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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시 사례로 되짚어 보는 스타트업 지원 정책의 취지

조회수 2017. 10. 23. 08:2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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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갑질을 모아놓은 계약서가 지자체 지원 사업?

세상 모든 갑질을 모아놓은 계약서가 지자체 지원 사업?

청년 실업이 중대한 사회적 문제로 자리 잡고, 4차 산업혁명으로 대변되는 산업의 변화로 인해 새로운 분야의 시장 개척이 절실히 요구되는 작금이다. 이 두 가지의 직면한 과제를 함께 해결할 수 있는 절묘한 해결책으로 주목을 받았던 것은 ‘청년 창업’이었다. 청년들이 창업을 통해 기존의 산업 구조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새로운 사업을 만들어 내며, 거기에서 다시 새로운 고용을 창출하도록 유도한다. 이와 같은 흐름을 만들어내기 위해 정부는 청년 창업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정책을 내놓고 있다. 당연히 정부, 지자체의 창업 지원책들은 청년 창업가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정책으로 운영돼야 실효를 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본래의 취지와는 반대로, 한 지자체의 지원 사업이 창업자들을 오히려 얽매는 계약서를 내밀고 있어 논란을 빚고 있다.


스타트업을 지원하기 시작한 것은 

 

국가와 시장의 성장 일변도 상황에서는 고용, 특히 청년층의 일자리 찾기가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되지 않기 마련이다. 우리나라도 매년 큰 폭의 성장을 기록하던 당시에는 그 누구도 청년들의 창업 문제를 두고 고민하진 않았다. 1980년대 일본의 부흥에 힘입어 동아시아의 국가들은 급속한 성장을 거듭했고, 특히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큰 폭의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단군 이래 최대의 호황기라고 불리던 시절이 1980년대 중반부터 1995년까지 이어졌다. 그 호황에 위기가 드리운 것이 1995년 말부터였으며 사실상 종말을 고한 것이 1997년이었다. 소위 IMF 사태라 불리는 금융위기가 찾아온 것이다.

▲ IMF 외환위기라는 최악의 사태를 겪은 후, 우리나라의 고용 시장은 급변했다

1997년 금융위기 전만 하더라도 우리나라의 실업률은 3%대였다. 하지만 금융위기 이후 실업률이 폭등해 4.5%까지 치솟았고, 한 달 만에 3,300여 기업이 도산했다. 사태는 더욱 심각해져 1999년에 이르러서는 실업률 8.7%를 기록했다. 치솟는 실업률과 장기화된 경기침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당시 정부는 다양한 대량 실업 근로자 대책을 추진했으며, 정보화라는 세계적인 조류를 타고 벤처 산업을 신경제의 중심으로 올려놓고자 했다. 벤처기업 지원 정책에 정부의 막대한 예산이 투여됐고, 투자는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졌다. 

▲ 현재는 벤처기업 대신 스타트업이라는 용어가 주로 사용되고 있다
현재는 벤처기업들을 ‘스타트업’이라는 다른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벤처기업이라는 말을 벤처기업협회에서는 ‘개인 또는 소수의 창업인이 위험성은 크지만 성공할 경우 높은 기대수익이 예상되는 신기술과 아이디어를 독자적인 기반 위에서 사업화하려는 신생중소기업’으로 정의하고 있다. 즉 벤처기업이란 요약하자면 기술을 기반으로 한 청년 창업 기업을 뜻하는 것으로, 요식업이나 유통업 같은 고전적 분야에서의 창업은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외환위기 이후 청년 창업 기술기업을 뜻하는 벤처기업은 2010년대가 되면서 실리콘밸리 창업 열풍이 국내에 소개되면서 점차 ‘스타트업’이라는 말로 대체돼 사용되고 있다. 김대중 정부 이후의 역대 정부들은 외환위기 이후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벤처기업 혹은 스타트업을 보호하고, 또 육성하기 위한 정책을 내놓고 시행하고 있다. 

