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결국 닮아가는가.. 〈대부〉

조회수 2020. 5. 26. 10:5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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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1972)

우연히 학창 시절 일기장을 펼치게 됐다. 전신의 털이 곤두서는 걸 간신히 견뎌가며 당시의 참담했던 중2병 스웩을 훑어가던 중, 흥미로운 문구 하나가 눈에 띄었다.


"미래의 나는 보아라."


이어진 말은 '절대 이런 부모가 되지 말라'는 것이었다. 당시의 기억, 아니 기억이라 하기엔 너무 희미한 안개를 뭉치며 내용을 분석해보니 요는 이렇다. 나는 친구의 집에 놀러 가고 싶었고 부모님께서는 허락하지 않으셨다. 꼭 가야 했던 일이 있었나 본데 결국 가지 못했다.

그렇게 방에 틀어박혀서는 주먹을 단단히 움키며 미래의 나에게 경고한 게다. 이 정도로 원하는 걸 못하게 하면 결국 사람은 삐뚤어져버릴 거라고. 그러니 잊지 말라는, 당시의 분노와 원망이 참 상세하게도 기술된 서신은 결국 시공간을 넘어 나에게 전해졌다.


글쎄. 답신을 쓰자면 이렇다. '나는 당시의 부모님을 이해하게 되었다'고. 만약 너 같은 자식이 스스로 했던 약속도 어기고 '이번 한 번만 제발 한 번 만' 하면서 같은 상황을 되풀이하는 걸 보고 있으면, 정말 그런다면(진정중...), 나는 부모님보다 더 크게 화를 내버릴지도 모르겠다고 말이다.


서운한가? 어쩌겠어. 결국 나 역시 내가 수십 년 간 봐온 두 분의 근처 어딘가 쯤의 사람이 되었는데.



닮아가는 이유, 동일시.


'동일시'는 내 답신의 옳고 그름을 떠나 그 이유를 잘 설명하는 방어기제다.

동일시(identification): 자신에게 주요한 인물의 태도나 행동을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여 닮아가는 것

동일시의 대상은 부모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소꿉놀이를 하며 그들을 흉내 내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는 단순히 '모방'을 의미하지 않는다. 모방은 스스로 닮고 싶은 대상에서 비롯되는 반면, 동일시는 반드시 닮으려는 의지에 기반하지 않기 때문이다


'적대적 동일시(hostile identification)'는 닮고 싶지 않던 모습을 닮게 되는 것이다. 그게 말이 되나 싶은데, 의외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괴팍한 상사 밑에서 이를 악물고 버텼던 누군가는 동일한 위치가 되어 그와 비슷한 방법으로 자신의 상황들을 다루곤 한다. 내가 알던 선한 직원이 직급이 오르며 점차 변해가는 모습을 본 적이 있진 않은가. 혹은 내가 지금 그렇지 않은가.


아버지로부터 멀어지려던 아들


영화 〈대부〉는 영화는 마피아 조직을 이끄는 꼴레오네 패밀리의 이야기이다. 사실 이 영화에 대해서는 여러 말을 할 필요가 없다. 그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조차 OST인 'The Godfather'를 듣는다면 '어? 이거...'라고 반응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영화의 명성과 내용은 뒤로 하고, 그 가족의 모습을 살펴보자.


아버지인 비토 꼴레오네는 마피아 조직의 창시자이며, 가장 중요한 존재는 가족이다. 그에게 '가족'은 좁게는 피가 섞인 사람들, 넓게는 그와 공존하며 협조하는 모든 관련자를 의미한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살인도 마다하지 않으며, 때에 따라서는 해야 할 살인을 안 하기도 한다. 가족이 위험해질 수 있다면.

자식들은 모두 아버지를 존경하지만, 그 모습은 각기 다르다. 첫째 '소니'는 불같은 성격을 지녔으며 주변인을 건드리면 그게 누구든 가만 두지 않는다. 가족에 대한 진심은 아버지를 빼닮았지만 침착하지 못한 모습을 보고 있자면 비토의 아들이 맞나 싶다. 한 번은 (자신의 여동생을 때린) 처남을 길 한가운데에서 쥐 잡듯이 패는데, 그 분노는 이해하지만 가족 전체에겐 위험한 행동이었다. 결국 그 진심으로 인해 화를 입으니 참 안타까운 맏이이다.


