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스트 공학도가 상위 1% 공연 연출가가 되기까지..김태형 연출가의 삶

조회수 2019. 9. 2. 07: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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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랑

"연극이라는 세상을 파보자"
공연에 반한 공학도

카이스트 출신 공연 연출가. 그의 이력 한 줄은 필모그래피와 상관없이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명문대에 다니던 수재 공대생이 연극에 빠져 학교를 그만두고, 현재 잘 나가는 공연 연출이 됐다는 사연은 사람들에게 여느 공연만큼이나 극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출처: 두산아트센터

남다른 인생사의 주인공 김태형 연출을 지난 8월 9일 ‘두산아트스쿨: 공연’의 세 번째 연사로 만났다. 인생에서 성공만을 맛보며 승승장구했을 것 같은 그의 강연 주제는 다름 아닌 ‘아주 조금 다른 짓’과 ‘실패’였다.


공학도의 길을 걷던 그가 공연계로 방향을 돌리게 된 이유부터 현재 자리에 오르기까지의 과정, 연출이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지 등 공연 연출의 A to Z를 들어봤다. *본문은 ‘두산아트스쿨: 공연’ 내용을 바탕으로 재구성했습니다.

카이스트 공대생이 연출을 꿈꾸기까지

출처: 두산아트센터

-. 공학도와 연극은 거리가 멀어 보이는데요. 어떻게 연극을 시작하게 되었나요?

저는 공부를 잘했습니다. 굉장히 잘했습니다, 전교 1, 2등을 놓친 적이 손에 꼽을 정도로(웃음). 그래서 과학고에 진학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공부를 잘한다는 것으로 칭찬받을 수 없는 순간이 오기 시작하더라고요.


남들에게 사랑받고 싶고, 칭찬받고 싶은 인정욕구가 너무 넘치는 사람이었는데 말이죠.  자연스럽게 학과 공부가 재미없게 느껴졌고, 다른 것으로 인정받고 싶던 찰나에 우연히 연극 동아리를 들어가게 됐어요.


그때부터 미래에 대해 고민하면서 남들과는 ‘다른 짓’을 하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동아리방에서 만화책이나 영화를 보고, 학생회 활동을 하며 데모에 나가고, 그렇게 한참 혈기왕성한 나이에 세상에 대한 눈을 뜨게 됐어요, 그것도 아주 삐딱하게, 삐뚤어지게, 빨갛게 말입니다.


-. 카이스트를 중퇴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 입학을 결심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이 시기에 영화와 연극의 역사에 대한 수업을 듣게 됐어요. 정말 말도 안 되게 한 학기 동안 영화사, 연극사를 훑는 수업이었죠. 그런데 후반에 들었던 베르톨트 브레히트라는 사람이 저한테 큰 충격을 줍니다. 그간 연극의 전통을 뒤엎는 신선한 발상보다도, 브레히트가 ‘프롤레타리아의 혁명’을 꿈꿨다는 것이 가장 놀라웠어요.


그는 연극을 통해서 새로운 엔터테인먼트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당신이 발 딛고 있는 세계를 깨닫게 해서 관객이 극장을 나서며 혁명을 일으키는 생각을 제공하고자 했어요.  이전까지 연극은 제게 남들에게 칭찬받기 위해 했던 취미 정도였어요. 하지만 저는 브레히트를 통해 연극이 세상에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강력한 도구임을 알게 됐죠.


제가 공부하던 세계와는 너무 다른, 인간과 인간이 끈끈하게 만나는 세계가 너무나 흥미로웠기 때문에 ‘이 연극이라는 세상을 파보자’라는 생각이 딱 들었어요. 그리고 친한 선배를 통해 알게 된 한예종 입시를 준비하게 됐어요. 


-. 갑자기 아들이 연극을 하겠다고 했을 때 부모님의 반대가 심했을 것 같아요. 

물론 자본주의 시스템, 학교 입시도 난관이었지만, ‘부모님께 어떻게 말씀드리지?’가 가장 큰 난관이었어요. 당시 피폐하게 살았지만 그래도 부모님이 보시기에 모범생처럼 살았고, 그동안 크게 뜻을 거스른 적은 없었거든요.


그런데 갑자기 학교를 그만두고 연극을 하겠다고 하는 아들의 말이 청천벽력 같으셨을 거예요.  그래서 저는 부모님께 편지를 썼어요. 주된 내용은 “나는 자본주의의 개가 되기 싫기 때문에 연극을 할 것이다”였지만(웃음).


