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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 News | 코리아

성매매 여성들의 2020년 새해 소망

성매매 경험 여성 세 명을 만나 그들의 새해 소망을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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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여성인권센터에서 만난 빛광

출처BBC

"저희는 여자들 중에서도 가장 취약한 계층이잖아요. 제가 나중에 아무리 성공을 하고 회사원이 된다 해도 미투 못 할 거 같아요. 옛날에 술집 여자였던 게 밝혀지는 순간 '네가 조신하지 못한 게 뭘 했겠지', 하겠죠."

2019년의 마지막 일요일 성매매 경험 여성의 자활을 돕는 전남의 여성인권센터를 방문했다.

김치가게 앞에서 여성들은 차가운 비를 맞고 있었다.

분홍색 잠바를 입은 가녀린 빛광(가명)은 23살인데 36kg이라고 했다. 아직 젖살이 빠지지 않은 듯 21살 한나(가명)의 볼은 유독 통통했다. 36살 영이(가명)는 세 아이의 엄마다.

세 명 모두 10대에 성매매를 경험하고, 지금은 자활을 위해 힘쓰고 있다.

Short presentational grey line

출처BBC

빛광의 이야기: 룸살롱,노래주점, 보도방

빛광의 친엄마는 다방 일을 했다. 새엄마는 친엄마가 몸 팔던 여자이니 빛광도 친엄마 팔자를 닮을 거라 했다. 폭력적인 아버지와 새엄마를 피해 빛광은 14살에 처음 집을 나왔다.

가출 중에 빛광은 택시기사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택시기사는 빛광이 울부짖어도 침묵했다. 그에게 10만 원을 받은 빛광은, 돈을 받았으니 자신도 죄를 진 거라 생각했다.

친엄마는 빛광이 "그렇게 싸돌아다니니 그런 일을 당한 거"라고 말했다.

아는 오빠가 빛광에게 연락을 했다. 돈을 많이 버는 일자리라고, 필요한 만큼 가불도 해주고 방도 잡아주겠다고 했다. 빛광은 뭔지도 모르고 선불금을 받았다.

그렇게 룸살롱에 들어가게 됐다.

나이 어린 빛광은 하룻밤에 3~4명을 받았다. 업주는 미성년인 빛광 때문에 자신이 위험을 부담한다며 1시간에 9만 원 주는 테이블비를 그에게는 3만 원만 줬다.

2차를 나가면 언니들은 23만 원을 받았고 빛광은 15만 원을 받았다.

"가장 위선적인 게 뭔지 아세요?"

"손님들이 너 이러는 거 안타깝다, 이렇게 살면 안 된다 그러면서 꼭 2차를 가요. 내 딸 같다고 한 손님하고 2차를 안 가본 적이 없어요. 불쌍하다, 속이 상한다 그러면서 괴롭힐 거 자기 원하는 거 다 하고. 꼭 물어봐요, 이렇게 젊고 예쁜데 왜 이런 데서 일하냐고."

영이의 이야기: 집결지, 노래주점, 다방

영이도 알코올중독 아버지의 폭력을 피해 가출했다. 열다섯, 그는 구미의 가방공장에서 일을 시작했다.

어느 날 사장 아들이 음료를 가져오라 했다. 그날 영이는 사장 아들에게 강간을 당했다. 영이는 '이런 게 밥값인가, 여기서 지내려면 이런 걸 해야 하는가' 생각했다. 하지만 견딜 수 없어 서울로 도망쳤다.

먹여주고 재워준다는 곳을 발견해 전화하자 위치를 묻더니 영이를 직접 데리러 왔다.

화장을 시키더니 하얀 드레스를 입혔다. 앉아만 있으면 된다고 했다. 미아리 집결지였다.

그곳엔 이상한 계산법이 있었다. 최소 한 달에 500~1000만원은 벌었다고 장부에 쓰여 있는데 3년을 일한 후 영이의 손에 남겨진 건 빚 300만 원이었다. 영이는 어느 날 경찰의 미성년자 단속이 뜬 틈을 타 도망쳤다.

18살 영이는 여수로 내려와 노래주점에서 일했다. 다방에서 일하던 친구가 사람은 밤낮이 뒤바뀌면 안 되는 거라고 설득했다.

