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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자마자 버림받은 화가', 그의 기이한 그림의 변천사

조회수 2020. 8. 6. 11:1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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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랑

태어난 지 이틀만에 부모의 품을 떠나 가족 소유 농장으로 보내진 화가가 있었습니다. 그는 바로 상징주의 미술의 선구자, 프랑스 출신의 화가인 오딜롱 르동이죠.

출처: 위키피디아
오딜롱 르동

가정 형편이 어려워 자식 중 한 명을 떠나보내기로 결정한 부모의 선택은 맏아들이 아닌 둘째 아들 르동이었습니다. 


와인 산지인 프랑스 남부 보르도에서 태어난 르동은 11살 때까지 외삼촌 손에 자라야 했습니다. 부모로부터 선택받지 못했다는 자괴감은 '평생' 르동을 따라다녔죠.

르동은 외톨이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1851년 보르도로 돌아와 학교 교육을 받았으나 문학과 음악, 미술 외에는 크게 흥미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병약하고 내성적인 탓에 말수가 적었고 급우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습니다. 아버지의 권유로 시작한 건축 공부는 얼마 못가 실패했고 미술 아카데미 교육도 몇 개월 만에 그만두었습니다.

르동은 독학으로 미술 공부에 매진했습니다. 상징주의 문학에 심취해 보들레르, 말라르메, 플로베르, 에드가 앨런 포 등의 소설가, 시인들과 교류했습니다. 전업 작가로 나선 르동의 작품은 모두 목탄 드로잉과 석판화였죠. 우울하고 고독했던 유년 시절의 경험, 소극적인 성격, 상징주의 문학의 영향 등으로 그의 작품은 전반적으로 어둡고 난해했으며 모호하고 기이했습니다.

르동의 검은 누아르

식물학, 해부학 공부 경험과 미생물을 향한 관심이 더해지면서 기괴한 식물, 대형 거미, 잘린 머리, 거대한 안구, 외눈박이 얼굴 등 괴이한 형상이 그의 흑백 판화 작품을 지배했습니다. 비평가들은 이 시기를 '검은 누아르' 시대라고 부릅니다.

출처: 위키피디아
'눈동자, 이상한 풍선처럼 무한대로 향해 가는'(오딜롱 르동, 1882년, 석판화, LA카운티미술관 소장)
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스
웃는 거미(오딜롱 르동, 1887년, 석판화)
출처: 위키피디아
르동의 1878년 작품 '물의 수호신'(종이 위에 초크와 목탄, 시카고미술관 소장)

현실에선 볼 수 없는 기발한 상상력을 작품에 녹여내며 외부 세계의 묘사보다 내면의 우울한 심리 세계를 직시하고자 했던 르동은 마흔에 이르러 변화의 전기를 맞이합니다.


르동이 평생의 반려자가 된 13살 연하의 카미유 팔트(Camille Falte, 1853~1923)를 만나게 된 시기. 1880년 무렵입니다. 어둡고 우울했던 그의 작품이 밝고 따뜻한 세계로 나아가는 분기점이 된 작품, '감은 눈'(Closed Eyes)을 보겠습니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감은 눈(Les yeux clos), 오딜롱 르동, 1890년, 오르세미술관 소장

방금 수면에서 떠오른 듯 보이는 한 여인이 눈을 감고 있습니다. 신비로우면서도 평온한 표정이 묻어납니다. 내면으로만 침잠해 들어가던 그간의 작품 경향과 사뭇 다릅니다. 


작품의 모델은 바로 그의 아내 카미유 팔트입니다. 이후로도 카미유는 헌신적 내조자로, 예술적 뮤즈로 르동과 동행합니다. 

이젠 색채의 마술사, 오딜롱 르동

출처: 위키피디아
꽃을 그린 오딜롱 로동의 1909년 유화 작품

작가 특유의 내적 감성과 기발한 상상력이 만나 빚어낸 독특한 르동의 작품 세계는 아들로 인해 다시 한번 '퀀텀 점프'를 합니다. 아들의 성장을 지켜보면서 그의 작품 또한 다이내믹하면서도 서정적으로 변해간 거지요. 1894년 발병한 '중병'을 극복한 후 르동의 작품 경향은 더 온화하고 낙천적으로 바뀝니다. 

르동이 50대에 접어들면서 작품에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아름다운 꽃과 소녀의 이미지는 말년까지 그의 화풍을 지배하는 단골 소재로 자리잡습니다. 

출처: 게티이미지 코리아
Painting titled 'Ophelia among the Flowers' by Odilon Redon (1840-1916) a French symbolist painter, printmaker, draughtsman and pastellist. Dated 20th Century (Photo by: Universal History Archive/Universal Images Group via Getty Images)
출처: 게티이미지 코리아
Anemones and lilacs in a blue vase. Painting by Odilon Redon (1840-1916), 19th century. Petit-Palais Museum, Paris (Photo by Leemage/Corbis via Getty Images)
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스
오딜롱 르동의 1916년 작품 '꽃병'(Vase of Flowers)

그가 그린 다양한 꽃 그림을 보면 색채도 모양도 모두 너무 따스하고 아름답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둘째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다 끝내 못 보고 1916년 76세를 일기로 유명을 달리 하고 말았는데요. 그의 작품에는 아들이 꼭 살아 돌아오리란 믿음과 희망의 기운이 가득 담겨 있습니다.

르동의 변신은 어떤가요? 카미유 팔트를 만나 가정을 꾸린 이후 그의 삶은 판이하게 달라졌습니다. 어둡고 기이하던 작품에 세월의 여유가 묻어났고 분위기가 한결 포근해졌습니다. 마흔 이후 처음 사용하기 시작한 다채로운 색상은 강렬하면서도 부드럽습니다. 그의 작품은 나비파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고 훗날에는 '꿈'과 '무의식'의 세계를 그려낸 초현실주의 미술 양식으로 이어지며 근현대 미술사에 큰 획을 긋기에 이르죠. 놀랍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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