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뷰 본문

최초의 서울 시장은 누구였을까?

2002년 월드컵 기간 중 치른 지방선거의 다른 이름은 '잊혀진 선거'다.
프로필 사진
BBC News | 코리아 작성일자2018.06.13. | 20,998 읽음
댓글

1950년대 선거유세 차량

혹한의 추위에도 2000여 명의 청중은 첫 서울시장에 나선 후보들의 연설에 귀기울였다. 당시 후보만 16명이었지만 사람들은 떠날 줄 몰랐다.

'올바른 내 한표에 우리 서울 발전한다'라는 지방 선거 현수막이 투표소에 내걸렸다. 1960년 12월 17일 서울시장 후보들의 합동연설회가 있던 날의 광경이다.

오늘 제7회 전국동시 지방선거가 열린다.

우리나라 민주주의 역사와 궤를 함께 해 온 지방선거는 어떤 모습으로 존재해 왔을까.

최초의 지방 선거는 전쟁 속에서도 90% 투표율

한국 최초의 지방선거는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4월 25일이었다. 포탄이 날아다니는 상황이었기에 서울, 경기, 강원, 전북 등 4개 지역은 선거가 진행되지 못했다.

왜 하필 전쟁통에 지방선거를 한 것일까. 1950년 5월 30일 실시된 국회의원 선거 결과 때문이었다.

당시 정부 여당 측 인사들이 낙마하고 야당 출신 중도적 민주주의자들이 당선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승만 정부는 이를 위기상황으로 보고 돌파구로 그동안 미뤄왔던 지방의회 선거를 추진했다.

1952년 지게를 지고 최초의 지방선거 안내문을 보고 있는 사람들

전쟁이 한창이었기 때문에 당시 선거관리는 유엔(UNCACK)도 함께 했다. 당시 자치단체장 선거는 이뤄지지 않았다.

이승만 정권 국면타파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당시 삶이 힘들었던 국민들에게 지도자를 뽑는 일은 중요했다.

당시 문맹률은 50% 이상이었으나 투표율은 90% 이상을 기록했다. 기호 1번은 작대기 1개, 기호 2번은 작대기 2개로 표시하는 방식이었다.

중간에 명맥 끊겨버린 지방선거, 이유는?

1960년 국민들은 투표로 시장을 뽑았지만 그 임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이듬해 집권한 박정희 정권이 지방자치를 폐쇄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첫 서울시장으로 당선됐던 김상돈 후보 선거 벽보

박정희 정권은 유신을 선포하고 위기 상황이라며 '통일 이전'까지 지방선거를 잠정적으로 유보했다.

그 이후 전두환 전 대통령 집권 때까지 30년 동안 지방선거는 단 한 번도 실시되지 않았다.

역사 속 선거 이야기, '피아노표', '닭죽 개표 사건'

투표를 통해 우리나라 민주주의가 성장해왔지만 어두운 면도 있었다.

정부 관료뿐만 아니라 공무원들이 대대적으로 선거에 개입했기 때문이다.

돈을 주고 입당원서에 가입하도록 해 표를 얻는 '돈 선거', 당시 귀중품이었던 고무신을 주고 해당 후보를 뽑도록 회유하는 '고무신 선거' 등이 그 예다.

1960년 촛불을 켜놓고 지방선거 개표를 하고 있는 모습

개표 과정도 공정하지 못했다. 원치 않는 후보의 표를 무효표를 만드는 방식이 주로 이용됐다.

마치 피아노를 연주하듯 미리 다섯 손가락에 묻혀 놓은 인주를 반대표에 묻혀 무효표로 만드는 '피아노표', 반대표에 표시를 하나 더 해 무효표로 만들어버리는 '쌍가락지표', 개표 중에 전기를 끄고 표를 바꿔치기 한 후 개표하는 '올빼미 개표' 도 등장했다.

닭 죽에 수면제를 탄 후 저녁 식사라고 둘러댄 뒤, 투표 참관인들에게 먹여 투표지를 바꿔치기 한 '닭죽 개표 사건'도 있었다.

선거 판도를 바꿨던 대형 사건

1995년 6월 27일, 김영삼 대통령 재임 3년 차, 지방선거가 부활했다.

지방자치단체장의 직선이 마침내 이루어지면서 한국은 본격적인 지방자치 시대에 들어가게 됐다.

선거 때마다 투표 판도를 바꾸는 사건이 일어나곤 했다.

제1회 지방선거 때는 선거를 앞두고 대구 지하철 가스폭발 사고가 있었다.

민주자유당 책임론이 불거졌고, 여당은 참패했다. 당시 투표율은 68.4%였다.

1998년 지방선거 시기는 IMF 위기 시절이었다. 경제위기를 이전 정부의 책임으로 보고 국민들은 60% 넘게 집권 여당의 손을 들어줬다.

2002년 월드컵 기간 중 치른 제3회 지방선거는 온 국민이 축구에 관심이 쏠려있었다. 역대 가장 낮은 투표율인 48.9%를 기록하면서 '잊혀진 선거'로 불린다.

월드컵 열기로 인해 '잊혀진 선거'로 불리는 2002년 지방선거

2010년에는 제5회 지방선거에서는 천안함 사건으로 인한 북풍과 미국산 쇠고기 수입 강행과 고(故) 노무현 대통령 서거 1주기를 맞아 불었던 '노풍' 등이 화두였다.

2014년에는 선거를 두 달 앞두고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다. 야당은 박근혜 전 대통령을 심판해야 한다고 했고 반대로 여당은 위기 상황에서도 국정 개혁을 추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투표 결과는 여야 양측이 비등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4년 지방선거 두 달을 앞두고 벌어진 세월호 참사

2018년 지방선거는 '지방분권'의 분수령

2018년 지방선거에서 선출되는 인원은 4,016명이다. 일각에서는 북미정상회담과 월드컵으로 제2의 '잊혀진 선거'가 되지 않겠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그러나 이번 6·13 지방선거의 중요성은 그 어느 때보다도 높다.

풀뿌리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는 지방분권 개헌이 예정돼 있기에 이번에 뽑히는 일꾼들이 우리가 사는 지역의 환경을 직접적으로 이끌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12일 서대문구 개표소에서 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들이 투표지 분류기를 점검하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12일 문재인 대통령은 "투표를 해야 국민이 정치를 두려워하게 된다"며 국민들에게 투표를 독려했다.

놓치지 말아야 할 태그

#미투

    많이 본 TOP3

      당신을 위한 1boon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