영이는 그때 낮에도 일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고 한다.

그는 "다방에서 일을 시작했는데 너무 좋은 거야. 아침에 일어나고 밤에 자니까. 근데 빚을 갚으려면 2차를 나가야 했다"고 고백했다.

그때 한 남자를 알게 됐다. 다른 다방에서 '카맨'을 일하던 남성이었다. 영이는 그와 임신을 했고 시어머니가 그의 다방 빚 150만 원을 갚아줬다. 22살 때였다.

한나의 이야기: 조건만남, 오피스텔, 보도방

중학교 3학년, 한나는 친구들과 놀기 위해 돈이 필요했다. 어느 날 한나의 선배는 '오빠들과 만나서 놀다 오면 돈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선배는 핸드폰으로 앱도 깔아주고 채팅도 직접 해줬다.

그 선배는 한나를 모텔로 데려가지 않고 밤중에 차에서만 '일'하도록 했다. 채팅을 통해 남성을 소개해 주는 대신 5만 원은 그가 챙기고 10만 원은 한나가 가져가는 식이었다.

남자들은 한나가 '어려서 좋다'고 했다. '언제 중학생을 만나 보겠느냐'며 교복을 입고 나오면 10만 원을 더 줬다. 하지만 목을 조르고 때리는 사람도 있었다.

한나는 3개월 동안 200여 명을 만났다. 조건만남을 한다는 소문이 친구들 사이에 퍼졌다.

남자친구와 친구들에게 집단으로 두들겨 맞은 날 새벽, 길거리에 혼자 있던 한나에게 동네 오빠가 말을 걸었다.

동네 오빠는 그의 상처에 약을 발라주며 걱정해줬다. 잘 곳이 없다고 하자 오빠는 자기 집으로 데려가 한나에게 밥을 사주고 영화를 보여주며 함께 있어 주었다. 따뜻했다. 그런데 정확히 3일 후 그는 한나에게 '이제부터 일을 해야 한다'고 했다.

동네 오빠의 일행은 원룸 오피스텔 몇 층을 임대해 방마다 여자들을 감금하고 영업을 하고 있었다. 한나도 핸드폰을 뺏기고 오피스텔에 감금됐다. 층마다 사람들이 지키고 있었고 CCTV가 돌아갔다. 하루는 한나가 진통제 40알을 털어 넣고 눈을 뜨니 병원이었다. 병원에서 나오자마자 위세척에 돈이 많이 들어갔다며 맞았다.

"기계가 된 것 같았다. 남자들과 관계를 하려고 태어난 기계"

출처한나/전남여성인권센터

두 달 만에 한나에게 기회가 왔다.

그는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신발도 못 신고 도망쳐 나왔다"며 "오랜만에 다시 본 세상이 너무나 반가웠다"고 회상했다.

자활센터에 가다

대구위기청소년교육센터가 2018년 조건만남 청소년 (10세~19세) 201명을 조사한 결과 가출은 성매매 피해자가 되는 가장 큰 요인(76.1%)이었다.

가출 첫날 성매매 피해자가 된 비율이 24%, 일주일 이내는 55%였다. 빛광, 한나, 영이 모두 가정폭력을 피해 가출을 했고, 10대에 강간을 당했다.

한나는 "저희한테 자활센터는 친정 같은 곳이에요. 못살겠으면 찾아오고, 나갔다가 죽을 만큼 힘들면 또 돌아오고"라고 말했다.

한나는 16살에 처음 전남여성인권센터에 왔다. 빛광은 센터의 도움으로 성병을 치료했다. 영이는 3년 전 센터의 북카페에서 일하며 자활을 시작했다.

영이는 " 미아리에서 여자는 남자들 상대로 이렇게 돈을 벌어야 하는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근데 (자활)센터에서 처음 커피숍에서 일하고 김치도 만들고 식당에서 일도 해보면서 아, 여자가 다른 일을 할 수도 있구나"라고 처음 깨닫알았고 말했다.

"그때 세상에 눈을 뜬 거야."

