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함은 어디서 오는가, 엠마

조회수 2020. 7. 2. 07:30 수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아이 엠 러브(2009)

저녁 만찬을 준비하는 안주인의 손길이 분주하다. 몇 단계를 거쳐야 진입할 수 있는 웅장한 저택의 살림을 솜씨 있게 단속하고, 일 하는 사람들을 다루는 모습이 영양처럼 군더더기 없다. 화장하는 손놀림부터 음식을 저작하고 와인을 넘기는 제스처까지 완벽하게 귀족적인 이 여인의 이름은 엠마(틸다 스윈튼). 


이탈리아의 재벌 가문 레키가의 며느리인 그에게는 자랑스러운 아이들과 자신의 원래 이름마저 버릴 정도로 사랑했던 남편이 있다. 그러나 아들의 친구인 안토니오(에도아도 가브리엘리니)의 음식을 맛 본 순간, 잊고 있었던 생의 감각이 오소소 깨어난다. 라따뚜이를 곁들인 새우요리를 받아든 엠마는 순식간에 요리와 자신만을 공간에서 분리해낸다.ᅠ전채접시를 바라보는 그의 얼굴에는ᅠ진귀한 보석들로 가득찬 함에서 번지는 광채가 반사되고,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얼굴에는 충만함이 떠오른다. 


단순히 진미를 즐길 때의 만족감을 넘어서는 그것의 정체는 관능이다. 엠마는 거기에 있는지도 몰랐던 욕망을 막 깨닫고, 적극적으로 매혹 당하고 있는 중이다.ᅠ제각기 문제를 가진 가족들을 떠안은 엄마와 아내 혹은 며느리가 아닌 오래 전 사랑 하나만으로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왔던 키티쉬로 돌아가는 여정이 이제 막 시작됐다.ᅠ요리를 만든 이와 사랑에 빠지게 된 것이 당연해보일 정도로 엠마는 안토니오가 만든 새우요리에 강하게 매료된다.ᅠ그리고 그의 삶에 단단하게 서있던 가치들은 도미노처럼 연쇄적으로 무너진다.

프라다를 입고 페라가모를 신고 에르메스를 든 엠마는 세탁물을 찾으러 세탁소에 갈 때조차도 우아하다. 그러나 이것들을 벗고 안토니오의 낡은 옷을 대충 걸쳐도 기품은 그를 떠나지 않는다. 연인의 낡은 시골집에서 고향인 러시아의 수프를 끓이며 어린 시절을 얘기하는 엠마에게선 저택 안에서는 없었던 생기까지 넘쳐 흐른다. 남편이 수갑처럼 채워줬던 장신구를 던져버리고 트레이닝 저지 차림으로 뛰쳐나갈 때 역시 엠마의 격정을 감싸고 있는 것은 우아함이다. 


그런 그를 보고 있으면 우아함이 어디서 오는지 알 수 있다. 그것은 럭셔리 브랜드의 명품만으로는 살 수 없다. 엠마처럼 손에 쥔 것을 모두 버리는 값어치를 치른다 할지라도 나로 사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을 때 비로소 풍겨져 나오는 법이다.

〈아이 엠 러브〉는 공들여 만들어졌다. 루카 구아다그니노 감독이 만들어낸 레키가와 엠마의 이야기를 탄탄한 기둥 삼아 각 분야의 장인들이 발휘한 내공은 하나의 성을 쌓아올렸다. 사람들의 기억을 되살리고, 마침내 추억이 되는 요리들은 스타 요리사 칼로 클라코에 의해 캐릭터를 얻었고, 최초로 자신의 이름을 크레딧에 올렸을 만큼 자신감 넘치는 작곡가이자 지휘자 존 아담스의 음악들은 사건과 제대로 밀착되어 있다.


그리고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인 틸다 스윈튼은 경지에 이른 예술가의 현재를 남긴다. 그는 러시아 출신의 이민자가 구사하는 이태리어 같은 기술적인 부분은 물론이고, 부와 명예를 내던지고 뛰쳐나가는 중년 여성의 흔들리는 근간을 엠마가 만든 투명한 우하 스프처럼 내비쳐 보인다. 연기라기보다는 그저 살아냈다고 밖에 말할 수 없는 그의 존재감은 대저택의 가구 같았던 엠마에서 러시아에서의 이름을 기억해내는 키티쉬에 이르기까지 내내 압도적이다.

〈아이 엠 러브〉는 우아한 영화가 어떤 것인지 보여준다. 그것은 단순히 재벌 가문의 귀족적인 일상을 복제하거나 밀라노와 산레모, 런던을 오가는 풍광을 비추는 것에서 오지 않는다. 불륜을 이용한 자극적인 플롯, 현란한 영상으로 쉽게 환심을 사려는 이야기가 시청자들의 욕과 화를 연료 삼아 활활 타오르는 지금, 불륜을 다루고 있으면서도 가장 고전적인 방식으로 삶을 견지하는 이 영화의 태도야 말로 가장 우아하다. 단 1초, 단 한 프레임도 낭비하지 않고 세공된 〈아이 엠 러브〉 앞에서 새삼 영화가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