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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부터 시카고 갱스터까지.. 언니들의 변신은 무죄!

조회수 2019. 10. 2. 07: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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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랑

헌신적인 현실 엄마

&


시카고 갱스터

40년 무명 배우,
아무도 몰라줘도 얼마나 좋았으면
그렇게 오래 했겠어요?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예수정,
jtbc<방구석 1열> 인터뷰 중

트렌드를 이끄는 포털업계에서 일하는 여자들의 이야기를 그린 tvN 드라마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이하 검블유)는 배우 재발견의 향연이었습니다. 주인공이었던 임수정, 전혜진, 이다희 외에도 시청자의 눈길을 사로잡은 배우가 있었는데요. 바로 재벌 그룹 총수이자 포털 이사 송가경(전혜진)의 시어머니 장희은 역을 맡은 배우 예수정입니다. 

출처: <검블유> 속 서늘한 장 회장 역을 맡은 배우 예수정. | tvN 유튜브 캡처

장 회장은 세상에 무서울 것 없는 그룹사 회장으로 며느리이자 대형 포털의 이사인 가경을 압박하고 입맛대로 주무르려 하는 악인이죠. 은발과 금발이 섞인 단발머리에 젊은 남자들을 불러 그들의 몸에 타투를 그리며 스트레스를 풀고, "가경아, 넌 왜 자아가 있니"라는 섬뜩한 대사를 날리는 그의 모습에서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새로운 재벌 회장 캐릭터가 탄생했습니다.

출처: <신과함께 죄와 벌> 스틸 사진. | 네이버영화

<검블유> 이전에 예수정은 사천만 영화배우로도 알려져 있었습니다. 영화 <도둑들> <부산행> <신과 함께 죄와 벌> <신과 함께 인과 연>에 출연하면서 한국 여자 배우로는 최초로 천만 관객 영화 네 편에 참여한 배우가 되었죠. 큰 비중을 가진 역할은 아니지만 그는 작품마다 확실한 존재감을 보여왔습니다. 


맡는 역할마다 독보적인 존재감을 불어넣는 배우 예수정은 1979년 연극 <고독이란 이름의 여인>으로 데뷔했습니다.  대학 졸업 후 대학로 연극 무대에서 잠깐 활동 후 1984년 독일로 유학을 가 연극학 석사 공부를 했고, 한국에 돌아와서도 무대와 매체를 병행하며 작품 활동을 하면서 김동훈연극상, 동아연극상, 이해랑연극상, 서울연극제 연기상 등 다수의 연극 부문 수상 경력을 쌓았습니다. 그리고 올해 약 2년 만에 연극 <앙상블>로 무대로 돌아왔습니다. 

출처: 연극 <앙상블> 공연 사진. | 올댓아트 이참슬

<앙상블>은 어머니와 두 남매를 중심으로 가족의 구성원이 지적 장애를 겪고 있을 때 벌어질 수 있는 갈등과 애증을 현실적으로 담은 연극입니다. 지극히 일상적인 상황을 간결한 구어체의 대화로 전달하면서 담담하지만 감동을 자아내는 작품입니다. 예수정은 지적 장애를 가진 아들 미켈레와 10년 전 집을 나간 딸 산드라의 엄마 이자벨라 역을 맡았는데요. 아들을 헌신적으로 돌보는 헌신적인 모습과, 오빠에게만 집중되는 관심에 집을 나가 10년 만에 돌아온 딸과의 티격태격하는 모습으로 가족 코미디를 이끌면서 잔잔한 감동을 줍니다. 

출처: 영화 <69세> 스틸 사진. | 부산국제영화제 홈페이지

예수정의 활약은 올 하반기에도 스크린, 무대를 오가며 이어집니다. 2019년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 부문에 선정된 영화 <69세>와 배우와 연출 모두 여성으로 이루어져 화제를 모으고 있는 연극 <메리 제인>에 출연하는데요. <69세>에서는 남성 간호조무사에게 성폭행을 당해 억울함을 풀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69세 효정 역을, <메리 제인>에서는 중증 뇌성마비 아들을 키우는 메리 제인의 고된 일상을 견딜 수 있게 연대하는 8명의 여성 중 루디와 텐케이 1인 2역을 선보입니다. 