김선관 대표가 운영하는 한식당에서 5명의 자활 여성이 일한다

출처BBC

사단법인 전남여성인권센터는 김치사업장, 북카페와 한식당을 운영한다.

이곳에서 성매매 경험 여성들은 월 150시간씩 일하고 97만 원의 생계지원비를 받을 수 있다. 단, 최대 4년 동안만 지원이 가능하다.

전남여성인권센터 김선관 대표는 지난 15년간 전남 지역에서 2만여 명의 성매매 경험 여성들을 만나왔다.

현재 여수지역 성매매 관련 업소에서 일하는 여성은 2000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매년 80여 명의 성매매 경험 여성들이 김 대표의 쉼터와 자활지원센터를 이용한다.

김 대표는 "내가 16번까지 데리러 가본 애도 있어요. 손목 긋고 전화해, 대표님, 살려주세요. 데려다 놓으면 도망치고 또 죽겠다고 전화하고"라며 허탈하게 웃었다.

빛광은 "김 대표님 제일 속 썩인 일은 자해죠. 목, 허벅지, 종아리, 손목. 자해를 하고 나면 내가 나를 혼냈다, 라는 생각이 드니까 마음이 가라앉기는 해요. 못된 짓을 내가 했으니까, 내가 나를 혼내는 거에요. 사회적 인식도 그렇고 나쁜 짓이란 걸 나도 아니까. 근데 자해하고 나면 또 더 죄송하고 그러니까 더 혼내야 되고. 자아가 막 분열돼요"라고 고백했다.

빛광의 하얀 손목에는 자해 흔적이 선명하다.

자해 흔적이 있는 빛광의 손목

출처BBC

자해 시도가 잦아져 정신병동에 입원하기도 했다.

"별로 도움은 안 되었어요. 진짜 미친 사람들 옆에 있으니 내가 더 미치겠더라고. 눈이 많이 오는 날 병동에 들어가기 싫어서 벤치에 앉아있는데 새하얀 눈 위에 내 발자국이 남았더라고요. 계속 보고 있었더니 눈이 쌓여서 내 발자국을 하얗게 지워요. 아, 내 인생도 하얗게 다시 깨끗해질 수 있을까… 있겠구나 싶었어요."

김 대표는 성매매 경험 여성들의 자활이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아이들이 힘들 때 조금만 붙잡아주면 집결지까지 안 갈 수 있는데 그 시절에 센터를 들락날락 4년, 5년을 어떻게 견디면 다시 공부도 하고 시집도 가고 괜찮게 살아요. 4년, 5년 우리랑 견디는 아이들은 그래도 성공한다고 봐요."

세상의 시선과 의심

여성가족부는 지난 4년간 6만여 명의 성매매 피해자를 상담하고 900여 명의 자활을 지원했다. 빛광, 한나, 영이도 포함됐다.

그러나 성매매 여성에 대한 지원을 곱지 않게 보는 시선도 있다. 이들의 자활지원금을 반대한다는 청와대 국민청원 글은 1만5000여 명의 동의를 얻었다.

대구시가 지난 2017년 광역자치단체 최초로 자활을 약속한 성매매 피해여성에게 10개월 동안 최대 2000만 원을 지원했을 때도 혈세를 낭비한다는 비판이 있었다.

성매매 피해여성 자활 지원을 반대하는 댓글

출처네이버/다음

빛광은 최근 불거진 연예인의 술집종업원 강간사건 보도를 봐도, 한국 사회에서 성매매 경험 여성들에 대한 인식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빛광은 "욕은 여자가 먹고 있어요. 그 여자 거기서 강간당하는 거 허락하지 않았잖아요. 테이블에 앉는 순간 우리는 인권이 없어요. 짖으라면 짖고 핥으라면 핥고"라고 말했다.

성매매 특별법

한국은 2004년부터 성매매특별법을 시행하고 있다.

특히 성매매를 강요당한 피해자를 처벌하지 않는다는 규정을 만들며, 성매매 피해자를 4가지로 규정했다: 인신매매를 당했거나, 미성년자 혹은 장애인이거나, 약물에 의한 성매매 혹은 위계, 위력으로 성매매를 강요당한 사람.

