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괴한 '인육 먹는 괴물', 유럽 유명 성당들에 꼭 있는 이유

조회수 2019. 3. 12. 07: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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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피렌체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 외관에 있는 가고일|위키피디아

'고딕'은 고트족(Goths)에서 유래했다. 르네상스 시대 예술가들이 그들 이전의 미술을 야만적이라고 멸시하기 위해 붙인 단어였다. 하지만 고딕 양식은 미개하거나 볼품 없지 않다. 12~15세기 중세 유럽의 교회 건축만 봐도 감탄이 절로 나온다. 높은 천장과 수직 첨탑은 하늘의 뜻을 품은 듯 경이롭다. 빛이 쏟아지는 긴 창문과 채색 유리, 아치 양식이 가미된 성당은 '야만'을 떠올리기 힘든 예술품 그 자체다.

그런데 한 가지, 중세 유럽 성당 건축에서 고개를 갸우뚱할만한 형상을 만나곤 한다. 바로 성당 외부에 조각된 '괴물' 형상들이다. 신에게 닿기 위해 쌓아올린 성당에 웬 괴물이 있을까 싶지만 프랑스 파리의 노트르담 성당부터 이탈리아 피렌체의 산타마리아 델피오레 성당까지 내로라하는 성당 위에는 여지 없이 기괴한 괴물이 올라앉아 사람들을 쏘아보고 있다.

프랑스 파리의 노트르담 성당 가고일|위키피디아

괴물의 모습은 각기 다르다. 서양의 좀비나 한국의 도깨비를 연상시키는 모습부터 사자, 원숭이, 용을 닮은 상상의 동물까지 세상의 해괴한 형상을 모두 갖다붙였다. 하지만 이 괴물들을 부르는 이름은 하나다. 바로 '가고일(Gargoyle)'이다.

가고일은 프랑스어 gargouille에서 유래했다. 지금은 도랑이나 배수용관을 의미하지만 본래 목구멍, 식도가 어원이다. 입과 목을 헹궈내는 가글(gargle)과 그 뿌리가 같다. 원래 이 괴물의 입에서 빗물이 흘러나오게 만들어져 있었다. 모인 빗물이 괴물의 입으로 흘러나오는 구조이기에 '가고일'로 불리기 시작했다. 이름의 어원과 다르게, 현재는 물이 흐르지 않는 장식용 가고일도 있다. 

체코 프라하 성비투스 대성당의 가고일|Daniel Gottlieb via Flick

원래 빗물을 흐르게 하기 위한 용도라고는 하지만, 그 모양이 괴기스러운 데에는 의문이 남는다. 악령을 몰아내는 역할을 하는 동시에, 신앙심이 부족한 자는 이런 괴물한테 먹혀버린다고 경고하는 의미라는 설이 있다. 하지만 언제부터 이런 해괴망측한 가고일이 성당에 자리잡은 것일까.

가고일에 관한 전설은 다양한 버전이 존재한다. 그중 가장 많이 거론되는 이야기는 600년대 프랑스 루앙에 등장한 괴물에서 비롯됐다. 괴물은 용을 닮았다고 전해진다. 박쥐처럼 날개가 달렸고, 입에서는 불을 내뿜었다. 이 괴물은 인육을 먹었기에 사람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무시무시한 괴물을 무찌른 건 성 로마노였다. 성 로마노가 홀로 십자가를 이용해 괴물을 죽였다는 이야기부터 유죄판결을 받은 죄인들이 자발적으로 성 로마노를 도와 괴물을 무찔렀다는 설까지, '가고일' 전설은 다양한 옷을 갈아입으며 후대에 전해졌다. 

폴란드 크라쿠프 바벨대성당의 가고일|위키피디아

문제는 괴물을 무찌른 뒤였다. 성 로마노는 루앙에서 괴물을 불에 태웠다. 그런데 몸만 불에 탈 뿐 머리와 목은 그대로였다. 불을 뿜던 기운 때문인지, 머리와 목은 불길 속에서도 살아남았다. 하는 수 없이 성 로마노는 괴물의 머리를 새로 지은 성당 외벽 꼭대기에 걸어놓았다. 비가 오면 괴물의 머리를 통해 물이 고여 흘렀고, 괴물은 더이상 살아남을 수 없었다. 무서운 괴물 형상은 악령을 내쫓고 성당을 지키는 역할도 하게 됐다.

