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유, 누구나 아는 이름이지만 숨겨진 매력이 무한한 동네

조회수 2020. 3. 15. 16: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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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적 사실주의 수유

지금 사랑하는 곳에서 살고 있습니까? 서울의 다양한 동네에 사는 이들이 자신의 터전에 한번 와보라 손짓한다.

혹시 어디 사세요?

처음 만난 사람과의 거리도 이 한마디면 단숨에 좁혀졌다. 가본 곳이 있다면 그 얘기를 하면 됐고 없더라도 근처 맛집에 대해 들은 바가 있다며 두루뭉술하게 대화를 이어나가면 됐다. 나의 대답은 10여 년 동안 홍대 인근이었다. 성산동을 시작으로 망원동과 연희동을 거쳐 합정동에 살고 있다. 사람들은 내 대답을 듣고 반은 “힙한 동네에 사네요.” 반은 “참 어울리네요.”라고 받아쳤다. 홍대 부근에 살기 전 내 별명은 ‘수유리 것’이었다. 태어나 반을 넘게 수유동에 살았다. 북한산 맑은 정기가 흘러 넘치다 못해 폭발하는 음기의 땅. TV 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호화로운 주택이 밀집된 구역 바로 맞은편에는 낡은 집과 비닐하우스가 있다. 역 주변은 유흥가이고, 거기서 조금만 걷다 보면 세트장처럼 평화로운 거리가 나타난다. 그곳에 살 때는 지명 때문인지 지방 사람으로 오해를 받곤 했다. 지금 내가 사는 곳의 지명을 모르는 서울 사람은 아마도 없다. 이런 반응이 오래도록 재미있었다. 그때도 지금도 알려진 동네 밖에서 얼마든지 즐거운 생활이 이어지고 있다. 그래서 이 칼럼을 만들기로 했다.

나는 수유를 아주 사랑하여 새로 사귄 친구들과 알아가기 시작한 남자들을 모조리 불러들였다. 누가 오든 우리 동네에 홀딱 빠지게 만들 구경 경로를 몇 개쯤 가지고 있었다. 그중 하나가 ‘마술적 사실주의 수유’ 경로다. 시작은 무조건 아카데미하우스(영화 〈오 수정〉에서 수정 씨와 재훈이 만나 호텔에 들어갈까 말까 실랑이를 벌이던 곳. 지금은 문을 닫고 이권 분쟁 중이다.) 입구 앞이다. 마을버스가 더 이상 갈 곳 없이 종착지를 알리면 거기가 수유의 가장 끝이자 꼭대기이다. 내려다보면 반 지층 아래로 개울이 흐른다. 이곳을 지나 숲속으로 들어가면 첫 목적지인 이준열사묘역이 나온다. 헤이그 특사인 이준이 맞다. 애국심이 투철해 참배할 목적으로 찾은 건 아니었다. 이곳저곳 동네 산책을 하다 우연히 빨려 들어가듯 찾아내고 만 곳이다. 키 큰 나무 사이로 주단처럼 길이 깔려있다. 나무는 너무 높고 바닥은 이끼로 덮여 조금 미끄럽다. 도로에서 나는 소리는 전부 차단되어 공기가 움직이는 소리까지 들릴 것 같다. 홍살문을 넘어 수호상을 지나면 묘역이 드러난다. 미관을 해치는 표지판 하나 없고 이국의 묘비가 땅 위에 살며시 놓여 있다. 붉은 토지에 붉은 나무가 군데군데 심어져 있는데 어디서도 본 적 없고 어디와도 닮지 않은 인상이다. 나는 이곳을 “환상과 실제의 중간 지대”로 여겼다. 두 번째 경유지 역시 묘역이다. 대로변에 맞닿은 대리석 광장에 조형물이 여럿 뻗어 있는데 나와 그 옛날 친구들, 주민들의 랜드마크였다. ‘살구탑’이라고 불렀지만 정작 4·19를 기념하는 것들의 극히 일부일 뿐이다. 본격적으로 국립4·19민주묘지에 들어서면 국경처럼 넓게 펼쳐진, 너무 높아 끝이 흐릿한 조형물이 서 있다. 청동을 깎아 만든 투사의 모습이나 시구를 새긴 거대한 비석을 보면서 “여기가 바로 내 고향 키르기스스탄이야.”라고 농담을 해대면서도 어쩐지 눈시울이 스스러워지곤 했다. 여기서 한번 시장을 해결한다. 이제는 철수한 일본 커피 전문점 체인 도토루는 2000년대 초반 숨겨진 명소였다.

덕성여자대학교

명동 지점에는 멋쟁이 노인부터 샐쭉한 학생들이 모여 앉아 담배를 태우고 본사에서 만들어 보내는 편집 음반에서 나오는 노래를 들으며 자잘한 얼음이 들어간 로열밀크티를 마셨다. 그런 도토루가 국립4·19민주묘지 바로 앞에 생긴 것이다. 나는 명동까지 나가지 않아도 됨을 기뻐했는데 그것도 잠시 상표권을 잃으면서 ‘DOUTORY’로 바뀌었다. 그러나 십수 년 인테리어를 손대지 않아 예전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고 여전히 맛있는 밀라노 샌드위치를 판다. 마지막으로 덕성여자대학교를 둘러본다. 나는 내가 당연히 덕성여자대학교의 일원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어릴 적 아는 대학교의 전부였고 너무나 아름다웠기에. 커서 알고 보니 붉은 벽돌 건물은 건축가 김수근이 만든 것이었다. 지그시 서 있는 모양새를 바라보는 것만으로 좋았다. 평지의 담담한 건물 사이에 스머프 동산이라는 문지방만큼만 살짝 솟아오른 작은 언덕도 사랑스럽다.

국립4·19민주묘지

짚어낸 장소와 장소 사이를 걸을 때에도 추론할 수 없는 풍경이 이어진다. 익숙한 장면과 헛된 공상 같은 장면이 얽힌다. 그렇게 자랑스러워한 국립4·19민주묘지는 사실 부정축재자의 땅을 환수했기 때문에 이곳에 세워진 것이고 위령탑은 친일파 조각가가 만든 것이다. 수유는. 좀 그렇다.


글/ 박의령(〈하퍼스 바자〉 피처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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