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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을 세계에 최초로 알린 사람? 조선을 사랑한 '푸른 눈'의 부부

아트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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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딜쿠샤의 모습.

출처경향DB

1930년대 딜쿠샤의 모습.

출처서울역사박물관
서울 사직터널 인근. 화려한 모양새의 벽돌집이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이 집의 이름은 '딜쿠샤', 이상향을 뜻하는 힌두 단어에서 의미를 따 왔습니다.

지하 1층에서 지상 2층까지 이어지는 구조로, 10개가 넘는 방을 갖춘 대저택입니다. 집이 지어진 1923년 당시에는 조선 최고의 개인 주택으로 손꼽혔는데요. 미국과 영국의 건축양식이 혼재된 모습으로, 일제강점기 건축양식을 알려주는 중요 자료로 분류되어 있습니다.

메리 린리 테일러(왼쪽)과 앨버트 와일더 테일러의 모습.

출처경향DB

이 집의 주인은 앨버트 와일더 테일러(Albert Wilder Taylor, 1875~1948)와 그의 아내 메리 린리 테일러(1889~1982)입니다. 앨버트는 조선의 3.1운동과 독립선언문을 외신에 최초 보도한 미국의 기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앨버트 와일더 테일러의 모습.

출처경향DB

미국 버지니아에서 태어난 앨버트는 광산 기술자인 아버지를 따라 한국에 왔습니다. 한국에서 함께 광산을 운영하다가, 고종의 장례식 소식을 임시특 파원 신분으로 기고하며 일제강점기 조선의 이야기를 세계에 전했습니다.


순회공연 중이었던 영국의 배우 메리를 일본에서 만나 결혼을 한 뒤, 1917년 한국에 들어오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3.1운동 이후 조선인들의 재판 과정을 상세히 적어 전 세계에 알렸고, 일본군이 조선인을 집단살해한 제암리 학살사건을 최초로 취재하기도 했습니다. 

<호박목걸이>의 초고.

출처서울역사박물관

앨버트는 일제의 탄압 아래 서대문 형무소에 투옥됩니다. 외국인 추방령에 응하지 않은 결과였는데요. 이후 한국에서 추방당합니다. 부부는 해방 이후 한국에 돌아오고자 노력했지만, 1948년 앨버트가 세상을 떠나며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 아내 메리는 회고록 <호박목걸이(Chain of Amber)>를 썼습니다. 여기에는 조선의 생활상이 자세히 담겼습니다. 장례와 결혼 등 민간 의례 모습이 묘사되어 있어 생활풍속지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았습니다.

전시 <딜쿠샤와 호박목걸이>의 포스터.

출처서울역사박물관

테일러 부부의 모습을 한국에서 다시 볼 순 없지만, 이들이 남기고 간 유산은 아직도 그 자리에 남아 빛을 발하고 있는데요. 이 기록을 조명하는 전시가 최근 막을 올렸다고 합니다.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진행 중인 <딜쿠샤와 호박목걸이>가 그 주인공입니다.  

딜쿠샤 내부 사진 앨범.

출처서울역사박물관

이번 전시는 부부가 살았던 벽돌집 딜쿠샤를 중심으로 조선의 생활상 기록, 부부의 사진과 유물 등을 공개합니다. 


이 유물들은 부부의 손녀 제니퍼 린리 테일러가 한국에 기증한 것입니다. 제니퍼는 "내가 가지고 있는 것보다, 한국에 있을 때 더 의미 있을 것"이라고 밝혔는데요. 그가 기증한 1026점의 유물들 중, 310점이 전시를 통해 대중들을 만납니다.

앨버트 와일더 테일러의 사진.

출처서울역사박물관
전시는 네 가지 테마로 구성됩니다. 테일러 가문 유물 기증, 테일러 부부의 서울생활, 기쁜마음의 궁전 딜쿠샤와 일제에 의한 강제추방 등입니다. 

전시 <딜쿠샤와 호박목걸이>는 2019년 3월 10일까지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이어집니다. 관람료는 무료라고 하네요. 이번 주말, 한국을 사랑한 푸른 눈 부부의 숨결을 느껴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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