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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업계에도 공공연하게 존재하는 갑의 '갑질'

조회수 2017. 8. 31. 13: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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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절돼야 할 대표적인 우리나라의 '갑질' 문화

단단한 것이 으스러질 때 나는 소리, 혹은 많은 양의 정보를 고속으로 처리하는 것을 뜻하는 영어 단어 ‘크런치(Crunch)’는 우리나라 IT 업계에서 본래와는 다른 의미로 사용되곤 한다. 하나의 프로젝트를 완성시킬 때까지 야근 및 주말 근무를 포함한 강도 높은 근무 체계에 들어가는 것을 ‘크런치 모드’라고 부르는 것이다. IT 종사자들을 더욱 슬프고 암울하게 만드는 것은 이 크런치 모드가 자발적인 모드가 아니라는 점이다. 월화수목금금금의 초과 근로, 원하청 관계에서 벌어지는 불공정한 갑질,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보상 등 IT 종사자들을 울리는 다양한 문제들은 앞으로 시급히 근절돼야 할 대표적인 우리나라의 ‘갑질’ 문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례 1. 원하청 관계에서의 고질적 갑질

롯데하이마트 온라인 운영팀의 협력업체에서 일하던 노동자 A씨는 운영팀의 부당한 업무지시에 대해 항의하다가 롯데하이마트 직원으로부터 폭언, 폭행을 당하고 협력업체로부터 강제 사직을 당했다. 한국정보통신산업노동조합이 밝힌 자료에 따르면 롯데하이마트 온라인 운영팀 B팀장은 근로기준법을 위반하고, 정규 퇴근시간을 강제로 연장해 근무할 것을 요구했다. 협력업체는 이에 반대 의견을 제시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초과근무에 대한 추가 근무수당은 업체 간 계약 시 명시되지 않았으며, 롯데하이마트측은 부담 없이 근로시간을 임의로 변경해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 업계 안에서 바라보는 IT 시장은 전혀 ‘스마트’하지 않다

퇴근시간 이후에도 빈번하게 모바일 메신저를 통한 업무지시가 이뤄졌으며, 비정상적 개발 기간을 요구하는 일이 많았다. 무리한 개발 일정에 따른 문제가 발생할 시에도 협력업체에 책임을 전가시키는 부당행위가 계속 발생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협력업체 책임자 A씨가 이에 대해 항의하자 롯데하이마트의 B팀장은 그 자리에서 폭언을 퍼부었다고 한다. 폭언은 멱살을 잡고 끌어당기는 폭행으로까지 이어졌으며, B팀장은 협력업체에 A씨의 강제교체를 요구했다. 협력업체는 롯데하이마트의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최우수 근무자로도 평가받은 바 있는 A씨를 퇴사 처리하기에 이른다.

▲ 지금 이 시간에도 IT 종사자들은 초과 근로와 격무에 시달리고 있다

정의당은 롯데하이마트가 2015년부터 A씨를 블랙리스트에 올려놓고 지속적인 교체를 요구했다고 밝혔다. 정의당은 금번 사태에 대해 불공정한 부당행위를 요구한 ‘갑질’로 정의내리고 있으며, 노동자의 생존권이 원청 한마디에 쉽사리 좌우되는 기업 문화와 원화청간의 고질적인 문제에 대한 해결을 촉구하고 나서고 있다. 한국정보통신산업노동조합은 롯데하이마트의 갑질에 대한 고발문을 각종 대형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배포하고 있으며, 롯데하이마트는 아직 이에 대해 구체적인 입장을 발표하지 않고 있다.


사례 2. 고용 관계에서 벌어지는 회사의 갑질

엔씨소프트의 리니지M이 출시되기 전만 하더라도, 우리나라의 모바일 게임 시장의 대부분은 사실상 넷마블게임즈가 장악하다시피 했다. 작년 연간 매출 1조 5천억 원, 올해 상반기에만 1조 2천억 원이 넘는 매출을 기록한 넷마블게임즈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모바일 게임 서비스사다. 올해 상반기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도 이미 작년의 그것을 훌쩍 뛰어넘었다. 하지만 이렇게 높이 쌓아올린 금자탑 뒤에는 넷마블게임즈 종사자들의 눈물 섞인 피땀이 숨겨져 있다. 

▲ 1조 매출의 금자탑은 개발자들의 ‘진짜’ 피와 땀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지난 8월 3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이정미 정의당 의원실에 따르면, 넷마블게임즈 소속의 자회사인 넷마블 네오에서 근무하다 사망한 C씨 유족이 낸 유족급여 청구에 관해 근로복지공단이 ‘업무상 재해’로 받아들여 승인한 것으로 전해진다. 넷마블 네오에서 근무하던 C씨는 작년 11월 심장동맥경화로 사망했다. 이에 대해 근로복지공단 서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발병 전 12주 동안 불규칙한 야간근무 및 초과근무가 지속되었으며, 특히 발병 7주 전에는 1주 근무시간이 89시간, 4주 전에는 1주 근무시간이 78시간에 달했으므로 고인의 업무량과 사망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다고 밝혔다.

▲ 8개월 크런치 모드로 논란이 된 위메이드아이오의 이카루스 모바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 3~4월 넷마블게임즈와 산하 계열사 12곳의 직원 3,250명 중에서 2,057명이 주 12시간의 연장 근무 시간 한도를 초과해 근무했다. 반면 그에 준하는 노동수당은 적절하게 받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체불임금이 약 44억 원에 달한다. 넷마블게임즈의 퇴직자들은 지금도 지속적인 야근과 과로,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보상에 대해 줄지어 증언하고 있다. 더 심각한 사실은 IT 기업의 이같은 갑질이 비단 넷마블게임즈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점이다. 국내 게임사들 대부분이 임직원에게 초과 근무를 강요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4월에는 위메이드엔터테인먼트의 자회사 위메이드아이오의 이카루스 모바일팀이 8개월의 크런치 모드를 강요받았다는 소식이 전해져 논란이 되기도 했다. 


