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댓글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o i

번역할 언어 선택

뷰 본문

BBC News | 코리아

보헤미안 랩소디, 실제 프레디 머큐리가 영화와 다른 점 5가지

'보헤미안 랩소디'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고 있지만 영화의 몇몇 장면은 실제와는 다르다. 그중 논란이 되는 다섯 가지를 정리했다.

264,294 읽음
댓글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o i

번역할 언어 선택

프레디와 메리 어스틴은 연인 관계로 시작해 평생의 친구가 됐다

출처Getty Images

'보헤미안 랩소디'는 음악에 대한 전기 영화로는 할리우드 사상 가장 성공적인 영화가 될 전망이다.

영국의 전설적인 록 밴드 퀸과 그 리드 보컬 프레디 머큐리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보헤미안 랩소디는 11월 13일 기준으로 이미 전세계에서 3억 달러에 가까운 흥행을 기록했다.

음악 관련 전기 영화로 보헤미안 랩소디에 견줄만한 것은 2015년 개봉한 로스앤젤레스의 갱스터 랩 그룹 NWA의 성공과 몰락을 다룬 '스트레이트 아웃 오브 컴턴'으로 전세계에서 2억 달러 정도의 수입을 기록했다.

박스 오피스 히트

그러나 스트레이트 아웃 오브 컴턴이 미국 외 국가에서 거둔 매출액의 비중은 총매출액의 20%에 불과한 반면 보헤미안 랩소디의 미국 외 국가 매출액 비중은 60%를 넘는다.

이는 프레디 머큐리의 전세계적인 인기를 방증한다.

퀸의 기타리스트 브라이언 메이는 보헤미안 랩소디가 "퀸에 대한 영화가 아니라 프레디에 관한 영화"라고 말했다.

잔지바르에서 태어난 페르시아계 영국인 가수 프레디 머큐리를 연기한 라미 말렉에 대한 평단의 반응은 대체로 호의적이었다.

그런데 과연 영화는 얼마나 정확할까? 제작자들은 이 영화가 다큐멘터리가 아니며 그래서 일부분은 예술적 자유를 갖고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것 중 실제와는 다른 다섯 가지 장면을 소개한다.

전설적인 록 밴드 퀸은 1970년 런던에서 결성됐다

출처Getty Images

1. 퀸은 어떻게 결성됐나

영화에서 프레디 머큐리는 기타리스트 브라이언 메이와 드러머 로저 테일러를 1970년 처음으로 만난다. 퀸의 전신인 '스마일'의 공연에서다.

영화에서는 스마일의 베이시스트이자 보컬인 팀 스타펠이 밴드를 떠난 후 다른 멤버들이 프레디 머큐리를 만나게 됐고 밴드 멤버들은 처음에 프레디 머큐리를 받아들이길 주저했다.

그러나 실제로 프레디 머큐리는 런던의 일링예술대학에서 예술과 디자인을 공부하고 있을 때 밴드 멤버들을 만났다.

머큐리는 팀 스타펠과 친구였으며 이윽고 스마일의 팬이 됐다.

1970년 스타펠이 밴드를 떠나자 머큐리가 가입한다.

영화에서는 베이시스트 존 디콘이 머큐리가 가입했을 때 이미 밴드 멤버였던 것처럼 보여주지만 사실은 다르다.

존 디콘은 1971년 퀸의 베이스 연주자로 가입한다

출처Getty Images

실제로는 머큐리가 메이와 테일러를 설득해 밴드의 이름을 퀸으로 바꾸게 했고 1971년 전까지 디콘은 밴드 멤버가 아니었다.

영화에서는 EMI 음반사의 사장으로 나오는 레이 포스터가 노래 '보헤미안 랩소디'가 너무 길다고 거부했다고 나온다.

영화에서 포스터는 퀸에게 보다 상업적인 음악을 만들라고 요청한다.

그러나 롤링스톤 매거진에 따르면 레이 포스터는 실존인물이 아니라 한다.

레이 포스터라는 캐릭터는 EMI 사장이었던 로이 페더스톤에 영감을 얻었을 수 있으나 영화에서와는 다르게 페더스톤은 퀸의 열렬한 팬이었다.

'보헤미안 랩소디'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고 있지만 영화의 몇몇 장면은 실제와는 다르다

출처Getty Images / 20th Century Fox

2. 프레디 머큐리의 연애 생활

영화에서 머큐리는 1970년 퀸에 가입하면서 여자친구인 메리 어스틴을 만난다.

그러나 롤링스톤에 따르면 그는 퀸의 보컬이 되기 전까지 메리에게 관심이 없었다 한다.

