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디렉터 '요코오 타로'의 기괴하고 아름다운 세계관

조회수 2020. 5. 6. 08:2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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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코오 타로의 세계관

바로크 진주를 본 적 있는가? 여성들에겐 액세서리로 굉장히 익숙한 보석이지만 아마 남성들에겐 진주가 다 똑같은 진주지, 바로크 진주라고 뭐가 다른가? 하는 생각을 들게 만들지도 모르겠다. 바로크 진주는 뒤틀려 있다. 일반적인 진주처럼 동그란 모양이 아니라 여기저기 찌그러져 있다. 진주의 하얀색과 어우러지면 마치 뼛조각 같다는 기괴한 감상이 나오기도 한다. 소위 말하는 사치와 향락 그리고 중앙집권의 시대였던 ‘바로크 시대’가 바로 이 바로크 진주에서 유래된 말이다.


하지만 바로크 진주의 ‘찌그러진 형태’에서만 나오는 아름다움이 있다. 굴곡진 표면에서 흐르는 오로라를 닮은 빛깔과 찌그러졌기 때문에 뒤틀린 빛을 내는 바로크 진주는 옛날엔 비하를 위한 이름이었지만 지금은 그만의 아름다움을 찾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오늘날, 게임에서도 이런 바로크 진주와 비슷한, 뒤틀렸지만 뒤틀렸기에 아름다운 세계를 그려내는 개발자가 있다. 바로 요코오 타로. 한국 게이머들에겐 ‘니어 오토마타’라는 게임의 이름으로 더 유명한 이 프로듀서가 만들어내는 기묘하고 뒤틀린 마치 바로크 진주 같은 세계에 대해 이야기해본다.


디렉터 요코오 타로

▲드래그 온 드라군과 니어 시리즈의 디렉터, 요코오 타로

게임 업계에서 그는 ‘아티스트’에서 ‘디렉터’가 된 나름 특이한 케이스이다. 고베 미술 공과대학에서 시각 디자인을 전공한 그의 전문분야는 원래 CG였고, 그의 첫 행보도 당시 가장 첨단의 CG 랜더링 기술을 보유하고 있던 ‘남코’였다. 남코에서 오락실 게임에 큰 야망을 갖고 일했던 요코오 타로지만, 플레이스테이션 2의 발매로 남코에선 첨단을 주도하는 것을 포기해버렸다. 이에 회의감을 느낀 그는 그 플레이스테이션을 개발한 소니로 이적하지만 결과적으로 소니에서도 정리해고를 당한다. 하지만 이는 캐비어의 큰 그림이었는데, 그가 소니에서 쫓겨나자마자 바로 캐비어에서 그를 캐스팅하고 싶다고 연락이 온 것. 그리고 그가 캐비어에서 개발한 게임이 바로 ‘드래그 온 드라군’이다.


요코오 타로의 ‘악의’

▲요코오 타로식 기괴함의 시작, 드래그 온 드라군

드래그 온 드라군은 요코오 타로란 인물의 뒤틀림을 처음으로 세상에 내놓는 만행(?)을 저지른 게임이다. 요코오 타로의 게임들이 갖는 공통적인 특징인 ‘무기 수집으로 인한 텍스트 해금’과 ‘알파벳 엔딩’ 그리고 ‘회차 반복’의 시작이기도 하다. 정말로 알파벳 숫자만큼의 엔딩이 존재하며 메인 엔딩은 일반적으로 A~D, 또는 E까지의 엔딩이 차지하지만 진 엔딩에 해당하는 D 또는 E엔딩을 보기 위해선 모든 무기의 텍스트를 해금해야 하는 악랄한 조건이 달려있다. 이는 니어 오토마타에 들어서 조금 완화되긴 하였다. 또한 요코오 타로의 게임에서 ‘회차 반복’은 일반적인 개념의 회차 반복과 조금 다르다.

▲플레이어도, 싸워야 하는 적도 여성캐릭터로 설정하여 비주얼은 전작보다 라이트해졌지만 기괴함은 어디 가질 않는 드래그 온 드라군 3

처음으로 게임의 스토리를 전부 다 보면 엔딩 크레딧과 함께 어지간해선 A엔딩을 보거나, 무조건 A엔딩으로 인도된다. 하지만 회차로 넘어갔을 때 온전한 ‘다음 회차’가 찾아오지 않는다. 소소한 텍스트가 바뀌며 다음 엔딩으로 갈 수 있는 조건이 해금되거나, 아예 내용이 바뀌거나, 플레이어 캐릭터가 바뀌어 버린다. 이렇게 엔딩을 볼수록 다음 메인스토리가 해금되는 형식을 취하며 마지막 메인엔딩을 봐야만 온전한 1회차 플레이가 성립한다. 또한 상황에 따라 완전히 흑백으로 변해버리는 화면, 그리고 부정적인 감정만을 극대화하기 위한 악의적인 연출과 디자인 역시 요코오 타로식 기괴함이다.

▲그의 게임 속에서, 인물들은 자신의 행동에 대해 처절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이 요코오 타로식 ‘악의적임’의 결정체는 바로 설정과 스토리에서 나온다. 그의 작품 전반에서 그의 캐릭터성을 공고히 하는 역할을 한다. 요코오 타로식 악의를 한마디로 함축하자면 ‘무지에 의한 참극’이다. 캐릭터는 반성을 위해, 큰 참사를 막기 위해 또는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 어떤 행동을 저지른다. 하지만 이 캐릭터의 행동은 이 전의 상황이 차라리 나았다고 생각할 정도로 큰 재앙의 씨앗이 된다. 그나마 인물의 선의와 신념이 끝까지 통할 때도 있지만, 결국 인물이 아무리 거대한 희생을 치러도 모든 것을 완전히 없었던 일로 만들 수 없으며 세계는 계속 멸망을 향해 나아간다. 즉 그의 스토리텔링은 한결같이 ‘멸망으로 질주하는 이야기’와 ‘멸망으로 질주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파멸과 부도덕’으로 점철되어 있다.

