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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우리를 구원할 것인가

이어즈&이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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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싯적 ‘여고괴담’을 보고 공포를 느낀 적이 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귀신 얘기보다 공포스러운 것은 좀 더 현실적인 것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가까운 미래의 디스토피아를 리얼하게 그려내는 ‘이어즈 앤 이어즈(Years and Years)’는 고강도의 성인용 공포 드라마다. 


총 6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이 BBC 드라마는 2019년부터 2034년까지 영국 사회의 변화를 차갑고 빠르게 담아낸다. 드라마는 영국 맨체스터에 사는 평범한 가정이 그들의 정치적 선택과 과학기술의 발달에 의해 어떻게 삶의 벼랑 끝으로 내몰리게 되는지, 그리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어떤 선택을 하는지를 다룬다.


여타의 SF 영화와 달리, 드라마가 주목한 디스토피아의 원인은 핵전쟁, 테러리스트 출범, 외계인 침공이 아니다. 디스토피아의 원인은 보다 현실적이다. 

첫째, 기술 발전에 따른 일자리 감축이다. 생계수단의 차단만큼 공포스러운 것은 많지 않다. 첨단 기술은 빠르게 저숙련 노동을 대체하고 있는 바, 그것은 이미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편의점, 대형마트, 패스트푸드 체인점에서 더 이상 무인 시스템이 낯설지 않다. 자동화에 따른 일자리 대체 범위가 어디까지 확장될지, 반대로 그로 인한 새로운 일자리 창출이 어느 정도일지는 여전히 논쟁적이지만, 적어도 가까운 미래에 이로 인한 혼란은 불가피하며 그 피해를 가장 먼저 맞이하게 될 집단은 조직되지 않은 사회적 약자들이 될 것이라는 점을 드라마는 정확히 보여주고 있다.


둘째, 극우 정치집단의 부상이다. 노동시장의 양극화가 심화되었음에도 해결할 의지와 능력이 부족한 기존 정치권에 대항해 포퓰리스트 정치 집단이 전면에 등장한다. 첨단 기술과 마찬가지로 극우 정치집단 역시 이미 많은 선진 민주주의 국가들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는 점에서 현실적이고 그만큼 공포스러운 요소다. 친-대중적인 언어로 무장한 극우집단은 기존 정치권을 기득권으로 규정함으로써 자신의 존재 이유를 설득한다. 실제로 최근 정치학의 가장 큰 화두 중에 하나는 사회적 약자들이 왜 좌파정당이 아닌 극우정당에 열광하는가를 밝히는 것이다. 

이처럼 ‘이어즈 앤 이어즈’는 기계 자동화에 따른 일자리 감축과 극우집단의 부상이라는 두 요소를 결합해 암울한 미래를 펼쳐놓는다. 그것은 현실과 픽션이 교묘하게 섞여 있어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은 착각을 갖게 할 정도다.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드라마는 어떻게든 디스토피아를 극복하려고 시도한다. 그것은 무정부주의자들이 첨단 과학기술을 활용해 극우집단의 가식과 폭력성을 세상에 드러내는 것이었다. 하지만 작가가 무정부주의자들의 입을 통해서 고백한 바와 같이 그것은 진정한 해법이 되기 힘들다. 설령 무정부주의자들에 의해 현재의 극우집단이 무너지더라도 새로운 극우집단은 언제라도 다시 등장할 것이고 시민들은 다시 그들에게 열광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 드라마는 디스토피아 극복을 시도하지만 그것은 일시적 혹은 부분적 성공에 그쳤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 눈앞에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디스토피아로부터 누가 우리를 구원할 것인가? 과학기술의 발전을 막는 것이 바람직한지, 그리고 그것이 가능한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쟁적이다. 하지만 적어도 극우 정치집단이 집권정당이 되어 정책결정과정에 관여하는 것은 막아야 하고 또한 그렇게 할 수 있다.

중요한 점은 드라마가 보여주는 바와 같이 그 주체가 무정부주의자 혹은 시민사회가 되어서는 미완의 성공으로 그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극우집단에 대한 견제는 무정부주의자들이 아닌 기존 정당들에 의해 제어되어야만 지속가능하다. 실제로 극우정당이 성장하지 못한 국가들은 기존 정당들이 극우정당들의 핵심 지지기반인 사회적 약자들의 선호를 적극적으로 반영해왔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따라서 민주주의 사회에서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우리 자신의 정치적 선택에 달려 있다. 가장 피해야 할 것은 당파성이 강한 사람들의 무조건적인 정당 지지다. 그것이 진보이건 보수이건 상관없다. 기존 정당에 대한 무조건적 지지는 그들의 개혁의지를 낮추고 그 사이에 방치된 사회적 약자들은 극우 정치집단에 열광할 것이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방식은 다르더라도 공동체를 중시하는 건강한 진보와 보수는 사회적 약자들을 보살핀다. 적어도 극우정당들보단 그러하다. 그렇다면 이른바 ‘헬조선’이라는, 어쩌면 이미 디스토피아 초입에 들어선 한국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진보정당과 보수정당이 본질과 멀어지려고 할 때 그 어느 때보다 각 정당의 강력한 내부 비판자가 되거나 그러한 내부 비판자들을 응원해줘야 하지 않겠는가.


인물소개
  • by. 손정욱 제주평화연구원 연구위원, 前 국회의원 보좌관
    정치와 인연이 깊은 비정치인입니다. 지난 10년은 여의도에서, 지금은 제주도에 거주하며 한국과 동아시아의 정치 경제를 들여다보고 있는 섬사람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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