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강국 한국에서는 왜 GOTY수상작이 안 나오는 걸까?

조회수 2020. 5. 18. 08:2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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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GOTY수상작이 안나오는 이유

매해 몇몇 거대 게임사들이 전 세계적으로 극찬을 받는 게임을 출시하면 자연스럽게 나오는 이야기가 있다. “왜 한국은 이런 게임을 못 만들까?”이다. 2017년에는 젤다의 전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가, 2018년에는 몬스터 헌터 월드와 갓 오브 워가 출시되었을 때 이런 이야기가 특히나 두드러졌다. 올해는 아무래도 동물의 숲이 이 영예로운 “한국은 왜?” 담론의 핵심을 담당하고 있는 것 같다.


이쯤 되면 정말로 궁금해진다. 왜 한국에서는 이런 게임을 만들지 못할까? 단순히 북미와 일본이 좋은 기술력을 가지고 있어서? 그렇다고 하기엔 무려 250개가 넘는 GOTY를 싹 쓸어간 2015년의 ‘위쳐 더 와일드 헌트’의 개발사인 ‘CD 프로젝트 레드’는 폴란드에 위치한 게임 회사이고 ‘어쌔신 크리드’를 개발했고 전 세계적인 애증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유비 소프트’의 본사는 프랑스이다. 사실 모바일이라는 기기 환경에서 한계의 성능을 뽐내는 리니지2나 V4를 개발해내는 한국 개발사들을 보면 단순히 실력 문제는 아닐지도 모른다는 합리적 의심이 들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대체 무엇이 문제인 걸까? 크게 두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애뮬레이터와 복제칩이 쌓아올린 불신의 산

▲놀랍게도 2000년대 초까지는 박스형 패키지를 찾아보기 쉬웠다

놀랍게도 게임산업 초기에는 국산 패키지 게임이 그렇게 드물지 않았다. 대형마트에 가면 어디서나 게임코너를 찾을 수 있었다. 꽤나 큰 박스 안에 가이드북과 게임 CD가 옹기종기 담긴 패키지도 찾아볼 수 있었다. 플레이스테이션2와 닌텐도DS의 초기 시절 한국은 나쁘지 않은 시장이었다. 그 많은 포켓몬 시리즈를 꾸준히 플레이해 온 골수 유저는 생각보다 흔하며 플레이 스테이션2 시절의 명작을 기억하는 사람들도 꽤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점점 한국 게임시장에서 패키지 게임이 차지하는 분량은 줄어만 갔고 결과적으로 스팀이 대중화되기 직전의 한국 시장에선 패키지 게임은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유니콘 같은 물건이 되었다.

▲누구나 한 번쯤 플레이해 봤을 포켓몬스터 금, 은이지만 정당한 돈을 지불하고 게임기로 게임을 한 플레이어는 10%도 안 될 것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답은 간단하다. P2P사이트와 에뮬레이터, 그리고 게임 복제 칩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서 게임 좀 해봤다는 사람이라면 ‘데몬’이라던가 ‘CD스페이스’라는 이름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컴퓨터 내에서 CD롬 역할을 하는 프로그램으로, CD를 넣지 않아도 이 프로그램에 CD데이터를 가진 확장자 파일을 집어넣으면 컴퓨터에 CD를 넣은 것처럼 프로그램을 구동한다. 그리고 이 가상CD롬에 들어가는 파일은 대부분 P2P사이트나 공유 카페, 블로그 등에서 불법으로 다운로드 받은 에뮬레이터용 파일이다.

▲국산 공포게임 명작이라 불리는 화이트데이. 불법 복제본을 너무나 손쉽게 구할 수 있던 게임이란 사실에 동의하지 않는 게이머는 없을 것이다

패키지 게임은 아무리 저렴해도 CD 한 장에 최소 만원 초반대의 돈을 주고 샀어야 했다. 하지만 한국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가, 놀이와 취미에는 돈을 쓰기 싫어한다. 이런 심리를 포착한 일부 사람들은 CD를 구매한 후 CD 안에 들어있는 파일을 복사해 P2P사이트에서 포인트를 받고 팔기 시작하거나 본인들이 좋은 일을 한다고 생각하며 푸르나 같은 프로그램에 업로드한다. 덕분에 이 파일을 다운받아 게임을 플레이하는 사람들은 돈 한 푼 안 쓰고도 게임을 즐길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그 게임을 개발하기 위해 수천수억을 들였던 개발자들은 주머니에 플레이어 수만큼의 돈이 들어오지 않게 된다. 회사는 망하고 패키지 게임은 돈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다. 회사는 돈을 벌기 위해 존재하고 회사의 입장에서 돈이 되지 않는 게임은 개발할 이유가 없다.