그런데 고대 이집트에도 중세 성당에서 쓰던 가고일 형태의 배수관이 있었다. 주로 사자 모양으로 생긴 배수관에서 빗물이 흘러나오는 구조였다. 대리석으로 만든 것이 많았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부러지거나 건물에서 떨어졌다. 2세기에 건설된 로마의 올림피아 제우스 신전에도 102개의 가고일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현재 신전은 원래 구조물을 거의 잃고 15개의 기둥만이 원래 모습을 어렴풋이나마 짐작케 한다.  

프랑스 파리의 노트르담 성당 가고일|위키피디아

다시 가고일이 등장한 건 12세기 들어서다. 전설 외에는 가고일의 정확한 유래를 설명하는 자료가 없다. 중세를 연구하는 역사학자들조차 가고일의 근원을 미스터리로 여긴다. 중세유럽에서도 괴물 형상 가고일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었다.12세기 프랑스 수도사 성 베르나르는 성당 꼭대기에 매달려있는 괴상한 생물체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는 가고일이 불결하고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대다수의 가고일은 우상을 숭배하는 것이라고 여겼다.

이런 생각을 하는 성직자들이 꽤 있었음에도 가고일은 유럽 전역의 성당으로 퍼져나갔다. 심지어 가고일이 고딕 건축의 주요 요소가 되기도 했다. 몇몇 성당은 지금도 특이한 가고일로 유명세를 얻고 있다. 

지붕 아래에서 빗물을 처리하는 가고일은 18세기 초반까지 쓰였다. 하지만 점차 빗물을 처리하는 배수기술이 발달하면서 가고일은 구시대의 유물로 전락하게 된다. 게다가 가끔 가고일이 건물에서 떨어지는 사고가 일어나면서 골칫거리 신세가 된다. 1724년 영국 런던에서는 신축 건물에 수직 낙수관을 필수적으로 설치하는 법령이 생길 정도였다.

그렇다고 가고일이 아예 흔적을 감춘 건 아니다. 노트르담 성당에 있는 기괴한 가고일은 배수나 중세 건축과는 전혀 연관성이 없다. 19세기 성당 보수 공사를 하면서 기괴한 가고일을 곳곳에 만들었기 때문이다. 

프랑스 파리의 노트르담 성당 가고일|위키피디아

가고일은 19세기 고딕건축물 재건작업이 이뤄지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노트르담 성당처럼 재건을 하면서 새롭게 탄생한 가고일도 꽤 된다.

미국 워싱턴국립성당에는 '다스 베이더' 가고일이 있다. 성당은 1906년 첫 삽을 떠서 1988년 완공됐다. 1907년 주춧돌을 쌓을 땐 프랭클린 루즈벨트, 1990년 완공 기념식엔 조시 부시 당시 대통령이 참석할 정도로 국민적 관심을 모은 성당이다. 네오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이 성당은 미국에서 두 번째로 큰 성당이기도 하다. 

미국 워싱턴국립성당 '다스 베이더' 가고일|위키피디아

엄숙하기만 한 성당에 '다스 베이더' 가고일이 있는 건 무슨 연유일까.

1980년대 완공을 앞둔 성당 측은 내셔널 지오그래픽과 함께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성당 조각 경연 대회를 열었다. 그런데 크리스토퍼 레이더라는 어린이가 <스타워즈> 속 '다스 베이더' 캐릭터를 그려내 3등을 차지했다. 성당의 조각상 제작을 맡은 제이 홀 카펜터는 어린이의 스케치 그대로 성당에 다스 베이더를 새겨넣었다. 그나마 신앙심이 깊은 사람들에게 다행(?)인 점은 다스 베이더 가고일이 성당 북서쪽 꼭대기에 설치돼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다스 베이더 가고일을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다면 '쌍안경'을 지참해야 한다.

가고일은 건축을 넘어 현실로 스며들고 있다. '가고일' 애니메이션 영화가 등장했고 가고일을 테마로 한 문구, 기념품, 피규어도 종종 볼 수 있다. 어떻게 왜 탄생했는지 그 정확한 기원은 알 수 없지만 가고일의 생명력은 중세를 넘어 현대로 이어지고 있다. 

다양한 형태의 가고일 |위키피디아
다양한 형태의 가고일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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