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내놓지 않을 것!"..근대미술 대부의 작품을 만나볼 단 하나의 전시

조회수 2019. 5. 29. 07: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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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랑
출처: 국립현대미술관

위 사진의 중앙, 짙은 다홍색 한복 차림의 중년 신사는 '한국 근대 추상미술의 대부'라고 불리는 화가 박서보인데요. 그를 기준으로 왼쪽에 앉아있는 금발의 남성이 누구일까요?


최근 서울시립미술관 전시로 한국 미술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주인공, 데이비드 호크니입니다.

이 사진은 1983년 이 두 사람을 포함한 현대 예술 거장들은 교토 국제종이회의에 모여 현대조형과 종이에 관한 토론 현장인데요.

박서보는 이때부터 이미 전 세계적 관심을 받고 있는 화가들 중 하나였다고 합니다.
출처: 국립현대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은 박서보의 70년 화업을 돌아보는 회고전, <박서보: 지칠 줄 모르는 수행자>展을 9월 1일까지 개최합니다.

앞으로 이 그림은 시장에 내놓지 않을 것

이번 전시 개막에 앞서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한 최근작을 소개하며 한 말입니다. 그 이유인즉슨, "내가 꼭 어느 놈하고 한 번 붙어보고 싶은 생각"이라는 것인데요.


그는 "그게 가능해졌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는데, '한 번 붙어보고 싶은' 사람은 당시 이야기의 문맥상 '데이비드 호크니'를 가리킨 것으로 보입니다.

출처: 국립현대미술관

1950년대 불모지였던 우리 미술계에 낯선 추상미술을 선보이며 등장했던 박서보, 아흔을 목전에 둔 오늘까지 열정적인 작업을 이어오고 있는데요.


70년에 걸친 작업을 총망라한 <박서보: 지칠 줄 모르는 수행자>展은 '박서보'라는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앵포르멜, 원형질, 유전질…이거 나만 몰라?

다른 그 누구와도 닮지 말 것. 자신만의 공식과 언어를 창조할 것.

평생 작품 활동을 이어온 그가 끊임없이 되뇌었던 말입니다. 언제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박서보,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 제목과 설명은 단번에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넘길 수는 없겠죠? 박서보의 작품 세계 속 한 걸음 함께 떼어볼까요?

박서보의 '회화 No.1'은 최초의 앵포르멜 작품으로 소개되고, 1961년 1년 간의 파리 체재 후에 발표한 '원형질' 원작은 한국 앵포르멜 회화의 백미로 꼽힌다.
부...분명 내가 아는 한국어인데
알아들을 수가 없...ㄷr...☆★

앵포르멜

앵포르멜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를 중심으로 일어난 새로운 회화 운동입니다. 이 운동은 세계대전 이전에 주류였던 기하학적 추상과 이성주의를 거부하며 시작됐는데요.


그래서 빠른 속도와 즉흥성이 강조되는 화법과 색채에 중점을 둔 표현이 특징적이죠. 구상·비구상을 초월하여, 모든 정형을 부정하고 공간에만 전념함으로써 또 다른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내고자 했습니다.

출처: 박서보, 회화(繪畵) No.1, 1957, 캔버스에 유채, 95x82cm, 개인 소장

1957년 한국 최초의 앵포르멜 작품으로 '회화 No.1'입니다. 1991년 전시 이후, 처음 공개되는 것이라 더욱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형태를 찾아볼 수는 없지만, 박서보는 이 작품을 통해 대량학살과 집단 폭력으로 인한 희생, 부조리 등 당대의 불안과 고독을 분출했습니다. 거칠고 야생적인 제스처에서 박서보가 느꼈을 감정들이 느껴지지 않나요?


현대 미술에 접근 자체가 어려운 사람들이 많을텐 데요. 이에 대해 그는 "자신의 액션을 통한 자기표현의 미학을 이해함으로써 회화를 해석해야 한다"고 합니다. (밑줄 쫙~!)

검은 캠퍼스에 담긴 불안과 고독, 전쟁의 상흔

원형질


1961년 파리 체류 이후, 박서보는 '원형질' 연작을 선보입니다. 이것이 바로 앵포르멜 회화의 대표작으로 손꼽힙니다.


한국전쟁 이후 상흔으로 인한 불안과 고독, 부정적인 정서를 화폭에서 그대로 느낄 수 있죠.

우리는 전쟁 세대다. 전쟁에 대한 경험, 전쟁의 비극, 단말마의 비명을 내지르는 창백하고 지친 인물들. 나는 나의 내적 인식 속에서 형태를 부여함으로써 그것들을 표현하고 싶다. -박서보, '전쟁의 외마디 소리를 ...' 1965년-
출처: 박서보, 원형질(原形質) No.1-62, 1962, 캔버스에 유채, 163x131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바로 이 작품이 '원형질' 연작 중 하나입니다. 사람의 골격을 연상시키는 이 그림은 검은색, 어두운 갈색, 회색, 흰색의 두터운 붓질이 도드라져 보이죠.


