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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 News | 코리아

체육계 미투, '선수 부모들도 침묵하고 있다'

바로 체육계 성적 지상주의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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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미투 1호로 불리는 테니스 김은희 전 선수

출처BBC

2016년 테니스 지도자 준비를 하던 김은희(28) 씨는 한 테니스장에서 악몽 같은 순간을 맞닥뜨렸다.

초등학생 시절 자신을 수십차례 성폭행한 코치를 만난 것이다.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피해자로 살아왔지만, 그 순간 도망간 것은 바로 자신이었다.

그는 그 이후 3일간의 기억이 없을 정도로 공포와 눈물의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결국 그는 같은 해 10월 가해자인 전 코치를 고소했고, 그는 징역 10년 형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김 씨는 자신의 얼굴과 실명을 드러내며 피해 사실을 알렸다. 용기가 필요했다. 어린 후배들에게 자신이 받은 상처를 대물림 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상대적으로 '미투'가 공론화되지 않았던 체육계에서는 첫 사례로 꼽힌다.

그러나 그는 최근 쇼트트랙의 심석희 선수의 폭로가 나오자 막상 다시 나서기를 주저했다. "용기 내 소리를 냈지만 결국 제자리인데 소용이 있을까" 싶었다고 했다.

'체육계 미투 1호'로 불리는 김은희 선수에게 미투 이후의 삶에 대해 물었다.

'그걸 왜 고소해?'

김은희 씨가 고소를 준비하면서 가장 큰 상처를 받았던 말은 '왜 이제 와서 입을 열고 고소를 하냐'는 소리였다.

이른 바 '꽃뱀 프레임'이었다. 피해를 당했으면서 왜 계속 테니스를 했냐는 등의 소리도 있었다.

김 씨는 10살에 피해를 당했고 당시 스스로 문제를 제기하기엔 너무 어렸다.

김 씨는 특히 "보복이 두려워 말을 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같이 운동하던 선후배 동료들 역시 해당 코치가 김 씨만 따로 남기거나 방에 데려가는 상황을 봤지만 입을 열 수 없었다.

훈련이라는 이유로 운동을 하면서 늘 맞아야 했고, 그 상황 속에서 옳지 않은 일도 옳다고 인식하게 됐다고 한다.

지도자가 경기 출전 및 진학, 성적과 관련해 절대 권력을 지니고 있다.

상처 위로 침묵도 쌓여갔다.

젊은빙상인연대를 통해 코치를 고소한 스케이트 선수 A 씨 역시 각종 폭력과 성추행을 폭로하면 '집안망신'으로 보는 분위기를 지적했다.

그는 BBC에 "내부에서 '왜 고발해, 조용히 있으면 되지' 같은 말 때문에 해결이 되지 않고 용기 있게 말해도 묻힌다"고 안타까워했다.

폭력에 눈 감는 부모들

침묵의 카르텔에는 협회, 지도자, 선수들 뿐 아니라 '선수들의 부모'도 포함돼 있다.

바로 성적 지상주의 때문이다.

김 씨의 설명에 따르면 체육계에는 각종 폭력으로 위장된 '채찍질'이 선수들이 성과를 올리는 방식으로 이용되고 있다.

그는 "폭행을 비롯해 성추행 사실을 알고도 방관하는 부모들이 있다"며 "운동 성과가 나오면 결국 됐다고 생각한다"며 학부모들의 의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성적 만능 풍토 속에서 성교육은 사치다.

교육과정에 '성교육'은 포함돼 있지만 운동하는 학생들에게는 공부나 각종 교육보다는 훈련이 먼저다.

지도자의 의무 교육도 형식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현재 지도자로 활동하는 김은희 씨 역시 선수 시절 관련 성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고, 지금도 많이 다르지 않다고 토로했다.

교육을 막상 받아도 추상적이고 실질적 대처를 어떻게 해야하는지는 빠져있다는 것이다.

미투 이후...기대기 어려웠던 체육계

김 씨는 도움을 구하고 싶어도 실질적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체육계 현실에도 목소리를 높였다.

그의 경우 피해 사실을 알리고 고소를 진행하면서 문체부와 대한체육회에도 신고를 했다.

관련 조사가 있을 거란 기대때문이었다. 징계가 발빠르게 이뤄져 성폭행 가해자를 더이상 현장에게 만나지 않기를 바랐다. 이를 근거로 법정 다툼을 이어가려했다.

그러나 실상은 메일 답변이나 담당자 배정이 기대만큼 재빠르게 이뤄지지 않았고, 징계도 재판 결과를 보고하겠다는 답변을 받았다. 그는 당시 "괜히 신고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대한체육회는 그의 신고를 받은 지 1년 4개월 만에 가해 코치를 영구제명했다.

이에 대해 대한체육회 관계자는 BBC 코리아에 "김은희 선수 경우는 십여년이 넘은 상황이어서 조사에 한계가 있었다"며 "대체적으로 쌍방이 대립하면 '증거원칙'에 따라야하기 때문에 수사나 재판 결과를 기다리는 경우가 있다"고 해명했다.

또, 피해자들 중에는 2차 피해를 감당해야할 일이 생기기도 한다.

'자책하지 마세요'

김은희 씨는 현재 쏟아지는 정부 및 관계 기관들이 내놓은 대책을 두고 '실질 방안'인지를 돌아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체부, 여가부, 대한체육회 쪽에서는 피해 신고 시스템 확충에 신경쓰겠다고 밝힌 상황이다. 전수 조사 이야기도 나온다.

이에 대해 김 씨는 "전수조사가 의미있으려면 피해자가 마음놓고 이야기를 할 수 있는 환경인지를 먼저 살펴야 한다"고 지적했다.

많은 동료, 후배 선수들이 두려워하는 상황을 지켜봤기 때문이다. 끝까지 피해자를 보호해주는 안전장치가 마련돼 있지 않으면 앞으로 나서기 어렵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주요 사각지대에 CCTV를 설치하고, 남녀 선수 로커에 비상벨을 달며, 무단 출입 시 즉각 퇴출 조치를 하는 새 방안에 대해서도 의문을 표했다.

그는 "CCTV 없는데 갈 수도 있고, (위에서) 비상벨 누르지 말라고 하면 못 누르는 게 체육계"라고 했다.

시스템도 중요하지만 근본적으로 지도자와 사람을 바꾸고 교육하는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 씨는 '나도 당했다'라고 말한 이후 피해자를 보듬는 방안도 나오기를 바라고 있다.

그의 경우 형사재판에서 승소해 가해자는 징역형을 살고있지만, 여전히 악몽과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상처에는 유효기간이 없었다. 그는 "심리치료나 피해회복 지원이 더 잘 되었으면 좋겠고, 피해자들도 용기를 내서 적극적으로 치유해야 한다"고 전했다.

그는 자신이 냈던 용기를 전하고 싶다며 이런 말을 남겼다.

"피해자 스스로도 '왜 내가 어리석게 증거를 못 남겼나'. '왜 말도 못했나' 하고 오히려 자책하는 분들이 많이 계세요. 그런데 그건 당신 잘못이 절대 아니에요. 용기를 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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