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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나가던 'CIA요원', 갑자기 일을 관두고 찾은 다른 '직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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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예술계가 주목하는 20세기 미술품을 수집한 리차드 브라운 베이커(Richard Brown Baker, 1912 - 2002). 잘 나가는 CIA요원이었던 리차드 베이커는 어느 날 갑자기 일을 관두고 평생을 아트 커뮤니티에 바칩니다. 2002년 8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 엄청난 소장품뿐만이 아니라 남긴 '무언가'가 있었는데요.

▲리차드 브라운 베이커

출처Richard Brown Baker | Yale University Art Gallery
그가 사랑했던 미술계 이야기가 담긴
수천 페이지의 일기였습니다.

출처미국 중앙정보국 CIA 로고 | 위키피디아

1912년 부유한 로드 아일랜드 가에서 태어난 리차드 브라운 베이커. 그의 가족은 고대 유물이나 오래된 우표를 수집하곤 했습니다. 어린 베이커의 첫 수집품은 오래된 동전들과 회중시계였는데요. 1935년 예일대를 졸업하고 베이커는 워싱턴에 자리를 잡고 1940년대에 CIA의 전신인 OSS(Office of Strategic Service)와 국무부 지능화연구소에서 정보원과 외무관으로 활발히 활동했습니다.

"우리는 학자들과 정치 전문가들의 집합이다. 그런데 사실은 우리 계층 맨 꼭대기에 서있는 야망에 찬 이기주의자로부터 내려오는 명령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모임일 뿐이다"

화려한 이력에도 불구하고, 그는 CIA 시절이 성에 차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성취감을 느끼지 못했던 그는 결국 1949년 CIA를 떠났고 3년 뒤, 작가가 되겠다는 부푼 꿈을 안고 뉴욕으로 이주했습니다.

▲리차드가 살던 뉴욕 아파트 내부 모습

출처Jerry Thompson. Courtesy of the RISD Museum

작가로서의 야망을 가지고 있던 베이커는 꿈이 좌절되자 참석했던 파티, 구입한 미술품, 방문한 스튜디오에 대한 기록에 강박적으로 몰두했습니다. 그가 매일 썼던 일기는 현재 예일 대학교에 보관되어 있고, 사본은 현대 미술관(MoMA)과 아일랜드 히스토리컬 소사이어티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이 일기에 대해 큐레이터 제니퍼 파렐은 "20세기 미국의 사회, 정치, 문화, 역사를 보여주는 굉장히 독특한 기록"이라며 베이커가 미술 관련 행사에 참여하며 만난 유명인사들도 살펴볼 수 있다고 전했습니다. 심지어 1934년에는 아돌프 히틀러도 만난 적 있다고 하는데요. 일기를 통해 베이커는 단순 컬렉터가 아닌 미술사에서 관찰자이자 기록자로서 예술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리차드가 살던 뉴욕 아파트 내부 모습

출처Jerry Thompson. Courtesy of the RISD Museum

리차드 베이커의 할아버지 H. 마틴 브라운은 은행장 출신으로, 베이커에게 상당한 액수의 유산을 남겨준 백만장자였습니다. 그가 남긴 재산은 일을 관둔 베이커에게 유일한 수입원이었죠. 가끔 어머니로부터 재정 도움을 조금씩 받기도 하고, 미술품 수집에 열을 올리다 판매상들에게 빚을 지기도 했다고 합니다. 

▲뉴욕 집에서의 리차드 브라운. 오른쪽에는 한스 호프만의 그림과 브래들리 어서의 청동 조각상이 있다.

출처@Be-Art

그는 열혈 수집가가 되는 일을 '담배를 피우는 것'에 비유하기도 했는데요. 이 일이 스스로를 괴롭히기도 하지만, 그만큼 헤어나오기 힘든 매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호세 게레로 'In Transit'(1954)

출처Jose Guerrero 'In Transit' | Yale University Art Gallery

베이커가 활발히 수집활동을 한 것은 1954년부터입니다. 20세기 추상화를 사들이기 시작하면서 맨 처음 만난 작품이 미국에서 활발한 활동을 한 스페인 출신 화가 호세 게레로의 'In Transit'(1954)이었습니다. 베이커는 이때부터 젊은 아티스트의 작품을 구매하면서 신진 작가들의 능력을 발견하는 일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합니다.

당시 명확한 수입이 없던 베이커는 전문 수집가들에 비해 자금이 턱없이 부족했는데요. 자신이 가진 자금력에 맞게 젊은 아티스트의 작품이나, 종이에 남겨진 작품 등으로 소장품 리스트를 채워갔습니다. 

▲데이비드 호크니 'Plastic Tree Plus City Hall'(1964)

출처David Hockney 'Plastic Tree Plus City Hall' | Courtesy of the RISD Museum

그가 구입한 두 번째 조각품이었던 루이즈 네벨슨(Louis Nevelson)의 작품은 무려 단돈 200달러에 구매했다고 합니다. 곧 베이커의 수집품은 프란츠 클라인, 잭슨 폴록과 같은 주요 추상표현화가의 작품들, 로버트 인디아나부터 로이 리히텐슈타인까지에 이르는 신진 팝아티스트의 작품에 이르렀습니다.

그는 2018년 세계에서 역대 생존 작가 중 가장 높은 경매가를 기록한 데이비드 호크니의 초기 스케치 작품이나 아그네스 마틴(Agnes Martine), 엘스워스 켈리(Ellsworth Kelly) 등의 작품을 소장한 수집가가 됩니다.

▲앤디 워홀(왼쪽)과 리차드 베이커(왼쪽에서 두번째)

1960년대에는 팝아트를, 70년대에는 포토 리얼리즘을 표방한 미국의 아티스트를 지원한 베이커. 또한 영국의 콘템포러리 아트에 관심을 가지게 된 그는 이때 처음으로 호크니를 포함해 존 벨라니, 브리짓 릴리 등의 작품을 구매합니다. 이후에 그의 관심사는 데미안 허스트, 타시타 딘, 크리스토퍼 르 브룬, 트레이시 에민 등의 작가로 옮겨갔습니다. 이후 신표현주의, 1980년대 프린트 작품 등 괴짜같은 수집을 이어나갔습니다.

▲짐 너트 'Why Did He Do It? (also titled “Why did HE doo it?”)' (1967)

출처MoMA가 소장한 초현실주의 예술가 짐 너트의 그림 | MoMA 홈페이지

베이커는 결국 1600여 작품을 소장했지만 수집품으로 어떤 이익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수집한 작품에 대해 강박적인 부분도 있었지만, 당시 뉴욕 미술 시장에 이름을 알리지 못했던 에드 플러드(Ed Flood)나 로저 브라운(Roger Brown), 짐 너트(Jim Nutt)와 같은 작가의 작품을 수집했던 행보는 높게 평가받고 있습니다.

▲뉴욕 아파트에서의 리차드 브라운

출처Jerry Thompson. Courtesy of the RISD Museum

베이커는 유산을 물려줄 상속자가 없었기 때문에 세상을 떠나며 RISD뮤지엄과 예일 대학교 아트 갤러리, 이외 2개의 미술관에 수집품을 남겼습니다. 


20세기 중후반 미술 사조가 담긴 리처드 브라운 베이커의 컬렉션. 미술품 수집을 그저 돈많은 사람의 재테크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베이커는 잠재력있는 아티스트들의 친구가 되고 싶었던 걸지도 모릅니다. 그의 일기장에는 이런 말이 있다고 하네요.

"왜 살아있는 아티스트한테는 후원하지 않나요?
자본을 소유하는 직업만큼이나
 이것 또한 좋은 직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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