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규제에 대한 재논의가 필요한 이유

조회수 2018. 7. 23. 08:1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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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라는 이름의 족쇄 하에서만 움직일 수 있는 기업환경
▲ 규제의 족쇄로 고전하는 국내 스타트업

창업 초기의 기술기반 기업을 칭하는 말로 우리는 흔히 ‘스타트업’이란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스타트업이란 말은 전 세계 공통으로 대규모의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기업들이 흔히 할 수 없는, 위험성은 크지만 성공할 경우 높은 기대수익이 예상되는 ‘신기술’과 ‘아이디어’를 현실화하는 이들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하지만 용어의 정의와는 달리, 국내에서의 기업환경은 스타트업이 제대로 뿌리를 내리기 힘든 상태에 놓여있다. 우리나라에는 기존에 없던 새로운 형태의 서비스들은 기존의 고전적 사업자들의 공격적 견제를 받을 뿐만 아니라, ‘규제’라는 이름의 족쇄 하에서만 움직일 수 있는 기업환경이 조성돼 있기 때문이다.


규제로 인해 날개를 펴지 못한 운송 스타트업

서울과 성남 판교 신도시를 중심으로 사업을 전개하던 회사가 있다. 이들의 아이디어의 출발은 1990년대의 승용차 함께타기 운동이었다. 승객과 운전자 각각이 사용할 수 있는 앱을 따로 만들어 이들을 중개해 주는 이 사업은 한 마디로 ‘카풀 중개 서비스’로 정의 내릴 수 있다. 우버처럼 허가받지 않은 개인이 영업용으로 운송하는 걸 금지한 법망의 예외규정을 파고든 카풀 서비스의 운영사는 차량 공유 서비스 운영사인 쏘카의 창업자 김지만 대표가 새로이 창업한 ‘풀러스’였다.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제81조 1항의 ‘출퇴근 때 승용자동차를 함께 타는 경우’는 유상으로 운송을 제공 또는 임대하거나 알선할 수 있다는 예외 조항을 활용한 사업이었다. 이들은 최초 이용 시간을 출근시간인 오전 5시부터 11시, 그리고 퇴근시간인 오후 5시부터 새벽 2시까지로 제한해 서비스하며 기존의 법망에 저촉되지 않은 채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었다. 

▲ 사업에 어려움을 겪고 구조조정의 단계에 놓이게 된 풀러스

풀러스는 서비스를 시작한 이래 빠른 속도로 성장해 나갔다. 2016년 5월 시작한 앱 서비스는 작년 기준 누적 이용자 90만 명을 돌파했으며, 네이버, 미래에셋, 벤처캐피탈 옐로우독, 미국계 투자펀드 컬래버레이티브펀드 등으로부터 220억 원의 투자금을 유치하기도 했다. 하지만 사업 확장을 위해 작년 11월 6일부터 이용자들이 출퇴근 시간을 임의로 선택해 이용할 수 있는 시간선택제를 시작한 것이 화근이 됐다. 사실상 24시간 원하는 때에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한 조치에 택시단체들은 반발했고, 서울시와 국토교통부는 직접적으로 이들의 변화를 막아섬에 따라 풀러스의 출퇴근 시간선택제는 제대로 운용되지 못했다. 이로 인해 풀러스는 규제로 인한 불투명한 서비스 전망을 주된 이유로 구조조정과 사업모델 개편에 들어가고 말았다. 지난 6월 20일 풀러스의 공동대표인 김태호 대표는 사임을 표했으며, 임직원 70%를 감원하는 구조조정에 들어갈 계획을 밝혔다.

▲ 국내 콜버스 사업을 오히려 우버가 벤치마킹할 정도

이와 비슷한 사례가 하나 더 있다. 2015년 12월 처음 서비스를 시작한 스타트업 콜버스랩의 심야 콜버스 사업이다. 심야시간에 운행되지 않는 전세버스 등을 이용해 이동경로가 비슷한 사람을 운송하는 방식의 이 사업은 서비스 개시 당시 큰 화제를 모은 바 있다. 하지만 문제는 서비스 개시 당월, 서울택시조합이 서울시에 단속을 요구하며 불거지기 시작했다. 전세버스로 불특정 다수를 운송하는 건 불법노선여객운송행위라는 이유였다. 이에 따라 서울시는 국토교통부에 적법성 판단을 의뢰했고, 국토교통부는 전세버스 대신 기존의 택시, 버스면허업자들만 한정면허를 얻어 대형택시를 운행하도록 하는 개정안을 내놓았다. 우여곡절 끝에 서울시의 중재로 운행시간, 운행 범위를 한정해 서비스를 재개했지만, 결국 콜버스랩은 택시업체들이 콜버스 사업을 확장할 의지를 보여주지 않음에 따라 심야 콜버스 사업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콜버스랩은 올해 4월부터 사업모델을 변경하여 전세버스 중개 플랫폼을 주력 사업으로 내세우고 있다.