영화에서는 머큐리가 자신의 오랜 애인이었던 짐 허턴를 자신이 연 파티의 웨이터로서 만나는 것으로 그린다.

둘은 실제로는 1980년대에 한 나이트클럽에서 만났다. 머큐리는 그때 이미 세계적인 스타였다.

그러나 1984년 더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허턴은 머큐리가 술 한 잔 하자는 제안을 거부했었다고 말했다. 그가 프레디 머큐리인지 못알아봤기 때문이었단다.

프레디 머큐리와 짐 허턴(왼쪽)은 머큐리가 죽을 때까지 6년 이상을 연인으로 지냈다

출처Getty Images

허턴은 사보이 호텔에서 이발사로 일했다.

둘은 1985년 다시 만나 연인 관계로 발전했고 1991년 11월 머큐리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6년 이상 관계를 유지했다.

IrishCentral.com에 따르면 허턴 자신도 1990년 에이즈 진단을 받았으나 2010년 폐암으로 사망했다.

그러나 영화의 관객들은 허턴의 모습을 그리 많이 보지 못한다. 영화는 둘이 재회하고 얼마 안돼 열린 1985년 '라이브 에이드' 콘서트로 끝나기 때문.

프레디 머큐리는 1991년 11월 24일 세상을 떠났다

출처Getty Images

3. 머큐리가 에이즈에 걸린 시기

영화의 막바지에서 프레디 머큐리는 자신이 에이즈에 걸렸다는 것을 발견하고 이를 라이브 에이드 콘서트 전에 다른 밴드 멤버들에게 말한다.

영화의 마지막을 보다 감성적으로 만들어주긴 하지만 실제와는 다르다.

짐 허턴에 따르면 프레디 머큐리는 자신이 에이즈에 걸렸다는 사실을 1987년까지 몰랐으며 자신이 죽기 바로 전날인 1991년 11월 23일에서야 이를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영화는 이 부분 때문에 가장 많은 비판을 받는다.

"팩트를 이렇게 가혹하게 왜곡한 영화는 처음 봅니다. 영화는 마치 프레디 머큐리를 징벌하고 싶어하는 것 같아요." 미국의 엔터테인먼트 전문 웹사이트 UPROXX의 마이크 라이언은 이렇게 썼다.

"에이즈로 인한 머큐리의 비극적인 죽음은 1990년대 초기 에이즈에 대한 관심 환기를 위한 투쟁에서 중대한 사건이었습니다. 이제와서 그의 질환을 그의 라이브 에이드 공연과 연결짓는 것은 경솔하고 가혹해 보여요."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퀸의 1985년 라이브 에이드 공연은 밴드의 역대 최고 라이브로 평가된다

출처Getty Images

4. 1985년 라이브 에이드 공연 참여

1985년 영국 웸블리에서 열린 라이브 에이드 자선 공연에서 퀸의 퍼포먼스는 의심의 여지 없이 밴드의 역사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순간이다.

영화에서 밴드는 멤버들이 오랫동안 얼굴을 보지 못한 상태에서 공연에 참가하게 되는 것으로 나온다.

그러나 이는 실제와는 다르다. 퀸은 1984년 'The Works'라는 앨범을 내고 이를 위한 세계 투어 공연까지 마친 상태였다.

퀸은 1983년 휴지기를 가졌지만 멤버들은 계속 연락을 유지했다

출처Getty Images

5. 퀸의 해체?

영화가 실제와 매우 다른 점 중 하나는 퀸은 결코 영화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해체된 일이 없단 것이다.

영화에서 머큐리는 다른 멤버들에게 알리지 않고 400만 달러 짜리 솔로 앨범 계약을 체결하고 이 때문에 밴드 내에 불화가 발생한다.

영화에서 프레디 머큐리는 밴드로부터의 휴식이 필요했다며 다른 멤버들에게도 자신만의 길을 가라고 말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밴드가 십 년 동안 투어 공연을 다니면서 1983년 열의를 잃게 됐던 것이다.

멤버들은 휴지기를 갖고 각자의 솔로 커리어에 집중하기로 했다.

레슬리 앤 존스가 쓴 프레디 머큐리의 전기 '머큐리'에 따르면 밴드는 1982년 '핫 스페이스'를 발표한 이후 솔로 프로젝트 작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나 롤링스톤에 따르면 멤버들은 계약을 파기하지 않았으며 1983년 'The Works' 앨범의 시작한다. 여기에는 그 유명한 히트록 '라디오 가가'가 수록됐다.

작성자 정보

BBC News | 코리아

    실시간 인기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잠시 후 다시 시도해 주세요 Please try again in a mo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