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주목해야 할 전시는? 5월의 아트 이슈

조회수 2020. 5. 11. 17:5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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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자가 주목한 아트 이슈 BEST8

우리는 지금 정지된 시간을 살고 있다. 답답하고 고통스러운 시간인 동시에 전 세계에서 고통받고 있는 많은 이들을 ‘우리’로 인식할 수 있는 드문 시간이기도 하다.

The List

봄은 다시 찾아온다

David Hockney, 〈Do remember they can’t cancel the spring〉, 2020. Courtesy the Artist and Louisiana Museum of Modern Art

우리는 지금 정지된 시간을 살고 있다. 답답하고 고통스러운 시간인 동시에 전 세계에서 고통받고 있는 많은 이들을 ‘우리’로 인식할 수 있는 드문 시간이기도 하다. 코로나19 확산이 절정으로 치닿은 지난 3월 19일, 루이지애나 현대미술관은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louisianamuseum)을 통해 데이비드 호크니의 새로운 아이패드 드로잉을 공개했다. 생명력 넘치는 노란색 수선화가 담긴 이 작품의 제목은 〈그들이 봄을 미룰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하라(Do remember they can’t cancel the spring)〉이다. 이동제한령이 내려진 프랑스 북부 노르망디에서 머물고 있는 데이비드 호크니는 이 작품을 통해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이들에게 연대의 메시지를 전한다. 더불어 길고 긴 유예의 시간 동안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해보게 한다.

단색의 진폭

윤형근, 〈Burnt Umber & Ultramarine Blue〉, 1999, Oil on cotton, 227x181.5cm. Courtesy of Yun Seong-ryeol and PKM Gallery

“필자는 지금 1980년대와 1990년대 초반의 윤형근 화백 작품들이 왜 이렇게 매혹적인지 이해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올 초 뉴욕 데이비즈 즈워너 갤러리에서 열린 윤형근 개인전을 본 하인리히 윌이 〈뉴욕타임즈〉에 기고한 글은 이렇게 시작한다. 그는 검은 직사각 형상들이 캔버스의 형태와 공명하는 방식에 매료되었다고 고백한다. 지난해 베니스의 오래된 건축물 안에 무심하게 걸리며 전 세계 미술인의 시선을 사로잡은 뒤에 뉴욕을 거쳐 다시 서울에 상륙한 윤형근 화백의 작품을 PKM 갤러리에서 만나볼 수 있다. 이번 개인전에서는 그의 작업 중에서도 보다 구조적이고 대담한 양상으로 진화된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말 사이의 작품들이 전시될 예정이다. 우아하고도 힘 있는 조형언어로 구축된 작품들 사이에서 영적인 시간을 즐길 수 있다. 4월 중순부터 5월까지 PKM 갤러리.

FIRST IN FASHION

1 패트릭 드마쉘리에가 촬영한 〈바자〉 1992년 12월호 커버. ⓒ Patrick Demarchelier
2 윌리엄 브로들리(William H. Broadley)가 일러스트를 그린 〈바자〉 1896년 3월호 커버.

〈바자〉가 미술관 안으로 들어갔다. 파리 장식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Harper’s Bazaar: First in Fashion»전은 1867년부터 이어지고 있는 한 패션 매거진의 미학적 실험이 지닌 의미를 돌아보는 전시다. 피터 린드버그, 리처드 애버던, 만 레이, 살바도르 달리, 앤디 워홀 등의 창조적인 작업물과 버지니아 울프,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카슨 매컬러스 등의 진보적인 목소리를 담아온 〈바자〉의 역사는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카멜 스노, 알렉세이 브로도비치, 다이애나 브릴랜드 등 〈바자〉의 전설이 된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이 전시는 앞서 언급한 인물들의 성취를 보여주는 것으로부터 한 발 더 나아가서 〈바자〉와 패션의 관계에 집중한다. 박물관 컬렉션에서 공수한 60여 벌의 의복과 〈바자〉가 창조한 이미지를 나란히 전시함으로써 패션과 패션 매거진이 주고받은 풍부한 영감을 감상할 수 있게 한다. 7월 14일까지 파리 장식미술박물관.

