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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 News | 코리아

수습되지 못한 12만여구 유해.. 그들은 누구일까?

"미군 같은 경우는 참전하기 전에 치과 기록, 키, 몸무게 등 모든 신체 정보를 다 가지고 있어서 유해가 나오게 되면 기초 신원확인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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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감식대 위에 펼쳐진 갈색 유해들. 일부는 얼핏 보기에 나무껍질 혹은 작은 돌처럼 보이기도 한다.

만약 일반인이 우연히 발견했다면 6·25전쟁 치열한 전투 끝에 사망한 병사의 뼛조각이라고 생각하긴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유해들은 6·25전쟁에 참가한 병사 37명의 유해다. 경남 창녕에서 지난해 마구 섞여지 있는채로 한꺼번에 발굴되었다.

최근 방문한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중앙감식소에서는 이들의 분류작업을 마치고 신원확인 작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북한이 6·25전쟁 당시 전사한 미군 유해를 송환하는 것에 대한 북미 간의 협상이 장기화 된 가운데, 70년 가까이 된 백골의 신원을 어떻게 확인하는지 알아봤다.

이름은 뭐였을까? 누구의 아들이었을까? 누군가의 아버지였을까?

신원확인 단 128명

유해발굴감식단 중앙감식소에서 조사 중인 6.25 참전 국군 유해

출처BBC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의 장유량 중앙감식소장은 "미군 같은 경우는 참전하기 전에 치과 기록, 의료 기록, 키, 몸무게 등의 신체 정보를 가지고 있어 유해가 나오게 되면 기초 신원확인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한국군의 경우 그렇지 않다. 장 소장은 "한국군의 경우 한국전쟁은 갑자기 발발했기 때문에 그런 정보가 없다"며 "지금 유골을 통해 그런 정보를 수집하면서 동시에 DNA 검사도 하다 보니 신원확인이 굉장히 어렵다"고 말했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 현재까지 발굴한 유해 1만여구 중 단 128명만이 신원확인이 된 이유를 설명해주는 대목이다.

이로 인해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 위치한 국립서울현충원에는 신원확인이 안 된 유해를 위한 공간이 있다. 국선재와 충원단이다.

신원확인이 안 된 유해는 중성지에 쌓여 보관된다

출처BBC

이름도 나이도 밝혀지지 않은 이들을 다시 땅에 묻을 수 없기에, 유해는 신발 상자보다 좀 큰 상자에 담겨져 도서관 같은 시설에 줄줄이 꽂혀 보관되고 있다.

신원 확인은 감식단 작업의 최종 목표지만 쉽지 않다. 국군 유해가 발견되면 감식단은 1차적으로 연령, 성별, 인구집단, 키 등을 분석한다. 이후 유품과 DNA시료 분석 등을 통해 신원을 규명한다.

유족의 DNA와 대조를 하면 신원 확인이 더 빨리 이뤄질 수 있지만 현재 유족의 유전자 시료채취가 완료된 것은 유해 기준으로 24% 수준이다. 감식단 관계자는 "1~2촌의 DNA가 가장 정확한데, 이들의 나이를 감안하면 앞으로 5년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아이를 둔 부모로서 마음이 아프다'

이번 유해 조사에서는 유난히 어린 유해가 많이 발견됐다.

임나혁 반장은 종아리뼈(견골) 하나를 들어 보여주며 "이 분 같은 경우에는 양 끝 부위 유합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며 "이런 경우 18세 이하로 판단을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유해의 두개골을 가리키며 "상악(위턱)의 제3대구치(사랑니)가 아직 나오지 않았고, 씹는 면이 전혀 달지 않았다"며 17~25세 사이라고 판단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6·25전쟁 당시 북한군 포로

출처Getty Images

그는 "어리게는 15세까지 굉장히 어린 유해들이 많이 확인되고 있다"며 "6·25전쟁이 준비되지 않은 전쟁이었기에 학도병 등이 많았다. 아이를 둔 부모로서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전쟁이 끝나고 바로 현충원에 모셔진 병사를 제외하면 6·25전쟁의 전사 및 실종자 국군 수는 약 13만 4천명이다. 이중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 현재까지 발굴한 유해는 1만여구 뿐이다.

이는 우리가 매일 밟는 땅 밑에 아직도 12만 4천 명의 국군 유해가 수습되지 못한 채 있다는 뜻이다.

특히 많은 유해가 불과 1m 내외의 깊이에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전투현장이 워낙 급박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경우 전사자를 매장할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1951년 5월 한국전쟁 참전 미군

출처Getty Images

12만 4천 명 중 약 1만 여명은 북한 땅에 묻힌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한국은 북한으로부터 한국군을 한 명도 돌려받지 못했다.

다만 북한이 미국으로 송환한 600여구 중 28명이 한국군으로 판단돼 돌려 보내졌다. 북한과 33차례 공동 유해발굴을 한 바 있는 미국 국방부 전쟁포로·실종자확인국(DPAA)에서 조사 시 한국군임을 밝힌 것이다.

DMZ 내 발굴 가능할까?

한국 정부는 DMZ 내 유해 발굴을 추진 중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6일 현충일 추념식에서 "남북 관계가 개선되면 비무장지대(DMZ)의 유해 발굴을 우선 추진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이후 지난 14일에 열린 남북 장성급 회담에서도 이에 대한 의견 교환이 있었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에 따르면 DMZ에서 전사한 국군은 1만여 명, 미군 전사자는 2000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DMZ 일대에 남북 합쳐 200만 개 이상의 지뢰가 매설된 것으로 알려진다

출처Getty Images

하지만, 전문가들은 쉽지 않을 작업이 될 것이라고 내다본다. 전쟁 이후 DMZ에 오랫동안 사람이 드나들지 않아 토양이 많이 쌓여 전쟁 당시 땅과 차이가 클 것이라고 본다.

안 그래도 어려운 지뢰 제거 작업이 더 어려울 것으로 보이는 이유다. DMZ 일대에 남북 합쳐 200만 개 이상의 지뢰가 매설된 것으로 알려지고, 특히 북측 목함지뢰는 지뢰 탐침봉이나 금속지뢰 탐지기로 확인이 어려운 것으로 전해진다.

장 소장은 "일반적으로 산야에 묻힌 토양을 봐도 부엽토층이 굉장히 넓고 높게 형성이 되어 있다"며 "발굴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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