그러나 전남여성인권센터 김 대표는 현장에서 자발적 성매매 여성과 성매매 피해자를 구분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의미가 없다고 강조한다.

김 대표는 성매매업에 처음 유입된 이들 대부분 자기결정권이 없는 미성년자이고, 성인이 되어 자발적으로 유입된 여성이라도 업소에서 일을 시작하면 결근비, 지각비, 마담비, 성형수술 투자비 등의 명목으로 빚의 올가미가 그들을 덮친다고 지적했다.

실제 여성가족부의 '2016 성매매 실태조사'에 따르면 성매매 여성 5명 중 1명은 10대(21.8%)에 유입됐다. 한국 형사정책연구원이 발표한 성매매 단속률은 4~5%로, 1000명의 여성이 성매매를 하고 있다면 200명은 미성년이고 그중 10명만 구조되는 상황이다. 190명은 교육과 자활, 재사회화의 기회를 놓치고 20대, 30대, 40대에도 성매매 여성으로 남는다.

전남여성인권센터 김 대표는 새해 소망으로 "4년까지 자활을 끝낸 여성들을 고용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일자리를 만들고 싶다"고 밝혔다.

그는 이를 위해 여수 바다에 쌓여있는 그물과 현수막을 업사이클해서 건축자재로 만드는 특허기술을 전수받기로 했다.

김 대표는 자신도 "가난한 집에 태어나 동생 다섯을 돌보며 컸다"며 "우리 집이 도시에 있었으면 나도 성매매에 유입되었을 거예요"라고 말했다.

또 "가난한 집안에 태어난 딸들에게 우리 사회가 줄 기회가 여전히 너무 한정적"이라고 밝혔다.

그는 성매매 경험 여성들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건 "포기하지 말고 희망을 가지라는 메시지를 주는 사람"이라며, 때론 "그게 나라서 스스로에게 고맙다"라고 말했다.

새해 소망은 취직과 넘어지지 않기

한나는 방송통신대에서 청소년 교육학을 공부하고 있다. 상담사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한다.

그는 "새해 목표는 또 한 학기 잘 마치기 그리고 넘어지지 않기에요"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이미 한번 넘어졌다'고 고백했다.

지난 7월 한나는 다시 보도방에서 일을 했다.

빛광도 급한 생계비를 노래주점에서 일하며 보충하고 있었다.

"150시간 자활지원센터에서 만근 채워도 적금 때고 한 달에 70만 원을 받아요. 근데 보도방에 가면 솔직히 이틀 만에 70만 원 벌어요. 한 달 일할 거를 14시간이면 버니까."

빛광과 한나는 안정적인 직업만 있으면 성매매를 다시 안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 한나는 "센터에서 일하면 성매매피해여성 참여자 이렇게 뜨니까 남한테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도 없다"고 밝혔다.

그는 한 달에 "180만 원만 벌 수 있으면" 성매매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빛광은 "난 180도 안 바래. 150이면 정상적으로 살 수 있을 거 같아요. 150이 뭐라고"라고 덧붙였다.

영이는 하루에 6시간씩 김밥을 말고 한 달 150만 원을 번다. 그의 새해 소망은 빚을 갚는 것이다.

아이 셋을 키우자니 빚은 더 늘었다. 하지만 빛광이나 한나처럼 보도나 노래주점에서 알바를 할 생각은 없다고 한다.

영이는 이제 자신은 "한 남자의 아내고 아이들의 엄마"란 사실을 늘 상기하고 있다고 한다.

2020년 새해 빛광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건강을 회복하고 좀 쉬었으면. "책을 쓰고 있긴 한데 잘 썼으면 좋겠어요. 굳이 가보지 말아야 할 길을, 안 가도 될 길을 어린 친구들이 걷게 하고 싶지 않아요."

빛광의 글은 이렇게 시작한다.

'징검다리를 건넌 그녀들의 마법그림책'에 삽입된 빛광의 그림

출처빛광/전남여성인권센터

"내 최초의 기억은 아침에 친엄마가 언니에게 심부름을 시켜 사온 초코우유를 내 팬티 속에 넣으면 '앗 차가워' 하며 일어나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때는 행복이 주는 따스함이 무엇이었는지 스스로 자각하고 있었다고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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