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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코올 의존증,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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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은 죄가 없다. 술은 약도 아니다. 술병 뒤로 숨지 마시길.  
술 좋아하세요?
성인이 된 후 나는 유난히 술에 관대한 사람이었다. 낯선 사람이 건네는 “술 좋아하십니까?” 라는 질문을 막연한 호의로 받아들일 지경이었고, 하룻밤 함께 술잔을 기울이며 나눈 흐릿한 대화를 진심으로 담보 삼아 그를 친구로 삼거나, 나아가 연인이 될 수 있을 정도였다. 계절이 바뀌면 그에 맞는 옷으로 옷장을 채우듯, 나는 반가운 마음으로 새 계절의 새 술을 맞이했고 기꺼이 즐겼다. 무사히 하루를 넘겼고, 그러니까 술 한잔하고 푹 잘 자격이 있었다. 모든 습관은 반복을 통해 학습되고 굳어지는 법이다. 어느 날부터였나, 매일 밤 잠들기 전 루틴처럼 한 잔씩 주워 마시던 술이 동나면 쉬이 잠을 이루기 곤란해졌다. 엎친 데 덮쳐서 하루 저녁에 마시는 술의 양도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산뜻한 하루의 마무리이던 한 잔 술이 마지노선을 넘기기 일쑤였고, 기절하듯 잠들었다. 왜 그렇게까지 술을 마시느냐고 누군가 물었을 때, 역시 최선의 이유 같은 건 없었다. 그냥. 그게 내 습관일 따름이라고밖에. 단지 어떤 푸념을 안주 삼아 마시는 동안은 알 수 없는 안도가 저기서부터 밀려왔다. 그렇게 7년, 아니 8년에 더 가까운 나날을 보냈다. 그런데 요즘은 “술 좀 드세요?” 라는 질문을 받으면 약간의 막막함을 느끼며 애매한 태도로 얼버무리고 만다. 지금 이 술보다 내일 아침 숙취가 더 고통스러운 나이가 됐기 때문이다. 마시는 둥, 마는 둥. 입구도 출구도 명확하진 않지만 한 시절 나는 술에 의지하는 삶을 살았고, 다행히 지금은 자연스럽게 그 동굴을 벗어난 상태다. 돌이켜보니 당시 내 증상은 분명 알코올 의존, 어쩌면 중독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짐작을 한다.

술은 죄가 없다
모르긴 몰라도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술이 없었다면, 지금 그의 소설은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는 특히 달리기를 마치고 난 후에 마시는 맥주 한 잔을 거의 찬미했다. 실제로 그의 소설에는 심심치 않게 맥주 마시는 장면이 등장하곤 한다. 등장인물들은 일상적으로 맥주를 마신다. 저녁을 먹으면서, 텔레비전을 보면서, 또 대화를 나누거나 잠이 들기 전까지 마신다. 그는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에서 자신을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며 맥주를 좋아하고 조개를 먹지 않는 보통 남자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하루키와 그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음주 패턴을 미루어 볼 때, 그들 전부는 알코올 의존증이 아니겠냐는 내 엉뚱한 추측에 한국분석심리학회와 임상예술학회 임원직을 역임한 이택중 신경정신과 의원의 이택중 전문의는 별 걱정 다 한다는 듯 옅게 웃더니, 적어도 그가 읽어본 몇 편의 작품 속 인물을 통해 짐작했을 때, 그 정도는 아닐 것 같다는 개인적인 의견을 내놨다. 알코올 의존증은 술 마시는 양이나 횟수만으로 진단할 수 없다고 했다. 필요한 만큼만 선택적으로 마실 수 있는 의지가 있다면, 이는 오히려 바람직한 음주 습관으로 알코올 의존증과는 거리가 멀다. 그는 이러한 음주 습관을 ‘사회적 음주’라 표현했다.

선택과 의존의 경계에서
그렇다면 알코올 의존, 혹은 중독이란 정확히 뭘까? 이택중 전문의는 우선 정신과에서 중독 질환은 크게 물질 중독과 행위 중독으로 나눌 수 있다고 운을 뗀다. 알코올이나 약물 같은 일부 물질은 장기간 복용 시 의존성이 생길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의존성이란 행동 및 신체적 의존을 의미하는데, 행동적 의존은 술을 마신 후 나타나는 문제 행동을 말한다. 신체적 의존은 알코올의 장기 복용으로 인해 술에 대한 내성과, 마시지 않았을 때 금단 증상이 생긴 경우를 의미하는데 즉, 알코올 의존증이란 음주를 반복한 결과 알코올에 대한 내성이 생겨 양은 늘고, 음주 욕구를 통제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미국 정신의학회(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의 정신장애 진단 통계편람에 따르면 다음 7가지 항목 중 3가지 이상의 증상을 지난 12개월 사이에 경험했다면 알코올 의존증을 의심해도 좋다고 한다. 1 술에 내성이 생겼다. 2 금단 증상이 나타난다. 3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오랜 기간 마신다. 4 술 마시기를 참아봤지만 실패했다. 5 술에 관한 생각 혹은 술에서 깨기 위해 많은 시간을 사용한다. 6 술 때문에 다른 사회적 활동의 양이 줄었다. 7 건강이 나빠진 걸 알면서도 계속해서 술을 마신다.

