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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 News | 코리아

배우 최은희, 시인 정지용, 피아니스트 백건우의 공통점

한국전쟁 발발 후 납북된 한국인 중엔 공교롭게도 문화 예술계 사람들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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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배우 최은희의 빈소가 16일 오후 서울 성모병원장례식장에 마련됐다

출처NEWS1

남편 신상옥 감독과 함께 납북됐다가 극적으로 탈출한 원로배우 최은희(92)가 오늘 지병으로 별세했다. 이에 따라 최은희, 신상옥 부부의 납북 이야기도 다시금 화제가 되고 있다.

납북된 한국인 중엔 공교롭게도 문화 예술계 사람들이 많다.

문학·미술·음악·영화 등을 체제 선전에 긴밀하게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대부분이다. 한국전쟁 발발 후 납북에 연루된 유명 문화 예술계 인사들은 누가 있을까.

1.'졸업식 노래 ' 작곡가, 정순철 (납북)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 꽃다발을 한아름 선사합니다".

남북한에서 모두 유명한 '졸업식 노래'를 작곡한 정순철.

1901년 충청북도 옥천 출생으로 일본에서 음악을 공부했다. 어린이에 대한 관심이 많던 그는 1923년 잡지 '어린이'를 창간하고 창작 동요를 보급했다.

해방 이듬해인 1946년, 한글로 만든 졸업 노래가 없던 시절 한민족의 마음을 사로잡은 '졸업식 노래'를 작곡했다.

그는 1950년 한국전쟁 당시 후퇴하던 북한군에 납북됐고, 그 후 그의 행적 및 생존 여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2. 손기정 일장기 말소사건 주역 기자, 이길용 (납북)

2017년 8월, 서울 중구 만리동에 위치한 손기정 체육공원 내 기념관 내 손기정 동상 옆에 이길용 흉상이 설치됐다

출처LEE JAE MYUNG

이길용은 일제 강점기 시절, 동아일보 체육 담당 기자였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마라톤 금메달을 딴 손기정 선수의 가슴에서 일장기를 지운 보도로 유명하다.

당시 손기정 선수는 일장기를 달고 기미가요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시상식에 서야 했다. 죄인처럼 고개를 떨궜던 이유다.

당시 이길용은 미술 담당 기자 이상범 화백과 함께 손기정 가슴에서 일장기를 지웠다. 이 사건으로 그는 종로경찰서에 끌려가 일본 경찰로부터 극심한 고문을 당했다. 강제로 기자직에서도 물러나야 했다.

한국 전쟁이 일어나자 정당 활동과 반탁운동에 참여한 혐의로 인민군에게 끌려가 조사를 받았고 이후 북한군에 연행돼 납북됐다.

그 이후로 이길용 관련 소식은 알려진 바가 없다.

3.'향수', 정지용 (납북)

정지용 시인의 '호수'는 '한국인의 애송시'로 선정되기도 했다

출처NEWS 1

'넓은 벌 동쪽 끝으로..'로 시작되는 노래 '향수'로 한국인에게 사랑받는 시인 정지용. 그는 서정적인 언어로 한국 현대시를 발전시킨 시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18년 서울 휘문고보에 입학한 뒤 이듬해 3·1 독립운동 당시 교내 시위를 지휘하기도 했다. 8·15 해방 때까지 모교에서 영어교사로 재직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서대문형무소에 수용됐다가 납북됐지만, 납북 도중 폭격으로 사망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납북 전 좌파 계열인 조선문학가동맹에 가입한 이력으로 인해 자진 월북했다고 여겨지기도 했다. 1988년 납북·월북작가의 작품이 해금되기 전까지는 금기 이름이 되어 정○용으로 표기됐다.

4. 피아니스트 백건우, 영화배우 윤정희 부부 (납치 미수)

피아니스트 백건우가 지난해 광화문 문호아트홀에서 '2017 백건우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32 프로젝트' 기자 간담회를 갖고 있다

출처NEWS 1

피아니스트 백건우와 배우 윤정희 부부는 납북 위기에서 가까스로 벗어난 경우다.

1977년 7월 초, 백건우는 스위스의 백만장자 '미하일 파블로비크'로부터 연주회 초청을 받는다.

당시 백건우·윤정희 부부는 생후 5개월 된 딸을 데리고 출국했는데 공항에 이들을 마중 나온 담당자는 파블로비크의 아버지 집에서 연주회를 하자며 당시 공산국가였던 '유고슬라비아'행 비행기 표를 건넸다.

유고슬라비아의 자그레브 공항에서 '조선민항'이라는 북한 비행기를 본 부부는 직감적으로 수상함을 느꼈다. 찾아오라는 주소도 텅 빈 시골집이고 이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도 한 동양 남자였다.

그 사람이 '북한 사람'이라는 직감이 든 백건우는 택시에 올라타 바로 미국 영사관으로 향했다. 이후 22시간 만에 파리로 탈출한다. 조사 결과 스위스 부호는 허위 인물로 밝혀졌다.

이 사건 이후 트라우마가 생긴 백건우는 그 이후로도 북한 공관이 있는 나라로 연주회를 가면 항상 한국 대사관에 '신변 보호' 요청을 한다고 알려졌다.

5. 60년대 영화계의 별 배우 최은희, 감독 신상옥 부부 (납북 후 탈출)

지난 2013년, 영화 '빨간 마후라'의 주인공 최은희(왼쪽)씨가 장경식 당시 공군제10전투비행단장(준장)으로부터 감사패를 전달받고 있다

출처NEWS 1

1926년 경기도 광주 출생 최은희는 1942년 '청춘극장'으로 연극 영화계에 데뷔했다. 그는 '마음의 고향' 등의 영화에 출연하며 당대 최고 스타가 됐다.

신상옥 감독 역시 1960년대를 대표하는 영화감독이다. 주요섭의 소설을 각색해 만든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1961)'는 일본과 베니스 영화제, 아카데미 영화제에 소개되기도 했다.

부부는 1978년 1월과 7월, 각각 북한에 납치돼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최은희는 영화 일정으로 홍콩에 있던 중 강제 납북을 당했다. 마카오에서 중국으로 넘어가며 북한으로 가게 된 최은희는 "납북 과정에서 마취 주사까지 맞았으며 여러 번 실신을 거듭했다"라고 회고하기도 했다.

신상옥의 경우는 실종된 최은희를 수소문하다가 홍콩에서 북한 공작원에 의해 납북된다.

부부는 영화광이었던 김정일의 적극 지원하에 북한에서 '소금', '불가사리' 등 총 17편의 영화를 찍었다.

이후 8년 뒤 영화 촬영으로 찾은 오스트리아에서 극적으로 탈출한다. 두 사람은 한국에 돌아온 이후에도 후학을 양성하며 영화 작업을 계속했다.

두 사람의 납북과 탈북 이야기는 추후 로스 아담 감독이 제작한 '연인과 독재자'에 담겨있다.

신상옥은 2006년 4월 지병으로 사망했으며 12년 후인 2018년 4월, 최은희 역시 같은 달 세상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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