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체 여성노예' 그림이 독일 극우정당 포스터에? 미술관 경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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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극우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최근 내놓은 선거 포스터가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명화 <노예시장>에 "유럽이 '유라비아'가 되지 않도록(Damit aus Europa kein Eurabien wird)"이라는 문구를 새겨 넣은 건데요.
<노예시장> 그림을 소장하고 있는 미국 클라크미술관은 경악했습니다. 미술관은 그림을 사용하지 말라고 요청했지만, AfD는 이를 거절했다고 AP통신이 2019년 4월 30일 보도했습니다.
유라비아는 유럽(Europe)과 아라비아(Arabia)의 합성어입니다. '유럽의 이슬람화'를 뜻합니다. 유럽에서 이슬람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생겨난 신조어죠.
유럽 내 이슬람 인구가 급증하면서 무슬림들이 유럽인들의 일자리를 빼앗고 테러를 자행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함축돼 있는 단어입니다.
AfD는 2019년 5월 23~26일 유럽의회 선거를 앞두고 극우 세력의 결집을 노리기 위해 '논란의 포스터'를 만들어 선거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노예시장>은 프랑스 화가 장 레옹 제롬(Jean-Léon Gérôme·1824~1904)이 1866년 완성한 그림입니다. 제롬은 신고전주의 화가이자 조각가입니다.
당시 프랑스에서는 유럽 너머 동방의 아름다움을 담은 그림이 인기를 끌었는데요. 제롬은 카이로를 여행하면서 목격한 '노예시장'의 모습을 그림으로 묘사했습니다.
어두운 색 피부를 가진 남성 상인들이 밝은 색 피부의 여성을 노예로 거래하며 치아 상태를 확인하고 있는 순간이 작품 <노예시장>에 담겼죠.
이 여성은 아비시니아(오늘날의 에티오피아) 출신으로 전해집니다. 어떤 사연으로 노예시장에 끌려오게 된 것인지 알려지지 않았지만 낯선 남성들에게 자신의 나체를 내보여야 하는 여성의 현실이 잔인하고 끔찍하게 다가옵니다.
150여 년 전 유럽인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이국적인 그림은 현재 AfD가 '무슬림 포비아'를 부추기는 선전 도구로 탈바꿈했습니다. AfD는 독일 베를린 30여 곳에 포스터를 배치한 상태입니다.
극우 선동매체로 그림이 사용되고 있는 것을 알게 되자 <노예시장>을 소장하고 있는 클라크미술관 측은 반대 의사를 밝히고 나섰습니다.
올리비에 메슬레이 클라크미술관 관장은 "그림이 정치적 도구로 사용되는 것을 강력하게 반대한다"면서 "AfD에게 그림을 사용하라고 제공한 적이 없다"고 AP통신에 말했습니다.
문제는 그림 저작권이 미술관 측에 없다는 건데요. <노예시장> 그림은 현재 퍼블릭 도메인으로 등록돼 있어 누구나 그림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로날드 글리저 AfD 베를린 지부 대변인도 "클라크미술관에서 그림을 쓰지말라 요구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라면서 포스터를 내릴 생각이 없다고 밝혔습니다.
반면, 클라크 미술관은 홈페이지에서 <노예 시장> 그림에 대해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림 속 불편한 장면은 아시아 인근에서 벌어진 노예시장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19세기 유럽의 법이 통하지 않는 땅에서 여성의 몸을 탐닉하는 광경은 프랑스인들에게 '노예제'에 대한 비판 의식을 갖게 했습니다."
리엠 스피엘하우스 이슬람학 교수(Georg-August-Universität Göttingen)는 AP통신에 "AfD의 선거 포스터는 오랜 시간 유럽 사회에 팽배했던 ‘어두운 피부색의 외국인 남성에게 자신을 방어할 수 없는 백인 여성을 빼앗길 수 있다'는 공포심을 조장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