혼술은 전혀 쿨하지 않다
우리는 소설이나 영화 속 주인공이 아니다. 고독을 음미하며 도라지 위스키 한 잔 혼자 홀짝이는 건 절대로 낭만적일 리 없다. 1인 가구의 증가는 단순한 현상을 넘어 단단한 형태가 된 지 오래다. 그에 발맞춰 혼밥이니 혼술이니 온전히 혼자서 갖은 미식을 음미한다는 매력이 부각된 문화가 생겨났지만, 적은 양이라도 매일 혼자 마시는 음주 습관을 들이는 건 알코올에 의존하는 경향을 높이게 된다. 이 증상이 심해지면 술을 마시지 않으면 왠지 모를 허전함을 느끼거나, 조금만 마시려고 했는데 자제하지 못하고 더 많이 마시게 되는 등 위험한 알코올 의존증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짙어진다. 실제로 2016년 경북대 간호대 연구팀이 알코올 의존증 환자 300명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친한 친구와 함께 술을 마시는 것보다 혼자서 마실 때 알코올 의존증으로 입원할 확률이 9.07배나 높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좋은 분위기에서의 적당한 알코올은 말 그대로 행복을 부른다. 쿵쿵거리는 클럽에서 몸을 뜨겁게 달구는 테킬라 딱 두 잔 같은 것들. 적당량의 알코올은 행복 호르몬이라 불리는 세로토닌 분비를 일시적으로 확 끌어올리고, 도파민과 엔도르핀 수치를 높여 기분을 좋게 한다. 하지만 일정 기간 이상 과음과 폭음을 반복하면 길게 볼 때 알코올이 세로토닌 분비 체계에 교란을 일으켜 없던 우울증을 유발하거나 더 악화시킬 수도 있다. 이 상태에 빠진 채 술을 마시면 알코올의 강한 독성이 뇌세포 파괴를 촉진해 짜증이나 신경질, 불면증, 불안과 죄책감을 증폭시킨다고 한다. 스트레스를 받거나 불안하고 우울할 때마다 술을 찾게 되면 우리 뇌에서는 ‘스트레스=술’이라는 공식이 만들어지고, 결국 감정적으로 어떤 해결되지 않는 문제에 닥칠 때마다 술을 찾게 되는 거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같은 양의 술로는 이전의 쾌감이나 위로, 혹은 해소감을 느끼기 어려워지므로 이전보다 더 많은 양의 술을 마시게 되고, 이는 심할 경우 알코올 중독으로 이어질 수 있다.

거울 속에는 늘 내가 있다
알코올 의존증을 치료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실천은 병원을 찾는 일이라고 온화한 얼굴의 이택중 전문의는 말한다. “아주 심플하죠? 알코올 의존은 조기에 발견할수록 환자 특징에 따라 적절한 치료를 할 수 있어요. 그럼 금방 괜찮아져요. 다른 사람의 시선을 두려워하거나, 혼자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병원비나 약값도 비싸지 않아요. 그러니까 그냥 병원을 찾으세요.” 실제로 알코올 의존증 치료는 약물과 심리 치료, 재활 프로그램을 다각적으로 활용해 금주에 대한 동기를 높이고 그 마음이 무너지지 않게 유지시키며, 술을 마시지 않아도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환자를 도우며 재발을 방지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제 와 생각해보니 한창 술을 마시던 그땐, 그냥 그런 사람이 되는 게 좋았다. 세상을 아주 단순한 것쯤으로 취급해버리는 용기를 내는 사람이 되는 것. 술에 취하면 괜히 그런 마음이 됐다. 오로지 술로만 열리는 특별한 마음과 말들, 관계가 존재한다고 믿었다. 그 마음은 여전히 어느 정도는 유효하다. 하지만 나는 이제 전처럼 술을 많이 마시지 않는다. 취할 것 같으면 화장실에 가서 거울 속 내 얼굴을 들여다본다. 시인 이상의 저 유명한 시 구절처럼. ‘거울이 아니었던들 내가 어찌 거울 속의 나를 만나보기라도 했겠소.’ 바짝 정신을 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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