파격적인 지원, 그럼에도 어려운 스타트업

스타트업을 국가적으로 양성하고 지원하기 시작한 지 어느덧 20여 년이 되었다. 시장은 환경에 적응하고, 그에 맞춰 조성된다. 우리나라의 창업자들은 현재 스타트업을 창업하고 운영한다는 것에 있어, 정부와 지자체의 정책적 지원을 떼놓고서 쉽사리 계획을 짜기 힘든 상황을 보내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에서 작년 발표한 창업기업 실태조사 자료를 보자면, 우리나라 스타트업은 민간보다는 정부의 정책적 지원을 받아 성장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창업자의 자금 조달 비중에 있어 엔젤투자자, 벤처캐피탈 투자금을 통한 조달 비율은 정부 보조금 혹은 정부 융자 비율의 8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 다양한 기관, 지자체에서 스타트업 지원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정부와 지자체에서는 해마다 180여 개의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스타트업을 지원하고 있으며, 매년 약 7,000억 원의 예산이 스타트업을 위해 지원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스타트업에 대한 국가적인 지원이 이뤄지고 있는 것은 비단 우리나라에 한정되지 않는다. 여타 국가에서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장기 불황이 이어지면서 기업의 신규 일자리 창출 여력이 감소하고, 이에 대한 대안으로 스타트업을 육성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히 일어나고 있다. 취업의 대안으로 창업에 대한 청년층의 관심이 확산되고 있으며, 전 세계적으로 25세 이상 34세 미만의 연령대의 창업률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토록 창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국가적 지원이 이어지는 와중에, 특히 우리나라는 다른 주요 국가들에 비해서도 파격적인 정책적 지원을 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여러 요인이 있지만, 여타 국가처럼 민간 지원이 활발하지 않기 때문에 이를 보완하기 위해 정책적 지원을 꾸준히 늘려온 것이 가장 큰 요인으로 꼽힌다.

▲ 다양한 지원에도 불구하고 스타트업 생존율이 떨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렇다면 파격적인 정책적 지원을 받고 있는 스타트업들의 실제 생존력은 어떠할까. 예산과 지원의 내용을 보자면 우리나라의 스타트업은 다른 어떤 곳보다도 활발하고 정력적으로 영업에 임하고 또 커져 나가야 함이 당연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주요 국가들에 비해 우리나라의 스타트업 생존력은 취약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주요 국가 스타트업의 3년 생존율을 비교하자면 우리나라는 호주의 62.8%, 미국의 57.6%는 물론 OECD 국가의 평균인 57.2%에도 한참 미치지 못하는 38.2%다. 파격적인 지원에도 불구하고 실적이 여타 국가에 미치지 못한다면, 이제 우리는 한 가지 사실을 의심해야 할 것이다. 혹시 그 지원이 잘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게 아닌가, 지원의 방향이 잘못된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 말이다.


잘못된 지원 사업의 사례, 안양창조경제융합센터 

 

현재 정부 및 지자체에서 이뤄지고 있는 스타트업 지원 사업은 크게 두 가지의 지원 방식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직접적으로 자금을 지원하는 직접지원 방식, 그리고 또 하나는 판로, 인프라, 기반 구축을 돕는 간접지원 방식의 두 가지다. 어느 쪽이 되었건 이에 필요한 자금은 다시 두 가지의 방식으로 지출된다. 하나는 정부가 직접 스타트업, 창업자들에게 지원하는 것이며, 또 하나는 지자체 혹은 기관이 지원 사업을 진행하고 이에 소요된 비용을 실적에 따라 정부가 충당하는 방식이다. 현재 후자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 

▲ 문재인 정부에서도 스타트업 지원은 꾸준히 이뤄질 전망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실적’에 따라 소요된 비용을 충당한다는 점이다. 충당의 방식은 올해 소진된 예산을 내년에 재배정받는 것도, 실비로 직접적으로 지급받는 것도 포함된다. 뒤집어서 이야기하자면 실적만 낸다면 어떻게 사업이 진행되건 후일 사업비를 보전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많은 정부 주도 사업, SOC 사업들은 바로 이 점 때문에 곳곳에서 잡음을 내고 있다. 이것은 스타트업 지원 사업이라고 해도 예외는 아니다. 스타트업 지원 사업 중 일부는 실제로 창업자들에게 불합리한 규정을 내밀고, 본래의 지원 취지와는 다른 방향으로 사업자들을 이끌기도 한다.

