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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는 친구이자 엄마"…국립발레단 떠나는 스타, 김지영

아트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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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8월을 국립발레단 퇴단을 앞둔 발레리나가 있습니다. 일명 '갓지영'이라 불리는 김지영인데요. 지난 13~14일 <코리아 발레 갈라 시리즈 1-발레 오브 서머 나이트'를 위해 요즘 콩쿠르 준비하듯 연습하고 있다는 그녀의 하루는 전혀 변하지 않았습니다.


모두 여름 휴가를 떠난 연습실에 매일같이 출근도장을 찍으며 토슈즈를 신은 김지영을 만나봤습니다.

김지영·이재우 인터뷰 보기
(연습 영상도 감상할 수 있습니다!)
김지영 발레리나의 일문일답

김지영 발레리나는 국립발레단에서의 마지막 무대인 '지젤'을 마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휴가는 다녀오셨나요. 발레단 퇴단 공연 이후 하루 스케쥴이 어떻게 변했는지 궁금합니다.

"어디 가지는 못하고요. 2~3일 집에서 쉬고 다시 연습하고 있어요. 왜냐하면 7월 13~14일 발레 갈라 때문에 거의 콩쿠르 준비하듯 연습하고 있어요."


이번 갈라 무대에서는 어떤 작품을 선보이나요.

"저랑 이재우씨랑 탈리스만이라는 작품과 스파르타쿠스 2인무를 추고요. 저 혼자 '빈사의 백조'까지 이렇게 세 작품을 선보입니다. 사실 국립발레단을 떠난 이후에도 공연이 계속 있어요.


9월엔 광주에서 공연이 있고, 10월에도 또 계획이 잡혀 있습니다. 춤은 아무래도 아직은 더 출 생각입니다. 언제 확실히 내려올 거라고 말씀은 못 드리겠는데...당분간은 무대에 설 계획입니다."

출처국립발레단

아직도 기량이 '전성기' 못지 않은데, 발레단 퇴단을 결심하게 된 이유가 있나요.

"한국국립발레단은 전용극장이 없어서 큰 무대에서 할 수 있는 공연이 많지 않아요. 그래서 무용수들이 그런 무대에 설 기회가 많지 않죠. 그런데 제가 너무 오래 있으면 제 후배들이 기회를 못 갖는 거잖아요.


저도 자리를 내줘야 할 때가 된 것 같기도 하고. 또 제가 너무 오래 있으면 사람들이 저를 지겨워하는 것 같기도 하고...그리워할 때 빨리 나가야 할 것 같아서 퇴단을 결심했어요(웃음)."

‘갓지영’이란 수식어가 있을 만큼 테크닉, 연기 모두 뛰어난데 42세까지 기량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이 있나요.

"나이가 들면 들수록 몸이 굳는 건 당연해요. 저는 국립발레단 재활 트레이너 선생님을 믿고 전적으로 제 몸을 맡겨요. 제가 쉴 때도 취미로 '재활운동'을 하더라고요.


또 먹는 것도 잘 먹어야겠죠. 비타민, 홍삼 같은 것을 챙겨먹을 때도 있지만 특별히 일부러 뭔가를 먹지는 않아요. 기량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건 아무래도 '운동' 덕분인 것 같아요."

출처1998년 세계적 권위의 파리국제무용콩쿠르에서 파드되(2인무) 부문 1위를 차지했던 김지영과 김용걸의 신문 기사(왼쪽). 1998년 김지영의 공연 모습|경향신문 DB

어렸을 때부터 남다른 기량으로 세계적인 콩쿠르에서 수상하곤 했는데, 발레를 시작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정확하게는 기억이 안나지만 확실한 건 제가 정말 하고 싶어했다는 거예요. 시작하기 전까지는 단순 호기심이었던 것 같아요. 친구가 발레를 배운다길래 저도 엄마를 졸라서 발레 학원에 가게 됐죠. 그때가 초등학교 5학년 올라갈 때였는데, 그 전엔 발레 공연도 본 적이 없어요. 집안도 발레나 예술과는 거리가 멀고요.

학원을 처음 갔는데 선생님이 '저기 뒤에 가서 따라해봐'라고 하셨어요. 그런데 제가 좀 잘 따라했나봐요. 선생님께서 '너무 잘 따라하네. 천재인가 봐'라고 칭찬해 주셨어요. 선생님은 그냥 농담으로 하신 말씀 같아요. 그런데 저한테는 의미 있는 말이었죠.


