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혹하지만 아름다운 SOMI의 게임들

조회수 2020. 10. 13. 08:1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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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게임 개발자 SOMI

‘시리어스’. 언제나 무거운 주제의 이야기들은 누군가의 가슴을 뛰게 만든다. 위태로운 상황에서 오는 긴장감과 순간 스치는 스릴을 즐기는 장르 ‘스릴러’에 대해 이다혜 작가의 책 ‘아무튼 스릴러’는 말한다. “스릴러가 재밌는 이유는 모순적이게도 독자가 살고 있는 현실이 안전하기 때문”이라고. 범죄 세계나 독재자가 있는 사회의 이야기, 인권이 나락으로 떨어져 있는 수많은 시리어스 장르의 이야기가 재밌는 이유 역시 일맥상통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상상 속에서나 즐거운 일들은 ‘내 주변’에만 없을 뿐, 조금만 눈을 돌려봐도 정말 지구 어딘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일 때가 많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들을 자신의 방식으로 조각하고 다듬어 플레이어들에게 보여주는 제작자가 있다. 바로 개발자 SOMI이다.


개발자 SOMI

▲한국의 게임 개발자 SOMI

개발자 SOMI는 한국에서 1인 개발을 하고 있는 인디 게임 개발자이다. 2014년 발매한 게임 ‘Rabbit Hole 3D’를 시작으로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된 딸을 살리기 위한 연구원의 고군분투를 다룬 ‘RETSNOM’을 개발했다. 그리고 2016년 7월 출시되어 국내 게임팬들에게 시리어스 게임 개발자로서 ‘SOMI’를 알리게 된 게임 ‘레플리카’를 시작으로 ‘리갈 던전’, ‘더 웨이크’까지 총 3개의 ‘죄책감 3부작’을 출시하며 팬층과 인지도를 보유한, 믿고 플레이하는 시리어스 게임 개발자로 자리 잡는다. 이 기사에서 다루는 SOMI의 게임은 게임팬들에게 SOMI라는 개발자의 캐릭터성으로서 사랑받고 있는 ‘SOMI’s Guilty Trilogy’, 바로 죄책감 3부작에 대해 이야기한다.


“전쟁은 평화, 자유는 예속, 무지는 힘” 레플리카

▲국가 안보부의 감시를 받고 있는 플레이어

핸드폰의 전원을 켠다. 핸드폰은 비밀번호가 걸려있어 안을 볼 수 없다. 아무래도 이건 플레이어의 핸드폰은 아닌 모양이다. 누군가에게 메시지가 온다. 핸드폰의 주인을 아들이라고 부르는 걸 보니 이 핸드폰 주인의 어머니라도 되는 모양이다. 메시지를 보낸 사람, 에밀리는 이렇게 말한다. “곧 생일이구나.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거니? 아버지는 네가 사라진 이후에 제정신이 아니야.” 곧 생일이라는 메시지에서 추측해 비밀번호를 찾아 핸드폰을 열고 안의 데이터들을 살펴본다. 그리고 곧 걸려오는 전화가 말한다. “너는 국가 안보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부여받았어.” 플레이어는 이 핸드폰의 주인이자 테러리스트로 의심받고 있는 인물 ‘다키’의 기록들을 찾아내 그를 고소할 수 있도록 ‘국가 안보부’를 돕는 인물이다.

▲레플리카의 엔딩을 열 때마다 나타나는 문구

레플리카의 조작은 단순하다. 우리가 일상에서 스마트폰을 조작하듯 마우스를 또는 핸드폰의 패널을 조작하며 앱과 폴더를 뒤진다. 레플리카의 세상은 국가가 민주주의란 이름으로 국민을 감시하고 억압하는 세계이다. 플레이어가 조사해야 하는 인물 다키의 핸드폰 곳곳에는 마치 한국의 독재 시절을 그리고 지금 중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국가적 감시를 연상케 하는 사건과 증거들이 기록되어 있다. 게임은 플레이어의 행동 및 조작에 따라 분기가 갈라지는 멀티 엔딩을 채택하고 있다. 게임의 엔딩은 대부분 어떤 행동을 취해도 개운하지 않으며 결과적으로 국민이 억압당하는 사회, 모든 것이 국가에 수렴하는 사회가 얼마나 건강하지 않은지에 대해서만 강조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플레이어의 ‘플레이’라는 직접적인 행위가 결정한다는 사실이 더더욱 이 게임의 모든 순간에 굵은 펜으로 밑줄을 긋는다.


