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검색어 입력폼

광화문 '해머링 맨' 밤낮으로 망치질하는 이유는?

조회수 2020. 3. 4. 09:00 수정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아트랑

광화문에서 신문로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면 검고 납작한 형상이 눈에 들어옵니다. 어깨를 약간 구부린 채 묵묵히 망치질을 하고 있는 이 사람. 하루에 10시간 동안, 35초에 한 번씩 망치질을 한다는데요. 정체는 미국 조각가 조나단 보로프스키(Jonathan Borofsky)가 만든 '해머링 맨(Hammering Man, 망치질하는 사람)'입니다.

키가 무려 22미터, 무게는 50톤에 달합니다. 미국 시애틀, 독일 베를린과 프랑크푸르트, 스위스 바젤, 일본 도쿄 등에 이어 2002년 7번째로 만들어졌습니다. 세계 11개 도시에 설치된 철제 작품 시리즈로, 작품마다 모양은 같아도 크기가 다르다고 합니다. 서울의 해머링 맨은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라고 자랑하는데요. 그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출처: Jonathan Borofsky 'Hammering Man' 2002, Steel, Aluminium, 22(H) x 10(W) x 0.49(D)m | 세화미술관

망치질만 18년 하셨는데 하루에 몇 시간 일하나요?

요즘은 아침 8시부터 저녁 6시까지 일해요. 저도 직장인이라 주말과 공휴일에는 쉽니다. 물론 노동자의 날에도 쉬고요. 오래전에는 쉬는 날이 없었어요. 2010년에는 하루 17시간, 2015년에는 14시간 동안 망치질을 한 것 같아요. 제 오른팔만 4톤이고 일하는 시간이 길다 보니 무게감에 다치는 경우가 잦아서 근무 시간이 줄었어요.

천천히 움직이는 것 같아도 묵묵히 일하고 계셨군요. 휴가는 따로 안 가시나요?

2002년 6월 4일 처음으로 출근한 이래 망치질만 340만 번을 했어요(웃음). 그러다 2015년에 노후된 부품 교체와 도색 작업이 필요하다고 해서 두 달 정도 휴식을 가진 적이 있었어요. 근무시간이 줄고 나서는 주말에 틈틈이 쉬고 있어요.

이사를 간 적이 있다는데, 거처를 옮긴 이유가 무엇인가요?

작품이 선 자리가 너무 건물 쪽에 붙어 있어서 2008년 제 인체 윤곽이 멀리서 더 잘 보이게끔 도로 쪽으로 5미터 이전했어요. 사실 제가 망치질하는 데 드는 전기료부터 보험료까지 유지비만 1년에 7천만 원 정도 든다고 해요. 돈을 벌기 위해 노동하는데 노동하면서도 돈이 드는 아이러니지만. 그래도 출퇴근길에 많은 사람들과 만날 수 있어서 좋아요.

탄생 비화가 빠질 수 없을 것 같아요. 자세히 설명해 주세요.

제 아버지라고 일컬을 수 있는 조나단 보로프스키는 미국 출생의 조각가로 세계 도시의 공공장소나 빌딩 앞에 저 같은 대형 작품을 설치하는 작가예요. 작가님은 어린 시절 음악가인 아버지가 들려주었던 친절한 거인 이야기에서 해머링 맨의 영감을 얻었다고 해요. 그는 1976년 튀니지의 구두 수선공이 망치질하는 모습을 찍은 사진을 토대로 해머링 맨을 스케치했대요.

출처: 세계 각지에 설치된 해머링 맨 연작 | Jonathan Borofsky

해머링 맨이 연작이라는 점이 흥미로운데요. 세계 곳곳에 자리 잡은 형제분들도 소개해 주세요.

제가 24층짜리 흥국생명빌딩의 6층까지 닿는 키인데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세계에서 가장 커요(웃음).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해머링 맨이 21미터인데 저보다 1미터 작아요. 해머링 맨의 크기는 장소에 따라 다른데요. 시애틀 미술관 앞에는 14.6미터, 스위스 바젤 스위스은행연합회 앞에는 13.4미터짜리가 있어요. 그 빌딩에 맞는 사이즈로 만들어진 것이죠.

첫 해머링 맨은 강철이 아닌 나무로 제작됐네요. 이름도 달랐고요.

맞아요. 해머링 맨은 1979년 뉴욕의 폴라 쿠퍼 갤러리(Poala Cooper Gallery)에서 가진 개인전에서 선보인 '워커(Worker, 노동자)'라는 나뭇조각이 원형이에요. 이후 시리즈 작품이 강철로 제작하면서 '해머링 맨'으로 이름이 바뀌었어요. 신의 한 수였죠.

출처: 작동시간이 아닌 해머링 맨의 모습 | 세화미술관

'해머링 맨'의 매력 포인트 한 번 말씀해 주세요.

작가님은 재료의 물성이 주는 다른 효과를 기대했다는데, 저 같은 경우엔 강철로 만들어졌고 검은색 페인트를 칠해서 압도적인 스케일이 두드러져요. 측면에서 보면 거인의 형상에 그치는데, 조금 각도를 달리해서 보면 제가 좀 말랐다는 걸 알 수 있는데요(웃음). 여기가 포인트죠. 거대한 인간이지만 그림자처럼 얇고 검은 형상이 멀리서 보면 "엇"하고, 가까이서 보면 "우와"하고 놀라게 해요. 또, 발도 큼지막한데요. 몸만 보면 불균형적일 수 있는데 안정적으로 서있어서 바람에도 끄떡없어요. 그리고 다른 나라 해머링 맨들의 구동 시스템은 팔에 달려 있는데 비해 저는 발바닥에 설치돼 있어서 관리가 훨씬 용이해요. 모든 해머링 맨 중에서 관리비와 운영비가 가장 저렴하다는 사실!

마지막으로 사람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망치질을 통해 노동과 삶의 가치를 전달하고 있어요. 또, 컴퓨터 혁명이 일어난 후 인간의 육체적 활동이 점점 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아쉬움도 담겨 있어요. 하지만 사용하는 도구가 어떻든지 각자의 '망치'를 들고 일하는 근로자에 대한 존경을 나타낸 것이죠. 작가님의 설명에 빌리자면, 노동자 계층에 있는 전 세계의 남성과 여성을 기리고자 해머링 맨을 디자인하고 제작했어요. 그 또는 그녀는 마을의 장인이고,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석탄 광부이며, 컴퓨터 기사이고, 농부이고, 우주인일 수도 있는, 우리가 기대어 사는 온갖 물자를 만드는 사람이죠. 이처럼 해머링 맨은 바로 일하는 사람들을 의미해요.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