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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향성 인간의 스몰토크 입문기

조회수 2019. 9. 29. 12: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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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이 흐른다. 차라리 침묵이 편한데, 계속 가만있자니 왠지 분위기가 어색하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라. 스몰토크는 생각보다 어렵지 않으니까. 신입사원이 된 내향성 인간의 스몰토크 입문기.  
 
  
내향성 인간인 내가 얼마 전 신입사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사람들 틈에서 아무 말 없이 있어도 괜찮았던 호시절은 다 갔다. 여러 사람과 함께 밥을 먹거나 탕비실을 오가다 부서원을 마주치는 것이 일상이다. 가만히 있어도 마법과 같이 호의적인 인상을 심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예전 경험을 비춰보면 너무 말을 안 하면 오해를 사기도 한다. 주변에서 누구에게든 자연스럽게 말을 거는 이들을 보았을 거다. 물 흐르듯 대화가 이어지며 옆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주변의 공기가 완화되는 게 느껴진다. 일만 잘하면 된다고? 일은 당연히 잘해야 하는 거다. 업무 영역에서의 인맥과 인상은 생각보다 넓은 영역에 영향을 미친다. 사내에서 고립된다면 일에 대한 정보도 제때 얻을 수 없다. 그러니 어쩌면 이 모든 게 업무의 연장선이라고 하는 게 맞다. 사람 일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말을 진리처럼 섬길 것. 어찌 될지 모른다면 두루두루 좋은 인상을 남겨 손해 볼 일은 없다는 부모님 말씀을 마음에 심고, 적극적으로 스몰토크를 해보기로 했다.

 
스몰토크에 도전하다
넘쳐나는 스몰토크 팁 중에서 가장 기본적인 사항은 누구든 한마디씩 보탤 수 있는 보편적인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라는 것. 이를테면 날씨, 드라마, 영화, 휴가 같은 것들 말이다. 마침 엘리베이터 앞에서 A선배를 마주쳤다. 좋아, 이제 실전이다. “오늘 정말 너무 덥죠.” “그러니까. 진짜 덥더라.” “작년보다 더 더운 것 같지 않아요?” “내년은 또 얼마나 더울까?” “그러니까요.” 그리고 침묵. 아, 엘리베이터는 왜 이렇게 느린 건데. 결국 애꿎은 핸드폰이나 만지작거리며 시답잖게 카톡 목록이나 눌러보는 것이다. 이렇게 포기할 순 없다. 조금만 더 애써보자. “<쇼미더머니> 보세요?” (갑자기?) “어…? 아니 아직…누구 나오니 요샌.” 보이콜드, 키드밀리, 펀치넬로… 외국어로 된 사자성어를 듣는 듯한 선배의 얼굴은 혼란으로 가득하다. 깔끔하게 망했다. 차라리 시리와의 대화가 더 길게 이어지지 않을까? 나는 이 사태를 주입식 스몰토크의 폐해라 칭하고자 한다. 초중고 12년의 주입식 교육으로 모자라 스몰토크까지 주입식으로 배우려던 결과다. 적어도 주입식 교육은 고분고분 따라가기만 하면 성적은 보장되었는데… TPO와 상대의 흥미를 고려하지 않은 스몰토크는 복학생 선배의 ‘넝담’만큼이나 맥을 잘라버린다. 자매품으로 아무 의미 없는 습관적인 말들도 있다. 배고프다, 집에 가고 싶다, 왜 아직도 수요일이냐. 누구나 공감하는 말이겠지만 기껏해야 “그러니까요”, “저도요” 같은 짤막한 관례적인 대답이 돌아올 뿐이다. 예전에 친구가 고민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 엄마와 친구처럼 지내고 싶은데 잘 안 된다고. 대화를 하라는 원론적인 대답을 하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거다. “그냥 그날 있었던 일을 말하면 되지. 누구를 만났는데 어쨌고, 뭘 먹었는데 어땠고, 뭘 봤는데 어떻고 그런 거.” “하지만 그런 걸 왜 말해?” 당시에는 그렇게 말한 친구를 사회부적응자 보듯 했는데 스몰토크를 시도하는 지금의 내 심정이 딱 그렇다. 사실 나는 내향적 인간이긴 해도 말을 못하는 사람은 아니다. 학창시절 나서서 발표도 곧잘 했고 토론 시간에 손 드는 걸 두려워한 적도 없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얼굴을 마주 보고 가벼운 대화를 하려 하면 좀체 입이 트이지 않는다. 고백하자면 나는 상대의 반응이 무섭다. 상대의 얼굴에서 ‘어쩌라고’라며 묻는 듯한 표정이 떠오를까봐 초조하다. 그런 걸 물어서 어쩌려고, 나한테 그걸 말해서 어쩌라고. 생각해보면 사람들이 그렇게 뚱하게 반응한 적은 없는데 말이다. 그런 내 입이 트인 의외의 계기는 새로 만난 동료의 서툰 스몰토크 덕분이다.

