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댓글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o i

번역할 언어 선택

뷰 본문

BBC News | 코리아

윤창호법: '창호의 죽음은 내 삶을 바꿨다'

창호의 친구들은 어떤 마음으로 오늘을 살아가고 있을까.

5,967 읽음
댓글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o i

번역할 언어 선택

'윤창호 법' 국회 통과 다음 날, 고 윤창호 군의 사고현장을 찾은 친구들

지난 11월 30일 부산 해운대 미포 오거리. 하얀 국화 꽃잎이 횡단보도 앞 담벼락 앞에 눈물처럼 하나 둘 떨어졌다.

국화를 내려놓으며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내는 22살의 청년들이 있었다.

두 달여전, 이들의 절친했던 친구 윤창호 군은 이 곳 횡단보도 앞에서 초록불 신호를 기다리다가 음주운전 차량에 치었다.

운전자 박 모씨의 혈중 알코올 농도는 면허 취소 수준이었다.

창호 군은 15m 너머로 떨어지며 의식을 잃었고, 46일간의 사투를 벌이다 결국 하늘나라로 긴 여행을 떠났다.

친구들이 이 날 눈물을 더욱 참을 수 없었던 이유가 있다.

그 전날 음주운전 처벌 수위를 높이는 '윤창호법(특정 범죄 가중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기 때문.

이런 결실을 만든 사람은 바로 고 윤창호 군의 친구들이다. 이들은 "우리를 움직였던 건 국화처럼 향기로웠던 창호의 꿈 때문" 이라고 입을 모았다.

'윤창호 법'을 위해 달려온 고 창호 군의 친구 세 명을 만났다.

창호의 꿈

고 윤창호군은 사고 당시 전역을 4개월 앞둔 군인이었다. 창호 군의 꿈은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 사람'이었다.

그는 친구들의 생일이 되면 사회 각 분야 책 선물을 하곤 했다. 책 첫 장에는 힘이 되는 메시지를 적고 함께 꿈을 꾸자며 울림을 전했다.

자비를 털어 천안함 배지나 위안부 후원 배지를 나눠주곤 했다.

친구들에게 나눠 준 프린트 물 위에 윤창호 군(가장 우측) 사진이 놓여 있다

"나는 검사가 된 후 대통령이 될 거야" 창호는 자신의 포부를 주변 사람들에게 숨기지 않았다.

7년 지기 친구 이영광 씨는 "창호의 꿈이 허풍처럼 느껴지지 않았다"며 "그만큼 말과 행동이 일치하던 친구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지희 양은 "시험 기간이면 각종 시험 범위와 주요 내용을 정리해 주변 친구들에게 나눠주던 친구가 바로 창호"라며 "모범생이지만 늘 '함께하는 것'을 좋아했다"고 회상했다.

고려대 대학 동기인 김민진 양에게 창호 군은 누구보다 각별한 존재였다.

"힘든 일도 있겠지만 함께 이겨내면 그 꿈을 이룰 수 있지 않느냐며 창호는 이런 말로 힘을 줬어요"

차분하게 말을 이어가던 민진 양의 말이 흐려지며 눈이 붉어졌다. 민진 양은 창호 군의 사고 이후 창호를 위해 학교를 휴학했다.

창호의 사고

2018년 9월 25일 부산 해운대구 미포오거리에서 술에 취한 운전자가 BMW승용차로 횡단보도를 건너기 위해 길에 서 있던 윤창호 군을 덮쳤다

창호의 교통사고 소식에 친구들은 그저 황망해 울기만 했다.

뉴스에 등장하던 음주운전 인명 사고가 막상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나리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창호는 저렇게 죽어 가는데 가해자 측은 단 한번도 창호의 병실에 찾아오지 않았다.

처벌이 궁금해진 10여명의 친구들은 음주 운전 처벌과 판결을 알아봤다.

기존 도로교통법에서는 음주운전치사 사고시, 유기징역 1년을 받는다고 돼 있었다.

음주운전을 해서 사람이 죽었더라도 징역을 거의 받지않고 집행 유예를 받는 현실은 믿기지 않았다.

안타까운 마음에 '음주운전 교통사고로 친구 인생이 박살이 났다'는 국민청원을 올렸다. 4일 만에 20만 명의 동의를 얻었다.

다음 목표는 '음주운전처벌이 더 강화되도록' 법을 바꾸는 일이었다.

하지만 법이 강화된다고 해도 창호군의 가해자에게 적용 되진 않는다. 그래도 이들이 모든 걸 내려놓고 여기에 매달린 이유는 무엇일까.

그에 대해 지희 양은 "우리 중 누군가 다쳤다면 창호는 분명 정의를 위해 움직였을 것"이라고 답변했다.

법안 제안서를 쓰는 것 자체가 생소했지만 병실 복도 바닥에 앉아 서로 머리를 맞댔다.

기존 법안과 판결 사안을 분석하고, 각종 해외 사례도 비교했다. 관련 학과 교수님께 자문을 구하기도 했다.

중환자실에서 46일간의 사투를 벌이던 고 윤창호 군

제안서를 쓴 뒤, 국회의원 299명의 의원실에 이메일을 모두 보냈지만 답장을 보내준 의원실은 5곳 뿐이었다.

1.67%정도의 회답률이었다.

그러나 포기할 순 없었다.

사고 지역 국회의원이나 행안위소속 국회의원실에는 전화를 걸었다.

창호의 이야기가 언론을 타면서 하나 둘 관심을 보이는 의원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사고가 일어난 해운대 구 바른미래당 하태경 의원이 대표 발의를 해주기로 약속했다.

