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안에 '빨래집게'를 넣었더니 벌어진 일

조회수 2021. 1. 22. 18:3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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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랑

악보가 놓인 평범한 그랜드 피아노. 연주자는 건반 위로 손을 올려 아름다운 연주를 시작합니다. 그런데 어째 피아노 소리가 이상합니다. '틱', '탁' 하는 탁성도 들리고 빈 병이나 젬베를 두드리는 것 같은 소리도 들리죠. 맑고 고운 일반적인 피아노 음색과는 확실히 다릅니다. 악기가 고장 난 걸까요? 사실, 이 피아노에는 특별한 비밀이 있습니다.

앞서 본 영상에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약 30초경부터 이어지는 피아노 내부를 촬영한 장면인데요. 곧게 뻗은 현 사이에 긴 볼트들이 듬성듬성 끼워져 있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이 볼트들은 연주자가 연주 전에 일부러 끼워놓은 것입니다. 연주 내내 피아노에서 탁성과 타악기 소리가 들린 이유죠. 이처럼 내부에 볼트, 나뭇조각, 유리, 찰흙 등 이물을 넣어 소리를 변질시킨 피아노를 '프리페어드 피아노(Prepared Piano)'라고 부릅니다. 


왜 하필 현 사이에 볼트를 끼운 걸까?

피아노는 건반악기로 잘 알려져 있지만, 사실 현악기의 일종으로 분류되기도 합니다. 겉으로 보기엔 연주자가 누르는 건반이 직접 소리를 내는 것 같지만, 실은 건반을 눌렀을 때 건반에 연결된 해머가 현을 두드려서 소리를 내는 방식입니다. 울려야 할 현에 다른 물체가 끼어들면 현이 온전히 진동하지 못해, 원래 소리와 다른 소리를 냅니다. 프리페어드 피아노는 이 원리를 이용해 다양한 음색을 창조합니다. 


프리페어드 피아노는 변화무쌍한 음색이 매력적입니다. 같은 악보를 보고 연주하더라도 피아노 사이에 무엇을 끼워 넣느냐에 따라 아예 다른 음악이 되고, 같은 물체를 끼워 넣더라도 물건의 위치가 달라지면 소리가 확연히 바뀌죠. 타건 세기에 따라서도 악기의 음색이 달라집니다. 아래 영상은 프리페어드 피아노를 준비하는 모습인데요. 앞서 본 영상보다 더 다양한 사물들을 활용합니다. 빨래집게, 스테인리스 뚜껑, 목걸이, 찰흙 등 상상도 못한 물건들이 등장합니다.


프리페어드 피아노를 고안해 낸 사람은?

현대음악의 거장 존 케이지는 여러 선례에 영감을 받아 '프리페어드 피아노'라는 개념을 완성했습니다. 그는 문제작으로 자주 거론되는 '4분 33초'를 탄생시킨 작곡가이기도 한데요. 1930년대 후반, 존 케이지는 타악기 앙상블을 위한 음악 작곡을 의뢰받는데요. 음악이 연주될 무대가 터무니없이 좁아서 작곡에 제한이 가해지는 상황이었습니다. 홀에 들어갈 수 있는 악기는 그랜드 피아노 한 대가 유일했죠. 존 케이지는 피아노 한 대로 타악기 앙상블을 모방하는 시도를 하는데요. 피아노 현에 유리구슬이나 고무 등을 끼워 프리페어드 피아노로 공연을 올리게 됩니다. 

아래 영상은 존 케이지가 작곡한 '프리페어드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와 간주곡'인데요. 실제 사용된 악기는 피아노 한 대뿐이지만, 타악기와 피아노의 협연 장면을 연상시킵니다. 함께 감상해 볼까요?

존 케이지 이후에도 실험적인 시도를 원하는 많은 음악가들이 프리페어드 피아노로 연주를 시도했습니다. 이렇게 보니 피아노 한 대에서 탄생할 수 있는 소리가 정말 다양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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