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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망성쇠 끝에 환골탈태, '소니' 원천기술로 부활하나?

조회수 2018. 10. 24. 08:1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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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상징하는 기업으로 꼽히는 소니는 흥망성쇠의 끝에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금 재기에 성공한 환골탈태의 대표적인 사례로 회자되고 있다.
▲일본을 상징하는, 다시금 도약을 준비하는 기업

일본의 경제성장을 상징하는 기업이자 현재의 일본을 대표하는 글로벌 기업인 소니주식회사(Sony Corporation, 이하 소니)는 21세기에 들어서도 과거의 영광에 붙들려 혁신을 이루지 못하고 쇠락해 가는 기업의 상징으로도 꼽힌다. ‘워크맨’, ‘플레이스테이션’, ‘스파이더맨’ 등 이름만 들어도 전 세계에서 통용되는 브랜드를 거느리고 있는 소니는 세계 전자산업의 정점에 서 있다가, 현재의 시점에서는 삼성전자에 추월당한 이후 재도약에 연이어 실패하고 있는 굴곡이 심한 기업으로 이야기된다.


20세기의 일본을 대표하는 기업, 소니

▲​과거의 일본의 부흥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기업, 소니

“실수를 두려워하지 말라. 그러나 똑같은 실수를 다시 하지 않도록 하라."라는 말로 유명한 전자업계의 제왕이자 타임지가 선정한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도 선정된 바 있는 모리타 아키오, 그리고 일본을 대표하는 전기 기술자이자 육아 교육의 선구자인 이부카 마사루. 이 두 인물은 1946년 전쟁으로 무너진 도쿄 니혼바시 백화점에서 라디오 수리점 ‘도쿄통신공업주식회사’를 설립하게 된다. 설립 당시 20명도 채 되지 않는 직원을 거느린 이 회사의 주력 사업은 라디오 방송을 들을 수 있는 단파라디오를 패전 후 정상화시키는 복구 수리 작업이었다. 단순한 수리 작업이 아니라 회사의 이름을 걸고 새로운 제품을 내놓았던 것은 1940년대 말로, 당시 생산에 착수한 제품은 전기밥통이었다.


초기 사업을 통해 어느 정도의 사업 확장의 여력을 확보한 이 회사는 미국에서 트랜지스터가 개발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특허료를 지불한 후 포켓형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개발해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 벨연구소가 개발한 트랜지스터 기술은 미국에서는 군사용으로 활용되고 있었지만, 이것을 회사의 초기 창업자들은 통신에 응용하고자 했으며 기어이 상업화에 성공을 거두었던 것이다.

▲​사명에서부터 기업의 시작까지, 소니는 음향산업과 강한 연으로 맺어져 있다

트랜지스터 라디오의 개발로 세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이 회사의 사명은 세계 시장을 무대로 사업을 펼치기에는 부적절한 것이었다. 이에 1956년 사명을 변경하게 되는데, 사운드와 소닉의 라틴어인 ‘Sonus’와 ‘Sonny’를 합성한 새로운 단어 ‘Sony’를 회사명으로 삼고 시판되는 제품 모두에 사명을 브랜드로 넣기로 했다. 이들의 사명 선정은 간결하면서도 전 세계 어디에서나 비슷한 방식으로 읽을 수 있는 새로운 단어라는 측면에서 훌륭한 브랜드 마케팅의 사례로 손꼽히고 있다. 이후 소니는 미국으로 진출해 성공을 거두고 1961년에는 세계 최초로 비디오 테이프 레코더를, 1964년에는 세계 최초 가정용 올 트랜지스터 VTR을, 1967년에는 트랜지스터 계산기를 발표하며 성공을 이어가게 된다. 아울러 1968년 공개한 CRT 기술인 트리니트론은 2008년 3월 단종될 때까지 약 2억 8천만 대의 판매고를 기록하며, 전 세계 CRT 시장을 석권하기도 했다.


