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D부터 9등신까지, 게임 캐릭터의 데포르메

조회수 2020. 7. 8. 08:10 수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게임의 방향성을 말해주는 거울, 캐릭터 그래픽

2020년의 절반이 다 와가는 오늘날엔 수천수백 가지 종류의 게임이 있고 이 게임들은 매우 다양한 장르로 분류된다. 한국에선 가장 대중적인 RPG를 시작으로 문명으로 대표되는 시뮬레이션, 배틀 그라운드가 표방하는 배틀 로얄, PC방이라는 든든한 아군을 끼고 지금까지 장수하고 있는 FPS 서든어택 등 하나하나 나열하기에도 너무 많은 게임이 있다. 하지만 이런 게임의 장르만큼이나 다양한 것이 바로 게임 그래픽이다. 게임 개발자 사이에서는 이런 말이 있다. 그래픽은 게임을 시작하게 하고, 프로그래밍은 게임을 존재할 수 있게 하며, 기획은 게임에 돈을 쓰게 한다고. 그만큼 게임 그래픽은 게이머들을 게임 속으로 끌어들이는 세이렌인 동시에 그 게임을 거부하게 만드는 진입 장벽이기도 하다.


하지만 눈에 보이기 때문에 가장 쉽다고 느껴서 그런 걸까? 그래픽만큼 구체적으로 구분하게 만드는 기준을 세우기 어려운 것도 없다. 게임을 고를 땐 단순하게 ‘실사에 가까운 그래픽이 좋다’라든가 ‘애니메이션 같은 그래픽이 좋다’ 정도의 생각은 하지만 이런 요소들이 얼마나 게임에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해선 사실 굳이 생각해야 하나 싶기도 하고 머리도 복잡하다. 게임의 분위기를 결정짓는 요소에는 뭐가 있을까? 색감부터 시대 고증 등 아주 다양한 기준이 있지만 이번에 다뤄보고자 하는 것은 늘 가장 플레이어들이 집중해서 보게 되는 ‘캐릭터’, 그중에서도 인물의 스타일을 정하는 기준인 ‘데포르메’에 대해서이다.


데포르메가 뭐지?

▲의도적으로 비율을 무시한 유명한 예,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데포르메는 미술용어로, 대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지 않고 변형하거나 축소, 왜곡을 가해서 표현하는 기법이다. 데포르메 기법은 미술사에서는 굉장히 오래된 기법이다. 사람의 눈은 현실을 왜곡해서 바라보고 기억하기 때문에 대상을 묘사할 때 개인의 주관적 해석이 조금이나마 들어가기 마련이다. 사물이나 동식물에 대해서도 데포르메는 적용되어 왔지만, 가장 두드러지는 데포르메의 대상은 인간이다. 인류사의 여러 예술작품을 봐도 그 당시의 가치관에 따라, 또는 그 작품이 표현하고자 하는 가치에 따라 수많은 왜곡이 적용된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로스트아크와 블레이드 앤 소울

▲거의 미용목적의 가벼운 과장만 들어간 로스트 아크의 데포르메

그렇다면 게임 속에서 데포르메는 어떻게 표현될까? 이는 그 게임이 어떤 스타일을 지향하느냐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성인을 대상으로 한 게임이고, 스타일리시한 액션을 지향한다는 점에선 같은 방향인 것 같지만, 쿼터뷰를 통해 더 화려한 연출과 다인 전투 및 보스 레이드에 주목한 로스트 아크와 화려한 무공을 이용해 시원시원하고 박진감 넘치는 1:1 전투와 소수인원 파티를 지향하는 블레이드 앤 소울은 좋은 예시이다. 비율 자체만 따졌을 때 두 게임은 일반적인 인간에 비해 더 길쭉길쭉한 인체비율을 자랑한다. 이는 플레이어들에게 캐릭터의 신체에서 오는 동작의 화려함을 어필하기에 유용하다.

▲시원시원함을 위해 인체비율을 과장한 블레이드 앤 소울의 데포르메

하지만 로스트 아크는 ‘조금 더 길 뿐’이다. 로스트 아크의 캐릭터 체형은 TV나 잡지 화보 속에서 찾아볼 수 있는 모델들의 체형과 닮았다. 쿼터뷰라는 카메라 시점의 특성상 플레이어는 늘 캐릭터를 살짝 꺾인 각도로 위에서 보게 된다. 유저는 늘 캐릭터를 작게 보기 때문에 캐릭터의 팔다리가 조금 더 긴 것보다 더 화려한 이펙트를 보여주는 쪽이 더 유저의 전투 경험에 유리하다. 하지만 블레이드 앤 소울의 카메라는 로스트 아크보다 가깝다. 아무리 멀어도 캐릭터의 행동범위는 카메라 시야의 1/9 정도를 차지한다. 물론 유명한 게임 원화가 김형태의 일러스트 화풍을 가져오겠다는 의도도 있었겠지만 일반적인 신체비율을 무시하고 더 길쭉하게 뽑힌 블레이드 앤 소울 캐릭터의 팔다리는 캐릭터 자체가 취하는 ‘동작’을 시원시원하게 보여주기 좋다.


