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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부시'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 향년 94세 별세

'아버지 부시'라고도 불리는 미국의 41대 대통령 조지 H. W. 부시가 향년 94세 나이로 별세했다. 그는 미국의 43대 대통령 조지 W. 부시의 아버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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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H. W. 부시는 미국의 43대 대통령 조지 W. 부시의 아버지다

출처BBC

'아버지 부시'라고도 불리는 미국의 41대 대통령 조지 허버트 워커(H. W.) 부시가 향년 94세 나이로 별세했다.

조지 H. W. 부시는 미국의 43대 대통령 조지 W. 부시의 아버지다.

그는 1981년부터 1989년까지 제43대 부통령을 지낸 데 이어, 1989년부터 1993년 41대 대통령으로 재직했다.

역사

미국 매사추세츠주 밀턴에서 출생한 그는 1965년 석유 사업을 매각한 뒤 1996년 하원의원에 당선된 것을 시작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수 차례 하원의원을 지낸 그는 이후 CIA 국장, UN 주재 미국 대사 등을 지내며 미국의 외교 군사 활동에도 큰 족적을 남겼다.

특히 대(對)중국과의 국교정상화 당시 국무성 베이징 연락사무소 소장으로 지내며 닉슨 전 대통령을 보좌한 것으로 역량을 인정 받은 바 있다.

제2차 세계 대전 참전 용사이기도 한 그는 1993년 대통령 재선에 실패해 텍사스주로 돌아오기 전까지 정계 활동을 이어갔다.

아버지 부시는 부통령과 대통령 재임기에 대한민국을 방문하였고, 퇴임후에도 몇 차례 방문한 적이 있다.

격변의 임기

1. 냉전 종식

조지 H. W. 부시의 대통령 재임기간은 격변의 연속이었다.

부시가 취임한 1989년부터 1993년 사이 베를린 장벽은 무너졌고, 소련은 해체됐으며, 핵무기 감축이 시작됐다.

이는 소련 지도자로 취임한 고르바초프가 개혁, 개방 정책을 폈던 것이 주요했지만 조지 W.H. 부시는 고르바초프와 원만한 외교 관계를 유지하며 그를 도왔다.

한 예로 그는 소련 해체 과정에서 고르바초프 그리고 그를 이은 러시아 대통령 옐친과 군비통제 협상, 핵무기 대폭 감축을 위한 전략무기감축조약(Strategic Arms Reduction Treaty, START I) 등을 체결했다.

2. 걸프전

부시는 걸프전의 서막을 올리기도 했다.

그는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의 쿠웨이트 침공과 연이은 사우디 침공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미군 병력 42만 5천 명 규모 병력을 파병했다.

당시 부시 행정부는 쿠웨이트에서 서방세계에 공급하던 원유보호를 국가안보 문제로 인식했다.

또 동맹국이었던 사우디아라비아의 안보와 이라크의 대량파괴무기개발에 대한 우려도 참전 요인으로 작용했다.

미국을 포함한 연합군은 1991년 1월 16-17일의 "사막의 폭풍 작전(Operation Desert Storm)"이라는 이름의 대규모 공습 작전을 거쳐 쿠웨이트를 해방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 같은 군사·외교적 승리에 부시 대통령의 지지율을 유례 없는 89%까지 상승했다.

3.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

하지만 그럼에도 부시는 만성적인 미국 내 경기침체에 대한 책임을 피할 수 없었다.

만성적인 재정적자, 경기 침체 등의 악재는 그의 지지율을 17개월만에 89%에서 29%까지 끌어내렸다.

재선 상대 민주당 빌 클런턴 후보는 이를 공격하며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It's the economy, stupid!)로 통칭되는 책임론을 밀어붙였고 부시 대통령은 결국 재선에 실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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