부호의 컬렉션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브루스 드 커머스의 전경. Photo: Maxime Tetard, Courtesy Bourse de Commerce ? Pinault Collection ⓒ Tadao Ando Architect & Associates, NeM / Niney & Marca Architectes, Agence Pierre-Antoine Gatier, Setec Batiment

파리에 가면 들러야 할 새로운 미술관이 생겼다. 구찌와 생 로랑 등 럭셔리 패션 하우스를 보유한 케링 그룹의 설립자이자 세계적 아트 컬렉터인 프랑수아 피노의 숙원이었던 부르스 드 커머스(Bourse de Commerce)가 개관을 앞두고 있는 것이다. 호사가들은 이미 LVMH 수장 베르나르 아르노가 설립하여 파리의 랜드마크가 된 루이비통 파운데이션과 비교하며 부르스 드 커머스의 베일이 벗겨지는 날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프랑수아 피노는 한 인터뷰에서 “사업에서는 아르노와 라이벌일 수 있지만 뮤지엄에 있어서는 라이벌이라고 생각한 적 없다”며 선을 그었다. 프랑수아 피노의 오랜 파트너인 안도 다다오는 18세기에 지어진 선물거래소를 웅장한 현대미술관으로 복원했다. 거대한 돔과 기둥들 사이에 사이 톰블리, 신디 셔먼, 데이미언 허스트, 제프 쿤스 등 5천여 점에 달하는 호사스러운 컬렉션이 자리 잡았다. 퐁피두 센터, 루브르 박물관과 근거리에 위치하고 있어 함께 둘러보기에도 좋다. 퐁피두 센터와 함께 준비한 개관전이 열릴 예정이다. 9월 중에 개관.

마술적인 여자들

1 Leonora Carrington, 〈Portrait of the late Mrs. Partridge〉, 1947, Oil on wood, 100.3x69.9cm. Private Collection ⓒ Leonora Carrington / VISDA 2019 Photo: Nathan Keay, ⓒ MCA Chicago
2 Claude Cahun, 〈Self-portrait (I am in Training... Don’t Kiss Me)〉, 1927, Vintage gelatin silver print, 11.7x8.9cm. Private Collection ⓒ Claude Cahun
3 Frida Kahlo, 〈The Little Deer〉, 1946, Oil on masonite, 22.5x30.3cm. Private Collection ⓒ Banco de Mexico Diego Rivera Frida Kahlo Museum Trust / VISDA 2019. Photo: Nathan Keay, ⓒ MCA Chicago
4 Kay Sage, 〈At the Appointed Time〉, 1942, Oil on canvas, Newark Museum of Art, Bequest of Kay Sage Tanguy, 1964. ⓒ Estate of Kay Sage/VG Bild-Kunst, Bonn 2020

여성 예술가들을 소개하는 크고 작은 전시가 전 세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Fantastic Women»전은 그중에서도 초현실주의 운동에 기여한 여성 작가들에 주목한다. 초현실주의 사조에 대한 연구에서 여성 작가들의 이름은 대거 생략되어 있다. 또한 남성 초현실주의 작가들의 작품 속에서 여성은 철저히 욕망의 투사체로 묘사된다. 이번 전시에서는 르네 마그리트나 살바도르 달리 못지않게 강렬한 작품을 선보인 34명 여성 작가들의 작품이 소개된다. 프리다 칼로의 유명한 작품과 함께 토옌, 앨리스 라혼, 케이 세이지처럼 비교적 덜 알려진 초현실주의 작가들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억눌린 욕망과 현실의 고통을 표현하고자 했던 여성 예술가들에게 초현실주의는 매혹적인 수단이었다. 이들은 강인하게, 솔직하게, 때로는 장난스럽게, 객체가 아닌 주체로서의 마술적인 시간을 꿈꾼다. 2월 13일부터 5월 24일까지 쉬른 쿤스트할레 미술관, 6월 18일부터 9월 27일까지 루이지애나 현대미술관.

Less Is More

1 David Ostrowski, 〈F (F)〉, 2017, Acrylic on canvas, wood, 241x191cm.
2 David Ostrowski, 〈V (Vaporizer)〉, 2019, Acrylic, lacquer and cotton on canvas, wood, 201x151cm.

