부분은 작품 안에 존재하는 시선 처리 방식과 타이밍, 음악 등 모든 것들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모든 것들이 서로 연결되는 멋진 공식이 있습니다. 다른 제작진이나 디자이너, 희극 요소들과 함께 이 작품을 분해하고 재조립하려 했을 때, 나는 그게 진짜 같지 않았어요."

72세의 마크 카우슬러는 톰과 제리가 성장한 것에 대한 따뜻한 기억이 있는 이들 중 한 명이다

출처Mark Kausler

그가 톰과 제리 작품 제작에 참여하기에는 업계에 들어온 시점이 조금 늦었다. 하지만 그는 해나와 바베라가 자신의 애니메이션 학교에 등장했던 "기념비적인" 순간을 기억하고 있다.

MGM에 있을 때는 텔레비전이 "나쁜 단어"로 생각됐지만, 독립 후 해나와 바베라는 텔레비전으로 발을 돌렸다. 더 긴 에피소드와 적은 예산으로, 그들은 자신의 애니메이션 스타일을 수정하고 시간과 돈을 절약할 수 있는 수법을 사용했다.

그들의 만화는 수십 년 동안 어린이 텔레비전을 지배했다. 1960년대 초 그들은 허클베리 하운드, 요기 베어 같은 캐릭터들로 성공을 거두었고, 곧이어 플린스톤, 탑캣, 스쿠비 두 등의 잇따른 히트작을 내놓았다.

두 사람은 1970년대 톰과 제리로 돌아왔다. 그 무렵 방송국에서 발행한 새로운 가이드라인으로 보면, 초기에 제작된 에피소드들은 "너무 폭력적"이었다. 두 사람이 참여한 새로운 에피소드는 원작의 성공에 부응하지 못했다.

빌 해나와 조 바베라는 100편 이상의 톰과 제리 단편 제작을 이끌었다

출처Bettmann via Getty

당대의 다른 만화들처럼, 톰과 제리도 인종과 관련된 묘사 때문에 오랜 비판에 시달렸다. 특히 허리 아래쪽만 주로 등장하는 과장된 남부 억양의 흑인 가정부인 "매미 투 슈즈"의 캐릭터는 특정 인종을 모욕적으로 그렸다고 낙인찍혔다. 이 시리즈의 일부분에는 아시아인과 아메리카 원주민에 대해 검은 얼굴 및 경멸적인 묘사를 사용한 농담도 들어 있다.

1960년대 미국 TV에서 원작이 방송되었을 때, "매미"가 등장하는 일부 장면은 존스의 팀이 추가한 새로운 캐릭터로 대체됐다. 오늘날 이 최악의 에피소드는 리릴리즈 컬렉션과 스트리밍 플랫폼에서 삭제되었다. 2014년에는 아마존 프라임 인스턴트 비디오가 해당 시리즈에 '인종적 편견'에 대한 경고를 추가하면서 관심이 쏠리기도 했다.

슬랩스틱과 다크 코미디를 보여주는 톰과 제리는 오늘날에도 전 세계적으로 매우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일본에서 파키스탄에 이르는 모든 곳의 어린이 TV에서 볼 수 있으며, 이들이 나오는 중국의 휴대전화 게임은 이용자 수가 1억 명에 달한다.

놀랍게도 톰과 제리가 뉴스 헤드라인에 등장한 적도 있다. 2016년, 이집트의 한 고위 관리는 중동에서 폭력 사태가 증가하고 있는 것을 이 만화의 탓으로 돌리려 했다. 이란의 최고 지도자는 그들의 미국 관계를 적어도 두 번 톰과 제리와 비교하기도 했다.

'톰과 제리'는 인도에서 아직까지 큰 인기를 끌고있다

출처India Today via Getty Images

2014년 이라크 도미즈 난민 캠프에 등장한 '톰과 제리' 벽화

출처Getty Images

BBC에서도 톰과 제리는 수십 년 동안 정기적으로 방영됐다. 이 작품은 특히 영국에서 호평을 받았고, 영국 성인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 있는 만화를 꼽는 2015년 여론조사에서 톰과 제리가 뽑히기도 했다.

작품이 처음 나온 이후 80년 동안 톰과 제리는 아이들 버전뿐만 아니라 1992년의 뮤지컬 영화 등 모든 형태로 만들어졌다.

빌 해나는 2001년에 사망했고 조 바베라는 2006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가 죽기 1년 전, 바베라는 톰과 제리 단편에 마지막으로 이름을 올렸는데, 해나 없이 홀로 이름이 올라간 것은 이게 처음이었다.

그는 "우리는 서로 완벽하게 이해했고, 각자 상대방의 일에 대해 깊은 존경심을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1992년 공개된 영화판 '톰과 제리'는 흥행에 실패했다

출처Alamy

2014년 이후 '톰과 제리'는 손으로 그리지 않고 컴퓨터로 작업하고 있다

출처Warner Bros Animation

현재 톰과 제리의 권리를 소유하고 있는 워너 브라더스는 올해 크리스마스 직전에 새로운 실사 영화를 개봉할 예정이다. 클로이 그레이스 모레츠와 켄 정 등 배우들과 계약을 맺었다는 것 외에는 이 프로젝트에 대해 공개된 것이 별로 없다.

제리 백에게 있어 톰과 제리의 지속적인 매력 포인트 중 하나는 등장인물의 보편적 상대성이다. 그는 "나는 대부분의 사람이 어린 제리와 동일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우리의 삶에는 항상 압제자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회사의 상사, 지주, 정치 등 우리에게는 항상 누군가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저 우리의 삶을 살아가려 할 뿐인데, 그것을 방해하려 하는 누구가 있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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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 News |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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