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박한 책장 정리

조회수 2020. 12. 31. 18: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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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라면 책에 묻혀 죽을지도 모른다. 덮어두고 읽다 보니 대책 없는 서재가 되었다. 새해에는 꼭 책장 정리를 할 각오로 장서가와 전문가의 정리법을 엿보았다.

남겨둘 책

새로 산 책을 언제고 ‘신선한 책장’에 둘 수는 없다. 다 읽었든, 다 읽지 못했든 ‘신선함’이 떨어졌다면 책의 처분을 바로 결정하도록 한다. 가질 것인가, 말 것인가? 책의 물성을 사랑하고 정리에 익숙지 않은 사람은 당장 이런 결정을 내려야 하는 것이 가혹하게 여겨질 것이다. 하지만 이는 ‘양서’를 보관하는 현명한 책장으로의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청담의 문학도서관 ‘소전서림’은 다양한 전문가들에게 큐레이션을 맡겨 양서로 꼽힌 4만여 권의 책을 소장 중이다. 이에 신청받은 도서를 포함해 신간 위주의 입고 도서를 고르는 수서회의도 매달 진행한다. “사서와 북큐레이터들이 찾은 리스트를 살피고 ‘소전서림’의 이용자들에게 소개하면 좋을 신간을 선정합니다. 그리고 이전의 신간 코너에 있던 도서를 도서관에 소장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회의도 진행합니다. 현재 소장 중인 도서와 마찬가지로 오랜 시간이 지나도 살아남을 수 있는 좋은 책인지를 살피는 것이죠.” ‘소전서림’ 황보유미 관장의 말이다. 나루케 마코토는 책장에 넣을 책을 선택하는 과정을 나만을 위한 백과사전을 편집하는 것에 비유했다. 책장을 단순한 수납가구가 아닌, 의미 있는 기록과 기억이 담긴 공간이라 여긴다면 얼마나 많은 책을 가질지보다 어떤 책을 남길지에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소장할 책에 대한 절대적인 기준은 없지만 재미있거나, 새롭거나, 유용하거나 등 최대한 자신만의 규칙을 명확히 정해두는 것이 좋다.

새로 산 책

“이 책을 다 읽었나요?” 무릇 서재가 있는 장서가라면 피해갈 수 없는 질문이다. 이에 움베르트 에코는 되물었다. “다 읽은 책을 왜 서재에 두죠?” 언뜻 말장난 같기도 한 답이지만 실제로 그는 서재란 읽은 책이 아닌, 읽을 책으로 채운 가능성의 공간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단순히 책을 사놓고 읽지 않는 이들이 위안을 얻는 말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효율적인 책장 관리를 위해 필요한 발상이다. 경험상 애서가와 다독가와 북호더는 크게 구분되지 않는다. 많이 읽는 사람이 많이 사고, 많이 사는 사람은 그만큼 많이 읽지 않는다. 구매하는 모든 책을 꼭 완독해야 한다는 법은 없지만 이러한 습관으로 책장이 헤어나올 수 없는 혼돈 상태에 처해 있다면 기존의 책장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해결책이 필요하다. 일본의 서평사이트 ‘혼즈’의 대표이자 <책장을 정리하다>의 저자인 나루케 마코토는 읽고 있거나 앞으로 읽을 책만 모은 ‘신선한 책장’을 두라고 제안한다. 이 공간은 서점과 도서관으로 따지면 신규입고 도서 코너와 같다. 가장 공을 들이는 동시에 교체되는 속도가 빠른 ‘신선한 책장’의 제1원칙은 무조건 눈에 잘 띌 것. 좋든 싫든 일단 보이면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침대맡, 소파 옆, 거실 등 집에 있을 때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 좋다. 또한 이곳에 두는 책은 절대로 속이 보이지 않는 상자에 넣지 않도록 한다. 신규입고 코너의 책들처럼 평대에 전면 전시를 하진 못하더라도 책등과 표지가 최대한 보여야 눈길이 가는 법. 별도의 수납함이나 선반 등은 없어도 괜찮다. 저명한 장서가이자 < 장서의 괴로움 > 저자인 오카자키 다케시의 말처럼 오히려 새로운 책장을 들이는 순간 빈 공간을 채우기 위해 필요 이상의 서적을 사들이게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미 필요 이상의 책이 있음에도 어딘가에 책을 쌓아두고 있다면, 책장을 늘리기보다 쌓이는 책이 줄도록 해야 한다.