사례 3. 너무나도 열악한 근무환경 

 

초과 근무가 회사의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개발자, 임직원 개인의 자발적인 의사 판단으로 이뤄졌으며, 또 사측에서 이에 상응하는 보상을 해주었다면 크런치 모드도 나름의 당위성을 갖게 될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초과 근무는 제대로 된 보상 없이 이뤄진다. IT 종사자들 중 상당수는 적절한 보상을 받지 못하고 실로 열악한 환경에 내몰려 있다. 소위 '폐 잘라낸 개발자'로 알려진 농협정보시스템의 전 직원 D씨가 그 대표적인 예다. 

▲ 공중파 방송을 탄 ‘폐 잘라낸 개발자’의 사연은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줬다

방송에도 소개된 바 있는 D씨의 사연은 충격적이다. 농협정보시스템에서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일한 D씨는 입사 후 1년간 2,250시간을 초과 근무할 정도로 살인적인 야근에 시달렸다. 그리고 입사 2년 만인 2008년 10월에 ‘폐결핵’과 ‘결핵성 폐농양’ 진단을 받았다. 이로 인해 D씨는 오른쪽 폐의 절반을 잘라내는 큰 수술을 받았다. MBC ‘후플러스’를 통해 방송된 내용에 따르면, D씨는 자신의 건강을 해친 근본적인 원인이 과도한 노동 시간이었다고 문제를 제기하고 회사에 산업재해 신청에 동의해 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오히려 D씨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해고됐다. 수술 후 휴직 기간 중에 회사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은 것이다. D씨는 2013년 만성적 과로에 따른 결핵성 폐질환으로 공단에 산재를 신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며, 산재 승인을 거부(요양 불승인 처분)한 공단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해 결국 승소했다.

▲ 6년의 긴 싸움 끝에 D씨는 마침내 승소했다

D씨의 승소 사례는 국내 최초라고 기록되고 있다. 노동자의 초과 근무가 만연한 국내에서 소프트웨어 개발자의 산재 인정 사례를 찾아보기 쉽지 않다는 점은 여러 가지로 시사하는 바가 많다. 보상을 논하기도 이전에 IT 종사자들은 ‘생존’의 위기를 겪고 있는 것이다. 고용의 안정성 면에서도 취약한 환경에서, 산재를 인정받기도 지극히 힘든 시대를 살고 있는 IT 종사자들은 오늘도 열악한 근무 환경 속에서의 근로를 강요당하고 있다.


IT 종사자들이 겪는 갑질, 이제는 그만 

 

갑질이 사회적으로 가장 크게 부각되는 부분은 한 회사의 경영권을 좌우할 수 있는 원청기업이 하청기업을 아랫사람 다루듯 하는 기업문화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정면으로 정조준하고 있는 갑질 또한 이러한 관계에서 빚어지는 폭력이다. 김상조 위원장이 지난 8월 13일 발표한 불공정거래 근절 대책은 대형 업체들의 고질적이고 악질적 불공행위의 근절과 이에 대한 배상 책임을 주된 내용으로 담고 있다. 공정거래위가 1차적으로 정조준하고 있는 분야는 유통 및 프랜차이즈 업계이지만, 머지않아 이 화살은 IT 업계로도 향하게 될 것이다. 

▲ 열악한 환경 속의 IT 종사자들에게 창조성을 요구할 수 있을까

지난 7월 26일 고용노동부는 83개 IT 업체에 대한 근로 감독을 실시한 결과, 95.7%인 79곳(422건)이 근로기준법, 기간제법을 위반했다고 밝혔다. 전체 업체의 20개소 중 19개 업체가 노동관계법을 위반한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유형별로 보면 근로 시간을 위반한 곳은 총 29곳(35.0%)으로, 하루 12시간 이상으로 초과 근무하거나 여성 노동자에게 야간 근로에 대한 동의를 받지 않은 곳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임금체불도 만연해, 총 57개 업체(68.7%)가 최저임금 미달, 퇴직금 미지급 등의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비정규직들의 휴가나 복리후생 규정을 아예 두지 않은 업체도 7곳에 달했다. 지난 2010년 민주노총 한국정보통신산업노동조합과 진보신당이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IT 종사자들은 당시 연간 3,000시간의 초과 근무를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 바 있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난 지금도 IT 종사자들이 처한 환경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원하청 관계의 권고화로 인해 중소 IT 기업의 근무 환경은 이전보다도 더욱 열악해졌다. 

▲ 우리 모두의 목소리는 이제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세상’을 향해야 한다

소프트웨어 개발과 프로그래밍 등은 창조력을 요하는 산업이다. 우리나라 IT 업계에서 스티브 잡스와 같은 창의성 있는 인물이 나오지 않는다고 한탄만 할 것이 아니라, 종사자들이 안심하고 일하면서 자유롭게 사고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이 먼저다. 대한민국은 이제 더 이상 IT 선진국이 아니다. 갈라파고스라고 비웃음을 사는 우물 안 개구리일 뿐이다. 업계 종사자들이 갑질에 시달려 기본적인 행복조차 추구하지 못하는 상황인데, 우리가 이들을 탓할 자격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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