둘째 '프레도'는 철딱서니가 좀 없다. 놀기 좋아하고 정작 나서야 할 때는 나약한 모습을 보이니 가업에 도움을 주기엔 부족해 보인다. 그럼에도 야망은 있고 인정에도 목말라있다. 안타깝게도 아버지는 프레도를 사랑할지언정 신임하지는 않는다.


별종은 막내인 '마이클'이다. 그는 아버지처럼 살지 않기 위해 해병대에 지원했다. 여동생의 결혼식에서도 콜레오네 무리에 속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한다. 자신의 애인에게 아버지의 사업방식을 소개하며 자신은 다른 사람이라고 선을 긋는 장면은 그의 의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2명의 양아들과 1명의 딸을 포함하여 총 6명의 자식들 중에 유일하게 아버지와 가업으로부터 멀어지려는 존재.

하지만 아버지가 상대 조직으로부터 피습을 당하자 오히려 마이클이 나서서 복수를 계획하고, 관련자들을 한 자리에 모은 후 머리에 방아쇠를 당긴다. 대학생이었고, 인생 첫 살인이었다. 그 과정에서 애인과도 멀어졌다. 〈대부 2〉에는 아버지인 비토의 젊은 시절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는 미국에서 큰 성공을 이룬 뒤 시칠리아로 돌아가 (이제는 너무 늙어버린) 조직 보스 '돈 치치'에게 가족의 복수를 한다. 아버지로부터 가장 멀어지려 했던 아들 마이클은, 아버지와 가장 근접한 방법인 살인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콩 심은 데 콩 난다


꼴레오네 이야기를 보고 있으면 그 속담이 떠오른다. 말 그대로 콩을 심었으니 콩이 난 셈. 우리는 이전 세대 일부를 선택하고 복붙하는 과정을 거쳐 지금의 존재가 되었다. 분명 잘 선택했던 것 같은데 왜 원치 않던 모습들도 복사가 되었을까. 성격의 형성과 발달에 있어 적대적 동일시도 주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나에게 부정적인 감정이나 불안을 느끼게 하는 상대와 무의식적으로 동일한 위치를 점하여 그 불안을 해소했다. 필요한 과정이었고, 그렇게 콩들은 자라났다.


하지만 자라난 콩들의 모양이 모두 같은 건 아니다. 꼴레오네의 자식들이 각자 다른 모습을 갖게 된 것처럼 말이다. 고로 모든 모습을 반드시 유지할 필요는 없다. 알코올 중독 부모에게서 자란 자녀는 같은 중독 증상을 보일 확률이 높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중요한 점은 반드시 그렇지 않다는 것. 닮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과거의 기억을 계기 삼아 술을 입에도 대지 않는 사람도 있다. 누군가는 자라난 콩을 두었고, 누군가는 뽑았다.

뽑는 방법은 간단하다. 그것이 나에게 아직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채기만 하면 된다. 쉬운 얘기 같지만 곰곰이 생각해보기 전에는 알 수 없다. 이제 와서 그런 것들을 따져보기 귀찮기 때문. 심지어 어떤 행동은 지금의 나에겐 너무 편리한 도구가 되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알아채야만 잘 뽑을 수 있고, 잘 뽑아야 채 자라지 못한 좋은 콩들을 효과적으로 남길 수 있다.


마이클은 아버지를 이어 조직의 대부가 되지만 그와 다른 점이 있었다. 아버지는 가족을 위해 자신의 세력을 확장했고, 확장하며 얻게 된 사람들을 새로운 가족으로 여겼다. 지켜야 할 사람들이 늘었고 많은 변수를 고려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해를 입었지만 그는 생각을 바꾸지 않았다.


반면 마이클은 가족이 우선순위가 아니었다. 그에겐 조직의 존폐에 대한 적과 동지만이 있었다. 가족이라도 조직에 해가 된다는 걸 알면 예외를 두지 않았다. 마이클은 아버지로부터 가장 닮고 싶지 않던 모습을 닮게 되었고, 가장 닮아야 할 모습은 놓치고 말았다. 그가 동일시의 관점에서 스스로를 돌아봤다면 그 결과가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


과거의 나에게 보내는 답신의 마무리는 이렇다. 당시 너의 심경에 공감하지 못하는 점을 미안하게 생각한다. 난 결국 네가 미워하던 그 어떤 사람이 된 것 같다. 하지만 이 편지로 인해 네가 남긴 콩밭을 한 번 더 정리할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참 좋은 것들이 남았더라. 그 시절에 네가 부단히 노력해준 덕이다. 고맙다. 너는 성공적으로 이곳에 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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