소장한 책

남기기로 한 소중한 책을 어떻게 꽂아야 좋을까? 갖고 있는 책의 수량, 책장의 목적에 따라 최적의 정리법은 다르다. 부지런한 사람이라면 모든 책을 색깔별로 꽂거나 저자를 가나다순으로 정리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방법은 책이 늘어날수록 유지하기 어려운데 무엇보다 필요한 책을 제때 찾기 힘든 경우가 많다. 내용은 또렷하게 생각나는데 작가 이름이 도저히 생각나지 않는 경우가 누구에게나 있지 않던가. 그렇다면 원론적으로 가장 효율적이라 여겨지는 문헌분류법을 따르는 건 어떨까? 흔히 도서관과 서점에서 볼 수 있는, 분야와 주제에 따라 일차적으로 분류한 뒤 저자와 제목 순으로 정리하는 방법이다. “미적인 측면을 제외하고 효율적인 면에서 본다면 문헌정보학에서의 분류법을 개인 서가에 적용하는 것이 효과적이에요. 찾고자 하는 주제뿐 아니라 관련된 책을 전후로 살펴볼 수 있으니 관심 분야의 지식을 체계화하는 데 도움이 되죠. 하지만 개인 서가의 책이 그렇게 많거나 도서관만큼 다양한 주제의 책을 구비하고 있을 가능성은 적습니다. 중요한 것은 분류법을 그대로 따르는 것보다 책에 순서를 정해주는 자신의 규칙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새로운 책이 들어와도 이미 자리가 정해져 있어 정리가 쉬워지죠.” KBS 콘텐츠아카이브부 현지민의 말이다.


조금 더 깔끔하게 보이는 책장을 위해 사서와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공통적으로 꼽는 것은 책장을 여유롭게 이용하는 것이다. “도서관에서는 책이 늘어날 것을 대비해 책장 가득 꽂지 않고, 80% 정도만 채워요. 중간중간 정리를 하면서 채워나가다 공간이 부족해지면 서가를 더 구입하거나 이용률이 떨어지는 책부터 창고로 이동시킵니다.” KBS 콘텐츠아카이브부 현지민의 말이다. 또한 외관상으로도 여유가 있는 책장은 위압감이 덜해 보기에도 편하다. 황보유미 관장은 ‘소전서림’의 서재가 더욱 정돈되어 보이게끔 책등을 맞춰 꽂는다고 전했다. “국내 출판되는 책의 판형은 굉장히 다양해요. 책의 높낮이는 물론 너비도 제각각이죠. 그래서 모든 책이 책장 끝까지 닿도록 꽂으면 아무리 정리를 해도 들쑥날쑥하고 어수선해 보여요. 대신 조금씩 앞으로 꺼내 책등이 일직선이 되도록 맞추어 꽂으면 훨씬 깔끔해 보입니다. 책장 앞부분에 먼지가 덜 쌓이는 효과도 있고요.” 과연 그들의 말대로 칸마다 여유공간을 두고, 깊이 들어가 있던 책을 책등 기준으로 일괄 정리하니 대대적으로 책을 옮기지 않았음에도 다른 인상의 책장이 되었다.

처분할 책

잘 정리하는 법은 언제나 잘 버리는 법을 포함한다. 버리거나 처분할 책은 평소에 한데 모아놓는다. 손길과 눈길이 가장 안 가는 책장의 맨 아래칸을 할애하든 작은 박스를 따로 구비해도 좋다. 일정 분량이 차면 처분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헌책방에 팔거나 아름다운 가게 등에 기증할 경우 일정 분량 이상일 때, 방문 수거가 가능하다. 국립중앙도서관도 ‘책다모아’라는 이름으로 기증을 받고 있는데 일반 도서뿐 아니라 시청각 자료, 정기간행물도 기증할 수 있다. 요즘은 중고거래도 활발하게 이루어지니 지금 당장 중고거래 앱을 깔고 ‘무료나눔’을 하는 것도 방법이다. 어쩌면 독서취향이 겹치는 동네 친구를 사귀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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