지식은 억압적이고 성가신 것이라고 믿는 독일의 추상회화 작가 데이비드 오스트로프스키는 기존 회화의 현학적인 문법을 거부하고 우연, 실수, 오류, 사고처럼 무의미한 것이라 여겨지는 가치에 주목한다. 작업실에서 발견한 스프레이 페인트, 천 조각, 나무, 종이, 캔버스 조각 등을 즉흥적으로 사용하고, 음악을 들으며 속도감 있게 전개하는 작업 방식부터 우연에 가깝다. 작가의 대표작이자 이번에 서울의 리안갤러리에서 선보이는 〈F〉 연작에서 ‘F’는 ‘Failure’, 즉 실패나 실수를 뜻한다. 그의 작품에서 주로 사용되는 푸른색은 실제로 작가가 가장 싫어하는 색인데, 스스로 이 색과 친숙해지기 위해서 사용했다고 한다. 그가 실수라고 부르는 푸른 선들은 비어 있는 공간에 리듬감을 불어넣으며 하나의 음악처럼 다가온다. 또한 이번 전시장에서는 벽이 아닌 갤러리 공간 한복판에 놓여 있는 회화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관객이 벽 위에 군림하는 작품을 우러러보는 대신 자유롭게 작품 주위를 돌며 느끼고 경험할 수 있길 바라는 작가의 의도에서다. 4월 3일부터 5월 18일까지 리안갤러리 서울. 

양혜규의 언어

양혜규, 〈침묵의 저장고 - 클릭된 속심〉, 2017, 킨들 현대미술센터, 베를린, 독일, 2017. Photo: Jens Ziehe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양혜규의 전시를 서울에서 만나볼 수 있게 되었다.(알다시피, 이제 그의 작품은 국내보다 국외에서 더욱 수월하게 만날 수 있다.) 지적이면서도 감각적인 자극을 주는 아티스트 양혜규의 신작은 언제나 궁금하다. 올여름 국립현대미술관에 전시될 신작 〈소리 나는 조각의 사중주(가제)〉는 작가의 오랜 관심사 중 하나인 ‘살림’을 주제로 한 것으로, 가정에서 사용하는 오브제를 인체에 대응하는 크기로 확장시킨 작품이다. 물리적으로 변형된 일상의 사물을 참조물로 삼아 현실에 대한 새로운 사유를 만들어내는 것은 그녀의 전매특허다. 대기의 움직임과 같은 눈에 보이지 않는 자연 현상을 가시화한 설치작품도 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전개된 블라인드 설치 연작의 최근 단계를 보여주는 대형 블라인드 조각 〈침묵의 저장고‐클릭된 속심〉도 전시된다. 끊임없이 확장되어가는 양혜규 세계의 현재 상황을 확인할 수 있는 단서들이다. 8월 29일부터 2021년 1월 17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도널드 저드라는 이름

이름 자체가 하나의 브랜드로 느껴지는 아티스트가 있다. 도널드 저드도 그렇다. 무엇이든 쌓아 올리고 강박적으로 배열하는 등 다소 매정하게 느껴질 정도로 이성적인 방식으로 물성과 공간, 색을 탐구했던 도널드 저드의 작품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회고전이 모마(MoMA)에서 열리고 있다. 도널드 저드는 흔히 미니멀 아트의 핵심 인물로 여겨진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평생 동안 그 말을 거부했다고 한다. 근본적인 형태를 탐구하는 작업을 지나치게 일반화시키는 단어라는 이유에서다. 작가의 아들이자 도널드 저드 재단 이사장인 플래빈 저드도 “아버지는 미니멀리스트가 아니라 삶과 작품 전체를 아우르는 조화를 중요하게 생각한 맥시멀리스트”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멀리서 봐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저드의 작품은 세계 곳곳에 자리 잡고 있지만, 이번 전시와 같은 대규모 회고전은 처음이다. 그만의 명료한 질서와 규칙으로 구축된 전시 공간에서 ‘저드(Judd)’라는 고유명사를 탐구해볼 수 있다. 3월 1일부터 7월 11일까지 뉴욕 현대미술관.

김지선은 〈바자〉에서 오랫동안 몸 담았던 프리랜스 에디터다. 여성의 삶과 문화 전반에 대한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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