30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 하는 걸 보면. 사실 제가 그때 선생님한테 처음 칭찬을 들었어요. 그전까지 제가 뭘 잘하는 애가 아니었거든요. 칭찬을 들은 일이 별로 없었는데...선생님께 칭찬을 듣고 나니까 발레가 더 좋은 거예요. 노력을 하니까 그게 재능으로 발전한 게 아니었을까요. 워낙 발레를 좋아했으니까."

중학교 3학년 때 러시아 명문 바가노바 발레 아카데미로 유학을 떠난 계기가 있나요.

"1990~91년도 두 번에 걸쳐서 바가노바 선생님이 한국에 연수, 워크숍처럼 오셨어요. 그전까지 러시아 발레에 대해 전혀 몰랐어요. 그 당시에는 미국, 영국, 프랑스의 발레만 접할 수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 선생님 덕분에 바가노바라는 학교를 알게 됐어요.


선생님께서 마린스키 극장에서 한 '해적'작품 비디오를 보여 주셨는데 그때 바가노바 발레와 완전 사랑에 빠졌죠. 무용수들의 상체 움직임이 정말 우아해보이고 아름다워 보였거든요. 그래서 그 영상을 보고 꼭 바가노바에 가야겠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러시아로 유학을 떠나게 됐습니다."

출처2001년 국립발레단 '스파르타쿠스'에서 2인무를 펼치고 있는 이원국, 김지영(왼쪽) 2001년 '백조의 호수'에서 '왕자와 오데투 공주' 2인무를 추는 장운규.김지영.|경향신문 DB

1996년 당시 최연소(18세)로 국립발레단에 입단했을 땐 어땠나요. 입단 초기부터 주역을 꿰찬 것으로 유명한데, 비결(또는 매력)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바가노바 졸업공연 때 엄마가 갑작스럽게 돌아가셨어요. 원래는 러시아에 남아 있어야 했는데, 한국에 돌아가게 됐죠. 그때 대학교를 가느냐, 발레단을 가느냐 기로게 서 있다가...어찌됐든 저는 춤을 추고 싶었고, 그래서 발레단을 택하게 된 거죠.

당시 최태지 국립발레단 단장께서 저의 어린 '패기'를 보신 것 같아요. 그리고 저는 참 무대에서 춤을 추고 싶었거든요. 그 열망이 강했어요. 그래서 그렇게 역할을 주셨던 거 같아요."

국립발레단 스타 자리를 버리고 2002년 네덜란드로 향했는데,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1998년도에 해외콩쿠르를 나가기 시작했어요. 콩쿠르를 나가면 클래식, 컨템포러리 작품을 해요. 외국 무용수들의 컨템포러리 작품들을 보니까 너무 멋지고 좋은 거예요. 그래서 유럽의 작품들이 너무 궁금하다는 생각이 들었죠.


2000년도에 국립발레단에서 장 크리스토프 마이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하게 됐어요. 그때 네오 클래식 작품에 눈을 뜬 거죠. 유럽에 있는 다양한 레퍼토리를 너무 접하고 싶어서 해외 발레단에 도전을 하게 됐습니다.”

두 번째 해외 생활이었는데, 힘들지 않았나요?

"솔직히 두 번째 해외생활이니까 쉬울 줄 알았는데 똑같이 힘들더라고요. 게다가 가자마자 부상을 당한 거예요. 그게 가장 힘들었죠. 춤추러 갔는데 다쳐서 춤을 못 추니까요. 연습하다가 발목이 꺾여서 돌아갔거든요. 그래서 4개월을 쉬었어요.

부상 이후에 다시 돌아올 때 굉장히 많이 힘들었어요. 슬럼프도 오고, 발레도 그만두고 싶고. 그런데 어떻게 하루하루를 견디게 되더라고요. 안 그러면 한국 돌아오는 길밖에 없는데, 자존심에 그러고 싶지는 않고, 그냥 돌아가기는 싫었고. 업앤다운을 겪으면서 다시 또 무대 설 수 있게 몸 컨디션이 돌아오고, 많은 배역이 주어지고, 작품을 하게 되고, 승급을 하게 되고...그렇게 '수석무용수'로 올라갔죠."

출처2007년 네덜란드 국립발레단 공연 모습 |경향신문 DB

네덜란드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로 활동한 지 2년 만에 다시 국립발레단으로 돌아오셨는데, 이유가 있었나요.