다른 업계에서도 규제로 인한 몸살은 비일비재

규제로 인해 몸살을 앓는 운송업계의 스타트업 규제 사례가 많은 것은 이 분야의 성공사례가 풍부하고 이를 견제하는 시선이 또 그만큼 많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가장 거대한 스타트업 우버(기업가치 680억 달러), 그리고 이를 벤치마킹한 중국판 우버인 디디추싱(기업가치 560억 달러)이 글로벌 스타트업들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해외에서의 성공을 벤치마킹해 국내에서도 우후죽순 이와 유사한 형태의 운송 O2O 서비스들이 선을 보였고, 또 그들이 자본의 대규모 투자를 연이어 유치하면서 시장은 운송 O2O 서비스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국내에는 미국이나 중국에서처럼 ‘한국판 우버’가 나오지 못했다. 기존 시장의 점유자인 택시업계의 견제, 그리고 국가가 택시업계에 힘을 보태면서 생겨난 현상이다. 해외에서와는 달리 국내에서는 우버에 비견할 수 있는 스타트업이 아직 제대로 날개를 펼치지 못하고 있다.

▲ 벤치마킹 서비스로 오리지널 못지않은 성공을 거둔 디디추싱

비단 규제로 인해 피해를 입고 있는 스타트업은 운송 O2O 서비스에 한정되지 않는다. 소비자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새로운 서비스들은 많은 영역에서 출현하고 있지만, 규제 앞에서 이들은 서비스를 포기하거나 다른 방향으로의 전환을 꾀해야만 했다. P2P 대출 서비스 ‘8퍼센트’는 방송통신위원회에 의해 한때 사이트가 폐쇄된 바 있다. 대부업으로 등록되지 않은 업체라는 것이 이유였으며, 폐쇄 직전까지 방통위는 8퍼센트에 폐쇄 통보도 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베타서비스 중이기에 수수료를 받지 않고 있으므로 8퍼센트는 아직 대부업체로 정의 내릴 수 없다는 항명 전까지 사이트 폐쇄는 계속됐다. 한때 주목받던 수제 맥주 배달 스타트업들은 국세청이 직접 조리한 음식만 주류 배달을 허용하는 것으로 입장을 바꾸면서, 현실의 벽을 넘지 못하고 서비스를 중단하고 있다. 2015년 오픈한 동네 작은 가게들의 식품 유통 전문 플랫폼 마켓컬리는 입점한 가게들이 일일이 식품제조업 허가를 받아야만 한다는 규제에 막혀 작은 가게의 식품을 대거 배달체인에서 제외해야만 했다.

▲ 주목도가 높아진 마켓컬리 또한 초창기 규제로 큰 어려움을 겪었다

규제가 아니라 기존 사업자들의 반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서비스들도 있다. 2016년 서울대학교 학생 3명이 만든 집주인과 세입자 중 집주인에게만 중개 수수료를 받는 서비스 ‘집토스’는 공인중개사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B2B 축산물 직거래 플랫폼을 서비스하는 글로벌네트웍스는 사업 초기 육류 유통업자들의 항의를 받았으며, 핀테크 서비스 ‘토스’도 은행들의 반발로 서비스 준비에만 1년 반이 소요된 것으로 전해진다. 기존 사업자들의 반발과 이를 의식한 국가의 규제는 국내 스타트업들에게 있어 새로운 서비스 전개의 가장 큰 장벽이 되고 있다.


규제 시스템의 근본적 방식의 전환이 필요

우리나라가 유독 스타트업에 대한 법적 규제가 강한 가장 큰 이유는 ‘보호’다. 규제 밖의 사업자들로부터 소비자와 기존 사업자들이 피해를 받게 되는 현상을 막고자 적극적인 보호 차원에서 강한 규제를 시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보호 차원의 규제가 필요한 산업이 분명히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기본적으로 개인주의를 원칙으로 하는 민주주의 제도에서는 경제적, 사회적 활동은 개인과 민간의 차원에서 수행되는 것이 이상적이지만, 공공문제의 범위가 확장됨에 따라 정부의 직접적인 관여가 필요한 영역이 점차 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의 방임으로 인해 불거지는 독과점은 정부의 직접적인 규제가 없으면 사실상 막아낼 수 없는 문제며, 규제의 미비로 인해 바다이야기, 가상화폐 같은 사회적인 문제가 다시금 발생될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 8퍼센트는 베타 테스트 단계에서 규제로 인해 사이트가 닫히기도 했다

