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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 News | 코리아

'어머니'를 '오마니'로?... 최초 한글 성경은 평안도어

백여 년 전 한글로 번역된 첫 신약성서가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도서관에서 발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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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7년 발간된 최초의 한글 합본 신약성서 '예수셩교젼서'가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도서관에서 발견됐다.

이 성서는 스코틀랜드 출신 선교사 존 로스(John Ross, 1942-1915)가 1887년 3월 발행했다.

존 로스는 1870년대 중반 평안도 출신 청년들을 고용해 한글 번역을 주도했다.

번역가들이 평안도 의주 청년들이 중심이었던 영향으로 번역본 곳곳엔 북한식 사투리가 남아있다.

BBC 코리아는 케임브리지 대학을 방문해 해당 번역본을 직접 확인했다.

1887년 3월 스코틀랜드 출신 존 로스는 최초의 한글 합본 신약성서인 '예수셩교젼서'를 발행하는데 성공한다. 의주 출신 이응찬의 영향으로 해당 합본엔 평안도식 사투리가 베어있다

출처BBC

파란 눈의 선교사 눈에 들어온 의주 청년 이응찬

로스는 1872년 중국 만주에서 선교를 시작했으며, 그의 관심은 곧 중국을 넘어 한반도로 이어졌다.

1876년 그는 '한국인에게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서는 한글 성경이 필요하다'며 평안도 의주 출신 이응찬을 어학 선생으로 고용했다.

이응찬은 청년 장사꾼이었다. 압록강을 건너다 배가 전복돼 장사 물품을 모두 잃은 상황이었다.

이응찬과 함께 로스가 고용한 번역가들은 모두 평안도 출신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한남대학교 전무용 교수의 논문 '초기 로스 번역 요한복음의 표기법의 차이와 번역 수정 과정 고찰(2008)'은 '당시 의주 출신 번역가들은 자신들이 사용하는 사투리로 성경을 번역했고 존 로스의 성경 본문에도 평안도 사투리가 배어있는 것을 볼 수 있다'고 서술하고 있다.

실제 로스의 번역본에 남아있는 대표적인 평안도식 표현들은 '오맘·오마니(어머니)' '디키면(지키면)' '정딕케(정직케)' '공경티(공경하지)' '나아오디(나아가지)' '맛당티(합당하지)' '세샹을 이갓티(세상을 이같이) 등이다.

존 로스와 이응찬은 1882년 누가복음 낱권 성서 번역을 시작으로 한국어 신약성서 합본 출판에 성공했다

출처BBC

당시 평안도 사람들에게 로스의 번역본은 가장 설득력 있는 성경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이는 동시에 다른 지역에 복음을 전파하는 데는 큰 약점이었다.

이에 미국인 선교사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등은 1890년 서울에서 수정본을 만들기 시작했고, 이후 한국어 성경은 표준어로 다시 출판됐다.

로스의 신약성서 번역본은 여러 가지 관점에서 '완벽한 번역이 아니었다'는 지적도 받았다.

그러나 한글로 번역된 첫 신약성서라는 점에선 분명히 한국 개신교 역사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평가가 나온다.

존 로스와 최초의 영어판 한국어 교본

로스는 기독교 서적 외에도 한국어 문법과 역사책을 남긴 것으로도 잘 알려졌다.

1877년 로스는 한국어 문법 및 단어집 '조선어 첫걸음(Corean Primer)'를 출간했다.

이는 영어로 기록된 최초의 어학 교재였다. 한국과 접촉해야 하는 외국인, 특히 선교사들을 위해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한국 기독교계는 이 교재가 많은 선교사들이 한국어를 배우는 데 큰 도움을 줬다고 평가한다.

평안도 의주 출신 이응찬의 영향으로 '조선어 첫걸음'에서도 평안도 사투리인 '편지 한댱 써주시' '주갓슴마' '하고자 한디' 등의 표현을 볼 수 있다.

로스는 문법책을 통해 띄어쓰기와 가로쓰기를 처음 소개했다

출처BBC

1879년 로스는 최초의 영어판 한국어 역사서인 '한국의 역사 (A history of Corea)'도 펴냈다.