음향, 엔터테인먼트, 전자산업의 상징

▲​시대를 풍미한, 음악 청취의 문화를 바꾼 소니의 워크맨

소니를 상징하는 가장 유명한 제품군은 ‘워크맨’일 것이다. 헤드폰으로 휴대하며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인 ‘워크맨(WALKMAN)’을 소니가 내놓은 것은 1979년이었다. 이들이 내놓은 워크맨 제품군은 그야말로 유례없는 큰 성공을 거둬, 전 세계인의 음악 청취 문화 자체를 바꿔놓았으며 1995년에 생산 누계 1억 5천만 대에 도달하게 된다. 한편 이들은 필립스와 협력해 오디오의 디지털화를 연구하며 CD를 개발하고, 1984년에는 휴대용 CD 플레이어를 출시해 역시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


음향 쪽으로 영향력을 넓혀가던 소니는 1987년 기술 개발과 함께 콘텐츠의 발굴에 힘쓰겠다는 기조 하에 콘텐츠 미디어에 대한 투자에 매진하기 시작했다. 1988년에는 CBS레코드를 인수해 소니 뮤직 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하고, 1989년에는 컬럼비아픽처스를 인수해 소니 픽처스 엔터테인먼트를 설립했다. 현재 소니 뮤직 엔터테인먼트는 세계 3대 레이블로 꼽히며 저스틴 팀버레이크, 브리트니 스피어스,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마이클 잭슨, 엘비스 프레슬리 등 다수의 전설적인 아티스트의 저작권을 관리하고 있으며, 소니 픽처스 엔터테인먼트는 스파이더맨, 맨인블랙 등 유명 시리즈의 IP를 관리하고 또 신작 영화를 쏟아내고 있다. 2014년 조사자료에 따르면 이미 서구권에서는 소니를 전자회사보다는 콘텐츠 배급사로 주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소니픽처스가 영화화 판권을 보유하고 있기에, 마블 영화에 한동안 스파이더맨이 등장하지 못했다

워크맨, 트리니트론이라는 쌍두마차를 기반으로 전자산업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던 소니는 하지만, 아날로그 시대를 넘어 디지털 시대에 접어드는 시대의 변화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게 된다. 1995년 소니는 ‘디지털 드림 키즈’ 전략을 발표하고 콘텐츠와 유통, 기기를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1단계 ‘커넥트’, 소비자들이 소니의 기기 안에서 선순환 구조를 이루는 2단계 ‘시너지’, 전 세계의 가정을 소니 제품으로 하나의 디지털 허브로 만드는 3단계 ‘허브’의 세 가지 구체화 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소니의 제품들이 네트워크를 이루기 위한 전략 실행의 단계에서 독자 규격에 집착하게 되면서, 시장에서 소니가 고립되고 또 점차 쇠락하게 되는 결과를 낳고야 만다. 디지털 드림 키즈 전략은 1단계인 커넥트의 단계에서 실패를 거두고 만 것이다.


디지털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며 경험한 쇠락

▲​하워드 스트링거의 실패를 혹자는 ‘불운’으로 이야기하기도 한다

21세기에 접어들며 전 세계를 호령했던 소니는 고전을 면치 못하는 상황에 빠지게 된다. 특히 그들의 주력 사업이었던 가전 부문에서 어려움이 지속되었는데, 트리니트론의 시대를 지나 플라스마디스플레이패널(PDP) TV에서는 일본의 마쓰시타에 밀려났으며 워크맨 사업은 MP3플레이어의 시대에 접어들며 급속히 하락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여기에 삼성전자의 부흥이 소니에게는 결정타가 되었다. 삼성전자가 액정표시장치(LCD) TV를 비롯한 TV시장에서 소니를 추월했으며, 2006년에는 소니의 텃밭인 북미 시장에서조차 삼성전자에게 패권을 뺏기게 된다.


