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정화해주고 싶어요"..유튜브에서 책 읽어주는 배우 이정화

조회수 2019. 11. 1. 07: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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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랑
목소리만 들어도 눈물 나요.

목소리와 존재만으로 관객들의 눈물을 짓게 만드는 배우가 얼마나 될까. 이름처럼 마음을 정화하고 치유하는 노래를 부르는 배우 이정화가 그렇다. 그녀가 관객들의 마음을 건드리는 건 단지 얇고 예쁜 목소리와 겉모습 때문만은 아니다. 화려하지만 그만큼 외로운 배우의 길을 연습과 독서로 수련하듯 걸어온 그녀의 내공이 관객들의 마음을 두드렸다.

출처: 올댓아트 이민지

2019년 <지킬앤하이드>, <너를 위한 글자>, 쉬지 않고 뮤지컬 무대에 올랐던 이정화가 오랜만에 연극으로 돌아왔다. 그녀의 가장 강력한 무기인 노래를 잠시 내려놓고 배우로서 연기에 대한 갈증을 채우기로 한 것. 미나토 가나에의 소설을 원작의 연극 <왕복서간>에서 남태평양의 섬나라로 떠난 연인 준이치와 편지를 주고받으며 15년 전의 진실을 찾는 마리코 역을 맡은 그녀를 만났다.


-. 오랜만에 연극 무대에 올랐어요. <왕복서간>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해요.

제가 뮤지컬에서 주로 활동하고 노래를 전공했지만, ‘뮤지컬 가수’가 아니라 ‘뮤지컬 배우’잖아요. 어느 순간 연기의 중요성을 느끼면서 연기력을 높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연극을 하고 싶다는 소문을 내고 다녔는데, 대극장 뮤지컬 배우라는 인식이 강해서 그런지 기회가 잘 닿지 않더라고요.


그런데 <왕복서간> 제작사 대표님께서 제 첫 연극 데뷔작인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기회를 주신 분이에요. 이번에도 제가 책이나 편지와 어울리기도 하고, 워낙 저를 잘 아셔서 작품을 먼저 제안해주셨죠.

-. 초연을 봤다고 들었어요. 이번 공연은 무엇이 가장 달라졌나요?

<왕복서간>은 준이치와 마리코, 두 연인이 편지로 사랑을 주고받는 로맨스적인 요소도, 15년 전의 비밀을 알아가는 서스펜스적인 요소도 있는 작품이에요. 객석에서 초연을 봤을 때는 과거 사건의 비밀을 찾는 것에 초점이 맞춰졌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런데 제가 이번 공연을 준비하며 원작을 읽어보니, 그냥 서로를 사랑하는 두 연인의 얘기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준이치와 마리코의 사랑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어요.

출처: 벨라뮤즈

-. 서간문 형식이라 대사도 많고, 편지 특유의 호흡을 살리는 게 어려웠을 것 같아요.

맞아요. 원래 저는 작품의 흐름을 이해하면 대사를 금방 외우는 편이었어요. 보통 상대의 대사 속에 제 대답이 있으니까요. 그런데 <왕복서간>은 저 혼자서 말을 하고, 그다음 편지로 넘어가기 때문에 대사가 잘 안 외워지더라고요. 심지어 대사를 실수로 넘어가도 아무도 모르죠, 나중에 문제가 생기지만. 그래서 대사를 숙지할 때, 하나하나 의도를 명확하게 파악하려고 공부를 많이 했어요.


호흡도 편지를 그냥 읽으면 듣기에 지루하고, 준이치와 이야기하듯 주고받으면 실시간으로 나누는 대화처럼 느껴져요. 이 부분에 대한 고민도 많이 했는데, 어느 작품이든 항상 답은 대본 속에 있는 것 같아요.


사실 마리코는 그날의 기억을 잃었을 뿐이지, 사랑스럽고 애교가 많은 인물이에요. 비록 편지지만 마리코의 애교나 사랑스러움이 묻어 나오는 대목을 살려서 지루함도 덜고, 우리의 관계가 그렇게 진지하고 무거운 관계만은 아니라는 걸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 준이치 역의 배우들이 풍기는 분위기가 참 달라요. 배우마다 공연의 느낌이 달라지지는 않나요?

맞아요. 세 분이 참 다르죠 (웃음). 에녹 오빠는 지금까지 함께 한 작품이 많아서 호흡이 잘 맞고, 느낌이 잘 통해요. 무엇보다 에녹 오빠는 사랑을 많이 주는 준이치죠. 만약 그가 떠나지 않았다면 아마 마리코는 그 사건에 대해 계속 몰랐을 것 같아요. 그래서 반전이 있을 때 더 매섭고 소름이 돋기도 하지만요.


김다현 오빠는 참 생각이 많아 보여요. 아마 다현 준이치와 마리코는 15년 동안 차마 다가가지 못하는 거리감이나 비밀스러움이 꾸준히 있었을 것 같죠. 그래서 다현 오빠와 눈빛이 마주치면 갑자기 시간이 아득하게 느껴지고, 그리움이 몰려올 때가 있어요. 그래서 다현 준이치와 연기할 때면 그를 자꾸 웃겨주고 싶어요.