▲ 논란을 빚고 있는 안양시의 안양창조경제융합센터

최근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는 안양시의 안양창조경제융합센터의 예가 꼽힌다. 경기도 안양시는 지난 2016년 2월, ‘제2의 안양 부흥’ 비전 선포식을 개최하고, 시 차원에서 기업 지원 시책을 펼쳐 일자리를 창출하고 지역 내 강소기업 육성에 매진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이를 위한 정책으로 개소된 곳이 지난 2016년 6월에 문을 연 안양창조경제융합센터였다. 안양창조경제융합센터는 사업비 277억 원이 투입된 청년사업으로, 2013년 12월 착공해 2015년 8월 준공, 작년 6월 개소식을 개최하고 운영을 시작한 곳이다. 안양시는 이곳을 제2의 안양 부흥을 주도할 첨단창조산업 육성의 메카로 꼽으며, 체계적으로 스타트업을 지원할 것을 약속한 바 있다.


국가 시책 전체를 돌이켜봐야 할 때  

그렇다면 안양창조경제융합센터는 현재 본래의 취지에 맞게 운영되고 있을까. 안양창조경제융합센터에 입주하기 위해서는 안양시에 본사가 있거나 이전 예정인 기업일 것이 요구되며, 심사 후 입주하게 되면 최대 6년까지 이용할 수 있다. 문제는 내부 심사를 거쳐서 입주 기업을 판별함에도 불구하고 입주에 소요되는 부담을 스타트업, 창업자들에게 떠넘기고 있다는 점이다. 입주기업은 1년치 임대료를 선납해야 하며, 1년치 임대료와 함께 예치금까지 납부해야 한다. 예치금은 1년치 임대료를 초과하는 금액이며 입주기업은 최대 3년분의 임대료에 해당되는 비용을 일시 납부해야만 한다. 여기에 입주부담금에 포함되지 않는 별도의 추가 비용도 존재한다. 안양창조경제융합센터 입주 기업에게 안양시는 매월 전기료, 상하수도요금, 엘리베이터 정기점검, 시설용역비, 소모품 등의 비용을 별도의 관리비로 청구하고 있다.

▲ 임대료는 물론 예치금까지 선납으로 요구하며, 여기에 관리비까지 별도로 청구

입주 시 작성하는 계약서에 따르자면 입주기업은 임대료뿐 아니라 손해보험계약의 체결도 함께 요구받게 된다. 입주기업은 재산가액 이상의 손해보험계약을 체결하고 그 증서를 안양창조산업진흥원에 제출할 것이 요구되는 것이다. 사고 발생의 경우를 대비해 손해보험계약을 체결하는 것 자체에는 큰 문제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안양창조경제융합센터에서 화재 등의 사고가 발생할 경우, 손해보험계약에 해당되는 보험금의 수령인이 안양창조산업진흥원이라는 점에는 문제의 소지가 있다. 일반적으로 건물주가 가입하는 손해보험계약의 부담을 온전히 입주기업에게 미루고 있다는 이야기인 것이다.

▲ 진흥원에 우선권을 둔 계약 해지 조항을 광범위하게 담고 있는 계약서

계약서에 따르자면 안양창조산업진흥원이 건물을 공용, 공익사업 등으로 사용을 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아예 임대차 계약 자체를 기간 만료 전에도 해지할 수 있는 조항이 포함돼 있다. 여기에는 계약 해지로 인한 입주사의 손해를 안양창조산업진흥원이 책임지지 않는다는 점이 함께 명시돼 있다. 뿐만 아니라 입주기업은 안양창조산업진흥원이 주관하는 행사에 성실히 임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으며, 입주기업이 진흥원의 명예를 훼손시키면 즉시 계약을 해지당할 수 있으며 계약사항 범위 내의 행위라도 진흥원에 손해를 가한 경우에는 배상해야 한다는 조항까지 포함돼 있다.


실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갑질’을 모아놓은 것처럼 보이는 이 계약서가 지자체의 스타트업 지원 사업의 계약서라는 점을 우리는 어떻게 봐야 할까. 단편적인 사례지만 스타트업을 둘러싸고 있는 우리나라의 기업 환경과 정부 지원을 받은 이들의 생존율을 돌이켜 볼 때, 안양시의 안양창조경제융합센터 입주 계약과 같은 사례는 부지기수일 것으로 추측된다. 적어도 창업자들이 국가적인 필요성에 의해 이뤄지고 있는 지원 시책을 통해 피해를 보는 일은 발생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새로운 정부가 출범한 이때야말로, 다시금 정부, 지자체, 기관의 스타트업 지원 정책을 돌아볼 필요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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