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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스커트·하이힐 차림으로 거리 누비던 '양색시'들의 정체는?

조회수 2020. 2. 27. 14:3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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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인간상을 그려낸 인물화는 저마다의 다른 사연을 담고 있습니다. 이는 보는 이의 시선에서도 달라지곤 하는데요, 그림 속 인물의 표정을 통해 그들의 감정을 상상하고 해석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인물화의 매력은 카메라가 발명되고 보편화된 이후에도 여전히 인물화란 장르가 사라지지 않고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하죠.

나아가 인물화는 한 시대를 보여주는 사료가 되기도 합니다. 작품에 재현된 인물의 얼굴, 의복과 생활양식 등을 통해 시대의 흐름과 사회상의 변화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출처: 김환기 '항아리와 여인들' 1951, 캔버스에 유채, 54 x 120cm |(재)환기재단∙환기미술관

이런 맥락에서 오는 3월 1일까지 서울 갤러리현대에서 진행되는 <인물, 초상 그리고 사람-한국 근현대 인물화>展은 일제 강점기부터 2000년대 초까지의 시간과 그 속의 사람들을 압축해 보여주는 자리입니다. 소소한 일상, 가족들을 향한 사랑, 변하지 않은 우리 삶의 고충들은 세월을 거스르는 감동으로 읽힙니다.

오늘은, 다양한 이야기가 숨겨져 있는 <인물, 초상 그리고 사람-한국 근현대 인물화>展의 작품들을 추려봤답니다! 


이 전시의 매력은 단언컨대, 보는 이들에 따라 다르게 읽히는 인물들의 이야기일겁니다. 여러분들도 글을 보시며 인물들에 대해 자유롭게 상상해보세요!

고희동 '정자관을 쓴 자화상'(1915)

출처: 고희동 '자화상' 1915, 캔버스에 유채, 90.3 x 70cm |도쿄예술대학 소장

‘정자관을 쓴 자화상’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가인 고희동의 남겨진 작품 3점 중 1점이라 희소가치가 무척 높습니다. 사실 작가는 작품의 명을 붙이지 않았다고 하는데요. 후대의 사람들이 각각 그림의 특징을 잡아 ‘두루마기 입은 자화상’, ‘정자관을 쓴 자화상’, ‘부채를 든 자화상’이라고 불렀다고 하네요.

이번 전시에는 고희동의 작품 외에도 그동안 한국에서 쉽게 만나지 못했던 도쿄예술대학 미술관 소장 작품들이 소개됐습니다. 김관호, 이종우, 오지호, 김용준(졸업연도 순)의 ‘자화상’이 연이어 전시돼 있는데요. 당시 도쿄예술대학은 자화상을 졸업 작품으로 제출해야 했습니다. 이를 통해 근대적 의미의 ‘미술가’라는 정체성을 드러내곤 했죠. 이들이 새로이 인물을 바라보는 시각으로 접근했다는 점 역시 눈여겨볼 만합니다.

김관호 '해질녘'(1916)

출처: 김관호 '해질녘' 1916, 캔버스에 유채, 127.5 x 127cm |도쿄예술대학 소장

두 여인이 뒤태를 드러낸 채 서 있습니다. 한 여인은 머리를 감고 또 다른 여인은 수건으로 몸을 닦아내죠. 이 작품은 평양 출신의 김관호가 대동 강가에서 목욕하는 두 여인을 그린 것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누드화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렇다면 당시 여인들은 그의 그림 속 모델들처럼 강가 목욕을 즐겼을까요? 이민수 미술 칼럼니스트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 작품은 실제의 풍경 위에 실내에서 스케치한 모델의 누드를 짜깁기한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김관호는 서양의 누드화를 일본의 교육을 통해 한국식으로 풀어냈습니다. 그 진가는 1916년 도쿄 우에노 미술관에서 개최된 문부성 미술 전람회에서 발휘됐죠. 일본 화가들의 작품을 누르고 특선에 오른 것입니다. 일본강점기의 설움을 단칼에 베어버린 소식에 <매일신보>는 ‘조선 화가의 처음 얻는 영예’라고 보도했지만 당시 사회 정서상 누드 그림은 함께 실리지 못했습니다. 여인이 벌거벗은 그림 인고로 사진을 게재치 못함, 이 이유에서였습니다. 

좀 더 설명을 덧붙이자면 김관호는 부호의 아들이었습니다. 고희동에 이어 도쿄예술대학에 입학한 그는 유화에 상당한 소질을 보였는데 재학 중 경복궁 내 총독부 박물관에서 개최된 ‘공진회’ 전람회를 통해 세간의 이목을 끌게 됐습니다. 이국적이면서도 뚜렷한 이목구비의 외모가 돋보이는 그의 ‘자화상’ 역시 이번 전시에 소개됐는데요. 고가의 모피 의상을 입고 있어 그의 ‘배경’을 짐작게 하죠.