김규종 준이치는 무엇을 해도 진심이 느껴지는 준이치랄까? 저희끼리 이상하게 매력 있고, 짠한 준이치라 말해요. 15년을 사랑으로 겨우 버텨낸 것 같죠. 자신도 감당이 안 되지만, 마리코를 위해 버티다가, 진실이 밝혀지고 나면 엄청나게 후회하고 더 짠해져요. 그래서 규종 준이치는 어려움이 없게 만들어주고 싶어요.

출처: 벨라뮤즈

-. 현재 마리코는 준이치와 떨어져 있는 상황이지만, 어린 준이치와 마리코는 직접 마주 보고 있죠. 그 모습을 보면 어떤 느낌이 들지 궁금해요.

연습할 때 가장 즐거운 초반 장면을 바라봤더니, 연출님이 현재 마리코가 그 모습을 너무 똑바로 바라보고 있는 게 이상하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지금은 오히려 그들이 행복한 장면은 바라보지 못하고, 사건이 벌어질 때만 바라보고 있어요.


사실 과거 장면은 사건을 ‘보여주겠다’는 의도가 아니라, ‘십오 년 뒤의 보충수업’이라는 부제처럼 서로가 몰랐던 부분을 보충해주는 장면이거든요. 보시기에 재연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의도는 서로가 끝까지 말하지 않아서 생긴 오해를 해소하는 것에 있어요.


그래서 과거의 인물들이 등장할 때 똑같은 방법이나 구도로 등장하지 않아요. 반복되면 재연 같아지고 의미가 퇴색될까 봐.

-. 준이치와 마리코는 결말 이후 어떻게 됐을까요?

글쎄요. 작품은 열려 있지만, 아마 어렵지 않을까요? 누군가 피해를 보았기 때문에 두 사람의 책임은 남아 있잖아요. 그래서 이 작품이 참 어려운 것 같아요.


준이치가 그 사실을 숨겨줘서 고맙다고 하기에는 분명 책임이 남아있고, 그렇다고 그 당시에 마리코가 모든 사실을 다 알았더라면 얼마나 아파했을지 예상이 안 가니까요.

출처: 벨라뮤즈

-. 아름다운 대사가 많아요. 가장 좋아하는 대사는 무엇인가요?

“당신이 나를 약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당신도 나한테 기댔으면 좋겠어.”

저도, (강)지혜도 가장 좋아하는 대사예요. 준이치는 짐을 나누지 않고, 자기가 다 책임지겠다는 마음이었겠지만, 한편으로는 저(마리코)를 안 믿고 약하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좋은 것만 함께 하는 게 사랑이 아니고, 정말 어려운 일도 나누는 게 사랑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마리코의 입장에서는 아무 이유도 모르고 어두워지는 준이치를 보며 마음 아파하는 게 더 괴롭지 않았을까요? 함께 해결할 수 없어도, 이유를 알면 기다리기에 수월했을 텐데…. 사랑뿐 아니라 인간관계에 있어 기억해야 할 말 같아요.

-. 배우라는 직업 상, 편지를 많이 받을 것 같아요. 가장 기억에 남는 편지가 있나요?

저는 오히려 작품을 하다 감사한 분들이 생기면, 마지막 주 즈음에 편지를 써요. 최근에 전작 <너를 위한 글자>에서 강필석 오빠한테 편지를 길게 썼어요. 작품을 제안해준 분이었고, <닥터 지바고>에서 처음 만났지만, 함께 하는 장면이 없어 오빠의 진가를 잘 몰랐죠 (웃음).


오빠와 제가 고정 페어였는데, 알고 보니 ‘멜로 장인’인 거예요. 이전까지 사랑을 받는 역할을 많이 못 해봤는데, 내가 힘들어하니까 누군가 나를 지켜주고 사랑을 주는 느낌이 필석 오빠의 투리가 가장 섬세하고 강했거든요. 그래서 오빠에게 작품을 제안해줘서 너무 감사하고, 멜로에서 또 만나자는 편지를 썼어요.


오빠가 먼저 막공을 해서 먼저 드렸는데, 제 편지를 받고 감동 받은 오빠가 제 막공날 답장을 써주셨어요. 대부분 막공날 편지를 주니까 답장을 받아본 적이 없었는데, 편지를 받아보니 좋기도 하고, 마음이 잘 통하는 작업이었구나 싶어서 기억에 많이 남아요.

출처: 벨라뮤즈

-. 이전 작품에서 연약해 보이지만, 그 속에 강인함을 품고 있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어요.

제가 뒤에서 하는 사랑, 포용하고 보내주는 사랑을 하는 인물을 주로 맡다 보니 특화되며 강해진 것 같아요. 또 제가 배우를 직업으로 삼고 있다 보니 그렇게 되는 것 같기도 하고요.


배우가 보기에는 화려하지만,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직업이다 보니, 자기중심을 갖고 나아가지 않으면 많이 휘둘릴 수 있는 일이거든요.

