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검색어 입력폼

한국은행의 진짜 기능?

조회수 2020. 5. 6. 13:50 수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범죄의 재구성 (2004)
“모든 은행에는 지급준비율이라는 게 있다. 뭔지 알겠어?”(김선생, 백윤식 역)
“상식이지, 그런 건.”(얼매, 이문식 역)
“말해 봐.”(김선생)
“법으로 정해 놨어요. 고객이 돈을 인출해야 되는데, 은행이 돈이 떨어지면 되겠어? 그래서 은행은 전체 예금의 10% 내지 15%를 항상 현금으로 가지고 있어야 된다, 이거 아냐?”(얼매)
“그렇지. 만약 은행에 현금이 부족하게 되면? 한국은행에 가서 현금을 타오게 된단 말이야. 그래서 한국은행에서는 각 은행이 언제든지 현금을 타갈 수 있도록 미리 현금을 나눠주고 그 당좌수표를 제시하면 언제든지 현금을 내주면서, 결산은 연말에 하는 시스템이지. 우리가 위조한 게 그 당좌수표야. 가서 돈 찾아와”(김선생)

영화 『범죄의 재구성』에서 김선생 일당이 한국은행을 털기 전 나눈 대화다. 나는 이 대화를 보고 정말 감탄을 금치 못했다. 


경제학 교과서에 보면 〈한국은행의 세 가지 기능〉이라는 챕터가 있다. 그리고 이 챕터에서는 한국은행의 대표적 기능을 ①발권 은행의 기능 ②은행의 은행 기능 ③정부의 은행 기능 등 세 가지라고 설명한다. 


그런데 이 설명을 읽어도 뭔 말인지 당최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사기꾼들의 대화는 ②은행의 은행 기능을 너무나 쉬운 언어로 완벽하게 설명한다. 이게 내가 놀란 대목이다. 브라보~! 경제학 교과서도 이렇게 좀 쉽게 설명할 수 없을까?


말이 나온 김에 하나씩 살펴보자. 발권(發券)이란 화폐, 즉 우리가 쓰는 돈을 발행하는 일이다. 그리고 화폐 발행의 독점적인 권한을 가진 곳이 바로 한국은행이다. 


주의할 점은 한국은행이 직접 돈을 찍는 곳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실제로 돈을 종이에 인쇄하는 곳은 ‘한국조폐공사’라고 따로 있다. 한국은행은 1년에 화폐를 얼마나 찍을지 결정한 뒤, 이를 한국조폐공사에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두 번째 기능인 ‘은행의 은행’ 역할이 바로 『범죄의 재구성』에 나온 설명 부분이다. 한국은행은 시중은행과 달리 일반 국민을 고객으로 두지 않는다. 


대신 우리은행이나 KB국민은행 같은 은행들을 고객으로 둔다. 혹시 “제 이름이 ‘김은행’인데 한국은행과 거래할 수 없을까요?”라고 물어도 소용없다. 한국은행은 어떤 경우에도 개인과 거래하지 않는다. 


한국은행의 세 번째 기능은 ‘정부의 은행’ 역할을 하는 것이다. 정부는 세금으로 걷은 돈을 한국은행에 맡긴다. 그리고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쓴다. 정부가 돈이 부족할 때에는 한국은행이 정부에 돈을 빌려주기도 한다.


“혹시 제 이름이 ‘최정부’인데 저는 한국은행을 이용하면 안 되나요?”라고 물어도 소용없다고! 개인은 안 된다니까! 

그런데 이런 기본적인 기능 말고 정말 중요한 본질적 기능이 있다. 바로 물가를 잡는 것이다. 


한국은행은 돈을 얼마나 찍을지 결정하는 권한을 가진 곳이라고 했다. 그런데 돈을 얼마나 찍어내느냐에 따라 물가가 달라진다. 한국은행은 물가 수준에 따라 돈의 양을 조절한다. 


영화에서 나온 ‘지급준비율’도 한국은행이 물가를 조절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시중에 돈이 많이 풀리면 물가가 오른다. 이때 한국은행은 시중에 풀린 돈을 은행으로 묶어서 물가를 안정시키려 한다. 


얼매가 말했듯이 은행은 예금의 일부를 반드시 현금으로 보유해야 한다. 얼마나 보유해야 하느냐? 이 비율을 지급준비율이라고 하는데 한국은행이 이를 결정한다. 


즉 한국은행이 “지급준비율을 높이세요”라고 명령하면, 이 말은 “시중은행은 보유 현금을 늘리세요”라는 뜻이 된다. 그리고 이는 시중에 풀린 돈을 은행에 잠기게 해 물가를 안정시킨다. 


반대로 “지급준비율을 낮추세요”라고 명령하면, 이 말은 “시중은행은 보유 현금을 줄이세요”라는 뜻이 된다. 그리고 이는 은행에 잠긴 돈을 시중에 풀어 물가를 오르게 한다. 

한국은행법을 보면 제1조에 “이 법은 한국은행을 설립하고 효율적인 통화 신용 정책의 수립과 집행을 통하여 물가 안정을 도모함으로써 국민 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라고 돼 있다. 즉 한국은행의 최우선 목표는 바로 물가 안정이라는 뜻이다. 이게 바로 한국은행이 존재하는 본질적 목적이기도 하다.


사기꾼 일당이 한국은행의 기능과 지급준비율 등을 너무 쉽게 설명하는 것에 자극을 받아 나도 나름대로 한국은행의 기능에 대해 쉽게 설명해 보고 싶었다. 그런데 아무리 읽어봐도 내 설명은 김선생과 얼매의 설명 발끝에도 못 미친다. 


아, 그래서 나는 이 사기꾼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