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의 잔인함

조회수 2020. 6. 6. 08:3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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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위한 시간(2014)

인터넷 게시판에서는 종종 둘 중 어느것을 선택하겠느냐는 질문이 올라오곤 한다. 야구팬들이 즐기는 질문은 전성기의 야수 아무개와 전성기의 투수 아무개 중 한 명만 고른다면 누구를 고르겠냐는 식이다. 외모와 돈을 비교하는 질문이 있을 때도 있고, 젊음과 노년에 대해 묻기도 한다. 최근에는 큰 돈을 받고 살아가기와 지금의 기억을 모두 갖고 과거로 회귀하기 중 고르는 질문이 인기있었다.


이런 질문은 대체로 극단적이며, 현실에서 우리가 선택지를 갖는 경우는 대체로 근소한 차이의 득실을 가르는 정도다. 어느 쪽을 택해도 장단점이 존재하는.

〈내일을 위한 시간〉이 묻는 질문은 이렇다. 병가를 갔던 동료가 복직한다. 사장은 직원들에게 투표를 붙인다. ‘동료의 해고 vs 보너스 1000유로’. 당신의 선택은? 1000유로는 한국 돈으로 130만원 정도 되는 액수다.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다. 주인공 산드라(마리옹 코티야르)는 제조업 회사에 다닌다. 이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의 형편은 넉넉지 않고 산드라 역시 그렇다.


불경기의 터널을 지나본 사람들은 잘 알고 있다. 한번 자리를 비우면 돌아가기 어렵다. 누군가의 자리가 비면 충원 대신 그 일을 다른 사람들이 나눠갖는다. 그러면 사람이 줄어도 일이 돌아가고, 그렇게 잔업이 생기지만 그것으로 추가수당을 받을 수 있다면 만족하는 사람들이 생겨난다. 산드라가 처한 상황이 그것이다. 첫 번째 투표에서 공장의 다수는 보너스를 택했다. 산드라는 재투표를 한다는 사장의 약속을 받아내고 주말 동안 과반수의 표를 얻기 위해 동료들을 하나하나 찾아다닌다.


1000유로. 보너스가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제각각의 이유가 있다. 그들은 산드라의 실직을 원했다기보다 보너스를 원했을 뿐이다. 아예 투표를 거부하겠다는 사람도 있지만 산드라는 자신을 위한 투표만이 필요한 상황이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서, 배우자의 실직으로 경제적 부담이 늘어나서, 재계약을 앞둔 계약직이라 등등 다들 이유는 다양하다. 

병가의 이유였던 우울증으로부터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산드라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가 동료들을 만나 설득을 시작하는데, 그 이유는 산드라 역시 집 대출금이 남아서다. 산드라의 남편은 심적 고통을 호소하는 산드라의 말에도 강경하게 동료를 만나라고 설득하고 산드라와 동행한다. 거절을 당할 때마다 산드라는 약을 먹고 진정해야 하지만, 실직하면 허름한 임대주택으로 돌아가야 한다. 아이들도 키워야 한다. 이런 사정은 산드라 외에도 누구나 마찬가지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한달치 월급에 준하는 보너스와 병가를 쓰던 동료의 복직 중 당신이라면 무엇을 택하겠는가. 당신이 막 이사를 했다면, 자녀가 대학에 다니는 중이라면, 계약직이라면 어느 쪽을 위해 투표하겠는가. 이 사고실험의 잔인한 면은 이 모든 상황이 산드라의 우울증으로부터 기인했다는 데 있다. 게다가 투표를 제안한 쪽은 사장인데도 산드라가 얼굴을 보고 설득해야 하고 때로 싸우거나 안좋은 말을 들어야 하는 쪽은 동료들이라는 데 있다. 

아파도 쉴 수 없고, 문제의 핵심이 되는 사람은 직접 대면할 일이 없다. 〈내일을 위한 시간〉은 투표 안건이었던 산드라에게 두 가지 선택의 여지를 주면서 마무리된다.


산드라일 경우와 산드라의 동료일 경우 나는 똑같은 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 가까운 동료의 일일 때와 먼 동료의 일일 때 똑같은 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 경제적으로 당장 궁하지 않다고 해서 무조건 동료의 복직을 위해 투표할 수 있을까.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답은 쉽게 구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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