물론 최근의 정부의 창업지원 정책으로 인해 스타트업 생태계가 과거에 비해 비약적으로 좋아졌다는 점은 무시할 수 없다.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도 크게 늘어났으며, 초기 기업들에 대한 가이드를 마련해 줄 수 있는 정부 운영 프로그램도 크게 늘어났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규제는 특히나 스타트업들에게 여전히 가혹하다. 이는 기본적으로 우리나라의 규제의 방향성이 법에 명시된 것만 가능하게 하는 포지티브 규제 형식을 띄고 있기 때문이다. ‘허용된 것’만 열거되어 있는 법 체계 속에서는 기존의 방법론에 입각한 사업모델들만 정상적으로 영위가 가능하며, 열거되지 않은 형태의 사업모델은 규제를 받게 된다. 당연히 세상에 없던 새로운 서비스를 선보이는 참신한 스타트업들은 규제의 덫을 피해갈 수 없는 태생적인 문제를 안게 되는 것이다.

▲ 규제 시스템에 대한 근본적인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

움직이기 시작한 시계추, 어디에 도달할까

네거티브형 규제를 취하고 있는 대표적인 국가는 미국이다. 이를 비유하는 가장 대표적인 비유가 유턴 표지판으로, 미국에서는 유턴을 할 수 있는 곳을 표시해 둔 우리나라와는 달리 유턴을 할 수 없는 곳에만 유턴 금지 표지판을 세워둔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매년 천문학적 규모의 투자와 유니콘들이 계속 나오고 있는 것은 이처럼 ‘금지된 행위’를 피한 서비스들이 적극적으로 시장에 도전해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 간의 P2P 대출 서비스, 차량 공유 서비스 등은 우리나라 못지않게 미국에서도 서비스 당시에는 큰 충격이었고 또 기존 사업자들의 반발도 많이 산 사업모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는 국내에서와는 달리 네거티브형 시스템 덕에 규제 시스템의 울타리 밖에서 성공적으로 사업을 영위하고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 세계를 호령하는 아마존이 국내와 같은 규제 속에서 탄생할 수 있었을까

4차 산업혁명의 시대는 새로운 기술들과 시선을 달리한 서비스들이 우리들의 생활을 파격적으로 바꿔놓을 것으로 예견되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4차 산업혁명에 기반을 둔 완연히 새로운 서비스, 참신한 스타트업이 제대로 사업을 영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엄연한 사실이다. 아산나눔재단과 구글 캠퍼스 서울이 공개한 스타트업코리아 조사자료에 따르면, 4차 산업혁명의 핵심기술인 인공지능 분야에서 전 세계 100대 스타트업 가운데 한국 업체는 의료 영상 진단 기업인 루닛(Lunit) 단 한 곳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한 해 동안 새로이 투자를 받은 스타트업 중에서 누적 투자액 기준 100대 기업 내에 한국의 스타트업은 단 한 곳도 없었다. IT전문 로펌인 테크앤로의 조사에 따르면, 글로벌 100대 스타트업 중 13곳은 한국에서는 금지된 사업모델을 가지고 있으며, 44곳은 규제의 영향을 받게 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전체 100대 기업의 사업모델 중 57%의 기업들이 한국에서는 규제 하에서 제대로 사업을 영위할 수 없다는 것이다.

▲ 국가 주도의 스타트업 규제완화 속에서 선전시는 계속 발전해 나가고 있다

글로벌 시장은 현재 참신한 서비스를 발굴하고, 새로운 기술을 적용하기 위해 국가 단위로 뜨거운 경쟁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형태라면 앞으로도 국내에서 ‘혁신’을 이야기할 수 있는 스타트업은 나오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다행히도 현재 정부는 스타트업의 규제 완화에 힘을 쓰고 있는 모습이다. 작년 9월 7일 정부는 ‘새 정부 규제개혁 방향’ 핵심과제인 ‘신산업 네거티브 규제혁파’를 발표한 바 있으며, 동년 10월 19일에는 국무조정실과 관계부처 합동으로 ‘신산업 분야 네거티브 규제 발굴 가이드라인’을 확정 발표한 바 있다. 부디 유연한 입법 방식을 통해 네거티브형 시스템 정착, 스타트업 규제완화가 제대로 이뤄질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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