이 역시 외국인 선교사를 위한 책으로 로스는 선교사들이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선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한국의 역사'는 서양 언어로 기록된 최초의 한국 역사책이기도 하다. 서양에선 한동안 한국사 교과서로 활용되기도 했다.

로스의 '한국의 역사'는 한국사 및 당시 한국의 생활상을 자세히 기록했다

출처BBC

스코틀랜드 양봉업자의 아들, 만주로 가다

로스는 스코틀랜드 북부의 닉(Nigg)이라는 지방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태어난 곳의 지방어인 갈릭어(Garelic Language)와 영어를 동시에 사용했다.

이런 배경은 이후 로스가 만주에서 중국어와 한국어를 배우는 데 도움이 됐을 것이라고 역사학자들은 추측한다.

1865년 20대 초반이었던 존 로스는 에든버러의 한 신학교에 입학했다. 1872년 해외 선교를 결심한 그는 중국 만주로 향했다.

한신대학교 최성일 교수의 논문 '로스역본이 한국교회에 끼친 영향 (2013)'엔 '당시 만주에는 아일랜드 출신 의료선교사 1명을 제외하고는 외국인 선교사가 없던 상황이라 중국 선교의 도움이 되기 원했던 존 로스가 이곳을 선교지로 택했다'고 서술돼 있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도서관에는 세계 각국의 희귀 성서가 보관돼 있다

출처BBC

만주의 겨울은 혹독했다. 한겨울 최저기온은 영하 40도에 육박했고 그나마 추위가 조금 풀려야 영하 20도를 맴돌았다.

이전에 겪어보지 못한 추위에 로스의 부인은 건강을 잃었고 결국 첫아들을 낳다 세상을 떠났다.

로스는 아내를 잃은 슬픔을 견디기 위해 중국어 공부에 매진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이후 중국어로 복음을 전파하는 수준의 실력을 갖추게 된다.

로스는 기독교 서적 외에도 '만주의 역사(1880)' '중국어 교본(1876)' '중국의 전통종교(1909)' '중국인의 기원(1916)' 등 여러 저작물을 남겼다.

케임브리지 대학 도서관에는 한중일 초대 성경본이 모두 보관돼 있다

출처BBC

'희귀 서적 보물 창고'인 케임브리지대 도서관

현재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도서관에는 2000여 개의 언어로 해석된 희귀 성서 및 문헌 4만 4000여 권이 보관돼 있다.

성서 담당 사서 오네시머스 느군드는 BBC 코리아와의 인터뷰에서 "2천여 개의 언어 중엔 이제는 사라진 언어가 대다수"라고 밝혔다.

그는 "동물 가죽으로 만든 성경 겉표지 역시 희귀 소장품 중 하나"라며 보여줬다.

느군드가 1830~1835년 아프리카 마다가스카에서 번역된 동물 가죽 성서를 들고 있다

출처BBC

케임브리지 대학 성서 컬렉션의 역사는 198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어 및 일본어 담당 사서 크리스틴 윌리엄스는 "성서들의 원 소장처인 영국 바이블 소사이어티가 1980년대 심각한 재정난을 겪으면서 케임브리지 대학이 해당 재단의 성서를 보관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케임브리지 대학 도서관은 소장하고 있는 초대 한국어 성경을 온라인으로 열람할 수 있게 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라며 "이르면 올해 안에 마무리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1882년 존 로스의 첫 신약번역서 중 누가복음서를 온라인에서 볼 수 있다.

크리스틴 윌리엄스가 도서관에 비치된 한국어 서적을 소개하고 있다

출처BBC

케임브리지 대학 도서관은 1960년대부터 한국어 서적을 모으기 시작해 현재는 1890년대 서적을 비롯한 다양한 한국어 서적 8천여 점을 소장하고 있다.

1980년대 북한에서 출간된 서적들도 여럿 꽂혀 있다. 로스의 한국어 초대 성경은 사전 예약 후 열람할 수 있다.

문의: bslib@lib.cam.ac.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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