정직함은 보답받지 못한다

▲수많은 온라인 게임들이 자신들만의 개성을 어필하던 시대가 있었다

패키지 게임 시장이 불법 다운로드로 점철될수록 게임업계는 온라인 게임으로 급격하게 기울어갔다. 더 이상 악튜러스나 창세기전 같은 판타지 대작은 나오지 않으며 화이트데이 같은 강한 장르성을 어필하는 게임도, 쿠키샵, 코코룩, 써니하우스 등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즐겁게 할 수 있는 아기자기하고 사랑스러운 게임도 설 자리를 잃었다. 하지만 이런 게임이 가지고 있던 걸출한 게임성이 어디로 간 건 아니었다. 2000년대 중 후반까지만 해도 좋은 스토리와 게임성을 가진 온라인게임이 있었다.

▲잘 짜인 스토리와 던전 콘셉트, 여러 가지 기믹을 이용한 설계로 큰 호평을 받았던 초기 던전앤파이터의 베히모스 던전

대표적으로 2000년대 중후반 서비스를 시작한 던전앤파이터가 있다. 던전앤파이터의 초기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있어 던전앤파이터는 상당히 좋은 게임이었을 것이다. 각 지역별로 확고한 성격을 갖고 짜인 던전의 구조와 빽빽하게 맞추지 않아도 그럭저럭 중 후반 던전까진 즐겁게 플레이할 수 있었던, 나름 합리적인 모양새를 갖추고 있던 던전앤파이터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하지만 과거 던전앤파이터의 평이 좋았다고 해서 개발사인 네오플이 과거를 그리워할까? 설마. 개발사는 유저 평이 좋았던 시절을 그리워하지 않는다. 그 게임의 매출이 가장 높았던 시기만을 그리워할 뿐이다.

▲패키지 값을 내기 싫다는 이유로 블리자드 홈페이지를 향한 무료화의 협박(?)이 즐비했던 오버워치

게임 회사 안에서는 이런 말이 있다. 게임을 잘 만들어 봤자 돈이 되지 않는다. 유저가 돈을 쓰게 만드는 게임이 잘 만든 게임이다. 잘 만든 게임이 돈이 된다는 공식은 패키지 시장에서나 통하는 논리이다. 덕분에 한국의 게임회사는 게임 자체의 재미요소를 고민할 시간에 게임의 비즈니스 모델을 고민한다. 전 세계적으로 많은 돈을 벌어들인 온라인 게임, 오버워치나 LOL의 수익 대부분이 패키지 자체의 구매와 스킨에서 나온다. 그만큼 게임을 유지시켜주는 유저층이 있다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한국은 패키지 수익을 견인해 줄 시장도 없을뿐더러 그나마 있는 유저층조차도 돈을 내고 게임을 즐기는 걸 싫어한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플레이어의 성장을 위해, 예쁜 모습을 위해 가랑비에 옷 젖듯 조금씩 소액을 결재하는 건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한다. 결과적으로 패키지 값의 수십 배의 돈을 쓰고 있어도 눈치채지 못한다.


관광지의 갈매기는 사냥을 하지 않는다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규제가 이루어진다고 하지만, 아직 갈 길은 멀어 보인다
뽑기. 가장 최악의 BM이자 최고 효율을 뽑는 BM이라고 이야기한다. 캐릭터 뽑기 장비 뽑기 스킨 뽑기 등등 다양한 뽑기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노리는 가장 좋은 캐릭터, 장비, 스킨이 등장할 확률은 아무리 높아봐야 3%를 넘지 않는다. 일정 횟수 이상 뽑기를 시행하면 무조건 원하는 걸 얻을 수 있다고 한들, 그 횟수를 채우기 위해 필요한 현금은 50만 원 이상이다. 하지만 이런 뽑기에 유저들은 아무 생각 없이 지갑을 연다. 캐릭터 하나를 만들어내는 데 드는 돈과 노력, 시간보다 제대로 된 좋은 게임을 만드는데 드는 시간이 더 많음에도 잘 만든 게임에 6만 원은 비싸다고 생각하면서 눈 깜짝할 사이 뽑기에 50만 원을 사용해버리는 유저는 널리고 널렸다.
▲시장의 태도가 바뀌어야 좋은 작품이 나온다
과연 왜 대한민국에서는 GOTY게임이 나오지 않는 걸까? 단순히 게임회사가 돈에 눈이 멀어서? 유저들을 지갑으로 밖에 보지 않아서? 하지만 한 번만 더 생각해보자. 우리는 영화 티켓이 비싸다고 화를 내면서도 2시간에 만 원씩 돈을 지불한다. 기다리기 귀찮아 웹툰을 유료 결재해 보고, 소설책을 사 모으거나 전자책을 대여한다. 6만 원짜리 AAA급 게임의 최소 플레이 시간은 20시간 이상이다. 멀티플레이를 권장하는 게임의 경우는 더하다. 과연 엔딩까지 약 20시간 동안 즐길 거리를 제공하는 ‘잘 만든 패키지 게임’은 비싼 걸까? 그전에 우리는 게임을 과연 영화나 소설, 웹툰 같은 하나의 작품으로 대한 적이 있는지부터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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