북미시장에서 추월당한 이후 소니의 가전사업은 줄곧 내리막길을 걸었다. 2005년부터 소니의 경영을 도맡았던 최초의 외국인 CEO 하워드 스트링거가 전자사업을 소홀히 대하고 무리하게 콘텐츠 사업 확장을 도모했던 탓에, 소니의 추락은 한동안 탈출구를 찾지 못했다. ‘푸른 눈의 사무라이’라고 불리던 하워드 스트링거 CEO는 2007년 콘텐츠 사업의 성과와 일부 전자사업 부문의 회복으로 역대 최고 매출을 기록했으나, 이듬해에 세계 금융위기가 겹쳐지며 역대 최악의 위기를 경험하게 된다. 2008년 위기 당시 소니는 연구인력의 감축을 단행했고, 그 결과 그나마 남아있던 소니의 기술력은 말 그대로 증발해 버리고 말았다.

▲​소니의 스마트폰 사업은 곁가지를 쳐내면서 겨우 적자를 면할 수 있었다

2000년대 말부터 시작된 스마트폰 혁명의 시기에서 소니는 다른 휴대폰 제조사들과는 달리 제자리를 찾지 못했으며, 그 여파는 아직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일본의 소니와 스웨덴의 에릭슨이 합작한 소니에릭슨의 제품은 스마트폰 시대에 연이어 실패를 거뒀으며, 2011년 10월부로 에릭슨이 철수해 소니 모바일로 재편한 이후로도 줄곧 어려움을 겪고 있다. 소니 모바일은 2011년 2분기 적자를 기록한 이래 줄곧 적자를 면치 못하다가 제품군을 축소하고 일본 시장에 역량을 집중한 덕에 2016년 겨우 흑자로 전환할 수 있었다.


어려움을 딛고 재기에 성공한 대표적 사례

▲​2018년부터 소니의 경영을 책임지고 있는 요시다 겐이치로 CEO

전자산업에서 소니는 현재 고전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업이 완전히 궤멸해 버린 것은 아니다. 여전히 많은 분야에서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있고 2010년 초부터 영업손실이 극심한 사업분야의 구조조정을 단행해 사업 손실을 축소시켰으며, 플레이스테이션을 비롯한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괄목할 성과를 꾸준히 거둬온 덕이다. 사업성을 따져본 후 비전이 없는 영역은 과감히 포기한 덕에 소니는 오랜 부진의 늪을 딛고 2017년 20년 만에 최고 실적을 기록하며 다시금 부활해 나가고 있다.


소니 부활의 중심에 선 인물로는 2013년 12월 CFO에 취임한 요시다 겐이치로로 꼽힌다. 요시다 겐이치로 CFO는 취임 이후 소니의 대대적인 구조조정에 착수해, 적자가 쌓이고 있던 PC, TV, 스마트폰의 3개 사업을 개혁할 대상으로 지목한 인물이다. 한때는 연 870만 대의 판매고를 올리기도 했던 세계적인 PC 브랜드 ‘바이오(VAIO)’가 매각되고 삼성전자와 맺고 있던 LCD 패널 합작 사업에서 철수했다. 소니는 현재 TV 사업에 있어 판매량을 중시하지 않고 가격대가 높은 제품에 주력하는 형태로 전략을 변경해 운영해 나가고 있다. 스마트폰 사업은 앞서 이야기한 대로 제품군을 축소하고 매출이 줄더라도 수익성을 우선하는 전략을 취했다. 그 결과 소니는 2014년부터 다시금 흑자를 기록할 수 있었다.

▲​소니 실적의 한 부분을 착실하게 책임지고 있는 플레이스테이션 사업

과거의 영광에 집착하다 현재를 잃어버린 기업이라는 측면에서 소니는 노키아와도 많이 비교된다. 하지만 소니는 덩치를 줄이고 전략을 수정하며 역량을 집중하는 형태로 다시금 재기에 성공했다는 면에서 노키아와는 현재 사뭇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현재의 소니는 분명 우리가 알던 과거와는 다른 규모의, 다른 모습을 취하고 있는 기업임은 분명하다. 여전히 일본을 상징하는 기업으로 꼽히는 소니는 흥망성쇠의 끝에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금 재기에 성공한 환골탈태의 대표적인 사례로 회자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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