 
“뭐 좋아하세요?”
네? 되물으며 조금 웃음이 터졌다. 이런 질문은 소개팅에서나 들어봤지, 밑도 끝도 없이 뭘 좋아하냐니? 하지만 이내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투박한 만큼 나와 가까워지고자 하는 노력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는 이 일을 전환점 삼아 용감해졌다. 일단 던지자! 노련하지 않더라도 사람들은 내 노력을 가상히 여길 테니! 근거 없는 어쩌라고의 불안에서 해방된 나는 역시나 근거 없는 선량한 이해심에 의존하며 이것저것을 말하고 다니기 시작했다. TPO를 신경 쓴다더니 이제는 TMT(투머치토커)를 주의해야 하는 꼴이다. 그래도 무뚝뚝한 신입사원보다는 애쓰는 막내가 더 낫지 않나.

 
스몰토크의 비밀
조금씩 떠들어대다 보니 스몰토크를 하는 데 아주 간단한 비결이 있다는 걸 눈치챘다. 바로 상대에 대한 관심이다. 너무 시시한가? 하지만 서로에게 왜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스몰토크 입문자가 적극적으로 타인을 알고자 하는 건 아주 큰 변화이자 성장이다. 당장의 침묵보다 눈앞의 사람에 집중하니 압박감이나 초조함에 시달릴 일도 없었다. 굳이 애쓰지 않았는데도 상대의 귀고리에 대해 말을 꺼내게 되고, 반려견의 안부를 묻는가 하면 지난 휴가에 대한 이야기를 편하게 나누게 되었다. 이렇게 쌓인 배경지식이 다음의 스몰토크를 더 수월하게끔 만드는 선순환으로 이어졌다. A선배를 다시 만났다. “선배 지난번 OOO화보는 잘하셨어요? 요즘 인기 되게 많더라고요. 제 친구도 좋아해요” “어, 그 화보가 말이야…(중략)”
이번엔 성공한 듯했다.
어쩌면 스몰토크라는 말 때문에 어렵게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따지고 보면 잡담이지 않나. 잡담 입문기, 잡담의 기술, 잡담 팁이라는 말은 좀 웃긴다. 스몰토크가 그리 대단한 게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은 거다. 조금만 힘을 빼고 툭, 한마디를 건네고 나면 의외로 나쁘지 않음을 알게 될 것이다. 나의 첫 시도처럼 30초 만에 어색함이 돌아온대도 괜찮다. 본래의 침묵 시간에서 30초나 덜어낸 것이니 나름의 성과를 거둔 것이라 생각하자. 그러니 머쓱해하거나 주눅들 필요 없이 조금 더 뻔뻔해져도 좋겠다. 스몰토크에 능한 주변인을 유심히 지켜본 결과, 스몰토크는 생각보다 성격의 영역에 속하지 않는 듯 보였다. 상대에게 관심을 갖고 시간을 들여 말을 거는 것은 철저히 노력과 성의의 결과물이고, 그 마음은 분명 전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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