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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서 더 잘 보이는 것들

8월의 크리스마스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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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와 관련된 세 가지 기억이 있다. 하나는 이 영화가 개봉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아마도, 1998년 2월쯤-의 일로, 나는 친구네 집에서 신문기사를 읽는 중이다. 지금은 종이 신문을 볼 일이 없으니까 어떤지 모르겠는데 그 당시만 해도 종이 신문에는 문화-특히 영화와 티비 프로그램-관련 기사들이 많이 있었다. 


그 날, 내가 펼친 면에는 ‘8월의 크리스마스’에 대한 기사가 꽤 크게 실려있었다. 주차 단속원 여자와 시한부 판정을 받은 사진관 남자의 사랑을 다룬 멜로 영화가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는데, 진부하다고도 볼 수 있는 이러한 주제를 다루는 방식이 이전의 한국 영화에서는 쉽사리 찾아볼 수 없는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특히, 주인공의 죽음을 표현하는 절제된 방식 때문에 이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더 큰 슬픔을 느끼게 되리라는, 뭐 그런 식의 표현이 있었던 것 같다. 절제된 방식 때문에 더 큰 슬픔을 느끼게 된다니, 나는 그 문장을 읽으면서 아마도 고개를 갸웃거렸던 것 같다. 

내가 이 영화를 보게 되기까지는 몇 달의 시간이 필요했다. 아마도, 98년의 여름쯤이었던 것 같다. 98년의 여름은 아직도 내게 눈부시게 남아있다. 야간자율학습을 한다고 엄마에게 거짓말을 하고, 락공연을 보고 싶어서 홍대와 대학로를 전전하던 시절. 


그날 밤 역시 공연을 보고 와서 몹시 피곤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른 가족들이 잠든 후에 몰래 거실로 나가 〈8월의 크리스마스〉 테잎을 비디오 플레이어로 집어 넣었다(아마도 반납일이 다가왔거나 그랬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문장-절제된 방식 때문에 더 큰 슬픔을 느끼게 되리라는-을 완벽히 실감했다. 


그날 밤, 나는 어둠 속에 앉아 티브이 화면을 보면서 눈물을 줄줄 흘렸던 것이다. 


정원의 죽음을 표현하는 방식 뿐만 아니라,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정원이나 그의 가족들이 그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방식은 놀랍도록 심상하다. 정원이 술에 취해서 친구에게 자신의 죽음을 농담처럼 이야기하는 장면이나 다림을 만나러 간 정원이 차마 그녀 앞에 나타나지는 못하고 유리창에 손을 대고 저 멀리 다림의 자취를 쫓는 장면은 이 영화의 덕목이 어디에 있는지 정확하게 보여준다. 

〈8월의 크리스마스〉는 한석규의 영화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심은하의 영화이기도 하다. 심은하가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표정과 감정들은 거의 완성형의 것이다. 


이 영화를 찍기 전에는 다림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적은 것 같아 불만을 가지고 있었고, 촬영 중에는 감독님이 컷 사인을 주지 않아 짜증도 났었지만 나중에는 손톱이 깨지는 줄도 모르고 연기에 몰두하게 되었다는 심은하의 일화는 유명하다. 나는 그 시절 이 영화를 통해 심은하라는 배우를 사랑하게 되었다. 


2013년에 나는 압구정에 있는 씨지브이 아트하우스에서 재개봉된 이 영화를 드디어 스크린으로 보게 되었다. 처음 영화를 본 지 무려 십오 년만의 일이었다. 

죽음은 삶의 일부다

그 전에는 〈8월의 크리스마스〉를 볼 때마다 내가 이 영화에서 받아들여야 하는 사실이 있다면 바로 이것이리라고 생각했었다. 정원이 자신의 죽음을 그토록 예사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죽음도 삶의 일부라는 사실을 깨달아서일꺼라고. 

하지만 2013년에 이 영화를 (오랜만에)다시 보게되었을 때, 나는 조금 다른 식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 식으로 죽음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있을 수 없다고. 


정원과 정원의 가족들이 죽음에 대수롭지 않게 반응하게 되기까지, 혹은 그 모든 것을 받아들였다고 믿는 그 순간까지도, 여전히 그들의 마음 속 깊은 곳에는 -어쩌면 그들 자신도 깨닫지 못한-절망과 슬픔과 고통이 들끓고 있었으리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어쩌면 (나를 포함한)누군가 이 영화를 보고 펑펑 울었다면, 그건 바로 그 감정들을 엿봤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화면 속에는 한번도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지만, 여전히 격정적으로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었던 그 감정들을 말이다. 


그러므로 나는 믿는다. 어떤 감정들은 숨기기 때문에 훨씬 더 잘 보이게 되는 거라고. 



인물소개
  • by. 손보미 소설가
    2009년 〈21세기 문학〉, 201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하고 소설가가 되었습니다. 단편집 〈그들에게 린디합을〉, 〈우아한 밤과 고양이〉, 중편 〈우연의 신〉, 장편 〈디어 랄프로렌〉을 출간했죠. 망드를 즐겨보는 고독한 빵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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