“죄 있는 자에게, 돌 던지는 것은, 죄가 아니므로.” 리갈 던전

▲짭새라는 말을 명예훼손이라 고발하며 시작하는 리갈 던전

선행 미덕은 0.5점짜리, 절도범은 2점짜리, 살인은 15점짜리. 리갈 던전은 제목이 뜻하는 말 그대로 ‘법의 던전’이다. 플레이어는 경찰서에 새로 부임한 신입 경찰이다. 다만 경찰학교 졸업생이기 때문에 경찰 시험을 치고 들어오는 일반 경찰에 비해 한참 높은 계급으로 직무를 시작한다. 당장에 십 년이 넘은 경력을 가지고 있는 형사들이 이제 막 경찰서에 들어온 플레이어를 상사로 대해야 하는 상황이니 말이다. 어쨌거나 플레이어는 CIS라는 프로그램을 이용해 팀이 잡아온 범죄자들을 심문하여 그들에게 법의 철퇴를 내릴지, 다음을 기약하며 놓아줄지 선택하고 의견서를 제출해야 한다.

▲정확한 법 집행 등급과 줄타기를 하는 과정에서 게임의 재미와 함께 죄책감도 느낄 수 있는 리갈 던전

게임 리갈 던전은 경찰서 밖에서 경찰서 안으로 참견하는 수많은 권력 투쟁 그리고 경찰들의 임무 성과 등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혀있다. 플레이어의 도덕적 기준만으로 상황을 판단하고 게임을 진행하다가도 플레이어가 쓴 의견서와는 반대로 가는 법원 판결과 계속해서 떨어지는 ‘정확한 법 집행 등급’을 보면 게임의 뒷이야기를 보기 위해 좋든 싫든 게임 초반에 등장하는 상황적 힌트를 의식하며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게 되는 수밖에 없다. 게임을 플레이할수록 결국 법을 집행하는 사법기관 역시 사람이 일하는 곳이라는 묘한 기분을 느낄 수 있는 건 덤.


“일종의 인류애 정도랄까” 더 웨이크 : 애도하는 아버지, 애도하는 어머니

▲죄책감 삼부작의 마지막 작품, 더 웨이크

앞의 두 작품, 레플리카와 리갈 던전에서는 개인의 사생활이 사라지고 모든 것을 감시당하는 사회의 무서움과 법 집행 과정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이해관계와 죄책감에 대해 이야기했다. 덕분에 당연히 세 번째 죄책감 시리즈 역시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예상은 뒤엎어진다. 프로그램과 스마트폰이라는 작은 기계의 단면으로 사회에 대해 이야기하던 SOMI는 아예 가장 작은 곳으로 눈을 돌려버린다. ‘더 웨이크 : 애도하는 아버지, 애도하는 어머니’는 한 가족의 이야기 그리고 한 남자에 대한 이야기이다.

▲하나하나 맞춰지는 사진들과 함께 플레이어는 한 사람의 인생과 그 삶 속의 감정들을 겪을 수 있다

더 웨이크는 암호를 해독하여 한 남자의 일기를 해금하는 일종의 퍼즐 게임이다. 변조된 알파벳으로 제작된 암호의 규칙을 찾아내고 그에 맞춰 철자를 재배열한다. 그렇게 한 장 한 장 여는 일기 속에는 일기의 주인이 겪은 유년시절의 회고록부터 어른이 되고, 한 가정의 가장이 되며, 그가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쳤던 것들, 지키려 했던 것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더 웨이크는 이전 작들에 비해 얼핏 보면 ‘죄책감’이란 단어와의 연관성을 찾기 쉽지 않다. 하지만 1~2시간 남짓한 짧은 플레이타임을 모두 겪고 모든 페이지를 읽어냈다면, 페이지를 열 때마다 나타나 마음속에 한숨과 저릿함의 상흔을 남기는 사진들을 만났다면 제작자가 왜 이 작품을 죄책감 3부작으로 묶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무거운 주제들을 가지고 있는 콘텐츠는 어렵다. 이를 단순하고 접근성 쉽게 풀어내는 방법도 있지만 어려운 그대로 놔두는 방법도 있다. 그리고 개발자 SOMI의 게임들은 이 가운데를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한다. 그가 만들어내는 게임이 잔혹하지만 아름다운 이유는 그가 만드는 것이 게임이기 때문이다. SOMI는 앞을 봐야 하는 게임에선 선택권을 플레이어의 손에 쥐어준다. 레플리카와 리갈 던전이 그러하다. 그가 준비하는 것은 플레이어의 선택이 가져올 결과뿐이다. 그렇게 올지도 몰랐던 사회에 대해 이야기한다. 하지만 기억해야 할 과거를 놓치지도 않는다. 더 웨이크에서 그는 한국의 과거 그리고 지금도 찾아볼 수 있는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다. 이전 작들에 비해 스케일은 작아졌지만 섬세함을 잃지 않은 그의 이야기는 ‘자전적 이야기’라는 단어로 끝을 맺으며 굵은 여운을 남긴다. SOMI의 게임은 쉽지 않다. 레플리카와 더 웨이크는 내용물이 무겁고, 리갈 던전은 게임 자체도 난이도가 있는 편이다. 분명히 즐거움만을 위해 플레이할 수 있는 게임은 아니다. 하지만 이렇게 무겁기 때문에 SOMI의 게임은 아름답다. 늘 멋진 게임으로 게이머들을 찾아온 그의 차기작은 어떤 모습일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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