"그때 최태지 단장님이 다시 국립발레단으로 부임을 하셨어요. 저한테 혹시 올 생각 없냐고 물어보셨어요. 저도 항상 제 커리어의 마지막은 한국에서 끝내고 싶은 생각이 은연 중에 있었거든요. 외국에 눌러 살 생각이 없었어요.

그런데 너무 웃기게 그때 네덜란드에서 집 안에 도둑이 들어온 거예요. 집에 갔는데 도둑이 있었어요. 제가 죽을 수도 있는 순간이었는데, 다행히 도둑들이 후다닥 도망을 가더라고요. 여자 혼자 사는데 도둑이 든 거잖아요. 그래서 그때 너무 웃기게도 결심했어요. 한국으로 돌아가야겠다라고요."

국립발레단에서 했던 작품 중 가장 좋았던 작품이 있다면요.

"'로미오와 줄리엣'을 가장 좋아합니다."

포스트 김지영이라고 생각되는 후배가 있나요.

"지금 후배들한테 '포스트 김지영'이라고 하면 기분 나빠할 걸요(웃음). 그들은 또 그들 자체로 빛나는 무용수이니까요. 박슬기씨, 신승원씨도 있고, 이번에 새롭게 지젤 주역을 맡은 심현희씨, 출산하고 복귀해 '백조의 호수' 주역을 맡는 김리회씨 등 제 뒤를 잇는 훌륭한 무용수들이 많습니다."

오는 9월부터 경희대에서 후학양성에 힘쓸 예정인데요. 어린 제자들을 만나게 되는 심정이 어떠신지, 어떤 점을 중점적으로 가르치고 싶으신지 궁금합니다. 


"사실은 많이 두려워요. 많이 두려운데...지금 가서 뭘 바꾸고 그런 것보다는, 아이들이 춤에 대한 열정을 갖도록 키워주고 싶어요. 그렇게 분위기를 바꾸고도 싶고요.


제가 아무래도 발레단 생활을 많이 해봤고, 현장 경험이 있으니까 아이들에게 그런 것들을 많이 전해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출처발레 갈라 연습 중인 김지영, 이재우 무용수|올댓아트 이윤정

국립발레단 ‘지젤’ 무대에 이어 SCM발레 갈레에서도 이재우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와 호흡을 맞추시는데요. 이재우 무용수는 어떤 무용수인지, 강점 등을 소개해주신다면요.

"처음 저희 둘이 춤을 춰야할 때 솔직히 좀 놀랐어요. 키 차이도 많이 나고 나이 차이도 많이 나고, 이재우씨를 어렸을 때부터 알았지만 같이 춤출 거라고는 생각을 못했거든요. 사실 제가 처음 국립발레단에서 활동할 때는 막내였는데 2009년 돌아오니 완전 고참이 돼 있더라고요.


그래서 파트너들이 많이 어린 거예요. 그 친구들이 저를 많이 부담스러워해요. 처음부터 얼어붙는 거예요. 이재우씨는 그런 게 없더라고요. 깡다구가 있다고 해야 하나. 저를 두려워하지 않고 자기 역할을 잘 해서 깜짝 놀랐어요. 또 이재우 무용수는 파트너를 굉장히 배려를 해줍니다."

이번에 함께 무대에 오르는 무용수 중 가장 기대되는 무용수가 있다면요.

"정말 다 대단한 무용수들이라 한 명만 고를 수가 없어요. 세계적으로 유명한 마리아넬라 누녜즈(로열 발레), 2013·2019년 '브누아 드 라 당스' 최고 남성 무용수상을 받은 바딤 문타기로프(로열 발레), 예브게니아 오브라쵸바와 아르테미 벨리야코프(볼쇼이 발레) 등 해외 스타들도 기대되고요.


또 헝가리 국립발레단의 김민정, 보스턴발레단의 한서혜 등 해외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 무용수들의 무대도 기다려집니다. 이외에도 한국 발레 양대산맥인 유니버설발레단 수석무용수 홍향기,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김기완이 함께 추는 파드되도 정말 기대가 많이 됩니다. "

김지영에게 '발레'란 무엇일까요?
발레는 친구이자 엄마.

"엄마와의 관계도 그렇잖아요. 태어났을 때는 엄마가 전부죠. 그런데 사춘기가 되면 엄마랑 엄청 싸우잖아요. 둘도 없는 원수가 됐다가 나중에 나이가 들고서는 엄마의 심정이 이해가 되고 다시 둘도 없는 친구가 되잖아요. 저한텐 발레가 엄마이자 친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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