이 작품은 마치 상처 입은 인체를 연상시키는데요. 서울시립미술관 기혜경은 "진득한 점액질, 변형된 인체에 가해진 찢기고 태워진 흔적, 두껍고 거칠게 칠해진 물감 층, 검은색이 주도하는 화면은 말 그대로 폭력 이후의 풍광이라 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치유, 그 이후. '얼굴 없는 사람'은 뭘까?

앞서 언급했듯 박서보는 '변화'를 추구한 화가입니다. 다른 누구도 가지 않았던 새로움·변화를 추구하는 사람이었죠.


1960년대 후반, 전쟁의 상처가 가라앉기 시작하면서 박서보는 '원형질' 연작과 전혀 다른 형식적 특성을 보이는 회화 작업에 착수했습니다.


딱딱한 모서리와 또렷한 막대 형태로 분할되며 온갖 밝은 색채들이 동시에 등장하고, 그렇게 만들어진 더욱 명료한 화면. 이 시기의 작품들이 바로 '유전질'입니다.

출처: 박서보, 비키니 스타일의 여인,1968, 캔버스에 유채, 130x89cm, 개인 소장

유전질 시기에 등장한 '비키니 스타일의 여인'은 앞선 원형질 시기의 작품과 아주 큰 차이를 보이죠? 박서보는 이 작품을 물감이 아닌 스프레이로 작업했습니다.


이 작품의 숨은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고 해요. 당시에는 인류의 달 착륙을 앞두고 우주와 무중력에 관한 사람들의 관심이 크게 증가했던 시기인데요.


박서보는 '무중력'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지 고민하다, 물감의 무게를 최소화하는 '스프레이' 분사를 떠올렸습니다. 그래서 작품은 이전보다 훨씬 매끈하고 가벼운 느낌의 것으로 탈바꿈하게 됩니다.

출처: <박서보 - 지칠 줄 모르는 수행자> 전시 전경.|국립현대미술관

가까이 봐야 보인다, 본능적인 움직임의 절정

출처: (왼쪽부터) 묘법(Ecriture) No. 44-73 (1973년), No. 237 - 85 (1985년), No.080618 (2008년)

1970년대 박서보의 작품에는 '연필'이 등장합니다. 원고지에 글씨 연습을 하는 아들을 보다 새로운 작업의 실마리를 얻었던 것인데요.


어린 아들이 원고지의 네모 칸에 맞춰서 글자를 쓰는 일이 뜻대로 되지 않자 완전히 자포자기해서 펜을 종이 위에 아무렇게나 갈겨댄 것이죠.


'본능적인 갈겨쓰기'에서 영감을 얻은 박서보는 '묘법'(에크리튀르) 작업에 착수합니다.  '초기 묘법'의 70년대, '중기 묘법'의 80년대, '후기 묘법'의 90년대 작품들을 만나볼까요?

출처: 올댓아트 박찬미
중기 묘법 작품 일부. '지그재그' 형태로 나아가는 과도기적 작품으로 평가받곤 한다.
출처: 올댓아트 박찬미
중기 묘법 작품 일부
출처: 박서보, 묘법(描法) Écriture No.931215
출처: 올댓아트 박찬미
후기 묘법 작품 일부

튀어나온 직선과 직선 사이, 그 여백이 바로 감상자가 들여다봐야 할 곳입니다. 조앤 기는 이 여백이 "관람자가 기나긴 여정에서 잠시 쉬어갈 지점으로 기능하게 된다"고 이야기했죠.

지구 전체가 스트레스 병동으로 변했다. 그림이 이같은 감정을 흡입하는 흡인지가 되어, 보는 이의 스트레스와 고뇌를 받아들여 줘야한다. - 박서보, 기자간담회 중, 2019년 -
출처: 국립현대미술관

어렵게 느껴지기만 했던 박서보, 그리고 그의 미술 세계. 하지만 지난 70년의 역사를 뒤돌아본 그는 결국 무엇보다도 작품을 통해 관람객이 쉬어갈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 글은 박서보를 알기 위한 준비 단계에 불과한데요. 이제 국립현대미술관, 그 넓은 공간을 꽉 채운 박서보의 작품들에 둘러싸여 진짜 그 세계를 느끼고 경험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요?

■ 박서보: 지칠 줄 모르는 수행자
전시기간: 2019.05.18 ~ 2019.09.01
전시장소: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서울 종로구 삼청로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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