이응노 '거리풍경-양색시'(1946)

출처: 이응노 '거리풍경-양색시' 1946, 한지에 수묵담채, 50 x 60cm |갤러리현대

한지에 퍼진 색감이 70여 년이 지난 지금에 봐도 손색이 없습니다. 아무래도 몸매를 드러내는 상의에 미니스커트, 진한 화장에 하이힐을 신은 양색시(미군 병사를 상대로 성매매를 하던 여자들을 일컫는 말)에 가장 먼저 시선이 머물텐데요. 하지만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이들을 바라보는 당시 사람들의 표정입니다! 


검은색 선글라스를 끼고 훔쳐보는 듯한 이들의 무리와 마치 종이 밖을 뚫고 나올 것 같은 수군거림이 느껴진다면 작가의 의도는 명확하게 전달된 것입니다.

이응노는 일본에서 사생을 통해 현실을 담는 기술을 익혔습니다. 해방 이후부터 1950년대 중반까지 주변의 풍경과 현실의 인물을 담는 작품을 주로 제작했는데, 현실이라는 소재와 수묵이라는 방법이 다소 이질적이면서도 흥미롭습니다. 


'거리 풍경- 양색시'는 노출이 심한 옷을 입은 여성들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을 글과 함께 담아낸 작품입니다. 동시에 편견에 가득 찬 눈으로 양색시를 바라보는 무리의 사람들을 꼬집었습니다. 마치 한 편의 시사만화 같은 느낌으로 말이죠. 우측 하단에 적힌 글귀는 다음과 같습니다. 

바라볼 때에 눈물이 앞을 가리워마지 않노라. 빨리 반성하야 새옷을 벗고 직장으로 직장으로. 제이국민의 현모가 되어주기를 바라노라

천경자 '탱고가 흐르는 황혼' (1978)

출처: 천경자 '탱고가 흐르는 황혼' 1978, 종이에 채색, 46.5 x 42.5cm |서울특별시

흔치 않은 여성 작가네요. 일본 유학 중이던 천경자는 외 할아버지를 그린 ‘조부’와 외할머니를 그린 ‘노부’라는 작품으로 연이어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했습니다. 귀국 후 모교인 전남여고에서 미술교사로 일하며 학교 강당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죠.

꽃과 여인을 주된 소재로 하여 ‘꽃과 여인의 화가’라고 불렸고, 한국화의 채색화 분야에서 독창적 화풍을 개척한 화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꿈과 정한(情恨)을 일관된 주제로 삼았죠. 글재주도 뛰어나 다수의 수필집과 신문·잡지 기고 글을 남겼습니다.

‘탱고가 흐르는 황혼’ 역시 1995년 출간한 작가의 수필집과 동명인 작품입니다. 보랏빛 셔츠를 입고 푸른 장미를 가슴에 꽂은 여인이 담배를 태우는 옆모습에서는 이유를 알 수 없는 고독이 느껴집니다. 또 틀어 올린 머리는 마치 뱀을 연상케 하죠. 뱀은 그녀에게 가난과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한 소재였다고 합니다. 회고적 성격이 짙은 작품들을 제작하며 내면의 세계를 시각화한 그녀는 한 번의 이혼과 엇나간 사랑을 경험하며 관조적 화풍의 그림을 그려왔습니다. (참고로 이 작품은 2019년 서울옥션에서 8억 원에 낙찰됐습니다!)

그러나 천경자는 1991년 대표작 ‘미인도’의 위작 논란이 불거지며 활동 중단을 선언합니다. 그녀는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한 ‘미인도’가 위작이라고 주장했고, 국립현대미술관과 한국화랑협회는 진품이라는 감정을 내렸습니다. 위작 논란과 관련된 이야기는 다음의 포스트를 참고하세요.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 위작 논란, 다시 한번 촘촘히 되짚어 봤습니다.

<인물, 초상 그리고 사람-한국 근현대 인물화>

2019년 12월 18일 ~ 2020년 3월 1일
서울 갤러리현대
오전 10시 ~ 오후 6시
일반 5천원, 학생 3천원

유홍준, 최열, 목수현, 조은정, 박명자 자문

사진 ㅣ 갤러리현대

참고 |한국 미술산책 (이민수, 미술칼럼니스트)

네이버지식백과 '가족도'

[황정수의 서울미술기행] 유럽진출한 첫 한국인 서양화가 배운성

[그림이 있는 아침] 천경자 '탱고가 흐르는 황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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