▲일부 게이머들에겐 수작으로 기억되지만 정신을 무너트리는 요코오 타로식 혹독함을 선사하는 ‘니어 레플리칸트'

이런 꿈도 희망도 없는, 분명 내 돈 주고 즐겁기 위해 게임을 샀는데 사실 내가 산 건 게임이 아니라 정신병인 것 같은 요코오 타로의 게임 스타일을 꾸준히 좋아해 온 팬들도 있다. 인간은 망가지고 뒤틀린 것, 온통 망가지고 뒤틀린 체르노빌 원전의 숲에서도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존재이기 때문일까? 하지만 동시에 비판도 있다. 출신 자체가 아티스트였던 요코오 타로는 본질적으로 ‘기획’과는 어느 정도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게임의 콘셉트가 가야 할 ‘방향성’은 제시할 수 있어도 플레이를 설계하는 ‘방향성’을 제시하는 데는 큰 재능이 없었던 것. 덕분에 드래그 온 드라군, 그리고 그에 이어지는 니어 : 레플리칸트는 콘셉트와 연출 등 스토리적 부분에서는 꽤나 좋은 평을 들었고 마니아층도 뚜렷하지만 대중화에는 실패했으며 게임으로서는 미완성품이라는 평가도 받곤 했다.


그러나 아름다운 이유 ‘니어 : 오토마타’

▲오로지 한 장의 설정화와 매우 짧은 플레이 영상만으로 전 세계 게임계를 들썩이게 만들었던 주인공 2B

2015년 처음 제작이 발표된 니어 오토마타를 한 번에 커뮤니티의 중심지로 이끌어 낸 한 장의 사진이 있다. 바로 니어 오토마타의 주인공인 ‘2B’의 설정화였다. 일본 게임업계에서도 수많은 아티스트들에게 큰 영감을 주는 거장 ‘요시다 아키히코’의 디자인으로 제작된 2B는 벨벳으로 만들어진 아름다운 고딕스타일 원피스와 흑백의 컬러링, 눈을 가려 굉장히 무기질적임이 돋보이는 디자인과 특유의 레오타드가 인상적인 캐릭터였다. 그리고 2017년 공개된 니어 : 오토마타는 화제가 된 2B의 미려함만이 눈에 띄는 게임은 아니었다. 요코오 타로의 부족한 게임성은 불세출의 액션게임 ‘베요네타 시리즈’를 만들었던 플래티넘 게임즈가 채웠다. 동시에 기괴하고 뒤틀린 요코오 타로의 성향은 그대로 가져가되, 어느 정도 힘을 뺐다.

▲니어 오토마타를 설명하는데 ‘놀이공원’보다 더 완벽한 장소는 없을 것이다

니어 : 오토마타를 한 마디로 설명하는 말은 ‘우화’이다. 어떤 대상을 우회적으로 빗대고 돌려 설명하는 ‘우화’라는 이야기의 성격과 맞게, 니어 오토마타는 인간이 아닌 존재들인 ‘기계’들이 인간을 흉내 내는 게임이다. 인간에 의해, 또는 외계 생명체에 의해 만들어진 기계들이 인간성을 흉내 낸다. 하지만 이는 결국 ‘흉내’이기 때문에 본질이 비어 있는 ‘껍데기’에 불과하다. 이 껍데기 속을 채우는 알맹이조차 결국 인간을 모방한다. 전투를 위해 만들어진 안드로이드 주제에 제대로 된 감정을 탑재하고 있으며 호기심과 다른 존재에 대한 긍정적 감정은 파멸로 이어진다. 하지만 이런 니어 : 오토마타가 아름다울 수 있는 이유는 모든 것을 파멸로 이끈 인간성이 결국 작은 기적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다음 행선지

▲새로 공개된 니어 시리즈의 신작, 니어 리[인]카네이션

2020년 4월, 니어 : 오토마타의 총 판매량이 400만 장을 넘기며 구작인 ‘니어 레플리칸트’의 리메이크와 니어 세계관을 공유하는 신작 모바일 게임 ‘니어 리[인]카네이션’이 공개되었다. 드래그 온 드라군 2,3편과 니어 레플리칸트의 판매 부진을 니어 오토마타 한편으로 단번에 만회한 것. 요코오 타로는 본인의 게임개발인생 2막이 열렸다고 웃고 있으니, 패키지 게임에 있어 판매량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는 결과이다. 패키지 게임이 아닌 모바일 게임으로 만들어진다는 차기작 소식에 대해 실망한 팬들도 많지만 어쨌거나 모바일게임은 돈이 되고, 모바일 게임시장은 요코오 타로의 거대한 기괴함(?)을 담아 내기엔 너무 대중적인 시장이니 모바일로 돈을 벌어 또다시 패키지 게임으로서 니어의 다음작을 준비하지 않을까 하는 즐거운 기대도 해본다. 모든 콘텐츠는 도태되지 않기 위해 다양성을 필요로 한다. 클리셰는 시도한 사람이 있기 때문에, 그리고 그것이 대중들에게 받아졌기 때문에 만들어진 ‘다양성의 산물’이다. 뻔하지 않은 것을 만들고 싶다는 그의 다음 행보는 어디로 이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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