다른 부모님 같으면 무슨 헛소리냐 하셨겠지만, 저희 아버지는 그러지 않으셨어요. 오히려 제게 “예술이야말로 자본주의의 개다”라고 말씀하셨죠. 그때 부모님과 장문의 편지를 주고받고, 많은 논쟁을 했어요. 끝내 설득을 하지 못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부모님과 나눴던 이야기가 면접 때 많은 도움이 됐던 것 같아요.

출처: 두산아트센터

-. 사실 공학도로서의 기간은 짧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수식어는 떼려야 뗄 수 없네요.

제가 공학도로 공부한 시간은 채 5년이 안 됐고, 연극을 하겠다고 다짐한 지는 18-19년 정도 됐어요. 그리고 저는 이제 전공을 무엇으로 바꿨다는 게 무의미한 나이죠. 


하지만 저는 많은 사람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라고 스스로 느끼고 중요한 선택을 결정하는 시기, 즉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에 진로를 한 번 크게 교체했고, 또 여전히 대한민국이 어쩔 수 없는 학벌주의 사회이기 때문에 그렇지 않을까 싶어요.


-. 학교를 졸업했을 때, 가장 큰 실패를 맛봤다는 말을 들었어요. 실패감을 어떻게 극복했나요?

저는 열아홉에 대학생이 돼 서른 살에 졸업했어요. 어렸을 때는 서른이 되면 어른이고, 뭔가를 이뤄놓은 나이일 줄 알았는데 막상 현실은 그렇지가 않았죠. 재학 중에 준비한 작품과 레퍼토리를 올리는 동기나 선후배들도 있었는데, 저는 아무것도 준비되어 있지 않고, 인맥이나 할 일도 없었던 상태라 한동안 은둔형 외톨이처럼 살았어요


당시에는 나락에 빠진 기분이었고, 연극이 하는 것이 부끄럽고 싫고, 실패한 인생이라는 생각에 완전히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렇게 방황하던 차에, 친구의 연락으로 나간 술자리에서 교수님을 뵀어요. 그때, 술기운을 빌어 “선생님은 연출가로서 힘들지 않으셨습니까?”라고 질문을 드린 거죠. 그러자 교수님은 당연히 힘들다고 말씀하시면서, 제 상태를 보고 해주신 말씀이 큰 위로가 됐어요.

요즘 세상은 생물학적으로 굶어 죽기 힘든 세상이다. 아르바이트해서라도 생물학적인 생존은 할 수 있다. 게다가 너는 부모님이 계시고 친구가 있지 않니?

최소한의 사회적 생존은 할 수 있다. 자존감과 관련된 생존의 몫은 차차 해결하면 된다.

그리고 이 일을 하겠다고 마음먹었으면 10년은 해봐. 그리고 그만둬도 괜찮아

-. 공연 연출가로서의 정식 데뷔도 참 드라마틱했다고 들었어요.

제 데뷔는 우연히 다른 사람이 버리고 간 작품을 맡게 되면서 시작됐어요. 교수님의 조언을 듣고 구한 조연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는데, 공연 개막을 3주 앞두고 제작사와의 다툼으로 연출이 그만둬버린 거예요. 그리고 아직도 그 이유를 모르겠는데, 제작사 대표와 그만둔 연출이 제게 공연을 맡겼어요.


준비 기간이 3주밖에 남지 않은 상태에서 연출과 4명의 배우 중 2명이 교체된 공연의 새로운 연출을 맡은 게 제 프로 데뷔였던 셈이죠. 공연의 성패와 상관없이 우연히 찾아온 기회, 반년간의 시간으로 저는 인생을 한 번 뒤집을 수 있는 행운을 얻지 않았나 싶어요.

공연 한 편이 무대에 오르기까지

공연을 비롯한 드라마·예능·영화 등의 분야에 존재하는 연출은 그리 생소한 직업은 아니다. 하지만 연출이 정확하게 어떤 일을 하는지 설명하라면 대답할 수 있는 이 또한 많지 않다.


특히 공연 연출을 꿈꾸는 이들이 많았던 자리에서, 그는 공연 연출가가 한 작품을 무대에 올리기까지 하는 일을 작업의 선택, 팀의 구성, 사전 제작, 연습, 공연, 총 다섯 단계로 나눠 설명했다.