저는 대학생 때부터 연습실에서 연습만 하고, 서울에 상경해 데뷔했을 때도 혼자였기 때문에, 시간이 나면 연습하거나 책을 읽으며 혼자 수련했던 것 같아요. 그 시간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주변에서 저를 보고 “혼자 흔들리지 않고 잘 나아간다”고 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아요. 제 안에 흔들림이나 물음이 정말 많았고, 그걸 혼자 생각하거나 책을 읽으며 답을 구했을 뿐이죠.

-. 혹시 도전하고 싶은 작품이나 캐릭터가 있나요?

<레드북>의 안나요. ‘나는 나를 말하는 사람’이란 노래와 시놉시스만으로 이 작품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안나가 또 작가다 보니 저랑 잘 어울리지 않을까요? (웃음)

-. 독서를 많이 하기로 유명하죠. 혹시 독서를 열심히 하게 된 계기나 있나요?

어렸을 때부터 책을 많이 읽었는데, 폭발적으로 많이 읽게 된 건 대학생 때부터였어요. 삶이 너무 혼란스러웠거든요. 고민은 많고, 변화하고 싶어서 책을 읽게 됐죠. 저는 책에서 읽은 걸 제 삶에 적용하는 게 재미있어요.


예를 들어, 책에서 아침에 일어나서 명상하라고 한다면 일주일간 해보고 좋으면, 제 습관으로 만드는 거죠. 이렇게 제 삶이 변화하면 성취감이 들더라고요. 예전에는 저 혼자 재미있게 읽었다면, 요즘에는 유튜브를 통해 알려드려야 하니까 더 꼼꼼히 읽고 공부해요. 더 재밌는 것 같아요 (웃음).

-. 맞아요. 마음정화TV 채널을 운영하는 유튜버이기도 하죠. 어떻게 시작했는지 궁금해요.

원래 인스타그램 라이브 방송을 통해 책도 읽고, 팬들과 소통해왔어요. 그런데 라이브 방송을 놓쳐서 아쉽다는 피드백도 있었고, 저도 방송을 하다 보니 열심히 준비하는데, 그냥 사라지는 게 아깝더라고요.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요즘 사람들이 유튜브를 많이 하니까 나도 해보자는 생각에 시작하게 됐죠. 제가 직접 핸드폰으로 찍고 편집한 영상이라 엄청난 편집은 아니지만, 저는 이것도 그저 제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 혹시 만들어보고 싶은 콘텐츠도 있을까요?

제가 원래는 북 콘서트를 열고 싶었는데, 투자도 받아야 하고 할 일이 많더라고요. 유튜브를 통해 체계화해서 오프라인으로 책 읽기 활동을 해보고 싶어요. 주로 제 유튜브 구독자분들은 제 팬분들이 많으니까 제 얼굴도 보고 책도 읽으면 좋지 않을까요? (웃음)

출처: 벨라뮤즈

-. 요즘 ‘말’에 대해 고민이 많은 사람이 많아요. 정화 씨처럼 말을 예쁘게 하고 싶다는 팬들이 많더라고요. 한 마디 조언해준다면?

맞아요. 이 질문을 많이 받아요. 제가 유튜브 방송에서도 말했지만, 습관의 힘이라고 생각해요. 어렵지만, 좋은 걸 보고, 듣고, 생각하면 예쁜 말이 나온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제가 작년에 <1446>이라는 뮤지컬을 봤는데요. 이전까지는 저도 세종대왕이 책을 많이 읽고, 위대한 업적을 세운 위인인 줄만 알았는데, “사람을 살리고 싶다. 글을 몰라서 죽어가는 내 백성을 살리고 싶다”는 장면을 보고 펑펑 울었어요. 그렇게 사람을 살리기 위해 만들어진 말로 누구를 욕하거나 해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 올해도 얼마 남지 않았어요. 이후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왕복서간> 이후로 연말까지 휴식을 취하려 해요. 결혼도 했으니 가정에도 충실하고, 바빠서 읽지 못한 책을 읽으며 유튜브를 할까 생각 중이에요.


그리고 연말에 도서관에서 책과 제 일에 관련된 강연이 들어와서 준비하고 있어요. 이제부터 강연 라이프 시작인가 싶고요 (웃음). 공식적인 활동이나 작품은 없지만, 개인적으로는 바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낼 예정이에요.

-. 마지막으로 사람들이 ‘이정화’를 어떤 배우로 기억하길 바라나요?

제 유튜브, SNS, 손편지에 이런 말들이 있었어요. “배우님 목소리만 들어도 눈물나요.” 제 노래와 연기에 마음이 정화되고, 치유된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 제 직업에 정말 감사해요.


스승님께서 제게 하신 “너의 노래와 호흡을 모두 듣는 이에게 헌신하라”는 말씀이 제 모토거든요. 사람들이 저를 봤을 때, 제 이름처럼 마음이 정화되고, 치유되는 사람이고 싶어요. 그러면 너무 행복할 것 같아요.

연극 '왕복서간 : 십오 년 뒤의 보충수업'
2019.09.27 ~ 2019.11.17
서울 KT&G 상상마당 대치아트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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