던전 앤 파이터와 마비노기

▲직업군의 특성에 따라 실루엣만으로 구분 가능한 형태를 만든 던전 앤 파이터의 데포르메

로스트 아크와 블레이드 앤 소울을 통해 길쭉한 데포르메에 대해 이야기해 보았다면 이번엔 좀 더 단순화된 데포르메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흔히 실사에 가깝거나 실사를 기반으로 신체 비율이 과장된 그래픽의 타깃은 성인들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데포르메가 좀 더 과감해지면 훨씬 다양한 연령층이 받아들이기 쉬워진다. 캐릭터의 눈이 커지고 청소년을 연상시키는 비율로 몸집이 줄어들거나, 마치 애니메이션처럼 질감과 이미지가 간략화되면 자연스럽게 게임과 현실 사이에는 벽이 생긴다. 이 벽은 경험에서 오는 폭력성과 공감성을 완화한다. 덕분에 잔인한 묘사는 싫어하지만 어느 정도 무게가 있는 게임을 원하는 유저층에게도 쉽게 어필이 가능하다.

▲투박하지만 그렇기에 플레이어의 상상을 자극하는 마비노기의 데포르메

이런 데포르메 그래픽을 가진 게임들의 대표주자로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건 넥슨을 지금까지 먹여 살리는 거대 타이틀 ‘던전 앤 파이터’와 정신 차리면 돌아가게 된다는 마성의 캐릭터 채팅 게임(?) ‘마비노기’가 있다. 던전 앤 파이터는 플레이어블 캐릭터 전원의 실루엣에 명확한 차이를 가진 걸로 유명하다. 또한 전반적으로 마르고 길쭉길쭉한 캐릭터들의 신체형태는 동작과 이펙트를 과장해서 보여주기에 적합하다. 마비노기의 경우 ‘반턴제’라는 매우 독특한 전투 시스템을 사용하며 전반적인 액션이 상당히 투박하다. 이런 마비노기의 투박한 게임 그래픽은 마치 한 캐릭터에게 오랫동안 정성을 쏟아부으며 세계 최고의 만능 잡캐(?)로 키우는 것이 목표인 이 게임의 지향성과 닮았다. 단순화된 데포르메가 유저에게 불러일으키는 상상은 보이는 것들이 단순화되었기 때문에 비로소 자유롭다.


메이플스토리와 크레이지 아케이드

▲특유의 귀여움으로 아직까지도 대한민국 최고의 ‘인싸겜’으로 군림 중인 메이플 스토리

SD, 슈퍼 데포르메라는 용어가 있다. 슈퍼 데포르메는 과연 몸이 머리를 지탱할 수 있을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얼굴이 커다랗게 표현된, 1.5~3등신으로 과장된 데포르메 형태를 일컫는 말이다. 설명만 들어서는 이런 그래픽을 왜 만드나 싶어진다. 하지만 SD는 가장 대중성이 확실한 데포르메 형태이기도 하다. SD비율은 영유아와 닮았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아기를 보고 귀엽다고 느끼기 때문에 SD를 보고 자연스럽게 귀여움을 느낀다. 성인의 얼굴에 아기의 몸을 달아 놓은 게 아니라 아기같이 작은 코와 입, 그리고 큰 눈을 갖고 있는 상태로 작은 몸을 붙여 놓았을 때 나오는 모습은 남녀노소 누가 봐도 귀엽다. 동시에 가지는 단점이라면 그 귀여움 덕분에 게임 자체에 큰 무게를 달 긴 어렵다는 것이다. SD 그래픽을 가진 게임은 대부분 전체 이용가 판정을 받으며 연령대를 타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모바일 카트라이더의 선전으로 아직 현역임을 당당히 과시한 BnB

SD를 사용한 게임의 대표주자는 단연 ‘메이플 스토리’와 ‘BnB’이다. 메이플 스토리는 올해로 17주년을 맞는 장수 게임이다. 처음 메이플 스토리가 세상에 공개되었을 때 게임 업계는 메이플 스토리를 비웃었다고 한다. 이렇게 볼품없는 그래픽의 게임이 성공할 리 없다고 말이다. 하지만 메이플 스토리는 1.5등신의 귀여운 그래픽이 가진 무시무시한 대중성을 앞세워 지금까지도 넥슨의 간판게임으로 군림하고 있다. 또한 넥슨의 또 다른 얼굴마담 BnB의 그래픽 역시 SD이다. 국내 캐릭터 IP 중에서도 대단히 장수하고 있는 넥슨의 BnB는 크레이지 아케이드를 필두로 카트라이더가 대 히트를 치며 버블파이터를 통해 초등학생들의 마음을 또 한 번 사로잡았다. BnB의 캐릭터들은 수많은 캐릭터상품과 아동대상 서적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BnB의 캐릭터가 캐릭터 불모지인 대한민국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단연 SD비율을 이용한 아이코닉한 디자인 덕분이다.


그래픽은 게임의 방향성을 말하는 거울

▲그래픽은 게임 그 자체를 대변하기도 한다

게임 그래픽은 게임의 얼굴일 뿐 게임성 그 자체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오해를 사곤 한다. 마치 사람의 얼굴은 그저 껍데기일 뿐이고 잘생긴 사람도 알맹이는 잘생기지 않을 수도 있다는 주장과 같다. 하지만 정말로 그래픽은 게임의 얼굴이라서 그래픽만 봐도 게임의 성향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 눈가와 입가에 주름이 있는 사람일수록 잘 웃기 때문에 성격이 서글서글하고 사회성이 좋다는 것을 어림짐작할 수 있듯이 SD를 사용하는 게임일수록 대상 연령층이 낮고 더 많은 대중에게 다가가려는 게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오늘 당신이 마주한 게임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었는가? 왜 그런 얼굴을 하고 있었는가? 꽤 재밌는 상상을 해볼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의 추천 동영상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