출처: 두산아트센터
#1 작업의 선택

"졸업하자마자 섭외가 들어오면 좋겠지만, 그런 일은 극히 드뭅니다. 그렇다면 본인이 직접 희곡을 쓰거나, 좋은 작가를 만나 작품을 준비해야 하는데요. 여기서 섭외를 당하는 것과 직접 본인이 희곡을 선택하는 건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어요.


섭외는 페이를 받고 작품에 임하면 되지만, 본인이 직접 창작하고 선택한 희곡은 어떤 작품을 할 것인지부터 얼마의 비용이 들어갈 것인지, 회수 가능한 비용은 얼마인지를 계획해 이것이 수지에 맞는지 계산해야 합니다. 그러고 나서 어떤 이야기를 어떤 스타일로 할 것인지 고민하는 거죠."

#2 팀의 구성

"작품이 결정되고 나서는 팀을 짜야 합니다. 작가, 작곡가, 무대, 소품, 조명 디자이너, 홍보팀, 티켓 예매처 등 수많은 팀과 접촉하고, 그리고 배우들을 만나죠. 사실 연출이 하는 일의 절반은 여기 달려있다고 말할 정도로 크리에이티브 팀, 배우 캐스팅은 아주 중요한 단계입니다.


연출이 할 수 있는 정도는 매 작업, 공연마다 다르지만, 결국 중요한 건 ‘사람’이기 때문인데요. 이 사람과 원활히 소통하고 작업할 수 있는지, 이 사람에게 더 이상의 결과를 이끌어내기 위해서 요청하고, 빌고, 화내고, 소통할 수 있는지가 연출의 중요한 능력 중 하나이죠."

#3 Pre-production (사전 제작)

"크리에이티브 팀이 꾸려지면 Pre-production(사전 제작) 단계를 거쳐야 합니다. 가장 먼저 텍스트(희곡)와의 싸움이 시작됩니다. 물론 싸움이 아니라 아주 행복한 시간이 될 수도 있지만. 텍스트가 무슨 이야기를 할 것인가에 대해 작업을 하죠.


그다음, 분석을 마친 텍스트는 디자인과 만납니다. 무대에서 과연 무엇을 구현할 수 있을지, 조명과 영상은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작가‧디자이너와 함께 선택하고 변화시키는 힘든 과정인데요. 이 기간은 거의 6개월에서 1년 정도인데, 작품에 따라서는 한 달, 3일 등 천차만별 달라집니다."

#4 연습

사전 제작을 마치면 배우와의 연습이 시작됩니다. 이제 배우와 디자이너, 작가, 연출이 만나게 되는 것이죠. (김 연출은 연습 과정을 인간과 글, 인간과 인간, 인간과 무대와의 만남이 시작되는 과정이라 말한다)


연습 과정에서 연출이 하는 일은 바로 ‘선택’입니다. 저는 작품이 연습에 돌입하면 무대에 올라가기 전까지 하루에 100가지가 넘는 선택을 하는 것 같아요. 연기는 배우가 하지만, 어떤 연기를 할지 연출이 그 방향을 제시해줘야 하기 때문이죠.

#5 공연

연습이 끝나면, 드디어 인간(배우)과 인간(관객)이 만나게 되는 겁니다. 디자이너의 힘으로 무대가 완성되고, 공연은 배우에 의해 흘러가게 됩니다. 그리고 공연은 연출이 무대감독에 의해 진행되는데, 연출이 매일 공연장에 가지 않아도 공연이 진행되게 하는 포지션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부터는 제가 수도 없이 많은 선택을 해서 올린 공연이라 하더라도, 제 영역을 벗어나는 경우가 너무나도 많습니다. 작품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 배우가 펼치는 연기와 음악은 모두 관객이 무엇을 받아들이냐에 결정되기 때문에, 이미 무대에 오른 공연은 배우도, 제작자의 것이 아닌 관객의 것인 거죠.


하지만 공연의 책임은 연출이 져야 합니다. 객석에서 대사나 음악이 잘 들리도록 극장에 요구하고, 대사를 잘 잊거나 음이탈이 일어나는 배우를 미리 훈련하는 건 모두 연출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모든 걸 연출이 다 할 수는 없어요. 그렇지만 이 모든 책임을 지는 것 또한 연출의 일이라고 생각해요.

실질적으로 모든 걸 막을 수는 없지만,
책임질 테니 믿고 따라와라,.
당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게 만들고,
마지막에는 내가 다 책임지겠다.
저는 이 마인드로 공연에 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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