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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화병이라고? 화를 다스리는 긴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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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상담사는 ‘요즘 기분이 어떠냐’고 물었다. 외모나 경력, 학벌이나 스펙처럼 ‘나’라는 존재를 설명하는 여러 단어에는 관심이 없어 보였다. 모든 것을 다 제치고 내 존재, 내 감정을 묻는 것에서 화를 다스리는 긴 여정이 시작되었다.   어느 날부터인가 한숨을 자주 쉬고, 얼굴이 붉어지고, 두피가 따끔거려 며칠째 잠 못 이루는 밤이 계속되었다. 간단한 트러블이라면 홈케어로 진정될 텐데, 날이 갈수록 심해져 보는 사람마다 걱정의 말을 건네는 지경에 이르렀다. 평소 스트레스가 많은 편이긴 하지만 애플리케이션을 켜두고 명상을 하기도 하고, 주 2회씩 필라테스를 하며 에너지를 분출하는 등 컨디션 조절을 잘해왔는데! 인터뷰를 위해 만난 요가 강사 오원에게 “필라테스 대신 명상을 하는 요가가 더 나으려나요?”라고 물었더니 차라리 심리상담을 해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누구나 다양한 스트레스에 노출되어 있지만 내 경우엔 화병처럼 보이고 전문적인 상담이 더 필요해 보인다고. 평소 화를 잘 내는 성격도 아니고, 스스로를 ‘좋은 게 좋은 것’이라며 잘 웃어넘기는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화병이라고? 충격이 컸지만 또 한번의 마감이 몰아치고 주어진 일을 처리하며 보냈다. 그간 증상은 점점 더 심해졌다.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어서 심리상담센터에 예약 전화를 걸었다. 사실 스트레스 조절이 안 되고 화나 짜증을 잘 내는 게 나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Calm’이나 ‘Headspace’ 같은 명상 애플리케이션이 인기를 끌고, 대형서점의 베스트셀러는 마음을 다독이는 온갖 에세이 서적이 차지하며, 소셜 피드에서 화장품이나 쇼핑몰 광고가 아닌 감정 상태를 그림으로 표현하는 ‘마인드맵’ 서비스가 종종 눈에 띄는 것만 봐도 그렇다. 하지만 ‘심리상담’은 앞서 말한 책을 읽거나 앱으로 명상을 하는 것과는 다른 카테고리로 느껴졌다. ‘내가 진짜 문제가 있는 걸까?’ ‘정신병처럼 여겨지면 어쩌지?’라는 부담감이 앞섰던 것. 시간을 예약하고 이메일로 상담 안내문과 접수 질문지를 받아보니 실감이 났다. 우선 상담사의 간단한 약력과 함께 상담 내용에 대한 비밀 유지 조건 등이 눈에 들어왔다. 질문지에는 상담하고 싶은 내용(신체, 정서, 행동 증상과 심각도), 나의 성장사, 가족관계와 그들의 성격, 나와의 관계는 어떠한지 등의 질문과 공란이 마련되어 있었다. 하다못해 자주 꾸는 꿈까지! 문득 에디터가 되기 위한 자기소개서를 작성한 이래로 내 자신에 대해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어떻게 자라왔고 어떤 인격을 가지게 되었는지, 사람들과는 어떻게 지냈고 지금의 문제가 무엇인지 4페이지 분량의 질문지에 담기란 어려웠지만 최선을 다해 적었다. 상담은 1회당 50분으로 이루어졌고, 작은 방에 상담사와 단둘이 마주 보고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형식이었다. “화병 때문에 왔다고요. 지금 기분은 어때요?” 첫 질문부터 말문이 턱 막혔다. 기분이 어떠냐고? 화가 나는 것 말고 다른 기분? 나는 접수 질문지에 적은 내용 외에도 내 기분을 제대로 헤아려본 적 역시 없었던 것이다. 상담사는 ‘화’라는 감정의 기저에는 다른 섬세한 감정들이 뒤엉켜 가라앉아 있다고 했다. 서운함이나 슬픔, 외로움, 소외된다는 느낌 등 다양한 감정이 함께 따라오기 마련이라는 것. 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상황을 파악하고 그 당시 그들이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채는 데는 능통했지만 내 기분을 헤아리는 데는 잼병이었다. 친구와 싸울 때 무슨 일이 있었다거나, 일을 하면서 어떤 서운한 일이 있었던 것은 토씨 하나까지 자세하게 설명하면서, 내 감정에 대해선 얘기는커녕 생각해본 적도 없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부당한 상황을 겪으면 기분이 나빠져요. 하지만 화가 난다는 건 그런 작은 감정들을 제대로 마주하지 않고 덮어뒀다가 한계치에 도달했다는 얘기거든요. 마음의 여유가 있는 사람은 화가 났을 때 왜 자신이 그런 감정을 느끼게 되는지 돌아보고 스스로를 다독이게 되는데 그 동안 그럴 여유가 없었던 거죠.” 당연한 얘기인데 나는 그게 어려웠다. 매일 화가 나고 힘들어하면서 막상 쉬는 시간이 주어지면 엉망이 된 집을 정리하든, 강아지들을 데리고 산책을 나가든, 건강식을 만들어 먹든, 새로운 스케줄을 끼워 넣고 일에서 적당히 거리를 뒀으니 그게 ‘휴식’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는 사이 감정이 쌓이고 나도 모르는 화병이 되어 나를 공격한 거다. 상담사는 우선 틈날 때마다 몸 상태를 파악하는 것부터 시작하라고 했다. 일하는 중간중간 가슴이 콩닥콩닥 뛰거나, 어깨가 뭉치진 않았는지 등 몸의 변화를 살피라는 것. 몸의 변화가 느껴진다면 그 다음은 그날 기분이 어땠는지 헤아려보라고 했다. 일의 압박감이 느껴지기 때문인지, 상대방이 무심코 건넨 말에 상처를 받았는지 화가 나는 원인을 파악하는 것부터 배워야 한다고 말이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심리학자이자 정신의학자인 알프레드 아들러에 따르면 화는 불가항력적인 것이 아니다. 화가 나서 큰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라, 큰소리를 내기 위해 화를 내는 것이라고. 화를 돌발적 감정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때로는 설명하기 귀찮아서, 다른 감정을 헤아리기 싫어서 더 값싼 수단으로 스스로를, 혹은 상대방을 굴복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그동안 나는 화가 나면 화가 나게 한 당사자에게 나쁜 감정을 표현하고 해결하는 대신, 나와 뜻이 비슷한 사람에게 힘듦을 토로하고 위안을 얻었었다. 하지만 남이 던져준 답은 어차피 원인이 아닌 증상에 대해서만 처치하는 대증요법과도 같다. 기분은 잠깐 풀릴지 모르지만 화를 다스리는 것에는 아무런 가치도 없는 일이다. 내 스스로의 감정을 돌보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가 답을 찾아야만 한다. 스스로를 전혀 파악하지 않은 상태에서 시작한 50분의 상담시간은 너무 짧게 느껴졌고, 즉석에서 1회를 추가해 2시간가량 이야기를 나누고서야 방을 나섰다. 이후로는 상담사가 알려준 대로 나의 상태를 살피는 데 신경 쓰고 있는데 이것만으로도 화가 덜 나는 신기한 경험을 하는 중이다! 누군가가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파악하는 것 자체도 신선한 충격이었지만, 수십 년간 모르고 살던 감정의 대처 방법을 알고 나니 스트레스를 마주하기가 훨씬 쉬워졌다. 서운하거나 힘든 마음이 생기면 그대로 그 기분을 만끽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것. 자연스레 다음 방문을 예약한 것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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