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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과 결혼하면 돈을 드립니다'

중미 코스타리카에선 중국인과의 위장결혼이 '암시장'까지 있을 정도로 성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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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 News | 코리아 작성일자2018.05.07. | 142,496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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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 케이크 위에 신랑 신부 모형과 코스타리카 여권, 달러 지폐가 꽂혀 있다

출처 : BBC

"돈 필요하신 분?"

단순한 물음이었지만, 마리아(가명)에겐 '계약'을 체결하는 데 충분한 질문이었다.

마흔 여섯 살, 중미 코스타리카에 사는 마리아는 200달러를 줄 테니 중국인 남성과 혼인하라는 제안을 받았다. 남성은 코스타리카 거주권을 얻는 게 목표였다.

당시 마리아는 코스타리카 수도 산 호세의 가장 가난한 지역 중 한 곳에서 살고 있었다. 딸린 식구는 여럿이었고, 배를 채울 음식도 없었다.

마리아는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들은 먹잇감을 찾고 있다'

마리아가 살던 동네는 안전과는 거리가 멀었다. 한 주민은 "여기선 아는 게 적을수록 오래 살아남는다"고 말했다.

마리아의 사례는 코스타리카에선 그리 드문 일이 아니다. 변호사라든지 중매인이라든지, 절박한 주민들을 물색하려는 사람들이 속속 코스타리카를 찾아왔다. 그들은 마리아 같은 이들에게 본 적도 없는 외국인과의 결혼을 종용했다.

또 다른 주민은 "그들은 먹잇감을 찾는다"면서 "이곳 사람들은 절박하다. 아무리 형편없는 대가를 제안해도 고민조차 없이 받아들인다"고 전했다.

마리아는 결혼을 진행하며 동네를 뜰 필요도 없었다. 차에 올라타 혼인 증명서에 서명을 하고 돈을 받은 게 전부였다. 곧 이혼을 할 수 있다는 설명도 뒤따랐다.

마리아는 돈이 필요해 중국인과 결혼한 코스타리카인 중 하나다

출처 : BBC

마리아는 "중매인은 내게 한 중국인 남성의 사진을 보여주며 '이 남자와 결혼하는 것'이라고 말했고, 그게 다였다"고 털어놨다.

중매인은 얼마 지나지 않아 이혼 서류를 들고 다시 나타났다.

몇 년 뒤, 마리아는 또다른 중국인과 결혼했다. 이번에도 대가는 돈이었다.

마리아의 딸들과 남편도 이런 '가짜 결혼'을 했다.

위장결혼 암시장

코스타리카 정부는 마리아 같은 사례가 얼마나 빈번한지 가늠조차 어렵다는 입장이다.

검찰 관계자는 수사 당국이 현재 위장결혼 사례 1000건 이상을 조사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같은 수치 역시 빙산의 일각일 것"이라며 우려를 내비쳤다.

이민국 기셀라 요크첸 국장은 위장결혼 암시장이 코스타리카 범죄 조직에 의해 굴러가고 있다고 했다.

요크첸 국장은 "이른바 '마피아'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가짜 결혼을 주선하고 있다"며 "결혼을 통해 합법적 거주권이나 국적을 얻으려는 외국인들을 위해 명의를 도용하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피해자들은 자신의 법적 신상이 아무런 동의 없이 '미혼'에서 '기혼'으로 바뀌었을 때 피해 사실을 깨닫고 충격을 받곤 한다.

돈을 받는 대가로 위장결혼에 응한 이들 가운데서도, 약속했던 이혼 절차가 진행되지 않아 일면식도 없는 사람의 배우자 신분으로 살게 되는 경우가 있다.

요크첸 국장은 외국인들 역시 자신도 모르는 새 피해자가 된다고 설명했다.

BBC가 입수한 혼인 증명서엔 중국 국적의 한 남성이 속아 서명한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코스타리카 공용어인 스페인어를 할 줄 몰랐던 그는 해당 문서가 거주권 신청 서류인 줄로만 알았다.

코스타리카 수도 산 호세에 자리잡은 차이나 타운

출처 : BBC

요크첸 국장은 2010년 한층 강화된 이민법이 상황을 조금이나마 잠재웠다고 설명한다. 해당 법률에 따르면 위장결혼에 연루된 자는 최대 징역 5년에 처해진다.

2010년 이후로는 코스타리카 시민과 혼인 관계를 맺어도 자동으로 영주권을 보장받을 수 없게 됐다.

물론 외국인들은 여전히 현지인과의 결혼 후 거주권을 신청할 수 있다. 하지만 거주 가능 기간은 1년으로 제한된다.

'진짜 부부'로 살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면 거주 가능 기한은 연장된다. 그렇게 3년이 지나면, 외국인 배우자는 영주권을 받을 수 있다.

'미국으로 가는 통로'

코스타리카 원격교육대학교(Universidad Nacional de Educación a Distancia)의 알론소 로드리게즈 연구원은 중국인 이민자의 대부분이 광동성 남쪽 지역 출신이라고 설명했다.

이들은 친이민 정책, 그리고 상대적으로 안전한 환경을 이유로 코스타리카로 넘어온다.

그 배경엔 또다른 긴 역사가 자리잡고 있다. 최초의 중국인 이민자는 1855년, 농장 노동자로 코스타리카 땅을 밟았다.

하지만 오늘날 많은 중국인 이민자들의 최종 목적지는 코스타리카가 아니다.

로드리게즈 연구원은 "상당수의 이민자들에게 코스타리카는 미국으로 넘어가는 통로"라고 말했다.

코스타리카에 정착하는 이들은 대개 작은 사업장을 열곤 한다. 로드리게즈 연구원은 "중국인들은 이곳의 삶에 매우 잘 적응한다"고 했다.

리 종 역시 코스타리카에 자리를 잡은 중국인 이민자 중 하나다. 그는 산 호세에서 편의점을 운영하고 있다.

코스타리카로 오게 된 이유를 묻자 "파나마행을 택했을 뿐"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중국인 이민자 리 종이 자신의 가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출처 : BBC

그는 파나마에서 여러 난관에 부딪힌 끝에 코스타리카에 머무르게 됐다. 뒤따라 온 아들도 가게를 차렸다.

위장결혼 이야기가 나오자 리 종은 말을 얼버무렸다. 하지만 곧 "코스타리카인-중국인 커플을 여럿 알고 있다"고 털어놨다.

코스타리카 남성과 중국인 여성의 결혼보다는 코스타리카 여성과 중국인 남성이 결혼하는 게 더 순조롭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많은 중국인들이 그렇듯 리 종의 가족 중에도 코스타리카인이 있다. 다만 보통의 위장결혼 사례와는 좀 다르다. 그의 손자가 코스타리카에서 태어나 국적을 얻었다.

그는 가게에서 뛰어노는 손자를 바라보며 자랑스러운 듯 말했다."이 아이는 티코(코스타리카 현지인을 일컫는 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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