결국 지난 10월 21일 '윤창호 법안'은 103명의 의원들이 공동참여해 초당적으로 발의될 수 있었다.

음주운전으로 인한 사망 사고시 운전자에게 살인과 같은 징역 5년형 이상을 적용하는 게 주 내용이었다.

문희상 국회의장을 찾은 창호 군의 친구들

그러나 좌절과 분노의 순간이 이어졌다.

공동 발의에 참여했던 민주평화당 이용주 의원이 윤창호 법안 일주일 정도 뒤에 음주운전으로 적발됐던 것.

영광 군은 "이 의원은 논란이 되자 사과를 하러 찾아왔는데 첫마디가 '이런 때 아니면 너희가 국회의원을 언제 만나겠느냐'였다"라며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고 말했다.

이용주 의원실은 이와 관련해 "친구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대견하다는 취지"로 한 말이며 "이런 일로 인해 많은 사람을 만나고 국회의원도 만난다"는 뜻이었다고 해명했다.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 윤창호법 통과를 외치러 온 친구들에게 "나도 실은 젊었을 땐 음주운전을 했었다"고 말해 공분을 사기도 했다.

지희 양은 "창호가 죽기 전이었는데 이미 '창호의 죽음'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의원도 있었고, 어떤 의원들은 우리 이야기를 듣기보단 우리와 사진 찍는 게 중요해 보였다"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그런다고 세상이 바뀌나?'

중간에 원안이 바뀌는 상황도 있었다.

법사위 논의 과정에서 '5년에서 3년 이상'으로 처벌이 줄어들게 된 것. 법 형평성이 이유였다.

그러나 징역3년 이하까지는 감형이 없어도 집행 유예가 가능해진다.

의미가 퇴색한다고 생각한 친구들은 문희상 국회의장에게 면담을 요청했다.

창호 친구들의 설명에 따르면, 문 의원은 격려를 해주면서도 '어른들의 일은 어른들의 법칙이 있다'는 말을 했다고 했다.

민진 씨는 "우리는 이 법에 대해 판례도 보고 조언도 구하고 정말 많은 공부를 했는데 들어보기 전에 어렵다고 한 부분이 우리로선 이해가 가질 않았다"고 회상했다.

거리에서 '윤창호법' 서명 운동을 하는 윤창호의 친구들

결국 다시 문을 열고 들어가 외쳤다.

"저희는 창호의 친구가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 여기에 온 것입니다."

원하는 수준으로 법안이 통과되진 않았지만 친구들은 그 한마디에 문 의장이 자신들을 보는 눈빛이 달라진 것 같았다고 기억했다.

서명운동을 하면서 회의적인 시선과도 싸워야 했다. '그런다고 세상이 바뀌나'라든가 '경력 쌓겠다고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이라는 폄하하는 말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친구들을 일으켜 세운 건 '항상 끝까지 해보라'던 평소 창호의 말이었다.

병원 복도 바닥에서 법안을 준비하는 창호 친구들

친구들은 이 과정에서 국회의원만 법을 바꾸는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싶었다고 했다.

창호를 기리는 하얀 국화 배지를 만들고 친구들은 거리와 국회에서 호소했다.

"음주운전은 '살인죄'입니다"

창호의 죽음

안타깝게도 창호 군은 자신의 이름을 딴 '윤창호 법'이 국회를 통과하기 전인 11월 9일 숨을 거둔다.

창호가 다시 눈 뜰 날을 기다렸던 친구들이었기에 아픔은 더욱 컸다.

故윤창호씨 영결식이 끝난 후 시신이 운구차량으로 옮겨지자 오열하는 민진 양

영광 군은 "우리는 창호가 죽을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며 "가망이 없다고 해도 46일을 버텼고, 창호는 기적의 사나이었으니까..."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여전히 '창호'라는 단어에 눈시울이 붉어지지만 창호 친구들의 행보는 끝나지 않았다.

이들은 제2의 윤창호법을 준비 중이다.

12월 18일부터 시작된 윤창호법이 얼마나 음주운전 근절에 효과가 있는지 살펴보고 징역 하한선을 더 높이는 법안을 제안할 예정이다.

창호의 향기

사고 당시 충격으로 담벼락에 찍힌 음주운전 가해 차량 번호판 아래 국화가 놓였다

그들은 자신들이 창호의 향기를 지니고 살겠다고 전했다.

영광 군은 자신의 방문 앞에 '창호 몫까지 2인분의 삶을 살겠다'고 쓴 좌우명을 붙였다고 한다.

그는"가장 친했던 친구의 죽음이 절망스럽지만 앞으로는 하루하루 의미있는 삶을 살겠다"고 했다.

지희 양은 이번에 다이어리를 샀다.

창호는 매일을 계획하고 의미있게 살려고 노력했던 친구였다는 게 그 이유다.

그는 "창호를 평생 기억하며 살겠다"고 말했다.

민진 양은 꿈을 보는 시선이 바뀌었노라 고백했다.

그 전에는 행정고시를 치고 행정가가 되는 직업을 꿈으로 생각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이제 '직업보다 방향'이 중요해졌다며 창호에게 이런 말을 남기고 싶다고 했다.

"어떤 일을 하든지 간에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고, 너처럼 생기를 불어넣어주는 사람이 될게...창호야 정말 보고 싶다"

작성자 정보

BBC News | 코리아

    실시간 인기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잠시 후 다시 시도해 주세요 Please try again in a mo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