남자 역할을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역할을 창조해야 했어요.
연습 과정이 어려웠지만
그만큼 재밌었죠.

-정경순,
MBC<문화사색> 인터뷰 중

정경순은 <황진이> <뉴하트>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 <병원선> 등 다양한 드라마에 출연한 모습으로 익숙한 배우입니다. 악인, 평범한 서민, 부잣집 사모님에 이르기까지 넓은 연기 스펙트럼으로 작품 속 감초 역할을 하고 있죠. 1983년 연극 <수전노>로 데뷔해 대종상, 청룡영화상 여우조연상을 수상하면서 실력을 증명받은 배우 정경순은 최근 약 6년 만에 연극 <오펀스>로 무대에 복귀하면서 색다른 모습으로 관객을 만나고 있습니다.

출처: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에 출연한 정경순. | 유튜브 캡처

최근 공연계 주요 이슈 중 하나는 '젠더 프리 캐스팅'입니다. 배우의 성별과 상관없이 배역을 정하는 젠더 프리 캐스팅은 맡을 수 있는 배역이 한정되어 있던 여성 배우들에게 다양한 인물을 연기할 기회를 주기 위해, 더 나아가 성별 고정관념을 깨기 위해 시작되었는데요. 정경순의 무대 복귀작 <오펀스>도 젠더 프리 캐스팅을 시도해 화제를 모았습니다.

출처: 연극 <오펀스>에서 갱스터 역할을 맡은 정경순. | 레드앤블루

<오펀스>는 버림받는 것이 두려운 충동적이고 폭력적인 형 트릿과, 형의 과보호에 집에만 갇혀 지내는 동생 필립, 그리고 트릿이 납치해온 수상하고 다정한 시카고 갱스터 해롤드가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가정과 사회로부터 소외당한 세 사람이 서로의 아픔과 상처를 보듬고, 외로움을 채워주면서 서서히 가족이 되는 모습을 감각적으로 풀어낸 작품입니다.

마초적인 특징이 강한 주인공 해롤드, 트릿, 필립은 2017년 한국 초연 당시 남성 배우로만 캐스팅됐지만, 이번 프로덕션에서는 해롤드 역에 정경순, 트릿 역에 최유하, 필립 역에 최수진을 캐스팅하면서 여성 페어를 선보였습니다.

출처: <오펀스> 캐릭터 포스터 | 레드앤블루

특히 해롤드 역의 배우 정경순은 부유한 시카고 갱스터답게 남다른 슈트핏으로 이전과는 다른 존재감을 보입니다. 어설픈 트릿의 납치극으로부터 단번에 탈출할 만큼 강인한 갱스터지만 보살핌을 받을 울타리가 없는 두 형제에게는 누구보다 따뜻한 격려를 보내는 모습에 관객에게도 더불어 위로를 전달합니다.

<오펀스>는 여성 페어 공연에서도 '형'과 같은 호칭을 수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극의 후반부에서 격려에 익숙하지 않은 트릿을 향해 정경순 해롤드가 "이리 와 딸아, 내가 어깨를 주물러줄게"라는 말을 건네면서 형제에게 가족, 어른이라는 울타리가 되어줌과 동시에 여성의 연대를 은유하며 그 의미를 확장시킵니다.

출처: 레드앤블루

<오펀스>의 김태형 연출은 "무대에서 인간이 전할 수 있는 가치 있는 이야기라면 그 화자가 남자인가 여자인가는 중요치 않다. <오펀스>는 위로와 격려가 전해지며 각자의 벽을 허무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이것이 여성의 입을 통해 전해질 때는 또 다른 강력한 힘이 있을 것이라 믿는다"라고 밝히기도 했죠.

한 인터뷰에서 정경순은 해롤드 역할에 대해 "그동안 안 했던 행동과 포즈를 취하고 목소리를 내는 것이, 이런 작업을 이 나이에 하고 있다는 게 되게 재미있다"라는 소감을 전했습니다. 이처럼 앞으로도 많은 작품에서 관록 있는 배우들의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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